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도시농업시민협의회 웹진

AI가 아무리 시대적인 흐름이라 하더라도 몰려오는 폭우와 갑자기 덮치는 추위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예측할 뿐이죠. 결국 텃밭에서 농부들은 몸으로 얻는 경험을 통해 배우고 때론 실패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죠. 이런 질문을 계속 해봤으면 합니다. 다양한 이야기가 계속 나오길 기대합니다.


인천에서는 9월 베를린과 오슬로 탐방을 다녀온 탐방단이 보고회를 열었습니다. 참석 못한 분들을 위해 현장영상을 공유했습니다. 인터넷과 AI로 얻을 수 없는 눈으로 보고, 사람들과 이야기한 내용을 텃밭유랑기 스럽게 나누었습니다.


따뜻한 날씨가 지속되었지만 가을은 가을인가 봅니다. 갑자기 찾아온 추위에 건강 잃지 않길 바랍니다.


 전문가 컬럼 🖋️
AI 시대, 텃밭의 가치는 어디에서 오는가

김충기 (전국도시농업시민협의회 대표)

 

심포지엄에서 돌아와서

어제(10월 23일) 한국도시농업연구회 추계심포지엄에 다녀왔다. 올해 심포지엄은 [AI 시대를 맞이한 도시농업 체험 교육 발전방향]을 주제로 다양한 발제가 이루어졌고, 연구자와 현장 활동가들이 도시농업의 새로운 역할을 함께 짚어보는 자리였다. 그중 한 세션은 도시형 스마트팜과 AI를 활용한 체험교육 사례를 다뤘고, 나는 그 세션의 토론을 맡았다.

 

토론을 준비하며 꽤 오래 자료를 찾고 생각을 다듬었다. 발표 하나에 대한 의견을 넘어, AI 시대에 도시농업이 어디에 서야 하는지를 스스로 묻게 됐기 때문이다. 토론문준비로 정리된 내용을 다시 소개하려고 한다.

 

도시농업은 지금의 AI논쟁에 대해 어떤 입장인가?

요즘 AI만큼 자주 들리는 단어도 없다. 정부는 ‘AI 3대 강국'을 국가 목표로 내걸었다. 올해 AI 투자 예산을 9조 9천억 원으로 늘렸고, 2030년까지 첨단 GPU 26만 장을 확보할 기반도 마련하고 있다. 이른바 ‘AI 고속도로'를 깔고 국가대표 AI 모델을 키우겠다는 대형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기대만큼 우려도 크다. 올해 3월 1일부터 학교 수업 중 휴대전화 등 스마트기기 사용이 원칙적으로 금지됐다. 유네스코 집계로는 114개 교육체계, 곧 전 세계 국가의 58%가 학교 휴대전화 사용을 국가 차원에서 금지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AI로 미래를 열자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아이들의 손에서 기기를 내려놓게 하고 있다. 기대와 우려가 함께 커지는, 묘한 시대다.

 

도시농업은 이 흐름에 대해 제대로 입장을 정리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스마트팜이나 AI 체험교육 같은 사업이 하나둘 들어오는 동안, 그것이 도시농업에 무엇을 더하고 무엇을 바꾸는지 함께 따져볼 기회는 많지 않았다. 나도 올해 들어 AI 유료 구독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업무에 사용하고 있고, 자료 조사와 문서 작성, 회의 정리까지 업무에 큰 도움을 받고 있다. 그래서 AI를 무조건 경계하자고 말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매일 쓰는 사람으로서 더 분명하게 보이는 것이 있다. AI가 대신해줄 수 있는 일과 결코 대신할 수 없는 일 사이의 경계이다. 부족하지만 도시농업의 자리에서 그 경계를 정리해보았다.

