제 장래희망 중 하나는 '할머니 되기'입니다 걷기 좋은 계절입니다.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인사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시사IN〉 장일호입니다. 저는 '좋아하는 것'이 많은 사람입니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건 어쩌면 굉장한 재능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요. 꼭 그만큼 삶이 넓어지고 때로 깊어지거든요. 싫어하는 것들은 금방 잊어버리고, 좋아하는 것들의 목록을 늘려가면서 살고 싶습니다. 목록의 앞에는 야구와 아이돌이 있습니다. 제게 봄의 동의어는 야구이기도 합니다. 코로나19로 지금은 야구장에서 취식이 불가능하고, 관중도 10%밖에 받지 않아 예매도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무 약속없는 퇴근길, 잠실야구장 외야에 혼자 아무렇게나 앉아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맥주를 마시는 일은 제 오랜 기쁨이었습니다. 지난 2월 말, 첫 번째 뉴스레터를 보내고 받은 답장 중에 "기자 활동은 계속 하시는 건가요? 혹 승진하셨다면 축하드립니다"라는 메시지를 오래 생각했습니다. 저는 미디어랩에 오기 전 사회팀에서 일했습니다. 저와 저희 팀은 〈시사IN〉만이 만들 수 있는 콘텐츠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저널리즘의 안과밖을 두루 확장하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쓰는 것이 '정기구독자의 자부심'이 되었으면 했습니다. 2019년과 2020년 그 마음에서 출발한 기사들 대림동에서 보낸 서른 번의 밤/ 8000km를 날아온 낯선 질문/ 소리없이 번지는 도시의 질병 빈집/ 장점마을의 17년 해바라기 꽃 필 무렵을 저는 지금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던 중 건강검진에서 유방암이 발견됐습니다. 수술과 항암과 방사선 치료가 이어진 10개월 동안 '이전처럼 일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비취재 부서인 미디어랩에 오게된 것도 건강 상의 이유였습니다. 항암제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만, 유방암 항암제로 쓰이는 아드리아마이신과 사이크로포스파마드는 대표적인 부작용이 탈모입니다. 할 수 있는 모든 치료를 마친 지금은 잔디인형처럼 머리카락이 자라나는 중입니다. '저이는 왜 매번 모자를 쓰고 등장하는가'에 대한 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 북토크 때는 모자를 벗고 진행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제 머리통이 꽤 예쁜 편이라 역시 자랑하고 싶네요 ㅎㅎ '이랑' 서점 책방 지기님이 그려주신 북토크 현장. 다함께 보고 싶어서 뉴스레터에도 소개합니다. ⓒ이랑 서점 상황이 상황이라 한동안 질병과 관련된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매우 만족스러운 책도 있었습니다만, 대개는 성에 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 권을 기획했고, 한 권은 직접 써보려고 합니다. 요즘 주요하게 하고 있는 역할 중 하나가 편집자인데요, 지난해 지면에 연재했던 '죽음의 미래' 기사를 보완해 〈죽는 게 참 어렵습니다〉라는 제목의 책을 시사IN저널북(SJB) 2권으로 만들고 있습니다(1권은 〈가늘게 길게 애틋하게〉). 처음에는 연재 기사를 단순히 묶으려고 했는데, 하다보니 욕심이 생겨서 새로 글을 받아 정리하고 있습니다. 빠르면 6월 중에는 소개해 드릴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네, 요즘 제 장래희망은 '베스트셀러 편집자' 입니다. 얼마 전 출간된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다다서재)은 매우 즐겁게 읽은 책입니다. 암 투병 중 숨진 철학자 미야노 마키코와 의료인류학자인 이소노 마호가 주고 받은 편지를 묶은 책인데요, 삶과 죽음을 가로지르며 오간 편지를 읽다 보면 '생의 비밀'을 엿본 기분이 들곤합니다. 저는 무엇보다 미야노 마키코가 야구팬이라는 점이 좋았습니다. 그는 왜 야구를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야 아름다우니까"라고 답한다고 했습니다. "선수들은 현실이 우연에 좌우된다 할지라도 결코 노력과 준비를 그만두지 않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이 있음을 알면서도 선수들은 배트를 휘두르고 글러브를 내밉니다. 필연성을 추구하여 시합의 전개를 예측하고 스스로를 통제하려 하지만, 마지막 순간 그라운드에서 벌어지는 일에 자신의 몸을 기꺼이 던집니다. 예측할 수 없는 세계를 믿고 몸을 내맡길 만큼 강인한 것입니다." (105쪽) 저 역시 입원 중일 때면 야구의 '아름다움'에 기대 무력한 시간을 통과하곤 했습니다. 거의 매일 경기가 있으며, 끝나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는 스포츠가 주는 안도에 몸을 맡기곤 했죠. 