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수요일
애쓰지 않는 여행의 마지막 메일링까지 완주했다. 내 자신, 기특하다. 잘했다. 칭찬해! 누군가 내 글과 이야기를 봐준다는 것이 생각보다 더 큰 힘이 되고 숨이 되었구나. 그래. 봐주는 사람이 있어야 그것이 비로소 작품이 될 수 있는거야. 날 더 단단하고 강하게 만들어준 구독자 내 친구 당신들에게 정말 감사하다. 소중해!
7/6 목요일
사람은 사람과 살아야해 그렇게 서로 끌어주며 잡아주며 사랑과 다정 속에서 사는거야 서로가 서로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줘야지.
7/7 금요일
우리가족은 곧 20년 넘게 살아온 집을 떠난다. 나는 여기에 남아있는다. 새로 살 집에 처음 방문했다. 이십여년만에 이사 하는데 기분이 어떨까. 나는 여기에 남아있지만 가장 익숙하고 편안한 우리집이 왠지 낯설게 느껴질 거 같다.
7/8 토요일
얼른 집이 생겼으면 한다. 그리고 비워두고 싶다. 메시멀리스트의 미니멀라이프 시작. 늘 여행하듯 살아야지. 그럼 난 이미 미니멀리스트야!
7/9 일요일
1. 집이 굉장히 중요하다라는 걸 깨달은 순간 집이 사라졌다. 홈리스의 삶 시작. 언제 또 이런 경험을 해보겠어.
2. 오빠의 노견 사랑이가 아프다. 귀가 안들리고 눈이 보이지 않는다. 사람과 닿아있지 않으면 불안에 떨며 붙어있으려 한다. 사랑이를 보니 우리 아가들, 나모, 또또 생각이 난다. 애들의 마지막은 어땠을까, 무슨 생각을 했을까, 혼자 얼마나 무서웠을까, 우리가 얼마나 보고싶었을까. 한번만 더 마지막까지 보고 싶었을텐데. 우리애들은 눈도 보이고 귀도 잘 들렸는데. 볼 수 있었는데도 우리가 없어서 못보고 눈도 못감았네. 그때 애견 cctv가 있었으면, 그때 우리가 끝까지 곁에 있었으면, 어땠을까. 눈을 감을 수 있었을까. 웃어줬을까. 딱 한번만, 딱 한번만, 다시 보고싶다. 내 품에서 계속 만져주면서 눈맞춤해주고 사랑한다고 계속 이름을 불러주고싶다. 마지막까지. 상상으로라도 꿈꿔보고싶어. 나모는 가끔, 진짜 몇년에 한번 꿈에 나와준다. 그럴때마다 헉헉대며 울면서 잠에서 깬다. 꿈이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꿈 속의 나모라도 뚜렷하게 기억하고 싶은데. 기억나지 않는다. 꿈 속에서 만나 사진과 영상을 찍으면, 그러면 내 핸드폰에 남아있으면 좋겠어.
7/11화요일
1. 알렉산더테크닉 당기기, "자아와 경계에 대한 감각이 제대로 확립되지 못하면 공간으로 몸을 뻗고 움직여 나아갈 때 방향의 흔들림, 기반의 불안함, 되돌아 올 집이 없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애쓰지 않는 여행에서 돌아온 지금, 약 두달간의 홈리스의 삶이 시작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되돌아 갈 집이 없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건 내가 나로 존재하고 있고, 흔들리지 않는 우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겠다.
오늘 알렉산더테크닉 수업은 당기기였다.
내가 나로 존재하고 상대는 상대대로 존재한다. 자신에게 집중한다. 그 집중을 미세하게 서서히 상대에게로 옮겨간다. 상대 또한 그 집중을 나에게로 옮겨온다. 상대를 탐색함과 동시에 나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에게 두었던 집중을 비움과 동시에 상대의 집중으로 내가 차오르는 느낌이다. 마치 물이 들어있는 물병을 눕혀 천천히 위아래로 옮기는 것 처럼. 위아래로 흔들어도 물의 양은 달라지지 않고 무게중심만 옮겨지듯 상대와 나의 숨도 그대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 적당한 긴장감과 적당한 안정감을 유지하는 한, 우리의 모양을 요리조리 바꿔대도 기분 좋은 긴장감과 상대의 품 속에서 안전함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쩔땐 오히려 상태를 무너뜨려 가장 순수하게 웃을 수도 있었다.
