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상은 크게 하되 시작은 작게하라'
홍자병법 No. 89

1인 컨설턴트가 매출 1.5조 물류기업을 세운 비결 3가지

198491, 서울 용산구 갈월동 한성빌딩 안에 있는 한 작은 사무실로 반팔 와이셔츠 차림의 30대 중반 남성이 이마의 땀을 훔치며 들어섭니다.
 
불과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대우중공업이라는 당시 한국에서 가장 큰 규모에 속하는 대기업에서 영업 과장으로 일했던 남자였지만 이날부터는 책상과 의자 하나 빼고는 아무것도 없는 초라한 사무실에서 일해야만 했는데요.
 
이날은 그가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 출근하는 첫 번째 출근날이었습니다. 회사라고 해봤자 직원 한 명 없는 1인 기업이긴 했지만요.
 
한국물류연구원이라고 새겨진 갈색 나무 간판을 사무실 문 옆에 걸어두고 들어온 남자는 곧장 책상 앞에 앉아 자신의 머릿속 계획을 하나씩 종이에 적어 내려 갔습니다.
 
‘1. 회원 모집, 2. 물류 연구회 구성, 3. 물류 전국대회 개최, 4. 물류설명회 및 세미나 개최’, 마지막 항목인 ‘12. 국내 물류 실태조사까지 적는 걸 마친 남자의 얼굴은 설렘과 불안감이 뒤섞인 복잡한 표정이었습니다.
 
미래에 도전하기에는 한 인간으로서의 나약함과 망설임을 떨쳐버리기가 쉽지 않았다. 35세라는 젊음과 물류에 대한 열정만으로 인생의 모험을 걸기에는 한 여인의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의 현실적인 문제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불확실한 앞날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크게 다가왔다. 앞날에 대한 걱정으로 불안하여 무려 3년여에 걸쳐 고민하였고, 결심을 하고서도 사직서를 작성하여 품에 넣고 다니면서 다시 1년 정도를 망설였다.”
 
그리고 첫 출근날로부터 정확히 342개월이 지난 2018111, 이날 서울 중구 소공동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는 26회 물류의 날을 기념하는 한국물류대상 시상식이 개최됐는데요.

물류 기업인들에게 수여되는 최고의 영예인 은탑산업훈장을 시상할 순서가 되자 회의장 앞에 마련된 단상으로 이제 막 일흔 살에 접어든 34년 전의 그 남자가 올라섭니다.
 
30여 년의 시간이 흐르는 사이 용산구 갈월동의 한 허름한 사무실에서 시작한 1인 기업이 어느새 연 매출 1조 5000억 원의 글로벌 물류기업으로 성장했던 것이죠

대체 이 30여 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이번 글에서는 1인 물류 컨설턴트로 시작한 서병륜 로지스올 그룹 회장이 자신의 회사를 이처럼 키워낼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기계 엔지니어, 물류산업에 뛰어들다

IT/스타트업 전문 매체 <아웃스탠딩>에 기고했던 원문 글에서는 농공학과(농업에 쓰이는 기계를 개발하는 학문 분야)를 전공했던 서 회장이 대우중공업에 입사해 엔지니어로 일하다 

당시 판매가 부진했던 지게차 영업부서로 차출돼 처음 물류산업에 눈을 뜨게 된 과정에 대해서 길게 설명드렸는데요


이 내용들까지 모두 옮기면 뉴스레터 분량이 너무 길어지는 거 같아 여기서는 그 내용은 생략하겠습니다.
 
여기서는 시체 해부실에서부터 연탄공장까지 전국 곳곳을 누비며 지게차 영업을 하던 서 회장이 한국 물류산업이 제대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파렛트(위에 화물을 싣는 받침대)가 전국 모든 유통‧산업 현장에 보급돼 폭넓게 사용돼야만 한다는 걸 깨달았고

파렛트를 전국 단위로 운반‧회수하는 파렛트 풀’(Pallet Pool) 회사 설립을 목표로 창업을 했다고만 설명드리겠습니다.

