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레터 70호
2024/4/30
작업중지권 행사 30만건의 의미
류현철

삼성물산, 건설부문에서 행사된 작업중지권 30만건 넘어


최근 삼성물산(건설부문)에서 행사된 작업중지권이 30만 건이 넘었다는 언론보도가 있었습니다. 삼성뉴스룸에 따르면, 2021년 3월 최초로 현장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을 보장한 이후, 3년 만에 국내외 113개 현장에서 총 30만 1,355건의 작업중지권이 행사되었다고 합니다. 삼성물산은 시공능력 평가액 기준으로 10년째 국내 1위 건설업체여서 큰 파급력이 있습니다.

삼성물산의 '작업 중지권'의 행사는 시간이 흐르며 점점 늘어 났습니다. 작업중지권 전면 보장을 선언한 첫해 8,224건이던 것이 2년차 4만 4,455건, 3년차에는 무려 24만 8,676건으로 증가했습니다. 하루 평균 270건의 작업중지권이 행사되는 셈입니다. 이러한 놀라운 수준의 확산은 작업중지권이 홍보용이 아니라, 실제로 작동하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저는 작업중지권 확장을 지속적으로 주장해왔기 때문에, 이러한 성과에 감사와 격려를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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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중지권이란?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 사업주는 작업중지의 의무가 있습니다(제51조 사업주의 작업중지). 그리고 노동자는 작업중지의 권리가 있고(제52조 근로자의 작업중지), 고용노동부 장관은 작업중지 명령의 권한이 있습니다(제53조 고용노동부장관의 시정조치 등). 그러나 건설노동자들은 작업중지의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노동계에서는 작업중지권을 확장하고, 정부가 작업중지 권한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반면 기업과 경영단체들에서는 작업중지 남발로 초래되는 피해를 우려하여, 노동자들의 작업중지의 권리와 고용노동부의 작업중지 권한을 제한하고 싶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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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작업중지권이 확대되지 못했던 이유는


그 이유는 위험을 바라보는 노동자와 기업의 관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노동자들에게 위험이란 신체와 정신의 손상을 초래할 위험을 말하며 그 상대어는 안전(safety)입니다. 노동자들에게 위험 관리(risk management)란 개인 혹은 집단으로서의 건강과 온전성을 유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한편 기업에 있어서 위험이란 생산과정의 지체나 지연에서 오는 이윤손실의 위험을 말합니다. 그 상대어는 이윤(profit)입니다. 기업의 위험 관리란 이윤손실의 가능성을 줄이는 것이며 이것은 기업의 고유한 속성입니다. 문제는 노동자가 아무리 위험해져도 기업의 위험으로 연결되지 않는 디커플링 현상에 있습니다. 



사전예방보다 사후처리 비용이 낮아


한국 사회에서는 산업재해에 대한 ‘사전 예방’ 비용보다 위험의 결과에 대한 ‘사후 처리’비용이 현저하게 낮았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범들에 대한 처벌 수준을 분석한 연구를 보면 중대재해에 대한 벌금은 5백만원대를 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들은 아직 발생하지 않은 산재를 예측하고, 예방하기 위해 시간과 비용을 들이기 보다는, 산재 발생 이후에 소요되는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간편했습니다. 위험의 사전 관리에 드는 비용과 위험의 결과에 따르는 비용 사이에 현저한 불균형은 기업의 적극적인 산재예방 활동의 동기를 끌어내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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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처벌법은 왜 필요했을까?


이론적으로는 산재예방활동이 기업이윤 향상에 도움이 됩니다. 숙련된 노동자들이 지속적으로 건강하게 일하도록 하는 것이 생산성을 높일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은 저임금으로 위험한 환경에서라도 일해야만 하는 불안정 노동자들이 존재한다면  깨집니다. 김용균의 죽음이 계기가 되어, 거의 30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어, 법의 보호대상이 '근로자'에서 ‘노무를 제공하는 자’로 확대되었습니다. 그러나, 기존의 관행이 변화되거나, 재해 감소의 조짐은 나타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결국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침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과 경영책임자에게 실질적 부담이 발생할 정도의 강력한 처벌이 있어야, 사전 예방의 동기가 만들어진다는 인식이 확대되었습니다. 이것이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작업중지권 전면 보장이 가져온 변화


원래 작업중지권은 도입이 어려웠습니다. 노동자의 참여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 수반되는 비용에 대한 예측의 어려움으로 발조차 떼지 못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굴지의 건설기업에서 작업중지권을 전면적으로 시행한 일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아니었다면  일어나기 어려웠을 겁니다. 일단 시작을 하고 나니 노동자 참여에 기반한 위험 관리가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노동자도 건설사도 체감했을 것입니다.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작업중지권이 안전에 높은 기여를 하고 있으며 향후에도 작업중지권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노동자가 92%,  타사 현장에서도 작업중지권을 사용하겠다는 노동자가 93.1%였습니다. 이는 작업중지권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뿌리내리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작업중지권으로 인한 비용손실의 우려도 감소


기업들은 작업중지권을 확대하면, 생산과정의 지체나 차질로 인해 비용부담의 증가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해 왔습니다. 그러나, 삼성물산의 자료에 따르면 작업중지 30만건의 사례 중 89.1%가 1-2시간 내에 조치가 완료되었다고 합니다.  작업중지로 인한 휴업이나 공기의 연장에 대한 비용 역시 수용할 만한 수준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삼성물산에서는 총 13개 업체, 391건에 대한 작업중지권 관련 비용을 정산과정에서 반영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작업중지권의 도입으로 재해율도 감소


삼성물산이 자체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1일 이상 휴업하는 재해 발생비율이 작업중지권 전면보장 시행 이후 매년 15% 가까이 꾸준히 줄어들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산업재해로 인해 근로감독관에 의해 발동되는 작업중지의 빈도나 기간이 더 줄어들 것입니다. 



삼성물산의 작업중지권 전면보장에 대한 노동조합의 반응


노동조합의 반응은 긍정적입니다. 삼성물산의 작업중지권 전면보장에 대한 보도 이후에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이례적으로 논평을 내고, 조합원들이 삼성 현장의 작업중지권을 높이 사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2024년 1월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2,654명의 건설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시행하였습니다. 작업중지권을 보장하겠다고 나선 삼성물산, 포스코, 현대건설, GS건설, 롯데건설, 대우건설, 현대엔지니어링, DL이앤씨, HDC 현대산업개발, SK 에코플랜트 등의 건설현장에서 실제 작업중지권을 보장받았다고 답변한 노동자는 17.3%였습니다.  작업중지를 요구했으나 무시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변한 경우는 11.1%였습니다.  아직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이 조사결과는 원청 시공사가 작업중지권을 보장해 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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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중지권 행사 확대는 중대채해 처벌법의 성과


안전보건의 문제는 노사 모두에게 공통의 이해 관심사가 되어야 하고,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을 확보하는 것이 기업에도 득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대기업의 산재예방활동에 대해서 아낌없이 환호하고 치하해왔던 고용노동부가 이번 삼성물산 작업중지권 보도에 대해서는 별 반응이 없었던 점은 아쉽습니다. 삼성물산의 건설 노동자 작업중지권 행사 30만 건은 고용노동부 산재예방 로드맵의 핵심이며, 노동자의 참여로 현장의 위험을 확인하여 개선으로 이어가는 위험성평가의 훌륭한 사례가 아닐까요? 또한 중대재해처벌법이 이끌어낸 자기규율 예방체계 작동의 본보기가 아닐까요?


글쓴이: 류현철 (재단법인 일환경건강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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