노래 가사 속에 숨은 향신료 — 꿀풀과의 정체


사이먼 앤 가펑클이 부른 유명한 노래 '스카보로 페어(Scarborough Fair)'가 있지요. 가사 중에 "파슬리, 세이지, 로즈마리 앤 타임(Parsley, Sage, Rosemary and Thyme)"이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세이지와 로즈마리, 타임(백리향)이 모두 꿀풀과의 향신료인 걸 보면 중세 영국의 스카보로 시장에도 이들이 자리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싶습니다.

 

꿀풀과는 줄기의 단면이 특이하게 사각형이랍니다. 사각줄기는 모서리에 섬유조직을 집중시켜 키는 작아도 곧게 서게 만들고, 바람에도 강해 잘 쓰러지지 않게 하지요. 잎은 마주나며 마디마다 90도로 돌려나는데(십자대생), 덕분에 통풍과 햇빛을 잘 받아 향도 잘 퍼지고 광합성 효율도 높아집니다. 꽃은 잎겨드랑이에서 나오는데, 위아래 두 갈래 입술 모양을 한 순형화(脣形花)로 벌이 정확히 앉을 수 있도록 유도한답니다. 이러한 세 가지 특성—사각줄기, 십자대생 잎차례, 순형화—이 함께 보이면 꿀풀과일 확률이 아주 높습니다.

 

뿐만 아니라 꿀풀과는 정유 성분의 향을 만들어, 빨대 역할을 하는 작은 샘털(선모)을 통해 밖으로 내뿜는 특성이 있습니다. 꿀풀과 작물 주변을 지나가면 은은한 향기를 맡을 수 있는데, 한낮이나 비 온 뒤엔 향이 더 강해지고 잎을 비비면 향이 폭발하듯 퍼지게 되지요.

 

이 향은 항균·항곰팡이 역할을 하며 초식동물과 해충은 다가오지 못하게 하는 반면, 가루받이를 해줄 벌은 유인하는 역할을 합니다. 꿀풀과의 이런 구조와 향의 특성들이 다른 식물들과의 경쟁에서 다소 우위를 점하게 해주었답니다.


농장에서 쫓겨난 동물을 불러들이는 법

우리가 먹는 고기와 달걀, 우유는 대부분 좁은 사육시설에서 수입 사료를 먹고 자란 동물에게서 나온다. 그 사료가 되는 대두와 옥수수는 세계 경작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동물이 쏟아내는 분뇨는 자원이 아니라 처리해야 할 골칫거리가 된다. 한쪽에서는 비료가 모자라 화학비료를 사다 쓰는 농지가 있고, 다른 쪽에서는 분뇨가 넘쳐 물을 오염시키는 축사가 있다. 한 농장 안에서 하나의 순환이었을 일이 둘로 쪼개지면서 두 개의 문제가 되었다.

 

글리즈먼의 『농생태학』 4부 19장(농업생태계의 동물)과 20장(농업생태계의 에너지학)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책은 문제의 핵심이 동물 자체가 아니라 동물이 농업생태계에 통합되는 방식에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결론도 "고기를 끊자"가 아니라 "동물을 다시 농장의 일원으로 불러들이자"가 된다. 이번 회차에서는 두 장을 하나로 묶어, 아시아의 논에서 천 년 넘게 이어져 온 해법을 따라가 본다.

갈라선 부부: 작물과 가축은 왜 헤어졌나

책에 따르면 20세기 초까지 미국 농장의 대부분에는 작물과 가축이 함께 있었다. 이 둘을 갈라놓은 것은 2차대전 이후 들어온 기계, 화학비료, 농약이다. 값싼 화학비료만 있으면 가축을 통한 양분 순환이나 콩과식물의 질소 고정에 기댈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퍼졌고, 정부 지원과 연구기관도 전문화를 부추겼다. 1980년대 말에는 분리가 거의 완료되었다고 한다. 책은 이 분열을 두고 "문자 그대로 농업의 붕괴"라는 표현까지 쓴다.

