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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걸어도 주저앉고 싶어지는 7월입니다. 등줄기에 끈적한 땀이 흐르고 우산을 챙기지 못한 날 불쑥 소나기가 내려요. 이렇게 버겁도록 더운 날씨에는 겨울의 공기가 간절히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여름의 내가 아니라 겨울로 가고 있는 나를 응원하게 되어요. 더 좋은 계절을 위해 나를 아껴두고 싶어지기도 하죠. 하지만 막상 기다림 끝에 도착한 계절은 생각보다 덥고, 생각보다 추울 때가 많아요. 그 때문에 도착한 계절에서도 우리는 결국 또 다른 계절을 기다립니다.

 

다른 계절을 향한 그리움은 때로 현재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망각하게 해요. 그러니 올여름에는 더 좋은 계절을 위해 유예해 둔 나를, 조금만 여름에 양보해 보세요. 이번 레터에서는 여러분이 여름을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줄 시집을 소개할게요. 현재의 계절 속 나를 응원하며 함께 문을 열어주세요.


첫 번째 문 🚪


🎤평생 불러야 할 나라는 노래

오늘 다룰 시집은 2020년 7월에 발간된 안희연 시인의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입니다. 안희연 시인은 2012년 ‘창비신인시인상’으로 등단한 이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015년에는 첫 시집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로 신동엽 문학상을 받기도 했어요.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은 3권의 시집 중 가장 최근에 발행된 시집이에요. 시집에는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지만, 시인의 말을 통해 시인이 어떤 마음을 중심으로 책을 엮었는지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언덕엔 마음을 기댈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없지만 그래도 우린 충분히 흔들릴 수 있지. (중략) 울지 않았는데도 언덕을 내려왔을 땐 충분히 운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이 시집이 당신에게도 그런 언덕이 되어주기를. 나는 평생 이런 노래밖에는 부르지 못할 것이고, 이제 나는 그것이 조금도 슬프지 않다.” -시인의 말 中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많은 변화를 겪으며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그러나 번번이 한계에 부딪히죠. 특히 노력해도 쉽게 바뀌지 않는 나의 본질적 성향을 마주할 때면 나는 평생 나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그러나 시인은 이 시집을 통해 자신의 노래를 수용하고, 똑같은 노래를 부르는 것이 조금도 슬프지 않다고 선언합니다. 언덕을 오르는 것. 다시 말해 살아가는 것은, 내가 부르는 노래를 내가 들으며 걷는 과정입니다. 시인의 말처럼 이번 여름에는 오로지 나만이 듣는 다정한 선언을 내게 들려주는 것은 어떨까요?



🧐기꺼이 헤매는 마음

이 시집은 헤매지 않는 법을 알려주는 대신, 기꺼이 더 헤매라고 말합니다. 살아가다 보면 사실 기쁨과 슬픔이 단순한 모습을 띠고 있는 경우는 드물어요. 기쁨에도 무거운 책임이 따르는 경우가 있으며, 실수와 후회 속에서 예상 못 한 기회가 발견되는 경우도 빈번하죠. 이러한 경험을 시적 서사로 풀어낸 문장들은 어떤 감정에 매몰되었을 때 생각을 환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줍니다. 그중 두 개의 구절을 뽑아 추천해 드릴게요.

 

  1. “다다를 수 없다는 절망도 길을 주었다” (「면벽의 유령」)
  2. “물그러진 시간은 잼으로 만들면 된다 / 약한 불에서 오래오래 기억을 졸이면 얼마든 달콤해질 수 있다” (「슈톨렌」)

어떤 지점에 다다를 수 없다는 깨달음은 또 다른 길과 선택지를 제공해 줍니다. 그리고 형편없이 망가진 시간도 기억 속에서 오래오래 졸이면 달콤해질 수 있어요. 삶은 이토록 복잡하고 이상합니다. 그러니 기꺼이 헤매보세요. 미로 속에서 우리는 조금 이상할지라도 잃고 싶지 않은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두 번째 문 🚪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에 수록된 작품 중에서 특히 여름과 맞닿아 있는 시들의 일부를 모아보았습니다. 청명한 여름의 장면을 상상하면서 인용된 구절들을 읽어보세요. 모쪼록 여러분의 여름을 식혀줄 유용한 시어들을 발견하길 바랍니다.

 

🕳️흙탕물의 쓸모

 

밀가루를 뒤집어쓰고 거리로 나왔다

슬픔을 보이는 것으로 만들려고

 

어제는 우산을 가방에 숨긴 채 비를 맞았지

빗속에서도 뭉개지거나 녹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려고

퉁퉁 부은 발이 장화 밖으로 흘러넘쳐도

내게 안부를 묻는 사람은 없다

 

- 「소동」 中

 

가끔은 슬픔을 들키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스스로 고백하기 전에 누군가가 먼저 내 기분을 알아채 줬으면 하는 날이요. 이 시에서는 그런 때를 비가 오는 날로 비유해 표현합니다. 비가 내리면 습한 공기에 몸이 쩍쩍 달라붙고, 운이 나쁘면 더러운 웅덩이를 밟게 되죠. 하나의 우산 속에서 사이좋게 걸어가는 어깨를 마주칠 때는 홀로인 내 우산 속이 초라해 보일 때도 있어요. 그런 날에는 괜히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고 화자처럼 퉁퉁 부은 발을, 혹은 퉁퉁 부은 눈꺼풀을 내보이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은 날들이 훨씬 많아요.

