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V. LETTER
Meet Social Value, 사회적 가치를 만나는 MSV 뉴스레터에서는 '디자인의 사회적 가치'와 '포용적인 디자인' 그리고 '접근성'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다룹니다 Play cannont be "done" - it is an end in itself 놀이는 "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끝맺는 것이다 최근 저희는 1960-70년대 뉴욕 센트럴파크내 놀이터를 설계한 건축가 리차드 다트너Richard Dattner 씨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절판되었으나 Dattner Architects의 제공으로 읽게 된 놀이를 위한 디자인Design for Play 에서 참 많은 영감을 받고 있는데요. 그 중 인상깊은 말은 바로 위의 한 문장이었습니다. "진짜" 놀이는 자발적인 행동이기에 스스로 시작하고 끝을 맺을 수 있습니다. 어떤 외부의 강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놀이를 위한 디자인이란 어른들이 아이들이 주도적인 행동 주체Player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환경 제공자Environment Provider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최근들어 놀이터와 관련된 이슈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처음 구독하시는 분들을 위해 소개하자면 MSV는 매 호마다 한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그 주제에 대해 심도있게 다룹니다. 세번째 호인 PLAY에 맞춰 중점적으로 포용력 있는 놀이 그리고 놀이터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지난 호에 이어 놀이터의 역사를 다루게 되며, 이후에 놀이터의 역사와 관련된 상세한 내용은 PLAY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발행인 김병수 올림 세계 1차 대전 이후 놀이터의 역사 에디터 이서이 MSV 객원에디터 1914-1918 제1차세계대전 유럽에서 발발한 세계1차대전 이후 주요 도시가 폐허가 됐다. 침체된 사회적 분위기에 놀이터의 성장은 잠시 멈춰 있었다. 1917년 미국이 연합군으로 참전을 결정하면서 전국의 젊은 청년을 대상으로 징집 신체검사를 실시했다. 검사 대상자의 약 4분의 1이 약한 체력으로 참전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청소년 체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만연해졌다. 이는 놀이터 시설 확대로 이어지는 또 하나의 요인이 됐다. 1918 미국에서 유럽으로, 놀이 문화의 전파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유럽 어린이들은 상인들이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임시로 개장하는 유료 놀이터에서나 놀이기구를 즐길 수 있었다. 미국 적십자사(ARC)는 이 시기에 프랑스, 이탈리아, 체코, 알바니아 등 유럽 각지에서 무료 공공 놀이터를 열어 미국의 놀이 문화를 전파했다. 1918년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열린 아동 복지 박람회에서도 공공 놀이터가 소개돼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들의 눈길까지 사로잡았다. 1929-1933 대공황과 단순해진 놀이터 제1차세계대전이 종전된 후 잠시 숨을 돌리자마자, 미국에는 대공황이 찾아왔고 경제는 극도로 침체됐다. 미 연방정부는 뉴딜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 일환으로 사회 전반의 활기를 되찾고 실업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고용을 촉진하기 위한 WPA(Work Projects Administration) 연방공공사업이 진행됐는데, 공공 놀이터 설립의 확대도 중요한 계획 중 하나였다. 이후 전국적으로 1만 3천여 곳의 놀이터가 생겨났지만, 단기간에 적은 비용으로 확대한 탓인지 놀이기구는 이전보다 훨씬 단순해졌다. 미끄럼틀(slide), 그네(swing), 시소(seesaw), 모래밭(sandbox), 소위 4S를 갖춘 천편일률적인 모습은 오랜 기간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놀이터의 표준이 됐다. 연령과 성별, 개개인의 특성을 무시한 감옥 같은 공간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 배경으로 1933년 뉴욕시 공원 관리 국장으로 임명되어 훗날 뉴욕 도시 개발을 주도한 건축가 로버트 모지스Robert Moses의 설계 방향, 그리고 놀이 시설 사업체의 과도한 이익 추구가 언급되곤 한다. 1930s 자연주의 놀이터 대량 생산된 놀이기구로 획일화된 놀이터 풍경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날로 높아졌다. 마침 북유럽에는 아이들의 시선으로 설계한 자연 친화적이고 아동 친화적인 놀이터가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스웨덴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아동 교육에 있어 자연만큼 훌륭한 환경은 없다고 믿었기에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북유럽에서 시작된 자연주의 놀이터 열풍은 대서양 너머 미국으로 불어왔다. 1939-1945 제2차세계대전 다시 시작된 전쟁으로 서구 사회는 격동의 혼란을 겪었고, 아이들은 다시 자유롭게 놀 터전을 상실하는 듯했다. 1943 세계 최초의 모험놀이터 등장 덴마크의 조경가 쇠렌센Sørensen은 1930년대 초반, 어린 아이들이 깔끔하게 정비된 놀이터보다는 쓰레기와 폐자재가 널려 있는 공터나 건설 현장에서 더 즐겁게 뛰노는 모습을 보고 정크 놀이터라는 새로운 개념을 고안했다. 도시에 사는 아이들도 시골에 사는 아이들만큼이나 자유롭고 자연 친화적으로 즐기길 바랐던 것이다. 1943년, 그의 제안으로 건축가와 플레이 리더가 모여 엠드루프Emdrup에 세계 최초의 정크 놀이터이자 모험놀이터를 지었다. 