또한 서 회장의 첫 번째 사업 비결인
 
고객들이 내 제품의 가치를 몰라준다고 안타까워하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제품의 가치를 알리는 건 판매자인 나의 몫이다."에 대한 내용도 뉴스레터에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이 역시 재밌는 내용이지만 꾸준히 깊이 있는 글을 씀으로써 자신의 상품을 널리 알리는 데 성공한 사례들은 제가 이미 뉴스레터를 통해 몇 차례 소개하기도 했고 

제 책 <최고의 리더는 글을 쓴다>에서도 계속해서 강조해온 내용이므로 오늘은 다른 내용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럼 이제 그의 두 번째 전략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평소 꾸준히 발행하던 물류 소식지 <물류뉴스>와 이 소식지에 관심을 가져준 언론의 도움으로 물류의 중요성에 대해 기업 임원진과 실무 담당자들에게 알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 같은 잠재 수요가 회사의 실제 수익으로 연결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는데요.
 
회사의 생존을 위해서는 적더라도 현금을 꾸준히 벌어들일 수 있는 캐시 플로우(현금 흐름‧Cash Flow)를 만드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상황이었습니다사람이든 기업이든 꿈만 먹고살 수 없는 건 마찬가지니까요.

그리고 이 시점의 서병륜 회장에게 배울 수 있는 두 번째 전략은 사업의 구상은 크게 하되시작은 작게 하라작더라도 지속적인 수입이 있어야만 큰 꿈에 도전해나갈 수 있다먼저 아이디어를 작은 규모로 실행하면서 큰 꿈에 도전할 체력을 길러라입니다.

사업의 구상은 크게 하되시작은 작게 하라라는 말은 바둑 격언인 착안대국 착수소국’(着眼大局 着手小局)을 한글로 풀이한 말인데요이 말은 서 회장이 인생의 신조로 삼고 있는 격언입니다.

이 말처럼 서 회장은 파렛트 풀 서비스를 제공하는 물류기업의 설립이라는 큰 목표에 도전하기 전에 먼저 1인 물류 컨설턴트로 활동하면서 자신의 전문성과 업계 네트워크회사의 브랜드를 조금씩 키워나가기 시작합니다.
 
기존 물류시설의 개선이나 신규 물류시설 건립을 준비하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물류작업의 효율성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 뒤 자문료를 받는 컨설팅 사업이었죠

그의 첫 클라이언트는 동양제과(오늘날의 오리온)였습니다

“1986년 5월 어느 날당시 동양제과의 담철곤 부사장을 만나게 되었는데 2시간 정도 면담을 한 뒤나에게 동양제과의 물류 컨설팅을 의뢰하고 싶다고 하였다.”
 
이를 출발점으로 하여 물류 컨설턴트로서의 길을 걸어올 수 있었는데 지금까지 약 30여 건의 물류진단을 해 왔다.”
 
물류라는 분야가 국내에서 막 태동하던 1980년 중반 당시 한국에는 서 회장만큼 물류 기술과 시스템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는 전문가를 찾기 힘들었는데요.

서 회장은 대우중공업 근무 시절부터 전국 각지의 물류 현장을 누비고 선진국의 산업 현장과 물류전시회를 오가며 배운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국내 기업들에게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물동량을 처리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안들에 대해 제안했습니다.

그의 컨설팅을 받은 기업들의 물류 효율성이 높아지는 모습이 입소문을 타면서 그를 찾는 기업들도 점점 늘어났고요

그 역시 서로 다른 환경에 놓인 30여 개 기업을 대상으로 개선 방안을 제시하기 위한 연구를 거듭하면서 물류에 대한 보다 깊은 전문 지식과 풍부한 경험을 갖출 수 있게 됐고요.

1인 컨설턴트로 일하며 회사의 생존을 이어가다

지금까지 내가 담당하여 온 물류컨설팅은 동양제과오뚜기식품삼성전자서울하인즈해태제과농심롯데칠성음료 등 30여 건에 달한다이들 컨설팅은 1985년부터 1991년까지 약 5년간에 집중적으로 실시하였다.”
 
사업 초기에 사무실 운영비나 직원들 급료를 줄 돈이 없어 고민을 하고 있노라면그때마다 물류 컨설팅 일감이 찾아와 이를 해결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서 회장은 컨설팅은 완벽한 프로의 세계라며 컨설턴트라면 반드시 다음과 같은 철저한 마음가짐을 갖고 일해 임해야 한다고 당부하고 있는데요

컨설턴트뿐만이 아니라 저마다의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계신 모든 독자 분들게 도움이 될만한 내용입니다.

