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LAR POWER

SOLAR POWER
  "야 이기영!" ... 여름이었다. 
  아무 말 뒤에 '여름이었다'라는 표현만 붙이면 영화 속 한 장면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과연 영화과에서도 이런걸 알려줄까? '콜미바이유어네임'의 계절이 여름인 이유는 서양 애들이 긴 여름 방학과 짧은 겨울 방학을 보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 징그럽게 뜨거운 햇빛이 약간의 무모함을 이끌어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횡단보도에서 '잘 가' 라는 말을 했는데 이 친구가 갑자기 같이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줄 게 있다면서 노란색 포장봉투에 타이트하게 감싸진(이런 포장을 정말 좋아한다. 질소칩과는 차원이 다른 신뢰감을 준다) 일회용 필름카메라를 줬다. 노란 네모를 손에 쥐고 혼자 걸었다. 그 횡단보도와 우리 집 사이에는 몇 개의 슈퍼마켓과 채소와 과일을 파는 길거리 좌판이 있는데 한 좌판에서 살구를 봤다. 삼천원이었다. 이 곳은 카드를 받지 않는다. 지갑을 열었더니 천 원 짜리가 딱 세 장 있었다. '오늘 사는 살구는 여름을 사는 것'이라는 우주의 계시야, 라고 생각하며 얼른 돈을 꺼냈다. 까만 비닐봉지에 바구니에 들어있던 살구를 털어넣고 털레털레 집에 왔다. 

Lorde - Solar Power
  늦은 저녁인데도 해가 떠있었다. 매년 보는 광경이지만 저녁 7시에 대낮 같은 밝음은 매번 울렁거린다. 시간이 무르익는 여름은 뜨거운 햇살이 주는 달큰함과 ‘언제 시간이 이렇게 빨리 흘렀대! 그치만 좋다’라는 무서운 안도감을 준다. 복숭아와 체리 같은 농밀한 과일들 다음에 낙엽이 오는 것은 잔인하다. 하지만 지금은, 어쨌든 오늘은 여름이다. 내가 인생앨범인 <Melodrama>를 발매했던 로드가 여름 노래로 돌아왔다. 불편하지만 설레는 계절의 시작을 알리는 과일과 같은 날에 같은 색인 노랑으로! 노란색은 이 날을 조금 더 기억할만한 하루로 만들어주었다.

피카소는 하루에 몇 시간이나 잤을까?
  몇 년 전에 진행되었던 피카소를 팔아서 한 큐비즘 전시는 큐비즘에 대해 더 깊게 알 수 있어서 좋았지만 제목에 낚인 찝찝함을 남겼다. 하지만 얼리버드 티켓을 엄청나게 팔아먹은 올해의 피카소를 걸고 오픈한 전시는 정말 피카소 그림만 있었다(피카소 미술관에서만 그림 가져와서 그렇다). 최근 몇 년 동안 유명 작가의 회고전이나 개인적을 보며 관객들의 시각이 바뀐 것을 느꼈다. 예전엔 누구나 알 법한 대표작이 오지 않으면 실망하는 분위기였는데 요즘엔 해당 작가의 작품 세계와 그가 미술사적으로 가지는 의의 등에 대해 깊게 배우고, 그의 작품이 어떻게 변화하였고, 그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작품활동에 임했는지를 느낀다면 충분히 만족하는 것 같다. 그리고 유명 작품을 보는 것을 넘어서서 이러한 경험을 통해 자신만의 감상을 찾는 것을 중요시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전시를 보면서 크게 두 가지의 생각을 했다. 그 첫 번째는 전시 공간에 소속된 기획자가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즉 미술관과 그곳에 소속된 큐레이터가 있는 경우와 단순 대관만 하는 곳은 아주 다르며, 내가 은연중에 이 두 종류의 공간에 대해 아주 다른 기대치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과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은 국립현대미술관이나 대림미술관, 피크닉 등과 달리 해당 미술관에 소속된 전시기획자가 없다. 그러니까 저 두 공간은 전시기획이 아닌 전시장 대관이 주 업무인 곳이며, 이러한 장소를 대관하여 전시를 진행하는 전시 기획사도 있다. 이걸 어떻게 알았냐면 20살 때(무려 5년 전이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진행된 ‘호안 미로 특별전’의 서포터즈 활동을 했었는데 세종문화회관이 아닌 전시 기획부터 굿즈 제작까지 맡고 있는 디커뮤니케이션이라는 회사와 함께 활동한 경험이 있다(대림미술관, MMCA는 해당 공간이 속한 단체와 함께 서포터즈 활동을 진행한다). 

