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준 교수의 유튜브 영상을 봤다. 이미 지어진 수많은 집들의 문제를 지적하며 전반적인 주거환경의 질을 높이기 위해 ‘자신이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원하는지 고민하고 그 고민에 맞는 주거공간을 만들어나가야 된다’고 말했다. 지금 사는 주택에서 한평생 살아왔고, 이 공간에 대한 애정도도 높지만 나만의 살림살이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반면에 항상 곁에 따라다니는 가장 큰 공포도 이 ‘주거환경’에 관련된 것이다. 나는 요즘 세상에 흔치 않게 복작거리는 대가족에서 나고 자랐다. 빈 집을 지킬 일이 없고, 항상 밥통에 밥이 있는 아동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것은 분명한 행운이다. 그러나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혼자 있는 시간이 중요한 사람에게 다수의 동거인은 가족에 대한 사랑과 별개로 불편할 때가 있다. 사실 많다.
이런 걱정이 ‘공포’로 이어지는 이유는 아마도 구독자분들이 나보다 더 잘 아실거라고 생각한다. 매일 같이 텔레비전에선 부동산 문제와 주택난에 대해 떠들어대는데 당장 앞으로 무엇을 할 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어떤 직장에 다닐지, 연봉은 얼마가 될 지 등 미래의 경제 상황에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평생 엄마 아빠랑 사는 것’을 배부른 고민을 넘어선 자아실현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데, 의식주 중의 하나인 주거환경에서 태클이 걸려 이 자아실현이 힘들어지는 것은 내게 공포다. 자식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각별한 집에서는 더욱이 그렇다. 이런 말을 하면 우리 고모는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특히 아파트에 살 생각이 없는 아이니까 그것은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라고 말한다. 조그마한 마당이 딸린, 옥상이 있는 양옥집을 구매해서 모든 층을 다 쓰는 것이 지금의 내가 바라는 주거생활인데 보통 이런 집을 가지고 계시는 분들은 연로하셨기 때문에 몇 년 뒤엔 생각보다 많은 매물이 나올 거라는 말씀이시다. 물론 아파트보다 저렴하기도 하고. 논리적으로 틀린 말씀은 아니지만 내게 있어서 주거의 문제는 까뮈의 단어를 빌려보자면 실존의 문제다. 쉽게 불안감을 잠재울 수 없다.
기본적이고 고전적인 의미의 의식주에 관심이 많다. 피부에 닿는 옷감, 옷이 형성하는 캐릭터, 입에 들어가는 음식, 이 음식이 가지는 코드 그리고 각 개인이 만족스러운 일상을 꾸려나가면서 발전의 발판을 마련해줄 수 있는 공간에 대해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내가 보기에 힙하고 멋있는 사람들은 무엇을 입고, 무엇을 먹고, 어떻게 해놓고 사는지가 항상 궁금하다. 누군가가 자신의 취향과 캐릭터가 묻어나는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을 가지고 있다면 그에 대한 궁금증과 호감도가 급증한다. 반대로 라이프스타일이 매력적이지 못하면 미안하다. 질문이 곧 관심인 내게 궁금한 점이 없는 사람이란 같이 보내는 시간이 조금은 아까운 사람이다.
