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자리, 말하는 자리, 우리가 서 있는 자리
내가 서 있는 자리를 가만히 바라본 적이 있으신가요? 아, 이것은 지금 서 있는 장소나 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내가 서 있는 자리란, 내가 누구인지, 사회적 역사적 관계 속에서 나의 자리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내가 서 있는 자리를 알아차린다는 것은 사실 엄청난 일입니다. 나의 위치를 안다는 것은 내가 주변과 맺고 있는 관계에서 ‘주체’로 선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변화가 시작됩니다.
2023년 한 해 동안 여럿이 함께 참전군인을 만나는 길에 나섰습니다. 다양한 그들을 만나면서 너무나 안전한 자리에서, 그리고 무관한 위치에서 청자를 자처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들과의 이야기 속에서 단지 ‘차이’를 발견하고 그것을 옮기는 것이 청자의 역할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말이 되지 못한 이야기들을 어떻게 말의 자리에 초대할 수 있을까. 기대했던 이야기가 아닌 다른 이야기를 만났을 때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전달할까. 고민이 이어졌습니다. 듣는 자리에 서기 위해서는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명확히 인식해야만 했습니다. 참전군인과의 만남은 단지 듣기를 청하는 자리가 아니라 나의 자리를 함께 바라보는 시간이었습니다.
한 해 동안의 활동을 갈무리하며 지난 10월 말 구술활동 공유회를 열었습니다. 우리는 이 자리에서 참전군인 세대와의 소통을 고민하였고, 우리가 선 자리에서 ‘전쟁’과 ‘평화’를 말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생각을 나누었습니다. 함께한 이들은 공유회를 준비하며 또 다른 출발선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어지는 공유회 현장 소식에 생생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올해 활동을 마무리하며 2023년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아이틴즈 부문 우수상 수상작 다큐멘터리 <당신의 해방> 상영회를 엽니다. 다큐멘터리는 감독의 외할아버지 ‘조치원 할아버지가’ ‘참전군인 김시호 씨’의 삶으로 다가온 이야기를 잔잔히 들려주고 있습니다. 영화 상영 소식을 기다리는 분들을 위해 아카이브평화기억이 상영회와 GV를 준비했습니다. 상영회 소식 함께 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