  유난히 세종문화회관과 한가람 미술관에서 진행되는 전시들의 전시 제목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루어지는 것 같다(필자도 몇 번 당해봄 전시가 별로였던게 아니라 제목을 그렇게 지으면 안됐음). 대행사 입장에서 흔히 말하는 블록버스터급 전시를 진행할 때 큰 액수의 로열티와 공간 대관료, 인건비 등을 커버하고 수익까지 남겨야 하는 상황인지라 관람객을 모으기 위해 약간의 과장을 더하다보니(어그로를 끌다보니) 그렇게 되는 것이겠다. 그러나 더 큰 아쉬움은 공간에 있는데 일단 서울 시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등 '미술관'으로 지어진 건물들에 비해 아트센터에 지어진 공간은 그 공간 자체에 대해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이 적다. 공간이 소속된 단체가 그 공간을 사용할 수 있는 경우, 해당 전시 공간과 전시장 외부 공간을 비교적 자유롭게 변형하고, 이용하므로써 그 공간이 가진 매력을 극대화한다. 

  물론 미술 전시를 목적으로 지어진 건물과 아트센터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공간을 비교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그렇지만 한가람 미술관은 천장도 낮고 비교적 좁은 공간(기분 탓일 수도 있다)에 작품을 비교적 촘촘하게 거는 데다가 가끔씩 조명이 구리다고 느낀다. 그림을 잘 보여주기 위한 조명이 아닌 갬성을 만들어내기 위한 조명 같달까. 심지어 말로는 순서 상관 없이 자유관람하라고 하는데 사람이 몰리면 자유관람하기 정말 힘든 구조다. 유명한 작가의 전시회는 부모님들과 아이들도 많이 오는데 정말이지 그렇게 줄 서서 보면 아이들은 그림을 제대로 보기 힘들고, 아이에게 좋은 것을 보여주고 싶은 적극적인 부모님들이 욕 먹기 딱 좋은 환경이 조성된다. 작품을 많이 볼 수 있는 것은 좋지만서도 해당 전시공간의 환경과 관람객 수 등등을 고려했을 때는 많이 아쉽다. 내가 거기만 가면 기 빨리는 이유가 이거였나보다.  

  두 번째 생각은, 최근에 자주 했던 생각이기도 한데 재능에 관한 것, 그 중에서도 꾸준함과 노력에 관한 것이었다. 피카소는 천재다. 이에 이견을 가지는 사람도 거의 없을 뿐더러 혁명적인 사조를 이끌어서 캔버스가 가진 가능성을 확장시킨 그가 예술사에 미친 영향이 어마무시하다는 데에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물론 취향이 아닐 수는 있다). 어쩼든 그는 천재, 그러니까 속된 말로 ‘재능충’이기 때문에 그의 열정과 노력은 그의 여성편력보다도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불륜을 옹호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뭐 사실 매운 맛 연애사가 앉아서 그림만 그린다던가 매일 꾸준히 노력한다던가 이런 것보다 재밌긴하다. 

  나는 ‘라파엘로처럼 그리는 데에는 4년이 걸렸지만 어린 아이처럼 그리는 데에는 평생을 바쳤다’라는 그의 말을 듣고, 그가 어린아이처럼 그리기 위해 노력하고 고민한 ‘평생’보다 고전회화를 마스터하는데 걸린 4년에 더 주목했었다. '그러니까 피카소는 천재고 어린아이 같이 그리는 건 엄청 어렵다는 거지? ㅇㅋㅇㅋ' 라고 생각했었다. 그가 작품활동에 바친 그의 매일은 싸그리 무시하고 재능이 탑급이라 잘 먹고 잘 살았다~라는 일차원적이고 비관적인 시각으로 지난 몇 년을 보냈다. 솔직히 말해서 부끄럽지만 남들보다 특출난 점이 하나 쯤은 있어야 각박한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문제는 노력보다 특출난 점에 더 집중했다는 것이다. 

