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의 홍수를 예측합니다
VOL. 003  |  2023. 11. 15.

세금 내기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우수 납세자 상을 받은 시민이나 세금을 걷는 세무서 직원도 마찬가지겠죠. 다른 한편으로 무인도에 혼자 살지 않는 이상 세금의 필요성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없을 겁니다. 국방, 치안, 교육, 도로 등을 공짜로 이용할 수 있는 건 우리가 세금을 내기 때문입니다. 납세는 의무입니다. 헌법 38조에도 새겨져 있죠. 그런데 세금은 과연 공평할까요? 

문제를 하나 내보겠습니다. 모든 게 동일한 조건이라면 아래 둘 중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연간 ‘갑’은 1천만 원을, ‘을’은 1억 원을 법니다.

① 갑과 을에게 같은 비율로 소득세를 매긴다.

② 갑보다 을에게 더 높은 비율을 적용해 과세한다.

①번은 흔히 ‘비례세’로 불립니다. 소득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동일한 비율로 과세합니다. ②번은 소득이 높을수록 더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이른바 ‘누진세’입니다.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2번을 채택합니다. 그게 공정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현실에서 누진세 조세시스템이 잘 작동하고 있을까요? “아니요!” 지난달 11일 한겨레가 주최한 아시아미래포럼에서 강연한 가브리엘 쥐크만 미 버클리대 교수의 답입니다. 조세의 공정성은 갈수록 불평등한 세상을 바라보는 가장 중요한 프리즘입니다. 오늘 스피커스는 불평등과 조세 그리고 공정을 소재로 얘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가브리엘 쥐크만 유시(UC)버클리대 교수.

불평등 홍수 관측소장

프랑스 출신인 쥐크만 교수는 아직 30대로 젊습니다. 그는 올해 전미경제학회가 경제적 사고와 지식에 커다란 공헌을 한 40세 미만 미 경제학자에게 수여하는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을 수상했습니다. 노벨상보다 받기 어려운 상이란 말이 따라붙곤 합니다. 경제학에 관심이 있다면 들어봤을 법한 폴 사무엘슨, 밀턴 프리드먼, 제임스 토빈, 케네스 애로우, 로버트 솔로우, 조지프 스티글리츠, 폴 크루그먼, 로렌스 서머스 등이 이 상을 받았습니다. 

쥐크만의 공헌은 뭘까요. 전미경제학회는 그가 ‘정교하게 탈세와 소득 및 부의 불평등을 측정’했다고 수상 이유를 밝혔습니다. 영어로 불평등 관련 연구를 찾다 보면 그의 이름을 자주 접할 수 있습니다. 같은 대학에 있는 이매뉴얼 사에즈 교수와 함께 쓴 ‘그들은 왜 나보다 덜 내는가’(The Triumph of Injustice)가 국내에서도 번역돼 있습니다. 

그는 홍수 관측소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평등 수위를 줄자로 계속 재면서 이대로 가다간 강이 범람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불평등은 기후위기와 함께 미래를 위협합니다. 극단적 가정이지만 한 사람은 호화로운 저택에 사는데 나머지 아흔아홉은 근근이 생계를 꾸려가는 마을을 생각해보세요. 1% 부자만 잘사는 마을을 한 사람 빼곤 누구도 원하지 않을 겁니다. 공동체 지속을 원하면 불평등을 알아야 합니다. 또 해결해야 합니다. 쥐크만 교수의 강연에 몇 가지 답과 힌트가 있습니다. 한번 살펴볼까요.

대공황 직전 수준 소득과 자산의 집중

도대체 불평등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일까요? 사실 불평등이 그리 심각하지 않다면 굳이 시간을 들여 이번 스피커스를 쓸 이유도 없을 겁니다. 쥐크만 교수는 미국에서 불평등이 거의 대공황 직전 수준에 다다랐다고 말합니다. 1929년 터졌던 대공황은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큰 위기였습니다. 위기 직전 미국에서 상위 1% 부자에게 소득과 자산이 크게 집중되었습니다. 왕족과 귀족이 있던 유럽은 더 심했죠.

지금 미국에서 상위 1% 안에 드는 부자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에 이릅니다. 바닥을 찍고 1980년대부터 치솟았습니다. 자산의 집중은 더 심합니다. 부자 1%가 전체 자산의 35%를 쥐고 있습니다. 많은 나라가 비슷한 그래프를 그리고 있습니다. 집중도 수치가 높다는 것도 문제이지만 브레이크 없이 높아지는 추세는 더 큰 문제입니다. 경제가 성장해도 그 열매가 고루 돌아가는 게 아니라 부자에게 더 많이 쏠리면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상위 1%의 소득 집중도가 1980년대 8%대였으나 지금은 12%로 높아졌습니다. 부의 집중은 그 두배가 넘는 26%나 됩니다.

부자가 더 적게 세금 내는 세상

세금을 얼마나 내고 계신가요? 아마 잘 모르실 겁니다. 우리가 내는 세금은 생각보다 그 종류가 많습니다. 다소 복잡하기도 합니다. 연말정산 할 때나 종합소득세 신고할 때 잠깐 관심을 둘 뿐이죠. 

