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5_새어 나가는 우주와 새어 들어오는 우주. 한아임 to 오막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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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막아,
물질세계에 존재하는 인간이란, 서로 반대되는 것들을 통해서만 무언가를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뜨거운 게 있어야 차가운 걸 알고, 차가운 게 있어야 뜨거운 걸 안다는 뜻이다. 즉, 어린 오막이 미국에서의 1년을 좀 더 다양하게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자각이 있기에, 지금의 오막은 다른 무언가를 행할 때 ‘경험한다’에 대한 자각이 더 격하게 올 것이라고 생각된다.
(서로 반대되는 무언가를 통해 느끼는 데에는 선악이나 좋고 나쁨 같은 관념이 전혀 들어갈 필요가 없다는 점을 알아주길 바란다. 뜨거운 게 차가운 것보다 더 선한 게 아니듯, 경험을 많이 하는 게 경험을 안 하는 것보다 더 선한 건 전혀 아니다. 그저, 이쪽과 저쪽이라는 비교 대상이 있기에 차이라는 걸 인지할 수 있다는 것뿐.
또한, 무언가를 느낄 때 ‘나’ 외 타인과의 비교는 전혀 필요도 없고 엄밀히는 가능하지도 않다는 점 역시 중요하다.
나는 내가 보는 파랑이 당신이 보는 파랑과 같은지 알지 못한다. 당신은 당신이 보는 파랑이 내가 보는 파랑과 같은지 알지 못한다.)
30대가 되어서 하이틴을 찾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하이틴이 아니어 봐야 하이틴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노스탤지아가 그래서 통하는 거 아니겠어? ‘지금 여기’가 아닌 것이라서 그것이 더 선명해 보인다. |
그런 의미에서, 1년이 되었으면 의무적으로 들어야 하는 노래부터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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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비디오가 고전적인 것이, 좋구나. 그런데, 제목은 “벌써 1년”이지만 저 곡이 나온 건 2001년이라니. 맙소사… 2002년 월드컵 전임. 지금이 2023년인데… 벌써 22년은 어떻게 하면 좋나여? 예? 선생님… 벌써 22년은 어떡해여? 그대를 안 지 20년쯤 되었다는 뜻이다. 좀 소름 돋는다. 원래도 알고는 있었지, 내가 그대를 알았던 시간이 그대를 몰랐던 시간보다 더 길다는 걸. 그런데 전자가 후자보다 점점점점점점 더 길어질 거라는 게 좀 소름 돋지 않냐!!! 맙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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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멀티버스 얘기를 하니까 나는 너무 신난다. 후. 요즘 한아임은 기승전 명상이기 때문이다. 그냥 내 인생 세계관 전체가 송두리째 바뀌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의 세계관이 예전의 세계관보다 훨씬 마음에 든다. 왜냐하면, 지금의 세계관에서는 나는 절대 피해자이기만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내가 가해자였다는 점을 어마무시하게 알아차리는 중이다. 가장 간단한 예로, 나한테 아토피가 있지 않니? 그것이 참 흥미로운 병세라는 점이 최근에 (마음의) 눈에 띄었다. 아토피란 다른 병에 비해 겉으로 드러난다. 장트러블이라든지 하는 것보다 말이지. 게다가 아토피는 내가 나를 계속 괴롭히는 병이다. 나는 내가 그만 아프고 싶다고 말하지만 (그리고 그것은 정말이지 사실이지만), 동시에 내가 나를 긁는다. 나는 아토피 자체가 부끄럽진 않지만 (정말 너무 심할 때도 있었어서, 그렇게 생활이 불가할 정도가 되면, 나로서는 부끄럽지가 않았음.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겠는데, 내 경우에는 대체적으로 아픈 게 부끄럽진 않음.) 내가 내 마음대로 긁음을 그만둘 수 없다는 점에 대해서는 수치스러웠다. 그런데 그걸 최근까지 몰랐어!
