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70> (감독 박준호)
독립영화 큐레이션 레터 by. 인디스페이스
vol. 278 〈3670〉
9월 17일 오늘의 큐 💡   
Q. 📱 종로3가 6번 출구, 7시에 만나?
모두 환절기에 감기와 떨어져 잘 지내고 계신가요? 가을의 초입에서 인사를 드려요. 여름도 물러가고 새로운 학기는 시작되고, 거의 백일 정도가 남은 올해를 어떤 마음으로 보내볼까- 새로운 다짐도 괜히 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박준호 감독의 영화 〈3670〉에도 새로운 출발선에 선 인물이 등장합니다. 바로 남한에서의 본격적인 삶을 꾸릴 준비를 하는 탈북민 '철준(조유현)'이 그 주인공인데요. 철준은 마침 소문을 들은 남한의 게이 커뮤니티에도 선뜻 가볼 용기를 갖게 되고 하루가 다르게 처음 보는 친구들을 사귀기 시작합니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3670', 바로 종로3가역 6번 출구에서 오후 7시에 만나자는 뜻입니다. 단톡방의 누군가가 먼저 번개로 3670을 외치면, 그 뒤로 오늘 모임에 합류할 사람들이 직접 3671, 3672, 3673 ··· 하고 순서를 달아가는 방식이지요. 철준은 모임에서 만난 친구 '영준(김현목)'이 소개해 주는 대로 용기를 내게 되고요, 자신도 선뜻 순서에 줄을 서기 시작합니다.
새로운 행복을 찾아 남한에 온 철준은 과연 맨 처음 가졌던 용기 있는 마음 그대로 멋진 인연을 이어갈 수 있을까요? 번잡한 대로변을 피해 골목 안쪽으로 들어온 철준과 친구들에게 어쩌면 종로3가 6번 출구 뒤쪽의 공간은 그들만의 작은 천국이었을지도 모르겠어요. 비밀스러운 우리의 약속엔 그만큼 소중한 암호가 필요한 법, 영화 〈3670〉을 보고 있으면 어쩌면 내가 내 자신과 더욱 친해지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 오늘 만나 볼 이야기

1. 💖 우리의 모든 처음 - 〈3670〉 리뷰 + GV 소식 🎤
2. ⏱️시간의 지리학 - 〈딸에 대하여〉와 함께 + 인디돌잔치 소식 🎂
3. 🎬 박준호 감독의 전작과 함께 - 〈은서〉
우리의 모든 처음
〈3670〉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그 처음은 늘 서툴다. 처음 사귄 친구, 처음 나가본 모임, 처음 경험해 보는 순간들 속에서 우리는 미묘한 설렘을 느끼기도, 잘 보이려 나름의 애를 쓰기도, 관계의 엇갈림 사이에서 작아지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 처음을 어떻게든 겪어냈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3670을 보고 나의 처음을 이루었던 감정들을 떠올려 보았다.


철준(조유현)은 탈북자이자 성소수자다. 든든한 탈북자 친구들이 있지만 정체성에 관한 고민을 털어놓기는 어려워 늘 공허한 마음이다. 그렇기에 철준은 나와 닮은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함께 있다는 감각을 느끼고 싶다. 용기 내 처음 나가 본 술 번개 모임에서 영준(김현목)을 만난 철준은 처음으로 게이 커뮤니티에 발을 들이게 된다. 처음 만나는 같은 정체성을 공유하는 사람들, 처음 느껴본 어딘가에 속해 있다는 감각 속에서 철준은 지금껏 채워지지 않았던 욕망을 처음으로 채워 나간다. 영화의 제목이자 이들만의 은어로 사용되던 ‘3670’의 의미를 모르던 철준이 어느덧 자연스레 뒤에 숫자를 더해가는 것처럼 조금은 겉도는 듯해 보여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커뮤니티의 일원이 되기 위해 애쓰는 중이다. 하지만 언제나 감정은 엇갈리기 마련이고 크고 작은 관계의 균열 속에서 철준은 다시 혼자가 된다.