물론 제가 응원하는 팀은 때로 건강에 해롭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야구를 못합니다. 서두가 길었습니다. 아프고 난 뒤 생긴 제 또 다른 장래희망 중 하나는 '할머니 되기'입니다. "늙어간다는 건 한 지점으로 좁혀져 들어가는 게 아니라 다양한 나이대를 통과해가며 그것들을 한 몸 안에 품어가는 다채롭게 넓어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는 사실(〈나의 할머니에게〉 발문 중)"을, 그 신비를 알아채고 싶습니다. 하지만 할머니가 되는 일은 또 한편 몹시 두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가난의 문법〉을 읽는 동안 두려움은 보다 구체화 되었죠. 〈시사IN〉이 위치한 서울 중림동은 〈가난의 문법〉의 배경이기도 한 서울 북아현동과 가깝습니다. 별 생각없이 바쁘게 지나다녔던 길을, 〈가난의 문법〉을 읽은 후로는 괜히 속도를 늦춰 걷곤 합니다. 1945년에 출생 등록을 했던 이들의 이름 가운데 가장 많은 이름이었던 '윤영자씨'는 가상의 인물입니다만, 가상의 인물이라고만은 할 수 없을 겁니다. 책은 윤영자라는 구체적인 인물을 통해 나의 운명이, 또 우리의 운명 역시 그와 연루되어 있음을 폭로합니다. 저자가 밝히고 있듯 이 책은 노인, 그중에서도 여성 노인이 주인공입니다. 저는 이 책을 '젠더' 측면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읽을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978년 미국의 여성 경제학자 다이애나 피어스는 '빈곤의 여성화'라는 개념을 제기합니다. 여성 빈곤이 여성에게 차별적인 사회구조 때문에 발생되는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가난의 문법〉은 그것이 단순히 주장이 아니라 '현실'임을 증명합니다. 〈가난의 문법〉의 짝꿍책으로 〈100세 수업:우리 미래가 여기에 있다〉(윌북, 2018)를 꼽아봤습니다. "나이는 많은 변화를 동반하지만 한 인간이 부여받은 기본 인권이 나이에 따라 변하거나 약화될 수는 없다. (중략) 고정관념과 부정적 이미지 안에 존재했던 노인을 함께 살아갈 개개인의 존재로 환원하는 것도 노후 준비의 일환이 된다." 〈가난의 문법〉을 사회에 제출한 소준철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가난의 문법〉의 위치를 먼저 이야기드릴까 합니다. 이 책은 학술적으로 가난 연구이며, 특히 '사각지대'라 불리는 차상위계층 노인의 삶과 일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러므로 사회학자 조은과 인류학자 조옥라의 〈도시 빈민의 삶과 공간〉(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1992)과 사회학자 조은의 〈사당동 더하기 25〉(또하나의문화, 2012)에서 시도했던 참여관찰을 통해 '가난'을 톺아보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사당동 더하기 25〉가 가난의 세대간 대물림을 살폈다면, 〈가난의 문법〉은 노인 세대 내 가난의 모습을 살핀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가난의 문법〉만으로 노인의 가난을 모두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다음의 책들과 함께 읽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난의 문법〉이 한국사회의 가난에서 차상위계층을 그려낸다면, 인류학자 정택진이 쓴 〈동자동 사람들〉(빨간소금, 2021)은 쪽방촌의 주민과 그들의 사회를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게다가 구술생애사가 최현숙의 〈할배의 탄생〉(이매진, 2016)이 그려낸 가난한 남성 노인의 생애 역시 함께 읽어야 합니다. 이 책들을 읽어내야 2021년 현재 가난한 노인의 사회적 위치와 그 삶을 위치 지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럼 5월 6일에 뵙겠습니다. [읽는 당신 x 북클럽 후기 공모전] 북클럽과 나 "글쓰기는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습니다. 설득도 좀처럼 하지 않고요. 훨씬 더 대단한 일을 합니다. 글쓰기는 증언합니다. 글쓰기는 목격합니다. 글쓰기는 여러분이 알아차린 것을 공유합니다." 〈짧게 잘 쓰는 법〉(교유서가, 2020) 책과 북클럽, 동네서점과 '엮인' 경험 어떠신가요. '읽는 당신x북클럽' 활동을 하며 생각한 것들을 글로 나눠주세요. 원고는 6월10일까지 상시 접수합니다. 보내주신 글은 읽는 당신x북클럽 웹페이지에 업로드 되며, 일부 공모작은〈시사IN〉지면에 게재됩니다. 지면에 실릴 경우 원고료(10만원) 지급합니다. 친구 책방들이 준비한 다양한 선물도 확인해보세요.
뉴스레터 어떻게 읽으셨나요?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당부하고 싶은 말 등 '답장'을 남겨주세요. 보내주신 피드백을 읽는 일은 요즘 제 기쁨입니다. 5월6일(목) 오후 7시30분 열릴 세 번째 북토크 질문도 받습니다. 북토크 질의응답은 사전 질문을 우선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