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륨 좀 낮춰줄 수 있을까요?" 친절한 부탁 뒤 울린 총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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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레오 타입’(stereotype)이라는 말 들어 보셨지요. 특정 대상에 대해 자세히 알기도 전에 갖는 고정관념, 편견, 선입견을 뜻하는 영어 단어입니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스테레오 타입이 있지요. 성별, 출신, 직업, 인종, 국적, 외모 등등 실제 그 사람을 알기도 전에 짐작하게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단순한 오해로 그치는 편견이나 고정관념은 이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상대를 더 깊이 이해하도록 돕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체로 이런 스테레오 타입은 나와 타인을 서로 이해할 수 없는 다른 존재로 남겨두곤 합니다. 그리고 때론 돌이킬 수 없는 끔찍한 결과를 낳기도 하지요. 오늘 전해드릴 것은 미국에서 벌어진 이 스테레오 타입에 대한 비극적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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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23일, 45세 백인 남성 마이클 던은 플로리다주 잭슨빌 인근에서 열린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합니다. 소프트웨어 개발자인 그는 몇 해 전 만난 연인 론다 루어와 약혼하고 플로리다주 브레버드 카운티에 살고 있었죠. 이들은 결혼식장을 일찍 벗어납니다. 전날 머문 호텔에 생후 6개월 된 반려견을 두고 와 먹이를 챙겨줘야 했기 때문입니다. 호텔로 돌아가던 중 약혼녀 루어는 ‘와인 한 병 사 가자'며 이날 오후 7시30분쯤, 한 주유소 편의점에 들렀습니다.
던이 잠시 차를 댄 곳 바로 옆에는 빨간 닷지 SUV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열린 창문으로 매우 시끄러운 음악이 울리고 있었죠. 던은 루어에게 “저런 깡패 음악은 질색이야”하고 말합니다. 루어는 이 말을 듣고 던을 가볍게 위로하며 차에서 내려 편의점으로 향했습니다. 던은 차에 남아 약혼녀를 기다렸죠.
“미안하지만 볼륨 좀 낮춰줄 수 있을까요?”
던은 공손하고 친절하게 차에 탄 이들에게 볼륨을 낮춰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 차에는 (당시 나이는 몰랐지만) 17세 흑인 청소년 셋이 타고 있었습니다. 편의점에 들어간 친구 토미 스톤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던의 요청을 듣고 앞좌석에 앉은 테빈 톰슨이 볼륨을 줄입니다. 그런데 뒷좌석에 있던 조던 데이비스가 다시 볼륨을 올리라고 합니다. 차에선 다시 시끄러운 음악이 울립니다.
던은 이때부터 데이비스와 말다툼을 주고받습니다. 담배를 사러간 스톤스가 다시 돌아옵니다. 그때 던의 눈에 뒷좌석에 앉은 데이비스가 샷건(엽총)으로 보이는 어떤 물건을 집어들고 “이 새끼 죽여버려"라며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려는 것을 봅니다. 던은 조수석 글로브 박스에서 권총을 꺼내 두 손으로 잡고 창문 밖으로 쏩니다. 몇 발을 쏘자, 차는 뒤로 후진해서 빠져나갑니다. 던은 추가로 몇 발 더 쏩니다. 총성이 울린 건 불과 몇 초 사이였습니다.
총성을 듣고 온 루어가 무슨 일이 벌어졌냐고 묻습니다. “어서 차에 타.” 던은 루어에게 이렇게 말하고 차를 몰아 호텔로 돌아갑니다.
던은 다음 날 아침 호텔에서 뉴스에 보도된 흑인 소년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됩니다. 던과 루어는 집으로 돌아갔고 그곳에서 경찰에 체포됐습니다.
자, 어떤가요. 던의 진술을 토대로 재구성한 당시의 상황입니다. 던은 흑인 불량 청소년들에 위협을 받아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한 행동이라며,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똑같이 할 것이라고 하죠.
그의 진술은 그럴듯해 보입니다. 흑인 남성, 3~4명이 불량스럽게 차 안에 앉아 있는 장면을 떠올려 보세요. 이들이 총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크게 이상해보이지 않습니다. 옆 차에 시비를 거는 겁 없는 청소년들이 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무섭지 않나요? 하지만 던의 진술은 몇 가지 큰 허점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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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던 데이비스와 그 친구들이 타고 있던 빨간 SUV. 마이클 던의 총격을 피해 이동한 인근 주차장에서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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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은 조사 과정에서 차에 앉은 데이비스와 그의 친구들은 ‘그 애들'(kids)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애들이 음악을 시끄럽게 틀었다, 는 것이죠. 차 안에 탄 흑인 남성들이 정확한 나이는 모르지만 아직 어린 청소년이란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던은 최초 조사 때부터 재판 과정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자신을 위협했고 너무 무서웠다고 진술합니다. 하지만 검사는 던이 ‘애들'이라고 부른 피해자들이 건방지고 예의 없었을 수는 있겠지만 위협이 됐을 리는 없다고 반박합니다.