저 역시 기업들에게 콘텐츠 분야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입장에서 나는 과연 저런 마음가짐으로 일하고 있는가?’라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고요.

나의 경험으로는 컨설팅이란 완벽한 프로의 세계여야 한다프로 운동 선수가 인생의 모든 것을 걸고 뛰는 것과 프로 바둑선수가 목숨을 걸고 바둑돌 하나를 놓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컨설턴트야말로 아마추어 실력으로는 통할 수 없고 오로지 프로 실력을 갖춘 전문가여야 한다왜냐하면 컨설팅을 의뢰한 입장에서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맡길 수 있는 실력자라고 인정을 받아야만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정신으로 무장한 컨설턴트로서 나는 물류에 인생을 걸고 있었으므로 물류 컨설팅 한 건 한 건에 초인적인 힘을 쏟아부었다." 

"그 이유는 컨설팅 결과보고서에 불만을 제기하는 고객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의 불명예이자 물류 인생의 종말을 예고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무항산 무항심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 '안정적인 소득이 없다면 마음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없다'는 뜻의 이 말은 맹자의 첫 번째 챕터인 양혜왕 편에 나온 말입니다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기도 한데요.
 
유교의 대성인으로 꼽히는 맹자조차도
 
경제적으로 생활이 안정되지 않아도 항상 바른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오직 뜻있는 선비만 가능한 일입니다.”
 
일반 백성에 이르러서는 경제적 안정이 없으면 항상 바른 마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며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않고서는 꿈과 이상을 추구해나가는 일 자체가 힘들다고 말하고 있습니다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건 아주 소수의 뜻있는 선비들만이 가능한 일이죠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따라할 수 없죠.
 
사업 초기의 황량했던 시간들을 1인 컨설턴트로 일하면서 견뎌냈던그 시간들을 물류 기업인으로서의 역량과 전문성을 더욱 높이는 자양분으로 삼았던 서 회장의 모습을 통해 

착안대국 착수소국의 전략이야말로 그가 1인 컨설턴트로 시작해 연 매출 15000억원에 달하는 물류기업을 키워낸 바탕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뉴스레터에는 <아웃스탠딩>에 기고한 본문의 4분의 1 가량만 옮겼습니다. 서병륜 회장이 물류에 인생을 걸게 된 계기와 그의 첫 번째 전략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 

그리고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상태로 시작한 그가 사업 초기 외부 파트너들의 힘을 빌려 회사를 빠르게 성장시킨 세 번째 비결에 대한 내용이 궁금하신 분은 아래 '본문 읽기' 버튼이나 본문 중간의 사진을 클릭해주세요.)
사소한 이야기

안녕하세요. 홍선표입니다. 코트를 입고 다녀도 한기가 세차게 파고드는 12월이 됐는데 다들 잘 지내고 계시죠? 저는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시는 덕분에 항상 즐겁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번 주는 이런저런 일들이 많아서 일주일이 특히나 더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 거 같습니다. 기자로 지낼 때도 바쁘긴 바빴지만 구멍가게 수준이지만 자기 회사를 하나 운영하니까 생활이 더 바빠진 거 같습니다.
 
이런저런 글도 써야 하고, 세금 계산서도 발급해야 하고, 다른 업체들에 연락해서 이런저런 조율해야 하는 일들도 있고, 이러다 보면 일주일이 참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이번 뉴스레터는 서병륜 로지스올 회장님의 <물류의 길>을 읽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써봤는데요.
 
서 회장님이 저와 같은 서른다섯 살의 나이에 서울 용산구 갈월동의 허름한 사무실에서 자기 회사를 시작하시는 모습을 읽는 순간부터 깊은 동질감이 느껴져서 그런지 책도 참 재밌게 읽을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사업에 대한 내용뿐 아니라 물류 기술‧시스템에 대한 전문적인 이야기도 많이 나오니 물류업계에서 일하시는 분이라면 한 번 꼭 읽어보실 추천드립니다.
 
금요일인 오늘도 날씨가 많이 쌀쌀한데 다들 오늘 하루도 즐겁게 잘 보내시고, 금요일 저녁과 주말도 가족, 친구분들과 행복하게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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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선표 작가
문해력 교육 스타트업 레드브릭
rickeyg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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