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시.사 레터 58회 (2022.06.15)

안녕하세요, 글을 쓰고 주간지를 만드는, 편집기자 겸 작가로 일하는 이다혜입니다. 여름의 풍경 속에서 몸처럼 마음도 찜통 속에 들어 있는 듯 숨막히는 기분이 듭니다. 이런 날, 마음에 창을 내는 기분으로 시를 읽습니다. 그 창을 통해 비가 들이칠지, 바람이 불어올지는 읽기 전에는 알 수 없지만요. 먼 미래를 바라보는 일이 불필요한 노이즈처럼 불안을 가중시키는 날에, 지금 선 이 자리에 집중하기 위해 노력하려고 합니다. 당신의 오늘은 어떠한가요.

💚이다혜 기자가 사랑하는 첫번째 시💚


광장과 생각 (주민현, 『킬트, 그리고 퀼트』)

 

생각은 뻗어나가고 어디로나

연결된다는 건 골목의 좋은 점

 

편의점에서 우체국으로

카페에서 게이 바로

드나드는 우리에게

셔츠와 바람은 몹시 헐렁하지

 

모자와 함께 생각이 날아갈 것 같아

그렇지만 나는 생각을 정돈하지 않으려고 해

 

당신의 바람 속에서 나는

좋은 여자, 좋은 아내를 연기하겠지만

 

생각에는 언제나 허점이 있고

칼은 누운 물고기의 숨을 노리지

 

이 골목은 옛날엔 궁터였고

앞으론 넓어져 광장이 될 거래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좋은 것이 좋다고 말하기 위해 싸우지

 

좋은 게 좋은 거야, 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침묵을 선물하기 위해

 

광장 바깥으로 독재자를 위한 피켓을 든

동성애 반대, 낙태 금지, 십자가를 든

사람들이 지나가고

 

우리는 잠깐 수많은 인파 속에서

윙크하며 지나가는 신을 본 것 같아,

 

하늘은 보랏빛으로 물들기 시작하고

그 신이 인간에게 중얼거리는 입 모양을 보았다면

무슨 말을 했을까 각자 상상하지

 

집에 돌아와 물을 튼 뒤에

김이 서리기 시작한다면

발끝부터 조금씩 외로워지겠지만

 

우리는 언제라도 거울 속에서

자신을 꼭 닮은 신을 하나씩 만들 수 있다

오로지 침묵만이 유용한 듯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어딜 가도 지나치게 시끄럽고 어딜 가지 않아도 지나치게 시끄러워서 결국 거울을 보며 대화하는 것과 외출은 무엇이 다른가 한탄합니다. “생각은 뻗어나가고 어디로나/ 연결된다는 건 골목의 좋은 점”이라고 주민현 시인은 표현했지만, 모두가 자신의 신이 되지 않고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을 끌어안고 남의 얼굴을 쳐다봅니다. 생각이 뻗어나가 다른 사람들의 얼굴에, 입모양에 닿고, 결국 그것을 해석하는 사람의 머릿속에서 답은 상상되고 어쩌면 기획될 것입니다.

 

「광장과 생각」을 읽다가 힙한 것과 힙하지 않은 것이 구분되지 않는 서울 강북의 어떤 골목들 풍경을 떠올렸습니다. 어제까지 힙하지 않던 것이 갑자기 힙한 것으로 분류되어 사람들이 쫓겨나고, 거기에 무관심한 사람들만이 골목에 의자를 놓고 앉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십니다. 시위대는 너무 자주 지나다녀서 이제는 무엇에 대한 시위인지를 묻지도 않는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상투적이지만 진심으로 구원을 찾아다닙니다. 그 끝은 다소간의 외로움뿐일 것입니다.

  💛막간 우.시.사. 소식💛
문학동네시인선 171 서효인 시집 『나는 나를 사랑해서 나를 혐오하고』가 출간됐습니다. 대산문학상, 천상병시문학상을 동시 수상한 『여수』 이후 5년 만에 발표된 신작 시집입니다. 특별히 서효인 시인과의 미니 인터뷰를 진행했는데요, 시인의 강렬한 마지막 답변을 먼저 보여드립니다. 인터뷰 전문이 궁금하신 분은 아래 링크를 확인해주세요!

