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어른의 낯선 모습을 발견한 아이에게 해준 이야기.
며칠 전, 혜린이와 둘이 놀러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어요. 아이가 아빠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이런 점은 마음에 안 들고, 저런 점도 싫다고요. 하나씩 이야기하는 걸 듣다가 제가 말했어요.
 
“네가 많이 컸구나.”
 
이제는 어른이 하는 말과 행동을 보고 자기 생각을 할 줄 알게 된 거라고요. 어릴 때는 엄마 아빠가 다 맞는 것 같지만, 크다 보면 ‘이건 아닌 것 같은데’ 싶은 순간이 생긴다고 이야기해줬어요.
 
엄마 아빠가 갑자기 달라진 게 아닐 수도 있어요. 전에는 모르고 지나쳤던 모습이 이제 아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 거죠. 엄마도 틀린 말을 할 때가 있고, 아빠도 자기 말을 안 지킬 때가 있다는 걸요.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가 예전보다 말을 안 듣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겠지요. 전에는 그러려니 하던 일에도 왜 그래야 하느냐고 묻고, 엄마 말이 틀렸다고 하니까요. 사춘기라 그런가 싶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 말을 전부 대드는 것으로만 보면,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놓칠 수도 있겠어요. 정말 이해가 안 돼서 묻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랬더니 혜린이가 할아버지 이야기도 꺼냈어요. 어릴 때는 할아버지가 정말 다 좋았대요. 그런데 어느 날 어떤 행동을 보고는 자기가 알던 할아버지와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고요. 자기가 할아버지의 모든 모습을 알고 있었던 건 아니겠구나 싶었대요.
 
좋아하는 할아버지인데, 마음에 안 드는 모습도 있었던 거예요. 아이에게는 그게 낯설었을 것 같아요. 좋은 사람이면 모든 모습이 다 좋을 것 같았는데, 꼭 그렇지는 않다는 걸 알게 된 거니까요.
 
저도 그랬어요. 어릴 때는 어른들이 다 아는 줄 알았고, 어른의 말이 맞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자라면서 아닌 모습들도 보이기 시작했지요. 왜 저렇게 말씀하시지, 왜 저렇게 행동하시지. 이해가 안 되고 실망스러운 순간도 있었고요. 혜린이도 이제 그런 일을 겪고 있구나 싶었어요.
 
그럴 때 어른은 쉽게 말할 수 있어요. “사람이 다 그렇지. 누구나 단점은 있어.” 맞는 말이지만, 아이는 이제 처음 알아가는 중이잖아요. 나는 오래전에 알게 된 일이라고 해서 아이도 금방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아닐 거예요.
 
“그래도 아빠잖아.”
“할아버지가 너를 얼마나 예뻐하시는데.”
 
이런 말로 끝내고 싶지는 않았어요. 아빠를 좋아해도 아빠의 어떤 행동은 싫을 수 있고, 할아버지가 나를 예뻐해주셔도 이해가 안 되는 모습은 있을 수 있으니까요. 아이가 그런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가족을 덜 좋아하게 된 건 아니잖아요.
 
좋았던 모습도 그 사람의 모습이고, 마음에 안 들었던 모습도 그 사람의 모습이에요. 한 번 실망했다고 그동안 좋았던 기억까지 없어지는 건 아니지요. 그렇다고 좋아하는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전부 괜찮다고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요.
 
저는 혜린이가 앞으로도 이런 일을 여러 번 겪을 거라고 생각해요. 친구에게도, 선생님에게도, 좋아하던 누군가에게도요. 가까워지고 오래 지내다 보면 처음에는 몰랐던 모습을 보게 될 테니까요.
 
그러다 시간이 더 지나면, 사람을 보는 내 생각도 달라질 때가 오겠지요. 예전에는 너무 고집이 세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어떤 순간에는 쉽게 포기하지 않는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어요. 시원하게 말해서 좋았던 사람이, 어느 날은 말을 너무 함부로 한다고 느껴질 수도 있고요.
 
그 사람은 비슷한데 내가 다르게 보게 되는 거예요. 내가 겪어본 일이 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달라지니까요. 처음에는 ‘저 사람은 왜 저럴까’만 생각하다가, 나중에는 ‘나는 왜 저 모습이 그렇게 싫었을까’도 생각하게 되고요.
 
물론 시간이 지난다고 모든 행동을 이해하게 되는 건 아니에요. 다시 생각해봐도 잘못된 일은 있을 거예요. 다만 지금 내가 본 모습만으로 그 사람을 다 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해요. 저도 사람을 보면서 계속 배우고 생각을 바꾸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이야기하다 보니 저도 떠올랐어요. 지금은 아빠와 할아버지 이야기지만, 혜린이가 저를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할 수 있잖아요. 이미 하고 있을지도 모르고요.
 
엄마가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게 다르네.
엄마도 자기 기분에 따라 말할 때가 있네.
이건 엄마가 잘못한 것 같은데.
 
아빠 이야기를 들을 때는 “네가 컸구나”라고 했지만, 제 이야기를 들을 때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막상 들으면 저도 억울해서 설명부터 하고 싶어질 것 같아요. 엄마가 왜 그랬는지 네가 몰라서 그렇다고요.
 
그래도 그때 바로 아이의 말을 막지는 않으려고 해요. 어떤 모습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는지 먼저 들어보고 싶어요. 제가 미처 몰랐던 제 모습일 수도 있고, 알고도 고치지 못한 모습일 수도 있으니까요. 아이의 말이 맞다면 “그건 엄마가 잘못했네”라고 말할 수 있어야겠지요.
 
아이를 키우다 보면 가르쳐줄 일이 참 많아요. 그런데 아이가 크면, 아이에게 듣고 배울 일도 생기겠구나 싶습니다. 제 말이 늘 맞지는 않다는 걸, 아이도 이제 알아가고 있으니까요.
 
혜린이가 앞으로도 이런 이야기를 편하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다른 어른 이야기뿐 아니라, 엄마인 제 이야기도요. 아이가 저에게 실망할 일이 없기를 바라기보다, 실망한 일이 있을 때도 제게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응원하겠습니다.
쿨한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