아이들이 뛰노는 행위가 행여 덴마크를 점령 중인 나치의 심기를 건드릴까 두려움에 떨어야 했던 부모들의 걱정을 채워주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The first examples of an adventure playground "Emdrup", opened by Carl Theodor Sørensen in Denmark 1946 모험놀이터의 세계화 영국의 조경가 겸 아동 복지 운동가 마저리 앨런Marjory Allen은 쇠렌센의 엠드루프 모험놀이터를 방문한 뒤 크게 감명을 받았다. 런던으로 돌아온 앨런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공터에 모험놀이터를 지었다. 이는 폭격을 받아 처치 곤란 상태가 된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참신한 방법이기도 했다. 이때만 해도 영국에서는 쇠렌센이 사용한 덴마크어 표현을 직역해 ‘정크 놀이터' 또는 ‘폐기물 놀이터' ‘피폭된 모험놀이터'라고 불렀다. 1953년에는 행정 당국이 더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모험놀이터'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 앨런의 모험놀이터에 대한 열정은 1950년대를 맞아 영국 전역에서 사랑받게 됐다. 1949 미국 최초의 모험놀이터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Minneapolis에서는 미국 최초의 모험놀이터 ‘The Yard’가 개장했다.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공간에, 땅을 파거나 무언가를 짓고 만들 수 있도록 각종 도구와 중고 목재, 벽돌, 페인트, 오래된 기차 화물칸, 우유 탱크 트럭까지 제공했다. Minneapolis 'The Yard'에서 실제 공구용 톱으로 톱질을 하는 어린이, 1950 1960s 저항의식과 놀이터의 변혁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뒤 유럽 청년들은 기성 세대의 모든 질서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68혁명이 대표적인 예로, 미국의 히피 문화로도 이어졌다. 이러한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모험놀이터 콘셉트의 확산을 부추겼다. 새로운 시대의 놀이터는 수십년간 표준화된 기성의 구조를 파괴하고, 빈 공터일지라도 자연스러움과 자유를 지향해야 했다. Manchester kids in 1968 photograph by Shirley Baker/Nan Levy for the Estate of Shirley Baker Notting Hill Adventure Playground – circa 1960s 1965 혁신적 놀이터 탄생 미국의 조경가 폴 프리드버그Paul Friedberg는 유기적인 놀이구조를 갖춘 놀이 공간을 만들어냈다. 1965년 그가 리스 광장Riis Plaza을 설계하며 지은 혁신 놀이터는 피라미드, 둔덕, 터널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 가능한 독창적인 구조로 이뤄졌다. Playground at Paul Friedberg’s Riis Plaza, 1966. Photograph by David Hirsch 1971 자연주의 놀이터 디자인의 시초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에는 로빈 무어Robin Moore와 허브 웡Herb Wong의 주도로 환경마당이 지어졌다. 학교 운동장에 놓여 있던 콘크리트 놀이 구조물을 자연주의 놀이터로 탈바꿈한 것. 바위와 연못, 나무, 작은 폭포까지 갖춘 환경마당은 초기 자연주의 놀이터 디자인의 모범 사례가 됐다. 이와 같은 자연적 장치는 머지 않아 안전 문제, 흥미 저하 등의 갖가지 이유로 해체됐지만, 아이디어만큼은 높은 평가를 받아 현대 생태 놀이터 디자인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Nature play space, Sir Joseph Banks Park, Austrailia 1972 건축적 모험놀이터 탄생 미국의 건축가 리차드 다트너Richard Dattner는 뉴욕 중앙공원에 건축적인 모험놀이터를 디자인했다. 천편일률적인 놀이터도 예술성에 치우친 조형물도 선호하지 않았던 그는 벽돌, 콘크리트, 철근 등 흔하게 구할 수 있는 건축 자재를 이용해 피라미드, 오벨리스크 같은 고대 건축 형태를 흉내낸 공간과 기구를 지었다. 1976 미국 모험놀이터 협회 결성 모험놀이터 열풍은 결코 사그러들지 않았다. 1976년에 결성된 미국 모험놀이터 협회(AAPA)가 바로 그 증거. 초기 모험놀이터가 제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난 뒤 폐허와 폐기물을 활용한 재생 공간이었다면, 새로운 시대의 모험놀이터는 아이들이 차원 높은 독창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훨씬 다양한 도구를 제공하는 혁신 공간이다. Architect Richard Dattner’s plan for the Adventure Playground in New York’s Central Park, circa 1967 Adventure Playground, 1967, New York City Parks Photo Archive 1979 일본 플레이파크 등장 일본의 오무라Omura 부부는 마저리 앨런이 저서한 <도시의 놀이터>을 접한 뒤 새로운 도시 계획을 꿈꾼다. 이들은 유럽 곳곳의 놀이터를 직접 방문하고 돌아온 뒤 지역 주민과 자원봉사자 모임을 결성하기에 이른다. 이들의 노력으로 도쿄 세타가야구에는 일본 최초의 모험놀이터 ‘하네기 플레이파크'가 개장했다. 1979년 맞이한 국제 아동의 해를 기념하기에도 더할 나위 없는 사업이었다. 이곳에는 평범한 놀이기구 대신 목공 도구를 사용한 놀이, 웅덩이 파기, 모닥불 놀이, 닭 키우기 등 자연친화적인 놀이가 마련됐다. 이후 모험놀이터는 일본 전역에 확산되어 200곳 가까이 늘어났다. Komazawa Harappa, Tokyo, Alexandra Lange * 놀이터의 역사는 매거진 MSV 세번째 호인 <Play>호에 수록될 예정입니다 내용이 유용하셨다면 많은 공유 부탁드립니다! * 미션잇에서 (정규직) 신입 그래픽 디자이너를 모집합니다. 대학졸업/졸업에정자/1년 미만 경력을 가진 분들 지원 가능합니다. 디자인의 사회적가치를 실현하는 유니크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분들의 많은 지원부탁드립니다. * 육아로 인해 경력이 단절되었거나, 일과 육아 병행이 고민중인 분들을 위해 파트타임 정규직도 모집 예정입니다 (2월 공고 예정) 주식회사 미션잇 Design for Inclusive Society www.missionit.co www.magazinemsv.com 문의 hello@missionit.c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