최근에야, 이 수치가 ‘나를 가만히 두지 못하는 가해자인 나’와 너무나 일맥상통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나는 가려움당하는 피해자이기만 한 줄 알았는데, 그러한 나를 가만히 두지 않는 가해자이기도 했다. 이게 되게 당연하게 들리는데, 머리로 이해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이해를 겪으면 몸에 반응이 온다. 이 경우에는 소름/오한 비슷한 게 왔다. 명상하면서 나 자신에게 사과를 했다. 그랬더니 가려움이 내려가더라. 또한, 이것은 내 삶의 전반에 비유할 수 있다. 바로 이 '가해자인 나' 말이다. 장기적으로 이러한 명상과 자각이 어떤 효과를 가져올지는 두고 볼 일이다. 22년 후에는 어떤가 보자꾸나. 그런데 아무튼, 아토피가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병원에 가봤자 스테로이드 연고만 주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나는 심할 때는 온몸이 다 짓물렀었고, 또 어떤 때는 너무 멀쩡해서 기가 차기도 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생활 패턴(수면 일정, 술, 커피, 운동 등)과 아토피 양상은 랜덤하게 어긋나는 듯했다. 내면의 나, 즉, ‘내가 보는 나’의 상태는 앞으로 아토피 양상과 얼마나 싱크가 맞을까?
나의 추측으로는, 매우 맞을 것이다. ‘모든 것이 나’라는 것이 내 업데이트된 세계관이기 때문이다. 말했듯이, 내가 피해자이기만 할 수가 절대 없는 세계관이다. 모든 게 나인데 어떻게 내가 피해자이기만 할 수 있어, 가해자이기도 하지.
그런데, 나는 이걸 평생 몰랐을 수도 있었고, 훨씬 예전에 깨달았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멀티버스가 흥미로운 것이다.
과거와 미래는 허상이고, 영원한 지금 여기만이 존재하되, 그조차도 미래에는 과거가 될 것이고 과거에는 미래였으니, 엄밀히 말하면 허상이다. ‘진짜’로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나’라고 불리는 것, 이 모든 것을 알아차리는 존재다.
그것이 현재 한아임의 세계관이다. 오막은 아임드리밍 팟캐스트를 들으니까, 더 자세한 건 앞으로 지겹도록 알게 될 것이다만… 이러한 세계관과 내가 예전부터 사주나 타로 등 점괘에 갖고 있던 관심 역시 통한다. 예전부터 나는 그런 점을 ‘믿는’ 게 아니었다. 점 보는 사람이 이런저런 말을 한다고 그것에 따라 내 생활을 바꾸거나 한 적은 없다. 좋은 말을 하면 기분이 좋긴 하지만, 안 좋은 말 들으면 그냥 쌩무시 ㅎㅎㅎ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미를 가졌던 이유는, 일단 점이란 건 점 보는 사람에 대해 무언가를 말해준다는 점, 그리고 그것을 듣는 나의 상태에 따라 반응이 참 달라진다는 점이 흥미로워서였다.
그리고 지금의 세계관에서, 점이란 건 현재 내 내면을 반영한다. 문자 그대로. 그래서 재밌다.
비슷한 맥락에서, 글을 쓰는 것도 그렇다. (아, 정말이지, 예전에는 조각조각 존재했던 세계관이 요즘에는 다 합체된 느낌이다.) 알다시피 나는 글을 쓰면서 계획을 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계획하고 수정을 많이 하면 더 글이 좋아지는 모양인데, 단언컨대 내 경우 그 반대다.
