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셀 참사로 가시화된 '불법 노동'의 문제
몇 년 전 이주민 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습니다. 사무실에 상주하며 영상 편집을 하고, 후원 행사 준비를 도왔습니다. 2주에 한 번씩은 이주민 당사자, 활동가들과 세미나를 했습니다. 이주와 관련된 책을 읽고, 한 사람이 발제를 하고, 주제에 관한 서로의 경험과 생각을 나눴습니다.
중국에서 온 한 이주여성 활동가는 자신이 한국에 온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족이라는 안정적인 울타리를 벗어나서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살고 싶었다"
이론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크고 작은 '이주'를 경험하고 '이주민'으로서의 정체성을 갖는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 *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가 발생한 직후 서울 대림동과 경기도 안산에 마련된 시민분향소를 찾았습니다.
안산역 입구에서 보이는 핸드폰 가게에는 외국어로 된 상품 설명이 붙어 있었고, 대림동 분향소가 위치한 건물 뒤편 과일가게에는 중국어로 된 가격표가 붙어 있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중국어로 대화를 나눴습니다.
한국에 정착한 이주민들은 대체로 생활 공간에서 가깝고,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없는 지역의 인력사무소나 파견업체를 통해 구직 활동을 합니다.
한 보고서¹에서는 이를 '사적 알선'을 통한 구직 활동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설문에 응답한 경기도 지역 이주노동자 중 6.2%만이 노동청 고용센터 등 공적 직업알선을 통해 일자리를 구했습니다.
공적인 절차가 아닌 사적 알선을 통해 일자리를 구하는 이유로는 '업종 선택의 자유, 의사소통의 용이함, 절차적인 편의성' 등이 있었습니다.
사적 알선을 통해 구직을 할 경우 불법 파견 등 왜곡된 고용 구조 속에서 일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은 이를 인지하지 못한 채 아르바이트의 개념으로 구직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20년에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이 실태조사에는 '사적 알선'을 통하는 일자리의 위험성이 나열돼 있습니다.
대다수의 파견업체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채 이주노동자를 고용했고, 산업재해를 겪은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회사의 도움을 받지 못했습니다. 일방적인 해고 통보, 퇴직금 미지급 등으로 인한 갈등도 빈번하게 일어났습니다.
아리셀 참사를 수사한 검찰의 수사결과 자료에는 이러한 문제점이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아리셀은 참사 발생 이전에 작업장에서 부상을 당한 이주노동자의 산업재해를 은폐했고, 최소한의 안전교육도 실시하지 않았습니다.
검찰은 참사 발생의 원인 중 하나인 '불법 파견'의 경위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위험의 외주화'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아리셀이 최소한의 안전관리체계 없이 무허가 파견업체로부터 비숙련 노동자를 공급받아 생산 공정에 투입했고, 노동자들이 사고 위험에 그대로 노출됐음을 지적했습니다.
아리셀이 파견업체로부터 공급받은 '비숙련 노동자'의 대부분은 이주노동자였습니다. 일을 시킨 아리셀과 노동자를 고용한 파견업체 둘 다 작업장에서 지켜져야 할 노동자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 * *
아리셀 참사 이후 여러 언론에서는 '위험의 이주화'라는 말로 참사의 원인을 설명했습니다. 유해하고 위험한 노동이 이주노동자들에게 전가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경제적·정치적 이유, 이주 정책의 변화, 개인적인 동기 등 한국으로의 이주를 선택하는 배경은 다양하지만, 한국 사회는 이주민의 삶을 존중하지 않습니다.
그 배경에는 정부 기관의 부작위(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아니함)와 무관심이 자리해 있습니다.
지난주 아리셀 참사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사건 책임자들은 재판에 넘겨졌지만, 이주노동자의 노동권 침해 문제를 방치해온 정부 기관이 져야 할 책임의 몫은 남아 있습니다.
¹ 경기도외국인인권지원센터, <경기도 이주노동자 파견노동 실태조사>, 2020년
(이 레터는 김주형 기자가 작성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