3670은 탈북민 커뮤니티와 게이 커뮤니티의 경계를 오가는 인물인 철준을 통해 철준의 경험이 곧 우리의 경험이 되는 감각을 만들어 낸다. 탈북자이자 성소수자인, 중첩된 소수자성을 지닌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지만, 인물이 가진 고민의 결이 우리의 고민과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영화는 보여준다. 철준의 특수한 소수자성만 부각하며 한국 사회의 편견 섞인 시선에 둘러싸인 소수자의 이야기를 자극적으로 풀어내기보다는 게이 커뮤니티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는 철준의 모습과 아르바이트를 하고 자기소개서를 고쳐 쓰며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철준의 모습을 교차해 보여줌으로써 철준 또한 그저 새롭게 발 디딘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한 명의 청년이라는 점을 일러준다. 고군분투하는 철준의 몸부림을 지켜보는 우리는 자연스레 철준의 처음을 우리의 처음과 겹쳐 보게 된다.

처음이라 삐걱댔던 관계, 서툴렀던 마음, 전하지 못한 진심까지. 이 모든 처음을 겪어낸 철준은 어느덧 불쑥 성장해 있다. 대학에 입학하고 탈북자 친구들에게도 그동안 숨겨왔던 정체성을 고백한다. 작은 오해로 잠시 멀어진 영준과도 화해한다. 혼자 모임에 나가는 것도 주저하지 않고 나와 비슷한 사람에게 먼저 손도 내밀 수 있게 되었다. 외롭고 스스로 싸우던 처음의 순간들이 다 끝난 것처럼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즐거운 시간도 다 가고 죽을 만큼 힘겨운 시간도 다 가기 마련이다. 아마 철준도 이제는 알게 되지 않았을까.

 

서툰 실력이지만 처음 마이크를 쥐고 노래를 부르던 철준의 모습이 영화가 끝나고도 마음에 오래 남아 있다. 진심 어린 목소리로 내뱉는 가사를 곱씹으며 약간의 눈물이 맺힌 듯한 철준의 눈을 계속 응시한다. 언젠가 이 노래를 우연히 듣게 된다면 철준의 안부가 궁금해질 것만 같다.

인디즈 서민서

〈3670

감독 박준호

출연 조유현, 김현목, 조대희

124분|극영화|2025


자유를 찾아 북에서 온 철준에게는 탈북자 친구들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다. 어디에서 속하지 못한 채 혼자만의 외로움을 견디던 철준은 우연히 만난 동갑내기 영준의 도움으로 이제껏 알지 못했던 세계와 마주한다. 영준은 철준의 친구가 되어주고 철준 역시 조금씩 마음을 열어간다. 하지만 인기남 현택의 등장과 함께 철준과 영준의 마음에 묘한 파장이 일어나며 두 사람의 관계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가는데…

팀 〈3670〉, 개봉 이후 하루하루 바쁘게 전국을 돌며 관객을 만나고 있다는 소식이에요. 인디스페이스에서도 지난 주말 한 차례 GV로 감독과 배우들을 만났었는데요. 다음 주 수요일! 추가 GV가 진행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번에는 조유현, 김현목, 조대희 배우와 박준호 감독은 물론 최근 드라마 〈애마〉를 연출하고 돌아온 이해영 감독과 함께하는 토크가 예정되어 있다고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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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지리학
〈3670〉 그리고 〈딸에 대하여〉

우리가 어떤 영화를 100% 이해할 수 있을까? 인물은 영화 이전부터 있어왔다. 영화가 만들어낸 가상의 존재라 할지라도 첫 시퀀스가 시작됨과 동시에 태어나진 않으니. 우리는 그를 알지 못한다. 영화를 보는 일이란 길거리에서 마주친 누군가에게 불현듯 시선을 고정하고 2시간 내내 미행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장면에 동선이 생기는 순간, 모든 영화는 성장 영화일 수 있다. 일련의 사건이 수직적이든 수평적이든 거꾸로 돌아가든 세차게 파고들든 시간은 흐르고 감정은 마음 깊이 남는다. 공간의 이동이 이 땅의 지도가 된다면, 시간의 흐름은 인물 내면의 지도를 새긴다. 그 지도를 타임라인 삼아 한 생애의 어느 시점부터 어느 시점까지, 내면의 GPS를 따라가다 보면 마치 2시간을 함께 뛰어다닌 듯이 마음의 체력이 자라난 기분이 든다. 그 순간부터 이해는 관객의 필요조건이 아니게 된다. 여기, 시작과 끝의 풍경은 그대로지만 마음만큼은 까마득할 정도로 멀리서 손 흔들며 끝나는 두 영화가 있다. 아기 오리가 날아보자고 마음먹듯이, 누군가에게 방 한 칸 내어주자고 결심하듯이.

