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번 맡으면 평생 기억될 향기.

EDITOR'S LETTER

봄이 되면 제 코가 기억하는 향기가 있습니다. 허리까지 오는 찰랑거리는 긴 머리, 고양이를 닮아 크고 초롱초롱한 눈을 가진 고등학교 친구, 서원이. 서원이에게선 항상 은은한 라벤더 향기가 났어요. 우리는 그걸 ‘서원이 향’이라고 불렀는데, 존재감이 워낙 강해서 스치기만 해도 옆에 있다는 걸 알 정도였죠. 아무튼, 서원이 덕분에 매서운 고3 겨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봄을 만났습니다. 교실 속에서 만개한 라벤더를요.

올해는 벚꽃이 2주나 빨리 폈다죠. 한번 보면 잊히지 않는다는 벚꽃의 분홍빛처럼, 한번 맡으면 오랫동안 기억될 향기를 몸에 입혀보는 건 어떨까요. 오늘 EGOZINE에서는 화학약품 냄새 가득한 인위적인 향수 대신, 바람에 넘실넘실 실려갈 은은한 봄 향수 3가지를 추천해 드립니다. 향을 입힌다는 본연의 기능은 물론, 우수한 지속력으로 나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 역시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향수들 말이죠. 설렘을 안고 봐주시길.

1. MAISON MARGIELA REPLICA

Flying EDP

피터팬, 분홍하늘 그리고 열기구
현실과 동화 속 그 어딘가.

지난 MARINE 향수 콘텐츠에 이어서 또 이렇게 메종 마르지엘라 레플리카(Maison Margiela Replica) 라인을 소개해 드리게 되네요. 마르지엘라의 향수는 향수명에서 조향사가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를 알 수 있으며 패키징에 담겨있는 사진들이 이미지를 아주 잘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죠.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향기를 기억과 연결시켜 이미지와 인상을 즉각적으로 불러일으키고 동시에 집약된 무의식과 개인적인 기억들과 감정을 느끼게 한다’고.

오늘 소개해 드릴 마르지엘라의 향수, ‘플라잉 EDP (Flying EDP)’. 레플리카 중에서도 ‘판타지아(Fantasia)’라인으로 따로 나온 제품인데요. 판타지아 라인은 농도를 오 드 퍼퓸(EDP)으로 높이고, 검은색 보틀에 다른 기존 향수들보다 더 고가에 속합니다. 비싼 편이긴 하나 특유의 몽환적인 향에 인기가 많아서 한국에서는 구하기 어렵죠. 한번 제대로 구하기 위해선 플랫폼 홈페이지에 매번 접속해서 확인해야 할 정도입니다. 에디터 역시 이 플라잉 향수 꼭 소장하고 싶어서, 눈에 불을 켜고 기다리는 중.

플라잉 EDP.

코끝을 찡하게 강타하는 싱그러운 베르가못과 대비되는 부드러운 비누 잔향이 포인트. 향을 사랑하는 이들은 이를 잔잔한 비누 향의 끝판왕이라고 일컫습니다. 이름처럼 열기구를 타고 하늘 위로 오르는 순간을 그렸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보랏빛 구름으로 가득 채워진 몽환적인 하늘을 떠오르게 합니다. 베르가못과 오렌지, 파우더리한 향을 내는 머스크와 모스. 노래로 치면 가수 설의 ‘열기구’와 딱 닮은 향입니다.

2. JOMALONE English Pear & Freesia EDC

햇살이 내리 앉은 피아노 위로
춤을 추는 길고 긴 손가락.

일반 사람들의 1,000배 이상의 뛰어난 후각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 탐지견의 수준과 비슷한 후각을 가진 ‘조 말론(Jo Malone)’ 여사가 창시한 브랜드입니다. 정말이지 이 브랜드의 향수는 맡아보면 꿈결같습니다. 향을 맡자마자 눈앞에 절로 이야기가 펼쳐지거든요.

그러나 신기하게도 조 말론은 연상되는 이미지보단 ‘향’이 먼저라고 보는 브랜드입니다. 많은 향수 브랜드들이 향보다는 이미지를 중시하여 멋진 모델, 풍경 이미지를 연관시키는 것과는 반대의 길을 걸었어요. 향수는 이미지를 소비하는 도구가 아닌, 향 그 자체를 즐기고 좋은 감정을 갖게 하는 데 가치가 있다고 본 거예요.