한사람 한사람이 뼈 한마디 한마디 같다. 그 사이의 소프트스킨이 마치 우리 사이의 공간 같다. 우리는 세포 같다. 세포 하나하나, 그 사이사이의 공간들이 모여 한 사람이 되고 또 우리가 된다. 사람 한명 한명이 살아간다. 그렇게 하나의 마을이 된다. 마을 마을이 모여 지구가 되고 우주가 된다. 우리는 오늘 충분히 우주 같았다. 고요하기도 했다가 에너지로 꽉 차다가 무너지기도 하고 충돌하기도 하고 다시 태어나기도 했다. 그렇게 반짝반짝 빛이 났다.
2. 우주에서도 밀고 당기기가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을까? 우주에서는 밀고 당기기가 필요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냥 하나의 존재들로 그저 둥둥 존재하고 있지 않을까. 그렇게 밀고 당기기에 애쓰지 않고 존재만 해도 하나의 우주가 될 수 있다는 게 신비롭기도 하고 한편으론 부럽기도하다. 피프티 피프티, 50:50으로 모든게 이루어져있고 작용하고있고 우리 관계 또한 그렇다고, 그게 가장 안전하다고 하는데, 가끔은 50:50 말고 그냥 55:45여도 10:90이여도 그냥 우주처럼, 예쁘게 빛나는 우주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3. 밀고 당기기는 밀고, 당기기로 나눠지지 않는다. 밈과 동시에 당겨진다. 밀다, 당기다가 아닌 말그대로 밀당이다. 관계 속에서 밀당을 하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다는 건 그만큼의 라포와 신뢰, 확신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어쩌면, 내가 밀때 상대가 자연스럽게 당겨주고 내가 당길때 상대가 자연스럽게 밀어주는 배려를 계속 해왔던 걸 수도 있겠다. 관계 속에서, 사랑 속에서 내가 너무나도 편안하다면, 그만큼 배려를 받고 있었을 수도 있겠다. 나 또한 그만큼 자연스러운 사랑으로 살펴주고 있는지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다. 하지만 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만큼은 밀고 당기기가 쓸모없었으면 좋겠다.
7/13 목요일 PM9:24 을지로 알렉스룸
<나에게 쓰는 다정한 편지_첫번째>
안녕, 수빈.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좋아보인다는 말을 많이 듣는 거 같아. 근데 그게 정말 그런 기분이라 기꺼이 잘 받아들여져. 그 사실이 너무 좋아. 90일간의 애쓰지 않는 여행, 유럽에서 진정한 비움을 배워서 그런가봐. 여유롭고 자유로워.
어쩌면 지금 집도 없이 홈리스의 삶으로, 어디든 떠날 수 있는 상태라서 그런지도 몰라. 물론, 할 일들도 많지만 오히려 좋아. 언제든, 어디로든, 떠날 준비는 되어있는데 할 일도 있으니까. 엄청나게 넘치지 않아도 좋아. 그냥 마음이 편안해. 그런 상태야.
여행에서 돌아와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5시간, 8시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떠들었어. 그렇게 그간 있던 일들과 변화, 그리고 지금에 대해 나눌 수 있고 나누고 싶은 사람들이 곁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감사해. 그들은 날 만나러 올때면 준비할 때 부터 스님을 만나러 가는 날과도 같은 기분이라며 안정감이 느껴지고 마음이 가벼워진다 말해. 벌써부터 차분해지고 기대된다고 말해. 이야기를 나누고나면 역시나 좋다며 내게 정화시키는 마력이 있다고 말해. 이야기만 나눠도, 그 눈빛으로 바라만봐줘도, 존재 자체가 치유고 힐링이라 말해. 그게 내 타고난 기운이고 재능이고 능력이래.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일 수 있는게 감사해.
그리고 나자신에게도 그런 사람일 수 있어 고마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처럼 가장 너답게, 가장 편안한 표정과 숨과 차림으로, 가장 너다운 너로 존재하자. 그렇게 편안한 숨을 쉬자.
7/15 토요일
1. 나 혼자만의 시간. 거의 몇 년만에 가져본 아무 목적없는 혼자만의 순간들이었다. 영화같았고 꿈 같았어. 신비로운 하루였고 운명으로 가득한 하루였다. 낯선 사람들이 가득한 하루였고 그 마저도 설렘으로 다가온 하루였다. 기분좋은 불편함, 이질감. 설렌다.
2. 용기내서 드디어, 이제야 첫 책<어디로 흘러갈지 모르겠지만, 내가 무슨 색인지는 알고 있어>의 입고문의를 보내기 시작했다. 마음이 동할때, 그때가 진짜니까. 괜찮아.