너 지금 아기 오리 같아

 

영화 〈3670〉은 탈북민이자 성소수자인 철준의 묵묵한 서사를 통해 관계가 한 인간의 내면을 어떻게 뒤바꾸는지를 탐구한다. 뿌리 뽑힌 채 부유하던 철준에게 영준은 단순한 로맨스 상대를 넘어, 그가 낯선 세상에 첫발을 굳건히 내딛게 만든 나침반에 가깝다. 영화는 둘의 관계를 통해 철준의 내면적 지형도가 변화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관계야말로 한 인간의 정체성을 근원적으로 움직이는 맨틀임을 보여준다.

 

영화는 철준이 대학 입시 자기소개서 앞에서 느끼는 막막함으로 그의 현재 상태를 은유한다. 탈북이라는 거대한 배경과 성적 지향성 외에 스스로를 설명할 언어를 찾지 못하는 그의 삶은 단절된 과거와 불확실한 미래 사이에서 위태롭게 표류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영준을 만나면서 그의 삶은 비로소 구체적인 이야기로 거듭나기 시작한다. 함께하는 일상의 시간은 철준의 삶을 비로소 살아볼 만한 공간으로 만든다. 둘러앉아 술을 마시고, 카페에 앉아 미래를 준비하는 평범한 20대 청년으로서의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은 곧 철준이 자신의 위치를 인식하고 터전을 일구어가는 정신의 재개발에 가깝다.

 

그러면서 영준은 철준이 새로운 사회에 주도적으로 정착할 용기를 내도록 등을 떠민다. 철준에게 어미만 졸졸 따라다니는 아기 오리 같다며, 자신만 계속 따라다니면 원하는 사람을 만날 수 없다고 조언하기도 한다. 그의 조언대로 철준이 다른 사람을 만나지는 않았지만, 문득 돌아본 그는 어디론가 멀리 도착해 있다. 한국 사회를 겉도는 이방인에서, 새로 알게 된 탈북자를 종로 3가에 데려가 커뮤니티에 초대하는 위치가 된다. 이어폰을 꽂고 다니는 남한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던 그는 어느새 자신도 자연스럽게 이어폰을 끼고 거닌다. 노래방에서 노래를 모른다며 한사코 거절하던 그는 이제 나도 예약했다고 말하며 마이크를 쥐어 든다. 그렇게 관계는 또 새로운 사람으로, 더 큰 원으로 빙빙 돌아가며 이어진다.

너는 내 딸이니까

 

〈3670〉이 성소수자의 내적 성장을 직접적으로 다룬 반면, 영화 〈딸에 대하여〉는 성소수자 딸에게 굳게 닫혔던 엄마의 내면이 조용히 성장하는 과정을 담아낸다. 딸 그린의 동성애 정체성을 외면하던 엄마 정은은 딸과 그의 연인을 한 집에서 직접 겪어내며 딸의 세계를 두 눈으로 마주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영화는 '엄마'의 마음이라는 좁고도 깊은 지도를 통해 관객들이 세상의 다름을 이해하는 방식을 함께 경험하도록 유도한다.

 

영화 초반 정은은 동성 연인과 함께 집에 얹혀살겠다는 딸 그린이 못마땅할뿐더러, 기간제 강사 동료의 부당해고에 분노하며 투쟁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듣는다. 정은은 딸이 평범하게 살아가길 바란다. 그녀의 딸이기 때문이다. 때때로 가족이란 이름은 너무 가까워 각자만의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만다. 함께 사는 일과 이해하는 일이 별반 다르지 않다고 치부하게 만든다. 그러나 영화는 딸이 커서 자신을 인정하는 순간 엄마는 다시 한 뼘 자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딸에 대하여〉는 함께 살면서 이해하는 일, 이해하기 위해 함께 사는 일을 너무 쉽게 포기하지 않는 의지의 성장록이다.