따라서 조말론의 향수에는 특이점이 있는데요. 향을 만들어내는 원료를 향수명으로 전면 내세웁니다. 가령 ‘다크 앰버 앤 진저 릴리 코롱 인텐스(Dark Amber & Ginger Lily Cologne Intense)’ 향수의 메인 어코드는 이름 그대로 다크앰버와 진저에요. 원료를 그대로 향수명으로 쓰다니, 향수 업계에서는 이례적이라는 평을 들었지만 제품의 원료를 가장 중시하는 조 말론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고.

친오빠가 제 생일이라고 조 말론 향수를 선물했는데요. 그 이름하여 ‘잉글리쉬 페어 앤 프리지아’! 이름부터 몽글몽글 꽃향기가 물씬 느껴집니다. 조향사의 이름은 크리스틴 나이젤(Christine Nagel)이며 미스디올 쉐리, 씨 롤리타 등 세계적인 향수를 제조한 분이죠. 크리스틴 나이젤이 제조한 이 향수는 현재 조말론에서 가장 사랑받는 베스트셀러 향수 중 하나입니다. 굉장히 시원하면서도 부드러움이 공존하는, 도시적이면서 자연적인 향. 부담스럽지 않아 한국에서도 인기가 뜨겁죠.

잉글리쉬 페어 앤 프리지아 EDC.

화이트 프리지아 부케향에 이제 막 익은 배의 신선함을 입히고 호박, 파출리, 우디향으로 은은함을 더했습니다. 새 생명을 피우고, 계절의 시작을 알리는 봄 그 자체를 향으로 탄생시킨 것만 같아요. 봄이지만 마냥 포근하지 않고, 청명한 하늘처럼 시원한 매력이 함께 있어 이중적이고도 중독적입니다. 깊어지는 잔향은 마치 그만한 여린 사연을 가지고 있을 듯. 베스트셀러에는 역시 이유가 있네요.

3. CREED Silver Mountain Water EDP

연 날리는 소년,
바람이 시작된 곳으로 걸어가네.

대중적인 향보다는 자신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니치 향수'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몇년 동안 향수를 꾸준히 쓰는 분들은, 점차 눈이 높아지면 이런 니치 향수 쯤은 건드리게 되어있죠. 1760년부터 시작되어 무려 26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는 니치 향수 브랜드 ‘크리드(CREED)’입니다.

크리드의 창립자는 제임스 헨리 크리스. 그는 영국 런던에 맞춤형 양복점인 '하우스 오브 크리드'사를 설립했습니다. 1781년부터는 영국 킹 조지 3세의 명령으로 향수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하죠. 그리고 1985년에 출시한 '그린 아이리시 트위드’ 향수는 그야말로 대박이 터졌다고 합니다. 나폴레옹 3세와 유지니 황후, 헝가리 왕족, 엘리자베스 여왕을 비롯해 유럽 모든 국가의 왕실로부터 찬사를 받았을 정도니까요.

크리드의 독창적인 향수는 상류층에서만 비밀스럽게 누려오게 됩니다. 유럽의 왕실은 예로부터 왕실 공식 향수를 엄격하게 지정하는데, 이후 크리드가 빅토리아 여왕에 의해 왕실의 공식 향수로 지정됐을 정도예요. 그러나 1854년, 나폴레옹 3세와 유지니 황후에 의해 크리드의 가문 전체는 프랑스로 이주합니다. 그 인연으로 크리드사는 현재까지도 프랑스에 자리를 잡고 있어요.

7세대를 이어온 가문 경영 방식과 높은 산속과 광활한 평야 속 천연 재료를 직접 수집하러 다니는 열정. 선대의 정신 그대로를 이으며 고집스러운 향료 선택과 까다로운 수작업을 거치는 전통적인 제조방식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량생산하지 않고 오직 가문의 업으로써 조향한다는 특별함이 있어요.

영감받는 소재도 언제나 다종다양한데요. 오늘 소개해 드리는 크리드의 ‘실버 마운틴 워터’를 소개해 드리자면, 크리드 6세대인 ‘올리버 크리드’에 의해서 1995년에 스위스 알프스 산맥에서 솟아나는 물에서 영감받아 제작됐다고 합니다. 아로마틱하지만 거친 향기로, 오랫동안 크리드의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은 향수에요.

실버마운틴워터 EDP

첫 향은 코를 탁 치고 들어오는 싸한 향. 마치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처럼 수분감이 있으면서 시원하게 마주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향은 좀 더 따뜻하고 담백하게 변하는데요. 블랙커런트와 그린티의 쌉싸름함과 흙과 나무가 품고 있는 머스크함이 만나 부드러워집니다. 묵직하면서 시크한 존재감을 내는 독특한 잔향이 매우 매력적인 제품. 매니시한 향이라 계절과 성별에 상관없기 사용하기에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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