싸이클은 한다만 (쭉 쓰다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또 싸이클, 싸이클 반복. 나는 이것을 ‘박음질 기법’이라고 명명했다.), 그것은 '틀린 것을 고치는' 게 아니다. 이야기의 끝이 어떻게 날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걸 알면 뭣 하러 이야기를 쓰나 싶을 정도인데, 아무튼 이러한 나이기에 예전부터 어렴풋이 생각했던 게, 이것은 마치 이야기가 나한테 ‘쏟아지는’ 느낌이다. 하늘에서 별이—사실은 돌멩이인 별이—쏟아지기에, 나는 그걸 빨리 바구니에 주워 담아서, 하늘에서 본 별자리 모양 그대로 땅에 다시 늘어놓아야 한다. 그러한 과정에 ‘나’란 사실 없다. 에고적 ‘나’는 없다. 내가 없을수록 좋다. 마치 밤에 꿈꿀 때 에고적 ‘나’가 끼어들면 심히 방해되는 것과 같다. (자각몽이 아니라면...) 내가 끼어들지 않을 때 나의 머리카락은 저절로 자라고, 손톱도 저절로 자라고, 알아서 몸이 굴러간다. 그거랑 똑같다. 그런데 동시에, 이것은 마치 내 내장 어딘가에 미세한 구멍이 뚫려 있어서, 그 구멍이 거대한 우주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즉, 내부와 외부가 같다. 가장 표면상의 물질세계적 비유로는, 클라인 병이 있다. 3D판 뫼비우스의 띠라고 생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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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무튼, 명상을 하는데, 이 내부 = 외부라는 느낌이 레알인 것이었다…! 나는 내 방에 있다. 방은 건물에 있다. 건물은 동네에 있다. 동네는 국가에 있다. 국가는 지구에 있다. 지구는 우주에 있다. 우주는 내 안에.
그런데 그 우주 안에 내가 있네?
아, 내가 요즘 너무 좋아하는 감각이다, 이 감각이.
아무튼 그런데 이건 고막사람 편지고, 내가 이 얘기를 왜 하느냐 하면. 그리고 점 얘기를 왜 했느냐 하면. 그리고 그게 멀티버스랑 무슨 관련이 있느냐 하면.
이러한 내부가 외부인 ‘나’이면서도 ‘나’가 아닌 내가 글을 쓸 때, 그 ‘나 아닌 나’의 성질이 너무 드러나는 경험이 있었으니, 랜덤 단어로 글쓰기를 할 때였다. 2021년에 한창 모던 그로테스크 타임스가 인스타 활동을 할 때, 심지어 한아임 인스타 계정이 존재하던 시절에, 짧은 글을 써보고 싶어서 시작했던 글쓰기였다. ‘골프, 가죽, 왕’ 같은 세 단어를 랜덤하게 가져다가 그걸로 글을 쓰는 거였다. 그런데 이게 정말, 마치 점괘 같은 거다. 그러니까, ‘내일 아침 차에 치일 위험이 있으니 신변을 조심해라’ 같은 표면적인 거 말고, ‘골프, 가죽, 왕’이라는 세 단어로 쓸 수 있는 수천만 x 수천만 개의 멀티버스적 이야기 중, 하필이면 나는 단 하나의 ‘골프, 가죽, 왕’ 이야기를 썼다. (고막사람 친구들에게: 그렇게 모인 “아무 말 기기괴괴” 콜렉션은 여기에.) 이런 방식으로 쓴 이야기들은 나한테서 나왔지만 내가 의도해서 쓴 게 아니고, 외부에서 받아적은 것 같되 내부에서 왔으며, 내 내장에는 어차피 미세한 구멍이 있어서 그걸 통해 나는 우주로 새어 나가고 우주는 나에게로 새어 들어온다.
모든 인간에게 픽션 글쓰기를 추천하는 이유다. 픽션을 자유로이 쓰면 반드시 나올 줄 몰랐던 게 나온다. 거기에는 선악도, 좋고 나쁨도 없다. 누가 선악이나 좋고 나쁨이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마치 차고 뜨거움에 선악과 좋고 나쁨이 있다는 것과 같다. 부질없다는 얘기다. 경험을 많이 한다 vs. 경험을 적게 한다 사이에는 마치 엄연한 위계가 있는 것 같지만, 거기에조차 절대적으로 적용되는 선호는 없다. (100년 전 언젠가에는, 나고 자란 곳에서 얌전히 시키는 대로 살다 가는 게 ‘좋은 것’이지 않았겠니? 신분 제도가 있었던 시대에는 어땠을지, 말할 것도 없다.)