  이번 전시는 피카소의 회화, 조각, 도예, 판화작품 약 110여점을 감상할 수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 장르를 가리지 않은 수천점의 작품을 만들었다. 피카소가 천재인 것과 별개로 자신의 관심사와 목적, 목표에 일평생 몰두한 사람에게 노력이 부족했다던가, 노력 없이 많은 것을 이뤄낸 사람이라던가 같은 말을 할 수 있을까? 김고흐김알파카의 영상을 보면서(김고흐와 김알파카 영상 보는 김혜지) , 그리고 운 좋게도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꾸준함이 엄청난 재능이라는 것을 배웠다. '오 좀 잘하는데?' 싶은 것과 '잘하고 싶은 것'을 더 잘하고 더 익히기 위해 짧게는 몇 주에서 길게는 몇 년까지 집중력과 시간을 들인다는 것은 엄청난 일인데 이런 멍청이가 염세주의에 찌들어서 자기비하만 하고 살았다. 뭐 이젠 거의 안 그러니까 됐다. 그나저나 새삼 피카소가 더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건 저렇게 공장 돌리듯이 작품활동을 하면서 연애도 안 끊기게 계속 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중간에 양다리도 걸쳤다. 사랑이 곧 영감이라 가능한 것이었을까? 

미래의 주거생활에 대한 바램 또는 상상 그 어딘가 
  유현준 교수의 유튜브 영상을 봤다. 이미 지어진 수많은 집들의 문제를 지적하며 전반적인 주거환경의 질을 높이기 위해 ‘자신이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원하는지 고민하고 그 고민에 맞는 주거공간을 만들어나가야 된다’고 말했다. 지금 사는 주택에서 한평생 살아왔고, 이 공간에 대한 애정도도 높지만 나만의 살림살이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반면에 항상 곁에 따라다니는 가장 큰 공포도 이 ‘주거환경’에 관련된 것이다. 나는 요즘 세상에 흔치 않게 복작거리는 대가족에서 나고 자랐다. 빈 집을 지킬 일이 없고, 항상 밥통에 밥이 있는 아동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것은 분명한 행운이다. 그러나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혼자 있는 시간이 중요한 사람에게 다수의 동거인은 가족에 대한 사랑과 별개로 불편할 때가 있다. 사실 많다. 

  이런 걱정이 ‘공포’로 이어지는 이유는 아마도 구독자분들이 나보다 더 잘 아실거라고 생각한다. 매일 같이 텔레비전에선 부동산 문제와 주택난에 대해 떠들어대는데 당장 앞으로 무엇을 할 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어떤 직장에 다닐지, 연봉은 얼마가 될 지 등 미래의 경제 상황에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평생 엄마 아빠랑 사는 것’을 배부른 고민을 넘어선 자아실현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데, 의식주 중의 하나인 주거환경에서 태클이 걸려 이 자아실현이 힘들어지는 것은 내게 공포다. 자식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각별한 집에서는 더욱이 그렇다. 이런 말을 하면 우리 고모는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특히 아파트에 살 생각이 없는 아이니까 그것은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라고 말한다. 조그마한 마당이 딸린, 옥상이 있는 양옥집을 구매해서 모든 층을 다 쓰는 것이 지금의 내가 바라는 주거생활인데 보통 이런 집을 가지고 계시는 분들은 연로하셨기 때문에 몇 년 뒤엔 생각보다 많은 매물이 나올 거라는 말씀이시다. 물론 아파트보다 저렴하기도 하고. 논리적으로 틀린 말씀은 아니지만 내게 있어서 주거의 문제는 까뮈의 단어를 빌려보자면 실존의 문제다. 쉽게 불안감을 잠재울 수 없다. 

