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가 필요한 이유

플랫폼P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 김현호 센터장

대형 쇼핑 공간을 마주 본 곳에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가 있다. 책 먼지가 떠다니는 공간에 모인 이들은 각기 책을 한 권씩 들고, 읽고, 만들고 있다. 작은 도서관을 스터디카페로 바꾸겠다고 선언했던 박강수 마포구청장은 이 공간을 일자리센터로 바꾸겠다고 나섰다. 입주 기간이 3개월밖에 남지 않은 출판사들이 이곳을 지키기 위한 서명 운동을 시작했다. 플랫폼P는 왜 시민에게 필요한 공간일까?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 김현호 센터장에게 플랫폼P를 물었다.

플랫폼P는 작은 출판사와 출판 생태계의 다양한 작업자들을 지원하는 공간이다. 출판사뿐 아니라 일러스트레이터, 디자이너, 작가, 저작권 에이전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 이르기까지 공모와 심사를 통해 선발된 52개사가 3층에 입주해 있다. 2층 공간은 입주사와 시민들이 교류하고, 다양한 책 문화를 나누는 곳으로 구성돼 있다. 입주사와 시민에게 모두 출판 관련 실무 교육과 멘토링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으며, 책과 관련한 국제 심포지엄, 전시도 함께 개최한다. 마포구에서 설립했고, 보스토크 프레스가 운영한다. 작은 출판사가 생태계의 작은 동료들을 위해 운영하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플랫폼P 지원 프로그램에 할당된 예산이 크지는 않다. 다만 공공성을 생각하고, 현금성 지원은 가급적 지양한다. 크라우드 펀딩 지원의 경우, 입주사들이 계획안을 제출하면 이를 내·외부에서 심사해 지원자를 선정한다. 지원자는 크라우드 펀딩 전문 매니저의 멘토링을 받아야 하고, 자신이 설정한 목표 금액을 달성해야만 지원이 제공된다. 지원 형태는 현금 지원이 아니라, 해당 도서를 일정 수량 구매해 지역 도서관이나 독서 단체에 보내는 방식이다. 보낼 때는 해당 출판사의 작업을 주목해 달라는 레터를 첨부한다. 문턱이 낮은 지원도 있다. 예를 들어, 작은 출판사는 신간 북토크를 한 번 열기도 쉽지 않다. 입주사가 책을 출간하면 플랫폼P는 연사의 지역 주민 대상 북토크와 강연을 지원한다. 서울시 인재개발원을 기준으로 한 소정의 금액을 강연료로 드리고, 우리 스태프들은 온라인 강연을 함께 진행할 수 있도록 돕는다. 손은 많이 가지만, 소중한 지원 사업이 선심성으로 흐르지 않도록, 지역과 함께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무작정 책이 소중하다는 식의 이야기는 나도 싫다. 다만 출판은 개인이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콘텐츠 사업이고, 생각보다 벤처 성격이 강하다. 예를 들어 교보문고에 가면 1인 출판사가 낸 책이 대형 출판사들의 책들과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당당히 경쟁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출판을 지탱하는 인쇄 산업이 기본적으로 대량생산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턴키(turnkey) 발주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생산자가 직접 생산 시설을 확충하지 않아도 대량 제작이 가능하다.

출판은 올드 미디어와 뉴미디어가 교차하는 산업이다. 그렇다 보니 배울 것이 너무도 많다. 우리 입주사는 대체로 8대 1 정도의 경쟁을 뚫은 명망 있는 작업자들이다. 하지만 그만큼의 성취는 오히려 출판 편집이나, 디자인 등 세분화된 업무에 집중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인쇄 견적은 어떻게 검토할지, 제작 사고에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대형 서점과 지역 서점에 각각 어떤 배본 전략을 세워야 하는지, 면세 사업인 출판과 과세 사업인 도서 제작 용역의 세무 처리는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지…. 이런 일은 혼자서 처리하기 어렵다. 초기 단계에서 누군가 조금만 알려 주고 도와준다면, 우수한 작업자들은 한국의 지적 생태계를 풍요롭게 할 것이다. 출판이 취약해 보일 수도 있지만, 일러스트레이터와 디자이너, 사진 스튜디오, 인쇄 제작사, 저작권 에이전시 등 수많은 산업을 견인한다.

초기 창업자에게 가장 중요한 자산은 자신의 시간이다. 우리도 창업자 출신인 만큼,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플랫폼P는 서울신용보증재단과 업무 협약을 맺어, 재단 담당자가 플랫폼P에 직접 방문해 원스톱으로 대출과 재무 상담을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딱히 비용이 드는 지원 사업은 아니지만, 입주자 입장에서는 서류 미비 등으로 몇 번씩 찾아가는 일도, 괜한 상처를 받을 일도 적다. 여러 베스트셀러를 낸, 명망 있는 출판 편집자 출신의 창업자가 있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무사히 출판을 이어갈 수 있었다며, 센터를 “은인”이라고 표현해 주시더라. 기억에 남는다.

큰 출판사와 작은 출판사가 모두 존재하는 생태계가 더 건강하기 때문이다. 영업력을 바탕으로 경쟁이 치열한 시장을 타깃으로 하는 책들은 아무래도 대형 출판사에 어울린다. 하지만 같은 시장 규모라고 해도 수십만 권이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여러 종 있는 출판 시장보다는, 수천 권이 팔리는 책들이 많이 공급되는 출판 시장이 더 바람직하다. 이런 생태계야말로 독자가 충분히 세분화돼 있으며, 자신이 즐기는 책에 많은 자원을 투자한다는 것의 증거다. 오늘날의 1인 출판은 작은 취향을 겨냥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식물 전문 출판사는 덩굴 식물이나 괴근 식물에 대한 책을 따로 낼 수 있다. 식물에 대한 일반적인 책들과 함께, 전문적이고 작은 취향의 책들이 공존하는 출판 생태계가 훨씬 단단하고 풍요롭다.