이런 상황과 관심사를 가지고 주거환경의 개선을 위해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고민을 강조하는 영상을 보았다(물론 개인의 노력에 대한 내용은 전체 영상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자신이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원하는지 고민해보고 그에 맞는 주거 환경을 갖춰야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무엇을 하고, 서재에선 어떤 풍경이 보이면 좋을지 같은 것 말이다’ 라는 말은 자주 그러나 막연히 하던 ‘어떤 집에서 어떻게 살고 싶다’라는 생각을 구채화시킬 필요성을 느끼게 했다. 그런 상상을 자주 하는 편이라 ‘사람은 생각하고 말하는 대로 된다던데 생각은 많이 하니까 어쨌든 내가 원하는 주거환경을 갖출 수 있지 않을까? 말은 좀 조심하자’ 라는 근거 없는 긍정적인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에 '대화의 희열' 오은영 박사님 편이 불을 질렀지)
내가 원하는 주거환경은 주택이다. 모르는 사람들과 같은 건물에 살면서 오며가며 마주치는 것도 불편하고, 우리 집의 소리가 타인에게 들릴 수 있다는 것과 전혀 궁금하지 않은 타인의 소리가 내게 들릴 수 있다는 것은 간접적인 프라이버시 침해라고 생각한다. 종종 몇 호에 누가 사는지 궁금해하고 참견하는 사람들도 싫고,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도 반갑지 않다. 그래서 작은 마당과 옥상이 있는, 그러니까 혼자서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야외 공간이 있는 오랜된 주택을 구미가 당기는 대로 고쳐서 살고 싶다. 건물의 모서리가 90도로 꺾이지 않은, 직각삼각형의 각이 아닌 빗변이 모서리를 대체하고 있는 모양의 창문이 크고 빛이 잘 드는 집에서 더 많은 좋은 일들이 생길 것이라 항상 믿어왔다. 옥상과 마당에선 식물도 기르고 맘 편히 광합성도 하고 싶다. 예산 제한이 없다는 가정 하에 인테리어도 말해보자면 현관 타일은 조금은 화려한 것으로 포인트를 주고, 부엌에는 큰 테이블을 놓아서 친구들을 초대하고 싶다. 장우철과 조지아 오키프의 프린팅을 사고 싶고, 모로칸 러그도 하나 깔고 싶다. 페르시안 디자인도 좋지만 내 마음 속 1순위는 불규칙하고 기하학적인 어린 아이가 그린 것 같은, 소프트 퍼레이드였나? 거기서 수입해오던 그런 무늬가 차지하고 있다. 르코르뷔지에 쇼파도 가지고 싶고 이런저런 빈티지 소품과 가구들도 모으고 싶다. 매거진 렉도 꼭 놓아야지.
아침엔 꼭 커피와 아침밥을 먹어야고, 이런저런 식재료에 관심이 많으므로 큰 냉장고를 가진, 신선한 재료로 가리지 않고 이것 저것 잘 해먹는 멋있는 그릇 콜렉터가 되고 싶다. 계절의 맛을 놓치지 않고 모조리 즐기고 싶다. 서재 창문 밖으로 손을 내밀면 나뭇잎이 만져졌음 한다. 고전적인 교수님의 연구실을 모방하여 우리 엄마가 말 잘 들으면 주기로 약속한 동양화와 서예 작품을 걸고, 돌아가신 할머니가 남기신 도자기도 둘 것이다. 이런저런 소품들과 잘 매치해봐야지. 식기도구는 다양한 텍스쳐가 느껴지는 조용하거나 어글리큐트한 분위기의 세라믹과 투명한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유리를 이리저리 섞어서 사용해야지. 20새기 중반의 식기구들, 그 모양과 그 컬러를 상당히 좋아하므로 이런저런 빈티지 식기류들도 사들일 것이다.
같은 건물에서 사람들을 마주치는 건 싫지만 내가 믿고 좋아하는 사람들, 선을 지킬 줄 아는 사람들에겐 항상 열려있는, 그들이 힘들 때 대접 받는 기분을 느끼게 하고, 나를 아침 저녁으로 포근히 보듬어 주는 집을 상상한다. 아파트촌보단 공원이 가까운 오래된 주택가에서 동네 친구들, 인사성 밝은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 단골 가게의 사장님들과 느슨한 연대감을 즐기고 싶다. 집 뿐만 아니라 지역에 대해 가지는 관심과 애정도 중요하다. 작년에 Atmos매거진에서 '15 minute zone'이라는 것을 소개한 적이 있다. 광진구를 사랑하는 동네생활자로써 이 글을 인스타그램에 정리해서 포스팅까지 했다.
염세주의가 이래서 무섭다. 노력은 안하고 생각만 오지게 많이 하는 염세주의자여, 염세주의와 부정적인 것을 잘 구별하여 현명하게 미래를 계획하거라. 계획대로 되진 않겠지만 최소한 열심히라고 하거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