7/16 일요일
1. 내가 하고 싶은 것들 - 싱잉볼, 요가지도자, 비니요가, 춤, 책, 순수한 예술놀이들
조금씩 숨이 트이는 삶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낀다.
공부하고 싶은 것들을 공부할 수 있는 몸뚱아리와 건강이 조금씩 깨어나고 있다!
할머니마냥 혈액순환과 염증에 매일매일 앉았다 일어나는 것도 전쟁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은 것이 이리도 많다는게 감사하고 스스로 기특하기까지 하다!
혼자 좋아하던걸 더 깊이 있게 공부하고 싶어지니 또 이리저리 눈이 돌아가고 저것도 하고 이것도 하고 설레지만 이 마음 오바하지말고 잠시 멈추고 천천히 하나씩 해나가야지.
급하지 않게 나만의 속도로 느리게, 결국은 완주해야지.
세상 참 빠르게 변화하고 다들 뚝딱뚝딱 잘만 살아가는데 나는 참 느리고 여유롭다.
그래도 그게 나다. 매일 매순간 나 자신이 괜찮은지 살피며 살고싶고 숨도 깊게 쉬고싶고 내 관절과 근육들이 더이상 안아팠으면 하고 하늘을 오랫동안 쳐다볼 시간을 가졌으면 하고 사람멍도 때리면서 마음에 여유를 지켜가며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살고싶다!
용감하게 지켜주며 느리게 걸어가야지.
2. 입고문의에 응해주시는 답장이 오기 시작했다. 야무지게 준비해서 회신하고 예쁘게 안전하게 보내야지.
7/20 목요일 PM9:04 영종
<나에게 쓰는 다정한 편지_두번째>
안녕. 수빈!
요즘은 어때? 여전히 마음은 편안한 것 같아보이지만 벌써부터 조금씩 정신없는 하루하루가 흘러가는 것 같아보여. 해야할 일들이 많다는 걸 알고 있지만 외면하고 싶어 그런걸까? 그치만 그런 일들이 모두 너가 좋아하는 일들, 그리고 널 좋게 생각해주는 사람들이 손 내밀어준 일들이잖아. 혹시 그래서 더 무기력해지는 마음을 자책하고 있어?
계속해서 하고싶은 것들이 생긴다는 것도 복이고, 그걸 해낼 몸뚱이와 의지와 함께 해낼 사람이 있다는 것도 복이고, 서로의 목표를 공유하고 동기부여가 되어주며 결국 성장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복이고, 이유가 어떻든 널 원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복인 거 너무 잘 알겠어서. 그래서 지금 무기력해지고 마음이 지친다는 사실이 속상해? 기껏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 조차 힘든 나약한 마음같아서 속상하지? 속이 많이 상할 거 같아.
근데, 괜찮아!
딱. 나는 늘 말했듯 너가 소화할 수 있는 딱 그 만큼! 늘 너를 제일 먼저 생각하면서 선택하길 바래. 책 쓰는 것도, 사업하는 것도, 정리하는 것도, 더 나은 삶을 위한 공부들도, 그 속에 스쳐지나가는 모든 인간관계도.
음, 수빈아. 넌 어떻게 살고싶어?
타인에게 집요하게 파고들며 질문을 던져주고, '답은 늘 너안에 있어. 같이 찾으면 알 수 있을거야. 같이 찾아보자.' 라고 말하는 너에게 나도 질문을 던져주고 싶어.
지금의 너는, 어떻게 살아가고 싶어? 뭘 하면 숨이 쉬어지고 머리가 맑아지고 오래토록 평온할 거 같아? 뭘 하면 심장이 몽글몽글해질거 같아? 그렇지 않은 순간들도 분명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하면 아침에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힘, 산책하면서 하늘을 올려다볼 조금의 마음에 여유지킬 수 있을 거 같아?
상상해보자. 그리고 그를 향해 같이 가보자. 너 곁에 내가 있어줄게. 모르겠으면 질문도 던져주고, 어지러우면 안아주고, 지치면 옆에 앉아서 곁을 지켜줄게. 그러니까, 버겁지 않을 만큼, 너가 행복한 만큼, 꺄르르꺄르르 그 웃음을 잃지 않을 만큼만 해도 괜찮아. 우선, 같이 걸어보자. 하늘도 보고. 난 알아! 그러다가 기분이가 좋아지면 너는 알아서 날개를 펴고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뭐든 해낼 수 있다는 거!
지금 당장 일어나 같이 걷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