 

긴 정적만이 다정하다

다 그만둬버릴까? 중얼거리자

젖은 개가 눈앞에서 몸을 턴다

사방으로 튀어오르는 물방울들

 

저 개는 살아 있다고 말하기 위해

제 발로 흙탕물 속으로 걸어들어가길 즐긴다

 

- 「소동」 中

 

그렇게 격동하는 감정의 반복이 이어지다 어떤 지점을 통과하면 “다 그만둬 버릴까?” 하는 체념이 밀려옵니다. 소중했던 것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포기하고 싶은 욕구가 일상을 범람해요. 그런데 비단 비를 피하는 것만이 장마를 지나는 유일한 방법일까요?


이 시에서는 흙탕물의 쓸모를 제시합니다. 시에 등장하는 개는 살아 있다는 감각을 느끼기 위해 제 발로 흙탕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요. 차가운 물의 감촉을 느끼고, 몸에 묻은 흙을 최선을 다해 털어냅니다. 살면서 우리는 언제든 흙탕물 웅덩이와 맞닥뜨릴 수 있어요. 그러나 머리까지 푹 빠졌다 나오면 이제는 같은 모양의 웅덩이가 무섭지 않게 될 거예요. 몸에 묻은 흙은 얼마든지 깨끗이 씻어낼 수 있다는 걸 알게 될 테니까요.

 



🚶걷고 있다는 사실

 

고요 다음은 반드시 폭풍우라는 사실

여름은 모든 것을 불태우기 위해 존재하는 계절이라는 사실도

모르지 않았다

 

-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中

 

가끔은 고요함도 미심쩍게 느껴질 때가 있지 않나요? 좋은 시기를 지나다 보면 지금의 평온이 꼭 필요한 때의 운을 미리 끌어다 쓰는 것은 아닌가, 혹은 이 편안함이 언제까지 유효하려나 걱정하게 되기도 해요. 그것은 우리가 “고요 다음은 반드시 폭풍우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여름은 치열함을 양분으로 자라나는 계절이라는 것도요.

 

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떤 시간은 반으로 접힌다

펼쳐보면 다른 풍경이 되어 있다

 

-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中

 

그러나 그 열기가 전혀 동력이 되지 않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죠. 나 자신이 더위에 취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오히려 지금은 속도를 늦춰도 괜찮습니다. 시의 문장처럼 “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떤 시간은 반으로 접히”니까요. 우리가 목적지를 향해 걷는 길은 직선의 형태만이 아닙니다. 삶은 멈추지 않으니 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선택을 하게 되죠. 그러니 천천히 걸어보세요. 걷다가 고개를 들어보면 어느새 사소한 선택의 축적이 데려다준 반가운 풍경 앞에 서 있을 거예요. 




🏝️여름의 바닥

 

이제는 여름에 대해 말할 수 있다

흘러간 것과 보낸 것은 다르지만

 

지킬 것이 많은 자만이 문지기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문지기는 잘 잃어버릴 줄 아는 사람이다

 

그래, 다 훔쳐가도 좋아

문을 조금 열어두고 살피는 습관

왜 어떤 시간은 돌이 되어 가라앉고 어떤 시간은

폭풍우가 되어 휘몰아치는지

 

(중략)

 

더럽혀진 바닥을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여름은 다시 쓰일 수 있다

그래, 더 망가져도 좋다고

 

- 「열과」 中

 

이 시는 시집의 마지막 시예요. 시는 “이제는 여름에 대해 말할 수 있다”라는 화자의 씩씩한 말로 시작됩니다. 화자는 여름 언덕을 오르며 무엇을 배웠을까요? 시의 제목인 「열과」는 ‘익으면 씨를 담고 있는 껍질이 저절로 벌어지면서 씨가 땅에 뿌려지는 열매’를 의미해요. 화자는 살아가는 일이 과수원을 가꾸는 일과 유사하다고 생각한 듯합니다. 여름에는 공들여 키운 열매가 터져버리거나 벌겋게 달아오른 못난 얼굴을 불시에 들켜버리기도 하죠.

 

그러나 반복되는 사계절일지라도 “어떤 시간은 돌이 되어 가라앉고 어떤 시간은 폭풍우가 되어 휘몰아치는” 것처럼 매 계절은 유일하고 유한합니다. 어떤 해에는 비가 너무 많이 내려 열매가 물러버리지만, 또 어떤 해에는 기대하지 못한 달콤함을 맛보기도 하죠. 더불어 열과 현상으로 인해 바닥에 흩뿌려진 씨앗은 다음 해에 튼튼한 싹을 틔워낼지도 모릅니다.

 

온통 터져버린 열매들로 더럽혀진 바닥을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여름은 다시 쓰일 수 있습니다. 아직 이 여름에 남아 있는 나무들은 많아요. 어쩌면 가장 뒤늦게 자라난 열매의 황홀한 맛이 몇 년을 살아가게 할 힘이 될 수도 있죠. 그러니 다시 돌아오지 않을 현재의 계절을 충분히 만끽하시길 바라요.

 

앞으로도 무수히 많은 각자의 여름 언덕을 오르게 될 여러분을 배웅하며 이만 레터 마치겠습니다.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이 궁금하다면,

💫 

7월 20일, 스물한 번째 문에서는 ‘문밖의 휴식’이라는 주제로

영화 <안경>을 다룰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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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린, <여름의 빌라>

잔잔하고 흐릿하지만 나의 평생을 지탱하고 있는 기억.

한여름 속을 걷는 내게 폭설이 쏟아져 내렸던 기억.

고요히 가라앉아 있던 여름의 기억을 다정하게 휘저어 주는 단편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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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밖의 물음표

‘여름’하면 어떤 풍경이나 사물이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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