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 여성이었고, 트랜스 남성으로 살아가는 그의 삶에는 다른 사람들의 지지와 응원이 필요한데, 『페이지보이』의 책날개는 이 이야기를 껴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디자인이라는 형식이 메시지를 어떻게 드러내고 있는지가 상징적으로 느껴진다.”(뉴스레터 콘텐츠로그 ‘못다 한 이야기: 회고록 쓸 자격’ 중)

 

책이 출간되고 나서 정말 많은 사람으로부터 인상 깊은 디자인이라는 평가를 들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만드는 동안도 디자인의 방향에 관해 끝까지 고민한 책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고 싶어요.―편집자Y

처음에는 크게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원서 디자인이 워낙 좋았고, 사진작가 캐서린 오피가 찍은 엘리엇 페이지의 사진도 근사했기에 비슷한 방향과 톤을 택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미국과 동시 출간된 여러 나라 판본도 같은 결정을 했고요.

『페이지보이』 원서 표지.

그런데 이 디자인의 핵심 중 하나인 타이포그래피가 문제였습니다. 로마자 알파벳과 한글의 생김새와 그것이 전달하는 느낌은 상당히 달라서, 그냥 똑같이 볼드한 고딕체를 택하기만 한다고 똑같은 느낌을 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디자이너에 따르면, “알파벳을 한글로 대체하고 보니 한글이 영문보다 획이 많고 덩어리감이 커서 다소 우악스럽게 보였습니다. 이 때문에 사진과 타이포가 서로 자기주장을 하며 충돌하는 듯하기도 했고요.” 기왕 동일한 디자인을 쓸 수 없다면 좀 더 한글에 걸맞은, 더 안정적인 디자인을 시도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게 마치 미술작품 같은 느낌을 주는, 붉은 프레임 정중앙에 사진이 위치한 지금의 레이아웃입니다.


이 레이아웃으로 어느 정도 완성되었을 무렵, 불현듯 ‘디자인이 너무 강하지 않은가? 정작 텍스트는 훨씬 더 내밀하고 정서적인데, 원고의 그런 성격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들었습니다. 디자이너는 제 우려를 듣고 완전히 다른 톤의, 훨씬 더 정서적인 시안을 만들어주었어요. 눈이 잘 보이도록 클로즈업하고 모노톤으로 처리한 새로운 시안도 사실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트랜스남성의 이야기인데, 트랜지션 후의 달라진 신체가 잘 보이도록 사진 전체를 보여주는 디자인이 맞는 것 같다.’는 고려, 그리고 ‘엘리엇 페이지의 당당함을 보여주고 싶다.’는 디자이너의 최초 의도를 따라 원안으로 돌아갔습니다.


표지가 책의 내용을 담아내는 얼굴이라면, 책이 가지고 있는 여러 성격 중 무엇을 제일 앞으로 보여주어야 할까 하는 고민을 계속해서 하게 했던 책입니다. 특히 소수자를 재현할 때, 그 사람을 어떤 모습으로 보여주고자 하는가의 문제를 다루어야 하기도 했고요. 저는 지금 와서 돌아보면서도 결국은 맞는 선택을 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이 책이 특정 독자층에게만 읽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습니다. 그래서 관성적으로 떠올리기 쉬운 이미지나 분위기는 최대한 배제하려고 했어요. 저는 진짜 ‘나’는 어떤 사람인지, 저 스스로도 나에게 갖는 편견이나 오해가 있진 않은지 계속 고민하고 살피려고 노력하는데 여전히 명쾌하진 않습니다. 이제는 ‘나’와 대화하는 시간을 갖는 것마저 쉽지 않아졌고요. 자유롭게 사는 것(나 자신으로 사는 것)은 끝없는 자기 탐구와 집념이 필요하다고 느끼는데 엘리엇 페이지는 그런 노력을 통해 자신을 찾은 것 같아 부러웠습니다. 사진만 봐도 느껴지는 당당하고 확신에 찬 엘리엇의 모습을, 표지에서 온전히 담아냈으면 했어요.


그리고 이 책은 꼭 배면(책등의 반대편. ‘책배’라고도 부르고, 책등 반대편뿐 아니라 책의 위아래 부분까지 배면이라 일컫기도 합니다.) 인쇄를 하고 싶었습니다. 표지는 사진에 집중했으면 하여 요소들을 최소한으로 넣되, 동시에 책의 내용도 어떻게든 디자인적으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내용이 뻔하지 않은 책이라 디자인 역시 뻔하지 않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책배에 인쇄를 하면 강렬함도 챙겨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안타깝게도 제작비 문제로 책배를 감싸는 형태로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책이 나올 때까지도 아쉬웠던 부분이었지만 후기 중에 “책을 껴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표현이, 전 미처 생각지 못해 더 마음에 들기도 하고 그의 이야기에 서린 따뜻함을 느끼신 것 같아 기쁘네요!―디자이너 N


『페이지보이』 표지 디자인, 어떻게 보셨나요?


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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