 

부부가 갈라서서 각자 살림을 차린 모습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한 집에는 쓰레기가 쌓이고, 다른 집에는 생활비가 모자란다. 합치면 서로의 부족과 넘침을 메울 수 있었는데, 따로 살면서 비용이 늘었다. 동물이 농장에서 맡던 일은 책이 정리한 세 가지 흐름으로 요약된다. 첫째는 먹을거리와 섬유가 되는 동물 바이오매스, 둘째는 경운과 운반, 잡초와 해충 관리 같은 '일', 셋째는 토양 미생물의 에너지원이자 양분인 분뇨다. 사람이 소화하지 못하는 풀과 작물 잔여물을 단백질로 바꿔 주는 것도 동물의 몫이다.

  
도시농부들

...

천이를 밭에 들일 수 있을까

박중구 님은 천이라는 생태학 개념을 실제 밭에 적용하는 게 아직 낯설다고, 그 변화를 어떻게 되풀이하고 적용할지 의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마 많은 분이 같은 마음이었을 겁니다. Bohey 님은 17장의 어려운 용어들 사이에서 나무 이야기가 특히 마음에 남았다고 하셨고요.

나무를 두고는 의견이 갈렸습니다. 안병덕 님은 밭가의 나무가 그늘을 드리우고 뿌리를 뻗어 와 작물을 방해한다며, 혼농임업이나 천이를 실제 밭에 들이는 게 얼마나 현실적인지 물으셨습니다. 황철규 님은 숲밭이라는 생각, 그리고 갈수록 뜨거워지는 날씨에 나무 그늘이 완충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데 공감하면서도 뿌리 문제는 걱정하셨습니다. 자급 텃밭을 일구는 김정숙 님은 매실나무의 쓸모를 들며 그늘이 꼭 필요하다고 하셨지요. 책이 말한 '저울질'이 그대로 펼쳐진 셈입니다.

석지영 님은 텃밭에서 천이를 사람 손으로 앞당길 수 있는지, 자신의 밭은 아직 첫 단계에 머물러 있는 건 아닌지 고민을 나눴습니다. 오랜만에 오신 김정기 님은 내용이 쉽지 않았다면서, 해마다 텃밭에 꼬이는 벌레가 달라지는 게 다양성과 어떻게 이어지는지 궁금하다고 하셨습니다. 바로 섬 이론이 말하는 '누가 먼저 도착하느냐'의 문제와 닿아 있는 물음이었습니다.


책을 다시 읽는 눈

최성훈 님은 책을 한 걸음 떨어져 읽는 눈을 보태 주셨습니다. 책이 거듭 말하는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는 명제에 대해, 티머시 모튼 같은 학자들의 논의를 끌어와 부분, 곧 하나하나의 개체도 이미 그물처럼 얽힌 복잡한 존재라는 점을 짚으셨습니다. 그러니 교재의 관점도 다시 세워 볼 만하다고요. 또 산업농에서 농생태학으로 넘어가는 길을 '관리'라는 사람 중심의 말 대신 '돌봄'으로 부르자고, 작물을 심고 옮기는 일을 '배치'로 바라보면 인문사회과학, 현대 철학과 이어질 길이 열린다고 하셨습니다.

베타 다양성은 서식지와 서식지 사이의 다양성이라 책의 그림이 오해를 부를 수 있다는 지적, 결국 가장 힘주어야 할 것은 서식지 다양성이라는 이야기도 이어졌습니다. 모자이크, 조각, 통로 같은 말이 모두 경관생태학에서 왔다는 것, 관행농 밭에 둘러싸인 우리 텃밭을 하나의 섬으로 보면 유기농과 자연재배의 의미가 새롭게 보인다는 것, 그리고 이런 경관의 다양성이 우리 풍수와도 맞닿는다는 데까지 생각이 넓어졌습니다. 두 번째 토론 주제였던 "도시 텃밭은 섬인가, 모자이크인가"에 대한 하나의 답이기도 했습니다.

