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홍수는 이제 영화 <기생충>에 등장한 잊을 수 없는 장면 덕에 한반도에서 멀리 떨어진 서구의 시청자들에게조차 잘 알려진 한국형 기후 재난의 전형적 표상이 되었다.”
안드레아스 말름의 ‘화석 자본’ 한국어판 서문의 이 대목을 보기 전까진, <기생충>이란 영화에서 ‘기후위기’를 콕 집어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무지막지한 폭우 속에 집이 잠겨버린 ‘반지하’ 가족과 ‘비가 미세먼지를 걷어준 덕에 맑은 날씨가 됐다’며 기뻐하는 부잣집 사모님이 대비되는 장면을 떠올려보니, ‘과연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올해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는 처음으로 ‘화석연료’라는 ‘전환’(transitioning away)의 대상을 명확하게 언급하고, 향후 10년 동안 단계적으로 이로부터 벗어나자는 취지의 합의를 이뤘다고 합니다. ( 👉기사보기) 다만 ‘퇴출’이나 ‘감축’ 같은 강력한 용어 대신 ‘전환’이라는 우회적인 용어를 쓴 것 등을 두고 ‘또다시 말잔치’라는 비판도 나옵니다. ‘이미 늦었다’는 절박함이 갈수록 커지면서, 기후위기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역시 날로 날카로워져 가는 모양새입니다.
인간이 만드는 여러 서사 속에서 기후위기에 대한 경고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갈 겁니다. 다만 ‘클라이파이’(Cli-Fi) 같은 특정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차라리 그 모든 서사 속에 날씨나 풍경처럼 자리하게 되겠죠. <기생충>을 클라이파이로 평가한 생태학자·작가인 벤 골드파브는 이렇게 말했더군요. “가장 좋은 종류의 클라이파이는 기후변화가 거의 눈에 띄지 않는 고정장치가 되어 일상생활의 드라마를 연기하는 무대가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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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도 '인류세'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등 인간이 지구에 미친 영향이 너무 커서, 홀로세를 잇는 새로운 지질시대를 인류세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인류의 종(種)적 책임을 환기한다는 의미가 큰데, 한편으론 과연 그게 맞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인류가 새로운 지질시대를 낳은 것은 과연 그 존재의 필연성 때문일까요? 정치생태학을 연구하며 기후운동을 벌이고 있는 스웨덴 출신 안드레아스 말름은 자신의 박사논문을 토대로 쓴 첫 책 <화석 자본>에서 우리를 오늘날 기후위기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역사적 현장으로 데려갑니다. 바로 자본주의와 화석연료가 처음으로 결합한, 19세기 초 영국 면직업 공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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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면직업은 애초 수차를 활용한 수력에 기대어 산업 혁명을 이뤘습니다. 18세기 말 제임스 와트가 개선된 증기기관을 만들었지만, 생산력이 낮고 비쌌던 증기력은 좀처럼 수력을 대체하지 못했습니다. 증기력이 수력을 대체하는 데에는 또 다른 결정적인 원인이 필요했는데, 그것은 당시 제조업자들의 '선택'이었습니다. 1825년 시작된 '자본주의 최초의 구조적 위기'는 노동조합 결성과 파업 등 노동자들의 힘이 끓어오르게 만들었고, 자본과 노동의 교착상태는 1848년에야 마무리됩니다. 지은이는 이 기간 동안 노동을 복속하고 통제하기 위해 자본이 선택한 것이 바로 증기력이었다고 말합니다.
증기력은 비용, 생산성 등 모든 측면에서 수력에 밀렸지만, 어디서든 언제든 자본이 원하는 장소와 시간에 공장을 돌릴 수 있게 해준다는 측면에서 결정적인 장점(자본가 입장에서)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증기력을 통해 자본은 '권력-동력'을 얻게 된 반면 노동은 '권력 없는 동력'이 되고, 이로부터 '화석 경제'가 시작됐다는 이야깁니다. 지은이의 말대로라면, 이 새로운 지질시대는 '인류세'가 아니라 '자본세'라고 부르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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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세'는 지질시대에 대한 논의이니만큼 그 논의는 과학계가 주도하여 만들어왔습니다. 정식 지질 연대로 인정하려는 노력도 진행 중입니다. 인류세실무그룹 사무국장의 인터뷰를 공유합니다.