위협이 될 이유가 없었다는 근거는 명확했습니다. 던의 말과 달리 데이비스가 탄 차 안에는 어떤 총기, 무기, 혹은 그런 것으로 오인될 만한 물건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데이비스와 그의 친구들은 아무런 전과도 없었죠. 주유소에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친구를 기다리고 있다가 음악을 줄여달라는 40대 남성과 실랑이를 벌였고, 그 나이 청소년처럼 겉멋이 들어 겁먹지 않은 척 말싸움을 이어갔던 것입니다.
던이 총을 쐈던 상황에 대해서도 의문이 남았습니다. 던은 처음에 데이비스가 총을 들고 뒷문을 열며 나오려고 했다고 했지만, 탄도 분석을 해보니 총알은 닫힌 문을 꿰뚫고 차 안에 있던 데이비스에게 맞았습니다. 전문가들은 데이비스가 문에서 멀리 떨어진 상태로 총에 맞았다고 분석합니다. 데이비스가 던을 위협하며 밖으로 나오려고 한 일이 없었다는 뜻이죠.
또 던이 총을 쏘자, 운전석에 앉은 데이비스의 친구가 급히 차를 후진해서 도주합니다. 던은 이때도 도주하는 차량에 총을 쏩니다. 던은 먼저 쏜 것까지 합해 모두 10발을 발사합니다. 던은 자신이 겁을 먹었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겁에 질린 것은 차에 탄 소년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겁을 먹었다면 자신이 먼저 빨리 도망쳤어야 하는데 도주하는 차에다 추가로 총을 쏜 것은 방어가 목적이 아니었다고 경찰은 판단했죠.
무엇보다 이 사건 이후의 던의 행동은 겁에 질렸다는 진술과는 달랐습니다. 던은 약혼녀 루어와 호텔로 돌아가면서 ‘내가 총을 쐈다'고는 이야기했지만, 상대가 총을 들고 있었거나 위협이 됐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던은 경찰에 신고하지도 않았습니다. 호텔로 돌아간 뒤에는 반려견을 산책시키고 럼앤콕이라는 술을 몇 잔 더 마십니다. (던은 사건이 일어나기 전 결혼식에서도 이 술을 몇 잔 마셨다고 합니다.) 위협 받은 사람이 한 행동치고 평안했다는 겁니다. 이런 내용들은 다른 사람도 아닌 던의 약혼녀 루어의 진술을 통해 확인됩니다.
결정적으로 사건을 지켜본 목격자가 있었습니다. 목격자는 30~40대로 보이는 백인 남성이었습니다. 그는 던이 데이비스와 말다툼을 하다 “아니. 넌 내게 그딴 식으로 말하면 안 돼”라고 침착하게 말한 뒤 총을 쐈다고 합니다. 겁에 질려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건방지게 성질을 긁은 젊은 녀석을 혼내주겠다는 듯이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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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레오 타입이 논란이 된 또 다른 사건의 당사자들. 트레이본 마틴(왼쪽)과 조지 짐머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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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어떤가요. 같은 사건이 벌어졌지만, 전혀 다른 해석이 가능해졌습니다. 던의 범행은 데이비스가 실제 위협을 해서 벌어진 게 아니라 그가 가지고 있던 흑인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 때문에 벌어진 것은 아닐까요. 아니면 그저 이 스테레오 타입을 이용해 자신을 변호하려 한 것일까요.
비무장 흑인 청소년이 성인 남성의 총에 맞아 숨지는 일은 미국에서 빈번하게 벌어진다고 합니다. 이런 사건의 가해자들은 대체로 정당방위를 내세웁니다. 상대가 내게 위협이 됐다는 것이고 이런 전략은 종종 먹혀 들어갑니다.
대표적으로 흑인 고교생인 트레이본 마틴 피살 사건이 있습니다. 2012년 2월 오후 7시쯤 마틴은 편의점에서 음료수와 캔디를 사고 집으로 가던 중이었습니다. 히스패닉계 자경 단장(자발적 순찰대원)이자 경찰 지망생이었던 조지 짐머맨(28)은 마틴이 술이나 마약에 취했다고 오인해 911에 수상한 사람이 있다고 신고하고 직접 추격합니다. 짐머맨은 마틴이 분명 10대 후반이라고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911에서는 짐머맨에게 추격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마틴을 계속 추격했고 몸싸움이 벌어집니다. 나중에 밝혀진 내용을 보면 마틴은 자신을 쫓아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겁을 먹었고 친구에게 전화해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몸싸움이 벌어지는 중 짐머맨은 마틴을 총으로 쏴 살해합니다. 짐머맨은 마틴이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판단한 이유는 마틴이 후드티를 입었기 때문이라고 알려졌습니다. 후드티를 입은 흑인이 주로 범죄를 저지른다는 스테레오 타입이 작용한 것이죠. 하지만 스테레오 타입과 달리 마틴은 전과도 무기도 없었습니다.