인디즈 문충원

〈딸에 대하여

감독 이미랑

출연 오민애, 허진, 임세미, 하윤경

106분|극영화|2024


돌덩이 같은 가방을 메고 하루 종일 전국을 떠돌아다녀야 하는 보따리 강사. 그럼에도 동료 강사의 부당해고에 분노하며 생계는 나몰라라 투쟁에 앞장서는 ‘나의 딸’

혼인 신고조차 할 수 없는 동성 연인과 7년 째 연애를 하고 있는 ‘나의 딸’이 집으로 돌아왔다, 동성 연인과 함께. 세상의 부조리를 이해할 수 없는 딸과 세상에 부적합한 딸을 이해할 수 없는 나. 우리가 함께 마주할 세계가 있을까?

〈딸에 대하여〉를 극장에서 만나보고 싶은 분들을 위해 😆 상영 소식을 전합니다. 바로 이번 달 인디돌잔치 작품으로 〈딸에 대하여〉가 선정되었다는 소식인데요! 작품을 연출한 이미랑 감독과 함께하는 GV가 예정되어 있으니 아직 이 작품을 관람하지 못하신 분들, 또는 한 번 더 보고 싶은 분들은 모두 이번 기회에 극장에서 관람해 보세요 💖

🎬 박준호 감독의 전작과 함께

〈3670〉의 철준을 보다 보면 우리가 스쳐 지났던, 또는 우리의 곁에 늘 있었던 조용했던 친구가 떠오르기 마련입니다. 이처럼 박준호 감독의 영화는 우리 주변의 인물이 겪는 상황을 영화적으로 잘 살려낸다는 특징이 있는데요. 감독의 전작 단편 〈은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박준호 감독은 〈3670〉 이전에 〈은서〉를 통해 탈북민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어요. 북한에서보다 남한에서 더 오래 살아 온 '은서' 앞에 별안간 엄마가 찾아옵니다. 자신이 탈북민인 것을 잊고 살던 은서는 순간 엄마로 인해서 혼란 아닌 혼란을 겪게 되지요.
〈은서〉에서 모녀로 등장한 김진이, 차미경 배우는 각각 〈3670〉에서 '선생님'과 '이모' 역할로 특별출연했어요. 박준호 감독은 이전 인터뷰에서 실제 탈북 청년을 대상으로 한 교육봉사를 한적이 있다고 밝혔는데요, 어쩐지 두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모습이 괜히 만들어진 것은 아닌 것 같네요 😎

〈은서〉

감독 박준호

출연 김진이, 차미경

29분|극영화|2019


📍 시놉시스
어느덧 탈북한지 20년이 되어 북한보다 남한에 더 오래 산 은서(37). 스스로 탈북자인 것도 잊고 남한 사회에 완전히 적응해 살아가고 있는데, 20년 만에 탈북한 엄마와 함께 살게 되면서 자신이 탈북자라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한다.

📍 연출의도
언젠가 만난 적이 있었던 북한보다 남한에서 더 오래 산 새터민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남한에 얼마나 오래 살아야 비로소 남한사람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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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끝나지 않은 '2025년 국민 영화 관람 활성화 지원사업'! 오늘도 소개해드려요. 

티켓 한 장당 6천 원이 할인되는 마법 같은 이벤트, 🧙 
인디스페이스에서는 4천 원으로 극장에서 〈3670〉을 볼 수 있고요.
조조나 청소년/경로/장애/단체 등등의 할인에는 추가로 가격을 낮춰드리니 (!!)
누구나 부담 없이 저렴한 가격에 독립영화를 만날 수 있게 되었지요. 
(😎11시 이전 시작하는 조조 영화는 무려 천 원에 만날 수 있다는 사아시일)

온라인 예매 시에는 미리 여러분의 계정에 쿠폰을 넣어 드렸어요. 바로 사용하면 되시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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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극장에서 시원한 마음으로 다 같이 영화 보며 쉬어 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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