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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끝에서 다시 쓰는 시작
사직서에 도장을 찍던 순간
2024년 8월 23일 금요일 오후 2시, 나는 사직서를 썼다. 대표이사가 퇴사할 때는 사인이 아니라 개인인감을 찍어야 하고, 개인인감증명서까지 제출해야 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한 장짜리 사직서에 적힌 내 이름 옆에 도장을 꾹 눌러 찍으며 만감이 교차했다. 10년 동안 회사와 나를 한 몸으로 묶어두었던 무거운 쇠사슬이 뚝 끊어지는 순간, 그토록 바라던 자유를 얻어 한없이 기쁘면서도 동시에 진한 슬픔을 느꼈다. 내가 만든 회사를 인수한 대표님이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다고 말씀하실 때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지만 다행히 참아냈다. 온몸으로 부딪쳐 하나씩 벽돌을 쌓듯 만들어온 회사에서 나는 그렇게 퇴사했다.
나는 소위 ‘유니콘 스타트업’을 만든 것도 아니고, 상장이나 매각을 통해 성공적인 ‘엑시트’를 달성한 것도 아니다. 매해 이익을 내고 법인세도 내면서 차곡차곡 성장하는 알짜배기 회사를 만들지도 못했다. 내 손으로 시작한 회사를 내 손으로 끝을 낸 것이 전부다. 그러므로 이 책은 성공담이 아니다. 그렇다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콘텐츠가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나 자신이 그 증거다. 한글을 깨친 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접해온 모든 콘텐츠가 크든 작든 내게 영향을 미쳤다. 책과 만화, 드라마와 영화, 다큐멘터리와 애니메이션, 야구를 비롯한 스포츠 경기들이 나에게는 학교 그 자체였다. 평생 읽고 보고 들었던 콘텐츠들로 내가 만들어졌다.
그래서 글을 써보기로 했다. 퇴사 후 안식년을 보낼 계획이었으나 어떻게 ‘안식’을 해야 할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어 몇 달간 방황이 이어졌다. ‘만약 그때 그랬더라면…’ ‘혹시 이게 문제였을까…’ ‘도대체 왜 그랬을까…’와 같은 수많은 질문과 가정이 머릿속을 도배했다. 하지만 이제는 미래로 나아가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냥 눈감고 묻어둘 수는 없었다.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생각과 감정들을 털어내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글을 쓰는 것이었다. 내가 봐온 콘텐츠의 창작자들이 그러했듯이.
두 달 동안 날 것으로 글을 썼다. A4 용지 150장 분량을 채우고 나니, 놀랍게도 치유의 효과가 있었다. 마치 컴퓨터의 모든 데이터를 클라우드로 옮겨놓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머리를 비우자 몸도 가벼워졌다.
앞으로의 삶을 위해서 몇몇 분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조언을 구하기에 앞서 내가 쓴 글을 보여드렸다. 마치 수술대 위에 올라간 환자가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를 완전히 드러내야만 얻을 수 있는 조언의 질도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옳은 판단이었다.
조언을 구한 분 중에는 크래프톤 김강석 전 대표님이 있었다. 《크래프톤 웨이》 콘텐츠를 만드는 작업 덕분에 연결된 인연이었다. 대표님은 상세하고 귀중한 조언과 더불어 말미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함께 일한 동료들, 투자자들, 그 외 알게 모르게 많은 사회적 자산이 나의 경험과 학습에 쓰였다는 사실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 글을 다듬어서 책으로 출간하는 것이, 내가 10년 동안 받아온 것에 대한 빚을 갚는 의미가 될 것이라고 격려해주셨다. 어쩌면 내가 배운 것을 다른 이들에게 전할 수(pay it forward)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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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음에는 아래 3개 꼭지가 더 이어집니다.
- 기록을 남기는 이유
- 비슷한 길을 걷는 이들에게
- 읽기 전에 알아두면 좋을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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