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창경궁과 종묘의 밤을 지키던 군인을 순라군이라고 했다. 그 순라군들의 서쪽 순찰길을 서순라길이라고 한다. 1910년 경술국치로 조선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지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서순라길에는 영국 여왕의 근위대의 이름을 딴 <퀸즈가드>가 자리하고 있다.

조선의 순라군과 영국의 퀸즈가드를 버무려 장소를 설계한 것처럼 이곳의 내부 또한 한국인과 영국인이 함께 채워가고 있다. <퀸즈가드>는 요리와 문화, 술을 즐기는 한국인 아내와 영국인 남편이 “같이의 삶”을 요리하고 있다. 서로의 같음과 다름이 융합되고 공존하듯이 조선시대 순라군이 걷던 길에서 <퀸즈가드>는 익숙지 않은 영국의 다양한 맛을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다.

테라스에는 고즈넉한 종묘의 돌담을 바라보고 삼삼오오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요즈음 날씨에는 추워서 외부를 충분히 즐기지 못하지만, 날 좋은 때에는 내부보다 테라스에 행복한 소리가 가득하다. 야외에서 즐기고 싶다면 친절한 주인이 담요를 준비해 주니 바람이 덜 불고 볕이 잘 든다 싶으면 도전해 봄직도 하다.

내부로 들어서면 머릿속에 그려두었던 영국 펍과는 거리가 멀다. 스포츠 중계 소리 대신 Oasis의 ‘Champagne Supernova’가 들려오고, 커다란 맥주잔 대신 벽장을 가득 채운 찻잎과 바에 진열된 진들이 환영하고 있다. 시끌벅적한 펍보다는 동네 아지트 같은 느낌이다.

에디터가 방문한 날은 음식을 담당하시는 영국인 남편이 부재한 탓에 <퀸즈가드>의 음식을 맛보지는 못 했다. 음식을 소개하지 못 하는 대신 평소보다 많은 술들을 마시고 얘기해 보려고 한다.

퀸즈가드의 시그니쳐 인퓨젼드 진이다. 찻잎과 허브, 과일을 진과 함께 냉침*하여 만든 담금주다. 냉침을 한 덕에 떫은 홍차 맛보다는 기분 좋은 쌉싸름함이 느껴진다. 술잔에 함께 띄운 꽃 잎과 홍차 가루가 시그니쳐 진의 맛을 직관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갓 우린 홍차의 향을 먼저 코로 맡을 수 있다. 한 모금 마시면 향긋한 꽃향기가 입 안에 가득하다. <마이리틀케이브>에서 소개한 ‘핸드릭스 진’이나 <상수소굴>에서 소개한 ‘선비진’의 향과 유사하다. 홍차나 꽃향기가 자칫 씁쓸할 수 있는데라는 걱정이 들 즈음 적당히 달콤한 토닉이 들어온다.

*냉침 : 차가운 물에서 차를 우려내는 방식.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으나, 온도를 잘 못 맞춰 떫은맛이 나게 되는 온침의 약점은 보완할 수 있다.

영어를 안 쓴 지 어언 2년. Love Lane이라는 이름을 최선을 다해 의역해 보자면, ‘사랑으로 가는 길’이려나. 영국은 좌측통행이다 보니 그대로 따라가다간 약간의 오해는 발생할 수 있겠다.

히비스커스 잎으로 냉침한 진이다. 시큼하면서도 달콤한 히비스커스가 보타니컬한 진을 만나 잘 어울린다. 러브레인의 경우, 마지막에 올려주시는 시나몬 가루가 매력적이었다. 히비스커스, 진이라고 하면 가벼운 느낌이 들기 마련인데, 시나몬 향이 무게감을 잡아주면서 복합적인 무게감을 제공한다.

울산광역시에 위치한 화수 양조장에서 만든 바닐라 스타우트다. 흑맥주가 갖고 있는 쓴맛보다는 바닐라, 초콜릿의 달콤한 맛이 강조된 스타우트다. 맥주치고는 도수가 높은 편이고, 쓴맛을 표현하는 IBU* 수치 또한 56 정도로 높은 편이지만 실제 맛은 달콤함을 더 잘 느낄 수 있다.

처음 서빙될 때, 사진에 보이는 갈색 거품이 아래에서 올라오고 있다. 이때 마시게 될 경우, 맥주와 거품을 함께 즐길 수 있고 그 맛은 커피, 초콜릿에 가깝다. 이후 거품이 위로 다 올라오고 잔잔해진 뒤 마시면 바닐라의 달콤함을 느낄 수 있다.

*IBU : International Bittering Units 의 줄임말로 맥주의 쓴맛을 나타내는 수치이다. 홉에서 추출되는 이소알파산의 농도를 나타낸다. IBU는 숫자가 높을수록 쓴맛이 강해지며 버드와이저 같은 라거 종류가 7-15 정도 수치다.

스파클링 와인처럼 마실 수 있는 술, 사이더다. 사과 즙을 발효시켜 만든 것을 말하며, 배즙을 발효시킨 것은 페리(perry)라고 한다. 와인에 비해 시큼한 뒷맛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스토포트 사이더는 140년된 영국 사이더를 대표하는 브루어리 ‘웨스톤스 사이더’에서 만들었다.

입안에서의 탄산감은 매우 강한 편이지만 목으로 넘어갈 때의 불편함은 없었다. 샴페인처럼 탄산을 목이 아니라 입으로 즐길 수 있다. 콤부차 정도의 발효도로 쿰쿰보다는 콤콤한 사과 향을 즐길 수 있다. 중간중간 입을 씻어주는 느낌도 있어서 다양한 술을 마실 때 함께 하기 좋다. 동행인 중 술이 약하거나 내일이 걱정된다면 논알코올 버전도 있으니 즐겨보시길 바란다.

퀸즈가드

ᑯ 서울 종로구 서순라길 115 1층/ B1

ᑯ 영업시간

   화-일 11:00 ~ 23:00

   매주 월요일 정기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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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랄라파리

: <퀸즈가드>에서 걸어서 1분

걸어서 1분 거리에 파리가 있다. <퀸즈가드>가 장소와 컨셉을 한국와 조화시켰다면, 올랄라파리는 한국의 식재료로 만든 프랑스 가정식을 선보인다. 예약제로 운영되는 만큼 반드시 사전 문의를 하고 방문할 것을 추천한다.

ⓒ 올랄라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