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Greener $%name%$님.

마케터 슬기입니다.

얼마 전에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를 찾다가

<일: 우리가 온종일 하는 바로 그것>의

일부 에피소드를 잠깐 봤어요.

기술의 혁명이 빠르게 일어나는 이 시대엔

많은 사람이 '지식 노동자'를 원한대요.

그러니까 지식이 땅이나 노동의 언어보다

더 우위에 놓이는 것이죠.

그런데 저는 요즘 지식보다 몸의 언어에

더 큰 설득을 얻어요.

인간은 뛰어난 지식과 기술을 갖춘 AI와

비슷한 구석도 있지만, 동시에 숨을 쉬는

자연이라는 점에서 다르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사고할 뿐 아니라

느끼고 감각하는 직관으로 살죠.

그래서인지 몰라도 몸으로 익히는

경험은 제게 굉장히 강렬하고

오랜 지혜로 남아요.

특히 나의 정량과 한계가 어느 쯤인지

알차리기 어려울 땐, 몸의 가르침을

떠올립니다.

greener 님도

몸으로 배운 지혜가 있나요?

호흡과 몸, 그리고 삶의 자세

“내 몸에 공간이 있는지 보세요.” 나의 요가 선생님은 수업 때마다 말씀하셨다. 상체를 뒤로 꺾을 때, 두 팔다리에 힘을 주고 버틸 때, 그리고 머리로 땅을 딛고 세상을 거꾸로 볼 때에도.

처음 요가를 시작했을 때 나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골반을 하늘로 들어 올리라거나 시선을 양손 사이에 두라는 가르침은 분명한데, 몸의 공간을 보라는 말은 너무 모호하지 않은가. 눈으로 보라는 말은 아닐 테고, 근육의 움직임과 한계를 느끼라는 건가? 그렇다면 헬스 유튜버들이 했던 말과 비슷한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연기 같은 가르침의 의미는 ‘몸을 보라’는 말보다 더 자주 하는 선생님의 또 다른 말에 있었다.

“숨 쉬세요. 숨 참지 마세요!” 

숨, 코로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쉬는 기운. 몸이 가본 적 없는 길에 들어서야 할 때면 나도 모르게 이 기운을 차단하고 근육을 수축시켜 힘을 줬다. 옆 사람의 멋있는 동작을 절반이라도 흉내 내고 싶어 이를 악물었다. 그때마다 어김없이 선생님은 내 이름을 불러 숨을 쉬라고 하셨다. 숨이 몸에 들어올 만큼만, 딱 그만큼만 하라고. 그 뒤로 나는 누군가의 완벽에 쫓기는 대신, 나의 호흡을 샅샅이 느끼며 몸 곳곳에 숨이 흐르고 있는지 파악했다. 더 앞서 나가려 하기보다 지금 나의 그릇에 머무는 연습을 했다.

봄과 여름 사이 5월의 중턱, 인생 첫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날도 그 자세로 뛰었다.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출발해 성산대교를 찍고 다시 돌아오는 10km 코스는 러닝 초보인 (3km 이상 뛰어본 적이 없는) 나에게 꽤나 부담스러웠다. 더군다나 90분 안에 돌아오지 못하면 완주 메달이 수여되지 않는다는 주최 측 안내에 심장이 갈비뼈를 뚫고 나올 듯 요동쳤다.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그냥 기권할까?’, ‘아니야, 여기까지 왔는데 해보자.’ 두려움 앞에 서면 익숙한 방어 기제와 낯선 도전 의식이 충돌한다. 후자를 선택한 건, 나의 의지는 아니었다. 선뜻 결정하지 못해서 갈팡질팡하는 사이, 시간이 그곳에 나를 데려다 놓았을 뿐이다.

마라톤 출발을 알리는 총성과 폭죽이 터지고, 참가자들은 연어 떼가 넓은 강물에서 좁은 냇가에 몰릴 때처럼 신중히 다리를 앞으로 움직였다. 출발선을 벗어나 다시 길이 넓어지자 그들은 저마다 보폭을 좁히고 속력을 높여 뛰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사람들 사이사이를 헤집으며 빠르게 치고 나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빠른 걸음과 비슷한 속도로 꾸준히 달리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의 개성만큼이나 다양한 뒷모습들. 나는 가재눈을 하고서 사람들을 곁눈질하다가 얼른 내 몸으로 시선을 가져왔다. 슬슬 가슴이 부풀며 숨이 차올랐기 때문이다. 다행히 호흡의 공간은 충분했다. 

그렇게 몸의 공간을 톺아보며 달리고 걷기를 반복했다. 숨이 너무 벅차면 속도를 줄이고, 종아리 근육이 당겨도 호흡이 매끄러우면 조금 더 달려보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마침내 결승점에 발을 디뎠을 때, 그 후련함과 뿌듯함을 잊지 못한다. 77분이라는 기록이 훌륭하진 않지만,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는 자랑스러운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이후로 나는 삶의 현장에서 스스로 완전함을 요구하느라 행동이 망설여질 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쉰다. 그리고 오래 생각하지 않는다. 이 결정이 내 숨통을 조르는 게 아니라면 해볼 만한 것이니까. 또 기억한다. 성과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 상황을 생생히 감각하는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