아무튼 그런데 또다시, 이것은 고막사람 편지잖아?
“아무 말 기기괴괴” 시리즈를 쓰다가 너무 길어진 얘기 중에 “ 수박연가”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건 따로 분리해서 출판했는데, 이거야말로 정말 서프라이즈가 따로 없었다. |
🏳 🍉 ☠️ 등을 5도만 구부려도 죽는 죄수의 나라에서 펼쳐지는 기상천외한 수박 살리기 스펙터클. 나라 자체가 형벌 국가인 곳이 있다. 이곳의 모든 죄수들은 귀 뒤에 박힌 칩 때문에 조금도 등을 구부릴 수 없다. 일명 ‘바른 자세 고문’이다.
범죄자가 아닌 일반인들로 미어터지는 주변 국가들은 죄수들의 이러한 고문 생활을 리얼리티 쇼로 방송에 내보내며 사회 안전을 유지한다. 폭동을 억누르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여자가 신참으로 죄수의 나라에 입장하려던 와중에 입구에서 수박씨를 발견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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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시작하는 이야기인데, 어쩌다 보니 사랑 이야기가 되었다. 한아임 머릿속에 뭐가 들었는지는 한아임이 ‘나’라고 여기는 것의 일부인 에고는 전혀 모른다. 에고는 지금껏 안다고 생각했지만 별로 하나도 아는 게 없음 ㅎㅎㅎㅎ 아무튼 게다가 나는 이야기마다 플레이리스트를 만든단 말이지. ( “수박연가”의 전체 스포티파이 플레이리스트는 여기에.) 그걸 만들 때도, ‘이러저러한 분위기를 만들어 보자’고 생각했는데 너무 달달해져 버렸어. 어떤 플레이리스트는 다른 것보다 격하게 마음에 드는데, 이 경우가 그런 경우다. 그냥 달달해서. 하. 수박이 너무 달아서, 랜덤 단어 3개는 “수박, 자세, 나라”였는데, 자세랑 나라는 제목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그 대신, “수박연가”라는 달달함만이 남았다.
이렇게나 길게 서론을 깔고서 할 얘기는 뭐냐면, 오막이 지난주에 얘기한 하이틴 감성과 잘 통하는 곡도 이 플레이리스트를 만들면서 발견했다. |
Sophiya Sweet - Watermelon Days |
Highlnd - Magic (ft. Akacia) |
가사의 이 부분이 너무 아름다워서:
Everything I thought I knew Died when you walked in the room Bending spoons, chairs in the air I don't even care
'Cause I'm in color Color for the first time And I can see you I see you comin' to life I must have lost my senses Believed in coincidences Than you blink Everything has changed Everything has changed
색을 띠게 되었다니… 처음으로 색을 띠게 되었다니. 하. 이번에는 또 예전에 인스타 활동하던 때에 썼던 시가 떠오른다. 오늘은 1주년 기념으로 좀 아련아련한 점, 고막사람들이 양해해주길 바란다. (게다가 여러분, 어차피 ‘나’ 아닌 다른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해. 모든 게 ‘나’니까. ‘나’ 외의 다른 것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결국 내가 알아챌 수 있는 건 내 안에 있는 것밖엔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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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에 가까운 무채색>
처음에는 노랑도 있고 파랑도 있었다. 그 사이 어딘가에 빨강도 있고 초록도 있었다.
그에 따른 소리도 있었다. 진짜였든 아니었든 해는 쨍—했고 하늘은 빤—했고 사과는 앙—했고 풀은 휴—했다.
따뜻해서 포근해서 새콤해서 촉촉해서 좋았던 적도 있었다. 차가워도 딱딱해도 텁텁해도 건조해도 괜찮댔던 적도 있었다.
근데 이제 다 지나가는 거지. 다 지나간 거지.