분명한 건 진짜 부자 중의 부자들이 생각보다 많이 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미국을 한번 살펴볼까요. 쥐크만 교수는 미국인들이 내는 소득세, 소비세, 급여세 등 세금을 몽땅 더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계산해봤더니 평균 25%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최고 갑부 400명에 이르면 23%대 아래로 떨어집니다. 부자일수록 더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누진세 체계가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는 겁니다.

미국만의 문제일까요. 미국보다 세 부담이 높은 네덜란드 그보다 더 높은 프랑스에서도 최상위 부자들의 소득 대비 세금 비중이 줄어드는 ‘역진적’ 현상이 공통으로 나타납니다. 부자가 세금을 덜 내면 다른 계층이 부담을 더 져야 합니다. 세금을 낸 뒤에도 부자에게 소득이 더 집중하면서 불평등은 악화할 수밖에 없겠죠.

살펴볼 게 하나 더 있습니다. ‘부자’ 기업과 개인의 조세 회피입니다. 케이맨 제도,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버뮤다, 바하마 등 조세 회피처(Tax Haven)는 세금을 거의 매기지 않습니다. 국가에는 불행이지만, 부자에게는 ‘천국’과도 같은 곳입니다. 이곳에 우리나라 1인당 소득(GDP)의 6배나 되는 10조 달러의 자산이 숨겨져 있습니다. 부자가 세금 없이 재산을 빠르게 불릴 수 있겠죠. 애플과 구글, 메타와 같은 다국적 기업들이 다른 나라에서 번 이익을 조세 회피처에 옮겨 1조 달러 넘게 쌓아두고 있습니다. 그 결과는 많은 나라의 세수 손실로 이어집니다.

뉴욕 증권거래소를 마주보고 있는 두려움 없는 소녀상(The Fearless Girl). 위키미디어 커먼즈

자연법칙이 아닌 정치적 선택

세금을 높이면 더 낮은 곳을 찾아 자본이 쉽게 이동할 수 있는 세계화된 세상에서 어쩔 수 없는 현실일까요? 쥐크만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는 국제 공조와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두 번의 성공 경험이 있습니다. 2017년부터 전 세계적으로 은행 정보를 교류하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이 스위스 은행에 몰래 천억 원을 숨겨놨더라도 은행은 우리나라 국세청에 정보를 제공합니다. 탈세가 줄 수밖에 없습니다. 또 다국적 기업들이 최소 이익의 15%를 법인세로 내야 한다는 최저한세 원칙에 100개 넘는 나라가 2021년에 합의했습니다. 여전히 빈틈이 많지만 법인세 인하란 ‘바닥을 향한 경쟁’에 계단을 하나 놨습니다. 쥐크만은 최저한세를 25%로 올리자고 제안합니다. 그렇게 하면 2500억 달러의 세수가 더 걷힙니다.

또 억만장자들에게 자산의 2%를 세금으로 매겨야 한다고 말합니다. 쉽지 않은 일이겠죠. 그는 이 또한 법인세 최저한세를 합의했듯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이해관계가 저마다 다른 나라들이 기후변화협약을 맺어 위기에 공동 대응하는 모습에서 그는 조세 정의를 위한 국제 협력의 가능성을 엿보고 있습니다.

조세 정의를 넘어 사회 국가를 꿈꾸다

불평등을 가늠하는 지표는 다양합니다. 소득과 자산의 지니계수나 분위별 집중도, 5분위 또는 10분위 배율, 팔마비율, 상대적 빈곤율, 절대적 빈곤율…. 불평등을 이해하기 위해 네이버 검색을 해가며 어려운 용어의 정의나 수치를 다 알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한 나라의 평균 소득 수준을 가늠할 때 쓰이는 1인당 소득(GDP)과 헷갈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불평등은 소득 평균값의 높고 낮음과 무관합니다. 현실성 없지만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A가 0원, B가 100만원의 소득을 올리는 ‘갑’이란 나라의 1인당 소득은 평균 50만원입니다. ‘을’이란 나라에서는 A와 B가 똑같이 40만원씩 벌고 있습니다. 1인당 소득은 평균 40만원입니다. 평균의 함정에 빠져 있기도 하지만 갑이 을보다 잘살지만 훨씬 불평등한 사회입니다. 소득 격차가 을에서는 0원이지만 갑에서는 100만원이나 됩니다. 갑은 한 사람이 소득 전부를 가진 극단적으로 불평등한 나라라고 할 수 있겠죠.