"대체 어쩌다 시를 읽고 계신가요. 어떤 삶을 살아오신 겁니까? 다행입니다. 당신이 있어서. 쓰는 사람만 있다면 얼마나 외롭고 억울했겠어요. 읽는 당신이 있어서 외롭지 않고 억울하지 않습니다."

💚이다혜 기자가 사랑하는 두번째 시💚

항구의 아침 (박서영, 『연인들은 부지런히 서로를 잊으리라』)

 

페루의 민물거북이 휴식을 취할 때 기다렸다는 듯이 나비떼가 날아와 거북의 눈물을 핥아먹는다고 합니다. 우리도 서로의 눈동자를 씻겨준 적이 있지요. 그때 당신이 내 눈의 아름다운 맛을 다 갖고 떠났지요. 애틋함과 행복 같은 것들 말이에요. 한때 수많은 나비들이 날아와 내 눈물의 맛을 보고 함께 울어주기도 했어요. 고맙게도.

이제 내 눈물은 쏘가리, 은어, 빠가사리, 모래무지, 민물고기의 다른 이름. 살을 발라내고 버려두어도 뼈 혼자 헤엄쳐 가지요. 눈물이 헤엄쳐 간 곳. 소금기가 흩날리는 항구의 아침. 내 눈물은 잃어버린 맛을 찾아갔지요. 슬픈 포식자처럼 국물 속의 흐물흐물한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간을 맞추지 않아도 서로에게 잘 맞았던 시간들을 생각합니다. 나비의 겹눈처럼 서로의 무늬를 들여다보며. 나는 점점 아침의 단어들을 잃어가고 있어요. 이 항구엔 한 집 건너 대구탕 집들이 즐비합니다.

“페루의 민물거북이 휴식을 취할 때 기다렸다는 듯이 나비떼가 날아와 거북의 눈물을 핥아먹는다고 합니다.” 이와 비슷한 이유로 시집을 읽는 사람들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시가 눈물을 핥아먹었으면 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혹은, 시의 눈물을 핥고 싶어서 읽기도 하고요. 사랑의 언어가 부족할 때, 슬픔의 언어가 필요할 때, 어쨌거나 단어가 도무지 찾아지지 않을 때 일단 시에 기대고 보는 셈입니다. 그렇게 누군가가 누군가의 눈물을 핥으면 그 눈의 맛은 어디로 갈까요. 이런 질문을 하면 난처한가요. 바닷물은 눈물처럼 짭니다. 눈물인 줄 알고 핥은 것이 눈물이 아니었던 적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슬픈 포식자처럼 국물 속의 흐물흐물한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간을 맞추지 않아도 서로에게 잘 맞았던 시간들을 생각합니다.” 

시를 시집으로 읽는 재미. 「항구의 아침」 맞은편에는 「항구의 밤 풍경」이라는 시가 실려 있습니다. 그 시에는 “울음은 사람을 만드는 성분이다. 비법이라고 할까”라는 문장들이 등장합니다. 그렇게 눈물을 흘리고 눈물을 핥고, 핥은 눈물의 맛을 잊어버리고, 또 새로운 눈물의 맛을 혀에 기억하면서 대구탕 속 흐물흐물한 눈을 범상한 시선으로 흘려보낼 때 우리는 비로소 연속극의 시청자가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단단한 마음. 무심해서 단단한 마음.

📢 다음주 <우리는 시를 사랑해> 시믈리에
다음주 아름다운 시 두 편을 추천해줄 시믈리에는 김하경 사서입니다.

스스로를 '시와 친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풋내기 사서'라 말하는 김하경님이 고른 시 두 편은 무엇일까요? 다음주 수요일에 만나요!
💛우.시.사의 시믈리에가 되어주실 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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