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 테이블 바로 앞에는 수시로 바뀌는 6개의 탭 맥주가 반겨주고 있다. 이름도 특이한 만큼 맛도 특별하다. 탭 맥주 2개와 캔 맥주 1개를 주문했다.

가볍고 산뜻한 맥주를 추천받았고 사장님은 망설임 없이 핸드 앤 몰트에서 만든 구름 위트 에일을 추천해주었다. 옥수수 색을 띄는 빛깔을 보자마자 1664 블랑이 떠올랐다. 사장님에게 “비주얼이 마치 블랑 같다”고 말하자 블랑의 상큼한 맛을 좋아한다면 반드시 먹어봐야 한다고 답해주셨다.

우선 향부터 코를 사로잡는다. 블랑보다 오렌지 향이 더 강하며 청량감이 위로 떠오른다. 탄산음료가 혀와 치아를 감싸며 가라앉는 청량감이라면 구름 위트 에일은 위로 톡톡 튀긴다. 한입 가득 마셨다. 입안을 가볍게 스쳐 지나가는 산뜻함이 느껴진다. 이름 그대로 구름으로 밀맥주를 만든다면 이런 질감이지 않을까. 입에서 녹아 없어져 버린 느낌이다. 깔끔하고 뒷맛이 남지 않는다.

구름 위트 에일의 상큼함과는 다른 매력의 맥주를 사장님께 추천받았다. 사장님의 선택은 서울 브루어리에서 만든 *포터 맥주 로버스트 포터다.

비주얼에서 말해주듯이 진한 다크초콜릿 향이 난다. 꾸덕한 흑맥주의 특성은 그대로 재현하지만 오리지널한 흑맥주처럼 묵직하게 가라앉기보다는 청량감이 살아있고 레이어가 다양하다. 직접 토스팅한 내추럴 코코넛과 바닐라빈, 그리고 카카오닙을 갈아 넣었는데 맛들이 차곡차곡 입 안에 쌓인다. 게다가 **IBU도 34로 쓴맛이 강하지 않아 초보자들도 쉽게 즐겨볼 수 있다.

*포터 맥주 : 흑맥주의 종류 중 하나로 1730년 경 런던에서 짐꾼(porter)들이 즐겨 마신 서민을 위한 흑맥주. 옅은 갈색과 비교적 묽은 농도가 특징.

**IBU : International Bittering Units 의 줄임말로 맥주의 쓴 정도를 나타내는 단위다. 홉에서 추출되는 이소알파산의 농도를 나타낸다. IBU는 숫자가 높을수록 쓴맛이 강해지며 일반적으로 1-100의 사이로 수치를 표기한다.

슬로우 모션은 에일 종류 중 하나인 *세종(saison) 맥주인데 감히 오늘의 발견이라고 할 수 있을 맛이다. 농번기에 마시는 술이다 보니 기운을 돋우는 상큼한 맛이 일품인데 12th shot <독일주택>에서 만난 시드르 애플 사이다처럼 사과 향이 가득 올라온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굉장히 달달한 음료수 같은 맥주가 떠오를 수도 있지만 생각보다 달지 않다. 청량감은 강하지 않으나 상큼한 향이 청량감을 극대화한다. 쓴맛도 거의 나지 않아 에일과 친하지 않은 드링커들에게도 적극 추천한다. 글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깔끔함과 상큼함으로 승부하는 맥주다.

4캔 만 원에 쉽게 접할 수 있는 써머스비를 떠올린다면 가격이 큰 단점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러나 가격 차이보다 더 큰 맛의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세종(saison) : 농번기인 여름에 마시기 위해 만들어진 농주로, 농번기 기간에 즐기는 술이라는 의미로 시즌(season)을 뜻하는 프랑스어 세종(saison)이라고 이름 붙었다.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부터 트러플향이 강하게 느껴졌는데 그 주인공이 여기 있었다. 트러플 오일향이 굉장히 강하다. 한 입 먹고 맥주로 입을 헹구어내는 느낌에 기분이 좋아진다. 감자튀김과 함께 칠리잼이 나온다. 조금은 느끼할 수도 있는 감자튀김 맛을 칠리잼이 잘 눌러줘 밸런스가 좋다. 직접 고추와 토마토를 넣어서 만든 수제 잼이다.

트러플에 대해 큰 호불호가 없던 에디터들은 향이 강하다 정도에서 끝났으나 트러플 향을 부담스러워하는 드링커들은 피하는 것도 좋겠다.

바 테이블에 앉아 처음 온 손님에게도 친절한 사장님 덕에 좋아하는 맛들을 충분히 고민하고 골라볼 수 있었다. 취향을 말씀드리면 메뉴판에 없는 메뉴들도 추천해주신다. 소버에서만 볼 수 있는 잔들이 소버의 아기자기함을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