  기본적이고 고전적인 의미의 의식주에 관심이 많다. 피부에 닿는 옷감, 옷이 형성하는 캐릭터, 입에 들어가는 음식, 이 음식이 가지는 코드 그리고 각 개인이 만족스러운 일상을 꾸려나가면서 발전의 발판을 마련해줄 수 있는 공간에 대해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내가 보기에 힙하고 멋있는 사람들은 무엇을 입고, 무엇을 먹고, 어떻게 해놓고 사는지가 항상 궁금하다. 누군가가 자신의 취향과 캐릭터가 묻어나는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을 가지고 있다면 그에 대한 궁금증과 호감도가 급증한다. 반대로 라이프스타일이 매력적이지 못하면 미안하다. 질문이 곧 관심인 내게 궁금한 점이 없는 사람이란 같이 보내는 시간이 조금은 아까운 사람이다. 

  이런 상황과 관심사를 가지고 주거환경의 개선을 위해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고민을 강조하는 영상을 보았다(물론 개인의 노력에 대한 내용은 전체 영상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자신이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원하는지 고민해보고 그에 맞는 주거 환경을 갖춰야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무엇을 하고, 서재에선 어떤 풍경이 보이면 좋을지 같은 것 말이다’ 라는 말은 자주 그러나 막연히 하던 ‘어떤 집에서 어떻게 살고 싶다’라는 생각을 구채화시킬 필요성을 느끼게 했다. 그런 상상을 자주 하는 편이라 ‘사람은 생각하고 말하는 대로 된다던데 생각은 많이 하니까 어쨌든 내가 원하는 주거환경을 갖출 수 있지 않을까? 말은 좀 조심하자’ 라는 근거 없는 긍정적인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에 '대화의 희열' 오은영 박사님 편이 불을 질렀지)

  내가 원하는 주거환경은 주택이다. 모르는 사람들과 같은 건물에 살면서 오며가며 마주치는 것도 불편하고, 우리 집의 소리가 타인에게 들릴 수 있다는 것과 전혀 궁금하지 않은 타인의 소리가 내게 들릴 수 있다는 것은 간접적인 프라이버시 침해라고 생각한다. 종종 몇 호에 누가 사는지 궁금해하고 참견하는 사람들도 싫고,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도 반갑지 않다. 그래서 작은 마당과 옥상이 있는, 그러니까 혼자서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야외 공간이 있는 오랜된 주택을 구미가 당기는 대로 고쳐서 살고 싶다. 건물의 모서리가 90도로 꺾이지 않은, 직각삼각형의 각이 아닌 빗변이 모서리를 대체하고 있는 모양의 창문이 크고 빛이 잘 드는 집에서 더 많은 좋은 일들이 생길 것이라 항상 믿어왔다. 옥상과 마당에선 식물도 기르고 맘 편히 광합성도 하고 싶다. 예산 제한이 없다는 가정 하에 인테리어도 말해보자면 현관 타일은 조금은 화려한 것으로 포인트를 주고, 부엌에는 큰 테이블을 놓아서 친구들을 초대하고 싶다. 장우철과 조지아 오키프의 프린팅을 사고 싶고, 모로칸 러그도 하나 깔고 싶다. 페르시안 디자인도 좋지만 내 마음 속 1순위는 불규칙하고 기하학적인 어린 아이가 그린 것 같은, 소프트 퍼레이드였나? 거기서 수입해오던 그런 무늬가 차지하고 있다. 르코르뷔지에 쇼파도 가지고 싶고 이런저런 빈티지 소품과 가구들도 모으고 싶다. 매거진 렉도 꼭 놓아야지. 