마틴과 데이비스 사건은 공통점이 많습니다. 사건이 벌어진 장소가 정당방위를 폭넓게 인정하는 플로리다주라는 것과 이미 어두워진 오후 7시 무렵 비무장 상태였던 10대 흑인 남성이 피해자라는 점도 같지요. 가해자는 둘 다 백인 성인 남성입니다. 정당방위를 주장한 것도 같습니다. 다른 점이라면 마틴은 혼자 걸어가던 중이었고 자신을 추격한 짐머맨과 몸싸움을 벌였다는 것입니다.
짐머맨은 2급 살인(충동적으로 이뤄진 우발적 살인)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재판에 나선 배심원 6명은 백인 5명 히스패닉 1명이었습니다. 배심원들은 평결에서 유무죄 의견이 3:3으로 갈렸고, 유죄를 주장한 3명 중 2명은 과실 치사라고 판단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유죄 주장한 배심원들도 짐머맨이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는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정당방위를 인정합니다. 과실치사와 2급 살인죄 모두 무죄 판결이 나왔습니다.
이 밖에도 비슷한 사건은 수도 없이 일어납니다. 정말 이 사건의 가해자들은 흑인 청소년들에게 위협적이라고 느꼈을까 의문이 남기도 합니다. 다시 데이비스 사건으로 돌아가 보면, 던은 정말로 데이비스가 총을 들고 있었다고 확신한 것일까요? 아니며 홧김에 총을 쏘아 버린 뒤 정당방위를 주장하기 위해 흑인 청소년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을 이용한 것일까요?
이런 사건이 벌어지면 결국 여론의 판단을 받게 됩니다. 미국에선 일반 시민으로 이뤄진 배심원의 평결이 이어지죠. 그래서 사건의 당사자가 아니어도 스테레오 타입을 인지하고 이를 경계해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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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던(왼쪽)과 그가 쏜 총에 숨진 조던 데이비스. 마이클 던은 경찰 조사 중 자신이 정당방위를 했을 뿐이며 '자유를 잃기 싫다'고 했다. 숨진 데이비스에 대한 안타까움은 나타내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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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남성을 범죄자로 판단하는 이 스테레오 타입은 데이비스 사건에선 적용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목격자와 약혼녀 루어의 진술이 결정적이었다고 합니다. 경찰 조사 직후 던은 체포돼 재판에서 1급 살인(계획적으로 이뤄진 의도적 살인) 및 3건의 살인미수, 차량에 대한 총기 사용 혐의 모두 유죄가 인정됐습니다. 던은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았고, 항소도 기각됐습니다. 목격자나 수사관, 배심원 등이 이런 편견에 사로잡혔다면 사건의 양상은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사건을 수사한 경찰 중 흑인 수사관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스테레오 타입에 빠지지 않게 한 원인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 경찰은 던을 조사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거나, 착각했다고 해서 상대를 쏠 수 없다. 그것은 방어가 아니다"라고 말이죠. 그는 조사 과정에서 자유를 잃고 싶지 않다며 자신이 정당방위를 했을 뿐이라고 밝혔지만, 사망한 데이비스에 대한 안타까움은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끝내 자신이 꺼내든 스테레오 타입이라는 무기를 내려놓지 않은 것입니다.
데이비스 사건은 어느 날 갑자기 벌어진 일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이어진 고정관념과 편견이 작용한 사건이 분명합니다. 한국에선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요. 총기도 없고, 단일민족이니 우리나라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말할 수 있을까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이미 벌어졌지만 그런 스테레오 타입에 사로잡혀 문제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스테레오 타입이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두고두고 스스로를 경계해야 할 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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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기사
- Florida Man Is Convicted of Murdering Teenager in Dispute Over Loud Music | By Lizette Alvarez | Oct. 1, 2014 | The New York Times
- Jordan Davis and the Conspiracy of Misdirection | By Matthew McKnight | March 3, 2014 | The New Yorker
- Did Jordan Davis have weapon? Attorneys spar in loud music murder trial | By Eliott C. McLaughilin | Feb 11, 2014 | CNN
- The Cse of Michael Dunn | Feb 21, 2020 | JCS - Criminal Psychology
- When Loud Music Turned Deadly | By Orlando Bagwell | Feb 3, 2014 | The New York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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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의 번역노트는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사건 사고의 숨겨진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곳곳에 숨은 이야기를 찾아 헤매는 여러분과 다양한 영감을 나누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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