사실 잘 모른다. 작년부터 계속 질문했지만 ‘검토 중’이라는 답 이상을 받지는 못했다. 마포구에는 이미 일자리센터가 있다. 우리가 잘못 운영하고 있다면 해당 사실을 지적하고 계약을 해지하면 될 테다. 하지만 3개월, 9개월 단위의 쪼개기 계약이 진행되고 있다. 지칠 수밖에 없다. 우수한 평가를 받았던 작년의 사업 평가에서 받은 코멘트는, 센터를 대표할 수 있는 더 큰 사업을 하라는 것과 지역을 배려하는 프로그램을 더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우리 역시 팬데믹이 끝나는 시기에 맞춰 여러 협업을 계획하고 있었지만, 계약 기간이 몇 달 남지 않은 상황에서는 협업을 제안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소중한 시간이 사라지고 있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입주사 계약 연장과 신규 입주사 선발을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7백 평이 넘는 광활한 공간에 십여 팀만이 남아서 시간을 버텨내는 일은 참으로 괴로울 것 같다. 공간 자체가 폐허가 되지 않겠나.

서명 운동과 구청에 대한 항의 주체는 지난달에 결성된 입주사 협의체다. 대부분 삼 년을 꽉 채워 입주하셨고, 계약 기간이 석 달이 채 남지 않은 분들이다. 센터가 계속 이어진다고 해서 본인들에게 이익이 되는 것은 없다. 그저 출판 생태계를 지키겠다고, 센터에 대한 우정을 바탕으로 기꺼이 거리에 나선 분들이다. 출판하는 분들은 기본적으로 밖으로 돌아다니기보다는 책상에 앉아서 원고를 들여다 보는 일에 익숙한 분들이다. 나는 왠지 부끄럽고 서글퍼서 그분들을 자꾸만 피하게 된다.

이해하기 어렵다. 첫 입주사를 선발할 때 플랫폼P는 ‘마포구민을 우대하는 별도의 트랙을 만들어야 하느냐’고 물었고, 구청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가 전국 단위의 거점 공간으로 설계됐기 때문이다. 마포구민만을 대상으로 선발하는 것이 무엇이 어려웠겠는가. 단지 공고문에 몇 줄을 추가하면 되는 일이다. 그러나, 전국의 공공 창업 공간 중에서 주민등록지를 기준으로 하는 경우는 드물다. 지방자치단체가 창업자를 유치하는 것이 그 자체로 지역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이 공간에서만 100개가 넘는 사업자 등록이 이뤄졌다. 마포구에서 뭐든 창업하고 사업하는 사람이 늘어나면 좋은 것 아니겠나. 근처에서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모여 있으면 함께 협업도 하고, 협력 업체를 선택할 때도 공간적 접근성을 무시하기 어렵다. 실제로 센터에서 퇴실한 이후에도 마포구 인근에 사무실을 구하는 경우도 많다. 창업자를 유치하는 게 지역 생태계와 출판 생태계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셈이다.

작은 도서관은 굉장히 중요한 존재다. 한 번만 가봤어도 그 중요성을 모를 수가 없다. 그곳에는 진짜로 갈 데 없는 아이들이 모인다. 우리 집 근처에 인터넷이 안 깔린 집이 이렇게나 많은지 몰랐다. 저녁에 부모님이 퇴근해야지 겨우 유튜브를 볼 수 있는 아이들이 많다. 그런 아이들에게 작은 도서관은 소중한 공간이다. 우리는 이 같은 공간이 유지되기를 바라며 세금을 낸다. 그것이 공공이다.

필요하다. 나는 적지 않은 시간을 시민 멘토링에 보낸다. 우리 모두가 시민이 아닌가. 책을 만들고 싶은 시민은 정말로 많고, 마포구는 더욱 그렇다. 아마 우리가 하는 출판 문화 관련 프로그램만큼 많은 시민이 모이는 프로그램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시민들은 가볍게 산책하며 예쁜 물건을 사기도 하지만, 출판 창업을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한다. 시민의 지성과 복잡성을 존중해야만 한다. 요즈음 디자인 스튜디오나 일러스트레이터의 출판 병행을 상담하는 일이 부쩍 늘었다. 이 상담 역시 센터의 역할일 것이다.

마포뿐 아니라 다양한 지역에도 책 문화 센터가 생기고 있다. 특정 산업을 지정하는 종류의 창업 지원 센터인 셈이다. 플랫폼P는 그들의 플래그십 같은 존재다. 진행하는 프로그램의 규모도 크고, 위치도 좋다. 이런 존재가 험하게 쓰러지면 모두가 무력해지지 않겠나. 그간 쏟아부은 세금과 노력이 무참하게 매몰되는 것 역시 너무 아깝다. 센터의 방향에 대해 어떤 논의가 오갔고, 어떤 연구와 용역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시 말하지만, 무조건 출판이 소중하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근거 자료를 놓고 함께 토론하자는 것이다. 나는 언제든지 비판을 대면할 준비가 되어 있다.

글 김혜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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