🐟마르크스주의를 토대로 삼은 생태철학자인 안드레아스 말름의 또다른 책으론, 코로나19 시기 동안 집필한 <코로나, 기후, 오래된 비상사태>(마농지)가 국내에 먼저 출간된 바 있습니다. 이 책에서 말름은 우리가 화석에너지+자본주의와 싸우고 있는 전쟁을 치르고 있기 때문에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계획과 공공 통제를 실시하는 등 '생태적 레닌주의'를 추구해야 한다는 급진적인 대안을 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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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주의의 조선 식민 통치는 기본적으로 무력에 바탕을 두었지만 각종의 선전과 세뇌 방식이 병행되었습니다. 한국사 연구자 최규진의 <포스터로 본 일제강점기 전체사>는 그 가운데에서도 포스터를 이용한 일제의 이데올로기 주입을 까발린 역작입니다. 지은이는 일제강점기의 매체와 문헌에 실린 거의 모든 포스터를 확인해서 정리했는데, 데이터 작업이 불가능한 이미지 자료의 특성상 기초 작업에만 1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책은 계몽, 홍보, 사상동원, 전쟁동원 네 개 장으로 나누었고 각 범주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포스터를 배치하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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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생과 건강, 시간 관념 같은 생활 습관 개선 포스터 이야기로 책은 시작하는데, 위생과 건강처럼 얼핏 이념과는 무관해 보이는 분야에서도 제국주의의 교묘한 전략이 숨어 있다는 것이 지은이의 판단입니다. 물산공진회 포스터들에서는 경복궁과 불국사 같은 조선의 전통 공간들이 어둡고 쓸쓸하게 묘사된 반면 공진회 건물은 밝고 활기차게 그려져 있습니다. 1940년의 조선대박람회 포스터에서는 흰 저고리에 검정 치마를 입은 조선 여성이 일장기를 흔드는 모습을 통해 일제에 대한 조선인의 복종과 충성을 드러냈습니다.
중일전쟁에 이어 태평양전쟁까지 일으킨 일제는 조선인을 전쟁에 동원하는 데에도 포스터를 적극 활용했습니다. 조선 청년들이 일제의 징병과 일왕을 위한 ‘순절’을 염원하는 듯한 이미지를 담은 포스터, 1945년 8·15 해방 직전까지도 총후의 임전 태세를 강조한 포스터는 전쟁과 식민 지배 영속화를 향한 일제의 야욕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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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한 미국 정치인의 암살을 다룬 소설 <부스>가 결국 미래를 비추고 있다면, 징후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1854년 16살이 된 남자 존 윌크스 부스(1838~1865)의 이민자 경험입니다. 야망과 과시욕이 많던 청년은 그러나 가족 농장의 농부로 수확철 가장 값싸게 고용된 아일랜드 노동자들까지 관리하는 처지입니다. 노예들관 달리 대우해야 했는데, 존은 아일랜드 일꾼들이 경망스럽다며 배척합니다. 존은 즈음 무지당에 가입해 있었습니다. Know-Nothing Party. 반이민자를 목표로 하는 정치단체. 흑인은 이슈도 아닌, 존의 무지당이 득세한 도시 볼티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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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2021년 1월 전세계의 경험입니다. 트럼프 추종자들은 조 바이든 대통령의 인준을 막겠다며 미 연방 의사당을 무력점거합니다. 트럼프는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를 수호할 것을 결의한다. 우리는 싸울 것이다. 만약 죽도록 싸우지 않으면 당신에게 더이상 나라는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외칩니다. 지독하지요? 남북전쟁 당시, “폭군”을 상대로 싸워 복수하라고 복돋는 메릴랜드주의 주가(州歌)를 떠올리니까요.
가사 속 “폭군”이 누구일까요. 바로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해마다 꼽히는 에이브러햄 링컨(16대)입니다. 트럼프가 싸워 지키자는 정부는? 링컨이 저 유명한 게티스버그 연설(1863년 11월19일)에 새긴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입니다. 전쟁을 발발시킨 남부연합의 망령, 아니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트럼프의 유령을 작가는 링컨을 암살한 존 부스의 가족 이야기를 통해 지능적으로 부각합니다. 내년, 속수무책이라는 미국인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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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반니 보테로(1544~1617)는 ‘국가이성’이라는 말을 퍼뜨린 근대 초기 이탈리아 정치사상가입니다. 보테로는 앞 시대 니콜로 마키아벨리(1469~1527)의 정치사상을 논박하는 것을 자신의 이론적 입각점으로 삼았는데, 그 이론이 집약된 저작이 <국가이성론>(Della Ragion di Stato)입니다. 근대 서구 정치 세계에 큰 영향을 준 보테로의 이 대표 저작이 마키아벨리 전문가 곽차섭 부산대 명예교수의 손을 거쳐 우리말로 나왔습니다. 보테로가 활동한 시기는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과 가톨릭의 대항종교개혁이 맞부딪치고 그 사이에서 절대군주제라는 초기 근대국가 체제가 등장하던 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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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혼란의 한복판에서 보테로는 가톨릭이라는 종교와 절대주의라는 정치가 조화를 이룰 길을 찾았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보테로의 반마키아벨리즘이 서술 과정에서 아이러니한 역전을 보여준다는 사실입니다. 