  아침엔 꼭 커피와 아침밥을 먹어야고, 이런저런 식재료에 관심이 많으므로 큰 냉장고를 가진, 신선한 재료로 가리지 않고 이것 저것 잘 해먹는 멋있는 그릇 콜렉터가 되고 싶다. 계절의 맛을 놓치지 않고 모조리 즐기고 싶다. 서재 창문 밖으로 손을 내밀면 나뭇잎이 만져졌음 한다. 고전적인 교수님의 연구실을 모방하여 우리 엄마가 말 잘 들으면 주기로 약속한 동양화와 서예 작품을 걸고, 돌아가신 할머니가 남기신 도자기도 둘 것이다. 이런저런 소품들과 잘 매치해봐야지. 식기도구는 다양한 텍스쳐가 느껴지는 조용하거나 어글리큐트한 분위기의 세라믹과 투명한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유리를 이리저리 섞어서 사용해야지. 20새기 중반의 식기구들, 그 모양과 그 컬러를 상당히 좋아하므로 이런저런 빈티지 식기류들도 사들일 것이다. 

  같은 건물에서 사람들을 마주치는 건 싫지만 내가 믿고 좋아하는 사람들, 선을 지킬 줄 아는 사람들에겐 항상 열려있는, 그들이 힘들 때 대접 받는 기분을 느끼게 하고, 나를 아침 저녁으로 포근히 보듬어 주는 집을 상상한다. 아파트촌보단 공원이 가까운 오래된 주택가에서 동네 친구들, 인사성 밝은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 단골 가게의 사장님들과 느슨한 연대감을 즐기고 싶다. 집 뿐만 아니라 지역에 대해 가지는 관심과 애정도 중요하다. 작년에 Atmos매거진에서 '15 minute zone'이라는 것을 소개한 적이 있다. 광진구를 사랑하는 동네생활자로써 이 글을 인스타그램에 정리해서 포스팅까지 했다. 

  염세주의가 이래서 무섭다. 노력은 안하고 생각만 오지게 많이 하는 염세주의자여, 염세주의와 부정적인 것을 잘 구별하여 현명하게 미래를 계획하거라. 계획대로 되진 않겠지만 최소한 열심히라고 하거라. 
  매주 찾아듣는 팟캐스트 '영혼의 노숙자'의 내가 사랑해 마지못해 재탕하고 우려먹는 '월간이반지하' 코너가 지난 월요일, 14호를 마지막으로 종료되었다. 영혼의 노숙자의 모든 에피소드를 애청하고 있지만 유난히 아끼던 시리즈가 막을 내리게 된 것은 너무 아쉽다. 인생의 모든 좋은 것들은 사라진다. 그래서 음식과 술이 좋은 것일지도 모른다. 언제나 맛있는 것들, 새로운 맛있는 것들, 맛있는 술, 새로운 맛있는 술은 현재진형이니까. 하지만 영혼이 홈리스라도 내 명의의 집 한 채는 있었으면 좋겠다. 어차피 울 거라면, 벤츠 핸들을 광광 내리치면서 우는 게 낫다. 
PRIDE MONTH
프라이드 먼스인 6월을 맞이하여 6월 한 달 동안 레터 마지막에 퀴어 콘텐츠를 소개합니다.
♥ LOVE IS LOVE, LOVE WINS ♥

King Princess - 1950
아마 이 노래 아시는 분들 많으실 겁니다

King Princess - Hit the Back
  오늘의 퀴어 콘텐츠는 사심이 가득 들어가있습니다. 네 바로 제가 아주 좋아하는 킹 프린세스 aka 왕공주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아주 당당하고 편안한 느낌이 매력적이 뉴욕 출신의 싱어송라이터입니다. 보통의 퀴어물이 혼란과 암울의 코드를 많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서 이런 어린 여성 아티스트의 등장이 너무 멋있다고 느꼈습니다. 물론 그거랑 별개로 그냥 노래도 좋고 라이브 잘 하고 스타일 좋고 Coolness 그 자체입니다. 제가 길게 쓰는 건 별 의미가 없을 정도로 킹 프린세스에 대해 깊고 감각적으로 적어놓은 GQ 아티클(물론 한국어)을 첨부합니다.  
오늘의 일기는 어떠셨나요?
언제나 열려있는 후원계좌는 카카오뱅크 3333-10-0676870 김혜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