현실에서도 소득 수준이 높은 나라가 낮은 나라보다 더 불평등할 수 있습니다. 미국은 선진국 클럽이라 불리는 오이시디(OECD) 회원국 가운데 소득 수준이 가장 높은 축에 들지만 가장 불평등한 나라 가운데 하나입니다. 불평등은 소득이 얼마나 골고루 분포돼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흔히 못사는 나라는 가난을 벗는 게 정책 목표입니다. 그래서 절대적 빈곤율을 낮추려 합니다. 소득이 어느 수준에 올라서면 상대적 빈곤율에 더 주목합니다. 먹고살 만하더라도 다른 사람과 비교해 자신의 소득이 턱없이 낮으면 사람들은 쉽게 만족하지 못합니다. 옛날에는 다 같이 못살았는데 지금은 잘 사는 사람은 너무 잘 살고 못사는 사람은 너무 못산다는 어르신들의 말을 혹 들어보셨나요? 터무니없지 않습니다. 소득이나 자산의 불평등이 커졌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쥐크만도 지적하듯 실제 우리나라 전체 소득과 자산의 파이에서 상위 1%나 0.1%의 몫이 꾸준히 커지고 있습니다. 그가 불평등을 측정할 때 주로 최상위 계층의 소득과 부의 집중도를 기준으로 합니다. 

우리에게 좀 더 친숙한 지니계수는 거의 언급하지 않습니다. 좀 어려운 얘기지만 0에서 1 사이 값을 지니며 값이 클수록 불평등도가 높은 지니계수는 설문을 바탕으로 추출합니다. 최상위 부자의 소득이 축소되는 단점이 있습니다. 달리 말해 실제보다 불평등도를 낮춰 보여줄 수 있습니다.

불평등과 맞물린 조세회피는 되게 복잡한 문제입니다. 분명한 건 세금을 덜 내려고 숨겨둔 자산과 소득을 얹혀서 계산하면 부자들의 몫이 더 커져 불평등 지표는 더 악화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미국에서 소득 가운데 내야 할 세금을 내지 않는 비율이 최상위 부자들은 보통의 미국인들보다 2배가량 높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숨길 소득과 자산도 적습니다. 

쥐크만 교수는 단순히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자거나 탈세의 구멍을 막자는 데 멈춰 있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현대 조세시스템과 세계화가 지속할 수 없다고 봅니다. 더 나아가 그는 ‘사회 국가’(Social State)를 꿈꿉니다. 그는 ‘그들은 왜 나보다 덜 내는가’에서 “건강, 교육, 노후를 책임지는” 국가를 지향합니다.

쥐크만 교수 발제 후 이어진 토론. 왼쪽부터 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대 경제학 교수, 가브리엘 쥐크만 버클리대 경제학 교수, 윤자영 충남대 경제학 교수, 박복영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 강창광 선임기자.

불평등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토마 피케티의 이름이 먼저 떠오를 겁니다. 그가 쓴 <21세기 자본>은 전 세계에서 주목받았습니다. 파리경제대를 나온 쥐크만은 그의 수제자입니다. 두 사람이 함께한 연구가 많습니다. 피케티가 주축이 돼서 펴내는 ‘세계불평등보고서’에도 두 사람의 이름이 나란히 등장합니다.

그 옆에 따라붙는 또 다른 이름이 있습니다. 바로 이매뉴얼 사에즈입니다. 역시 쥐크만과 함께 많은 연구 결과물을 냈습니다. 두 사람은 버클리대에서 함께 근무하고 있습니다. 사에즈 교수가 앞서 2009년에 클라크 메달을 받았습니다. 피케티를 포함해 프랑스 출신 세 경제학자가 불평등 연구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기에 손색이 없습니다. 

쥐크만 교수가 클라크 메달을 받은 뒤 영국의 경제 전문 ‘이코노미스트’가 지난 5월 ‘논란의 여지가 있는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리스트, 가브리엘 쥐크만’이란 제목의 흥미로운 기사를 썼습니다. 매체는 그가 “더 분열적 인물”이라거나 “경제학의 주류에서 항상 좀 벗어나 있다”고 평가합니다.

권위를 지닌 ‘이코노미스트’의 딴죽과 달리 어쩌면 우리는 주류에서 벗어나 진보적 관점을 지닌 쥐크만이 없었다면 불평등한 세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창을 하나 잃어버렸을지 모릅니다.

📝이번 <스피커스> 어떠셨나요?
불평등에는 소득과 부의 불평등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건강 측면에서도, 교육 측면에서도, 또 안전 측면에서도 불평등이 있습니다. 불평등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어쩌면 해결 방법은 간단할지 모릅니다. 지금껏 해온 행동을 멈추고 정반대로 하면 됩니다.

불평등의 대가를 치루지 않으려면 불평등의 구조를 바꿔야 합니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선순환의 구조를 만드는 것이죠. 저소득층을 위한 안전망을 강화하고, 교육과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등 말입니다. 쥐크만 교수의 이야기를 모아 정리한 이번 <스피커스>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와 우리 사회를 다시 고민하는 시간을 만들었길 바랍니다.

참, 쥐크만 교수의 강연을 놓치신 분들을 위해 영상발제 자료를 준비했습니다. 스피커스를 읽고 내용을 살펴보시면 강연을 이해함에 있어 훨씬 도움이 되실 겁니다😊 그리고 이번 스피커스에 대한 의견도 남겨주세요. 주신 의견 정성껏 읽고 고민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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