남은 잔여물은 지나간 그것들에 대한 기억이다. 노랬었던 파랬었던 빨갰었던 초랬었던 쨍했던 빤했던 앙했던 휴했던 따뜻했던 포근했던 새콤했던 촉촉했던 차가웠던 딱딱했던 텁텁했던 건조했던
그것들이 아니라 그 단어들만 남아서 그걸 다시 떠올리고 또 복사해서
노랬지. 파랬지. 빨갰지. 초랬지. 쨍했지. 빤했지. 앙했지. 휴했지. 따뜻. 포근. 새콤. 촉촉. 차갑. 딱딱. 텁텁. 건조.
노랑. 파랑. 빨강. 초록. 아, 왜 초록만 라임이 안 사나.
쨍. 빤. 앙. 휴.
계속, 그때는 그랬던 따뜻함. 그때는 그랬던 포근함.
색은 다 빠지고, 조용히 말 없어져서 촉감도 냄새도 맛도 사라져서 그저 텅 빈 기억의 틀만 남아 회색이 되고 더 희미해져서 흰색이 되지만.
다시 한번 떠올리면 마치 정말 그랬던 것처럼 쨍하게 새콤하고 빤하게 촉촉한 걸. 앙하게 따뜻하고 휴하게 포근해.
정말이야. 그 일은 진짜로 있었어. 내가 이렇게 기억해. 몇 번이고 또 다시 복사본을 복사해서 더 흔적이 남지 않을 때까지 기억해 다시 기억해. |
시도 모아서 내야 하는데…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보니 좀 시간이 걸리는 중이다. 이미 만들어 둔 것을 다시 듣지 않는다는 그대의 심리에 나도 좀 동조한다. 그런데 아무 생각 안 하고 있다가, 갑자기 이렇게, 노래 가사를 통해서 예전에 썼던 게 생각나곤 하기도 하지. 그대도 예전에 만들었던 것이 언젠가 갑자기 또 떠오르지 않을까?
이를테면 나의 마음은 이런 방향으로 튀어간단 말이지: 색깔 얘기를 하다 보니… |
이 노래는 예전에 발견한 건데, 그때 아마 고막사람이 이미 존재했을 거야. 그때 생각했지. ‘고막사람에서 내가 오렌지 담당인데…!’ 🍊 그러하다. 노래 제목이 오렌지고, 나는 오렌지고, 오렌지인 지 1년이 되었고, 그렇게 어떻게든 나는 이 편지의 원을 마무리했고, 이 중 계획된 건 없었고, ‘나’라고 여기던 걸리적거리는 것이 빠지면 실제 ‘나’인 우주는 알아서 돌아간다.
1년간 함께해준 오막에게 고맙다. 22년 후에는 무슨 얘기를 하고 있을지 궁금하구나. 참고로 나는 22세기를 보고 죽을 계획이다. 굳이 지금 이 아바타에서 빨리 로그아웃하고 싶은 마음이 없음… 심지어 지금 이 세계관 때문에 더 오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 살려고 발버둥치진 않겠다만, 오래 살면서 클리어할 것들 클리어하면 재밌는 게임이 되겠다 생각한다.
그러하다. 오막은 오래 살고 싶은지? 그대의 세계관에 오래 사는 게 거추장스럽지 않다면, 오래 살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가사 없는, 쿵짜쿵짜 곡을 하나 남긴다: |
아무 데에도 아무 때에도 있었던 적 없는 세상, 그리고 언제나 어디에나 존재하는 세상 사이의 해석자다. 원래도 괴란하고 괴이하고 괴상하며 해석함 직하다고 여기는 것도 여러모로 괴하다. 이런 성향은 번역으로 나타날 때도 있고, 오리지널 스토리텔링으로 나타날 때도 있다. 이러나저러나 결과적으로는 어떤 형태로든 이야기를 하고 있다. 뭐 하고 사나, 뭘 쓰고 뭘 번역했나 궁금하면 여기로. https://hanaim.imaginariumkim.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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