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담,하다 Biz]

#142 '박수 칠 때 떠날 수 있도록' – 경영진 퇴직 지원 전략 ① 커뮤니케이션 편

“저도 다른 분들처럼 12월 초에 퇴직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다녔던 회사는 CEO가 직접 퇴직 통보를 하는데 오전에 전화를 받으면 퇴직, 오후에 전화를 받으면 승진입니다. 모두 오후에 전화 받기를 바라죠. 그런데 CEO가 같이 퇴사를 하게 되면서 저에게 퇴직 통보를 해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HR담당 매니저를 화장실 가는 길에 우연히 만났는데, 차 한잔 하자 하더니 퇴직하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퇴직 과정에서 10년 간 이 회사에 몸담은 시간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왜 여기가 마지막 회사라고 생각했지? 왜 정년까지 무난하게 잘 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그 안에서 미래를 구상했더라면 퇴직을 한 후에도 더 빨리 적응했을 것이고, 어쩌면 그때 퇴직하지 않고 그때보다 더 나은 포지션을 유지할 수도 있었을 것이란 생각도 하게 되더군요.” – S그룹 前 부사장 L님

 

“퇴직 통보를 받은 날 곧장 속초 바다에 갔습니다. 바다를 내려다보는데 눈 아래 바다가 새카만 거예요. 내가 뛰어내려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무섭고 겁이 났죠. 그런데 제가 얼마 전에 다시 그 바닷가에 갔어요. 같은 위치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는데 정말 넓고 푸르고 시원해요. 그제서야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다는 그대로였는데 내 마음이 달라졌구나.’ (......) 정말 힘이 들 때는 힘든 줄을 모릅니다. 괜찮지가 않은데 괜찮은 줄 알고 지냅니다. 그게 한참이 흘러서야, ‘내가 그때 힘들었구나......’ 그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서야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L그룹 前 영업대표 K님

 

퇴직을 앞둔 당사자의 마음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매년 이맘때는 의사결정자들과 HR 리더들에게도 힘든 시기일 것입니다. 주요 기업들의 내년도 승진 대상자가 윤곽을 드러낸다는 소식이 언론에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이 소식의 이면에는 적어도 승진자 숫자만큼의 경영진들이 오래 몸담은 회사와 작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퇴직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시기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우리나라 기업들의 퇴직 커뮤니케이션은 퇴직자의 퇴직 절차에 포커스를 맞추어 왔습니다. 기업들마다 사정이 조금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비슷한 시기에, 당사자는 예상하지 못한 아주 갑작스러운 이벤트로 서둘러 마무리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 시기마다 떠오르는 인물이 2018년 골드만삭스에서 퇴임한 전 CEO 로이드 블랭크페인(Lloyd Blankfein)입니다. 그가 퇴직 전 직원들에게 보낸 메일이 한때 회자된 적이 있었습니다. 36년 근속 기간과 12년 동안 CEO로서 재직한 시간에 대한 진솔한 심경이 잘 전해져서 오히려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 나는 이 시간이 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 닥치니 많은 생각과 감정이 떠오릅니다. 떠나는 것을 상상하는 일은 언제나 힘들었습니다. 힘든 때가 오면 떠날 수 없고, 좋은 시절에는 떠나고 싶지 않습니다. 오늘 저는 골드만삭스를 떠나고 싶지 않지만, 지금이 적절한 시기인 것 같습니다. (......) 이제 내 역할에서 물러나고자 합니다. 혹여 사람들이 내게 가장 그리운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제 답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바로 당신들입니다.”

-골드만삭스 전 CEO 로이드 블랭크페인 (출처: New York Times)-

 

이 지극히 자연스럽고 감동스럽기까지 한 이임의 리추얼(ritual)이 과연 퇴직 당사자만의 의사결정일까요? 그의 퇴직 메일을 읽으면서 화담,하다가 주목한 몇 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그는 스스로 퇴직의 시점과 소회를 밝혔습니다.

둘째, 후임자가 이어갈 모든 권한을 지지하며 구성원들의 지원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셋째, 조직 수장의 새로운 역할과 소명을 조직 구성원 모두에게 투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한 명의 경영진이 일선에서 물러나 후임에게 권한을 이양하는 이 모든 과정은 결코 당사자 혼자의 결정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떠나는 사람에 대한 존경과 예의, 후임자에 대한 존중과 신뢰. 이 얼마나 멋진 콜래보이션인가요?

 

퇴직 커뮤니케이션도 전략입니다. 매년 일어나는 최고경영진의 퇴직 의사결정은 퇴직 당사자는 물론, 후임자를 비롯한 모든 구성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칩니다. 경영진의 퇴직은 전략 실행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구성원들은 경영진의 퇴직 과정을 바라보며 ‘회사에서의 내 미래’를 상상합니다.

 

‘박수 칠 때 떠날 수 있도록......’

모두를 위한 마지막 콜래보레이션을 기대합니다.

화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