마키아벨리가 ‘정치적 유용성’의 관점에 서서 종교적 미덕을 배제하듯이 보테로도 ‘정치적 유용성’의 관점에 서서 종교적 미덕을 옹호하는 것이죠. 이 책에서 군주는 국가와 사실상 같은 존재로 나타납니다. 보테로가 말하는 ‘국가이성’은 ‘군주이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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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국가이성'이란 개념을 제시해 근대 국가의 이념적 토대를 놓은 정치사상가로 꼽힙니다. 다만 그의 대표 저작인 <군주론>과 <로마사논고>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어, 이는 '마키아벨리 수수께끼'라 불릴 정도로 후대의 연구와 논쟁을 지폈습니다. 곽차섭 교수는 저작 <마키아벨리의 꿈>(길)을 통해 이를 탐사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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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자신이 작품 속 그 인물이 된 듯 연기를 펼치는 연기 테크닉을 흔히 '메소드'라 합니다. 연기에 너무 몰입해서 자기 자신을 잃은 배우들의 사례들이 메소드 연기의 사례로 회자되곤 하죠. 그렇다면 이 개념은 언제 어떻게 만들어져서 사람들이 추구하는 바가 되었을까요? 연극평론가이자 연출가인 아이작 버틀러의 <메소드>는 메소드 자체를 주인공으로 삼아 20세기의 여정을 종합적으로 따라가는 책입니다. 그 출발점은 러시아의 배우이자 연출가인 콘스탄틴 스타니슬랍스키입니다. 그는 당시 유행하던 관습적인 감정 표현과 웅변 위주의 연기 대신 '경험하기'(페레지바니예)를 통한 연기를 주문했고, 이는 '시스템'이란 이름으로 발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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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스타니슬랍스키를 비롯한 모스크바 예술극장 단원들이 미국 뉴욕에 진출하는데, '시스템'은 "아무리 작은 역할도 진짜 사람처럼 느껴졌다"는 찬사를 받을 정도로 즉각 브로드웨이를 사로잡습니다. 1930년 '그룹 시어터'는 시스템을 미국 연극에 적용하여 '메소드'라는 연기 테크닉을 내놓습니다. 브로드웨이에서 활약하던 배우들이 할리우드로 향하면서, 또 카메라가 이들에게 더 섬세한 연기를 요구하게 되면서, 메소드는 20세기 연기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우리도 말런 브랜도, 제임스 딘, 로버트 드니로, 알 파치노 등 '명배우'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슈퍼 블록버스터가 지배하는 시대에 메소드는 더 이상 할리우드의 중심에 서지 못하게 됐지만요. 20세기 전체를 비추는 두툼한 문화사라 할 만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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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현대사 속 큰 상처 가운데 하나인 '여순사건'을 어린이에게 과연 어떻게 설명해줄 수 있을까요? 오승민 작가의 그림책 <점옥이>(문학과지성사)는 자신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겪었던 일들을 점옥이라는 이름의 인형의 눈에 비추어 봅니다. 흙밥 위에 계란 꽃을 얹은 소꿉 밥상이 쓸려나간 것처럼, 전쟁과 국가폭력에서 가장 먼저 희생되는 것은 어린이입니다. 푸른빛으로 겹겹이 쌓아 올린 이 그림책은 가슴 시린 비극을 보듬어주는 한편 그속에 희망의 작은 씨앗도 함께 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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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건강을 소통하는 서촌의 건강 사랑방
일일호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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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몸을 경험한 환자들이 모여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환우독서모임도 꾸준히 이루어집니다. 돌봄과 나이듦에 대한 책을 함께 읽는 독서모임, 치유의 뜨개모임, 시각장애인 딸을 위한 점자책 만들기 모임 등이 진행되기도 합니다. 이를 함께하는 ‘일일호친’(일일호일의 친구들)을 보면, 우리는 연결될수록 건강해진다는 것을 비로소 실감합니다. 2024년에도 일일호일에서 책, 사람들을 이어가며, 우리 모두의 ‘매일매일 건강한 하루’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기사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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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
무엇이든 용서할 수 있을 것처럼
흰 것들은
희구나
언제부턴가
착한 사람을 만나면
미안할 일이 닥쳐올 것만 같은
하얀 구름
하얀 파도
아무런 악의도 미움도 없었는데
심지어 사랑도 없었는데
한 남자가 자신의 시신을 끌고
해안선을 따라가네
* 阿耶: 감탄사 ‘아아’의 이두 표기
📖조성래의 시, 계간 <문학동네>(117호, 2023 겨울)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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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반올림(#)책은 어떠셨나요?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등 기탄없이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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