일벌일숙 님이 퍼머컬처의 모자이크와 경관생태학은 어떻게 다르냐고 묻자, 최성훈 님은 경관생태학이 자연에서 도시로 넓혀 온 학문이라면 퍼머컬처는 농생태학에 더 가깝다고 답하셨습니다. 혼농임업의 핵심은 키 큰 나무부터 땅속 작물까지 일곱 층을 들이는 것이고, 이는 다양성이 가장 높은 숲 가장자리를 흉내 낸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이셨지요. 가운데 큰 나무로는 밤나무나 호두나무 같은 견과류를 권하셨습니다. 나무 사이를 넓게 두고 한해살이를 기르며 풀을 베어 덮어 주면, 길게 보아 관리가 훨씬 수월해진다고요.


혼자서는 어렵다는 고백

파주에서 천 평 남짓 땅에 열다섯 가지 농사를 짓는 최유리 님은, 퍼머컬처를 실천하는 데 농생태학 공부가 큰 힘이 된다고 하시면서도 현실의 벽을 털어놓으셨습니다. 관행농으로 지쳐 있던 임대 땅을 되살리는 데 십 년이 넘게 걸리고, 둘레가 함께 바뀌지 않으면 혼자서는 정말 버티기 어렵다고요. 한해살이 작물이 잘 안 되는 땅에서는 여러해살이 산나물, 들나물로 바꾸고 나무가 자라길 기다리는 길을 찾고 계십니다.

반대편에서 안병덕 님은 천 평 남짓한 땅에 수십 가지 작물을 기르는 관행농의 경험을 나눠 주셨습니다. 그냥 종이 다른 것보다 과(科)가 다른 작물을 섞어야 병해충과 이어짓기 피해를 줄이는 데 효과가 있다고요. 상추와 김장배추를 번갈아 심으며 교란을 되풀이해도 생산성이 오르고, 흙을 어느 정도 만들어 두면 생각보다 회복이 무척 빠르다고 하셨습니다. 같은 천 평이라도 땅의 이력에 따라 이렇게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는 게 흥미로웠습니다.

신현경 님은 사정이 생겨 한동안 정원을 내버려 두었더니, 하나가 죽으면 그 옆에서 다른 것이 자라고 나무들이 서로를 비켜 가며 자라더라는 관찰을 들려주셨습니다. 사람의 생산성을 내려놓을 때 오히려 다양성이 자라는 걸까, 하는 물음이 자리에 오래 남았습니다.


...

  
이달의 영상
이번 영상은 지난 10월 15일에 있었던 베를린 도시농업 탐방보고회 영상입니다. 인천에서 10명의 도시농부들이 12박13일로 베를린과 오슬로의 도시농업을 돌아보고 왔는데요. 이 텃밭유랑기를 발표했던 현장의 영상입니다. 간접적으로 베를린의 텃밭을 엿보세요.

[해외도시농업 탐방보고회] 1부, 베를린 텃밭유랑기
전국도시농업시민협의회를 응원해주세요  📰
정부와 행정의 보조금에 의존하지 않는 자립은 민간주도 도시농업의 기반입니다.
(사)전국도시농업시민협의회가 민간주도 도시농업의 든든한 기반이 될 수 있도록 여러분의 후원금을 가치있게 사용하겠습니다.

기업의 기부금영수증 발행이 가능하며, 특정 지역 혹은 단체에 대한 지정기부도 가능합니다. (예- 강원지역 도시농업활성화 사업에 지정기부)

후원계좌 : 우체국금융 013425-01-006065 사단법인전국도시농업시민협의회 

* 정기후원(CMS)을 해주시면 연말소득공제 영수증을 발행해드립니다.
전국도시농업시민협의회 뉴스레터는 앞으로 만들어가면서 다듬어 가려고 합니다. 다양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각 단체 혹은 활동가들의 글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웹진이나 블로그 등에 관심있는 분들의 참여도 기다립니다.
사단법인 전국도시농업시민협의회
officers@agrocitizen.net
인천시 남동구 성리로35번길 20-1, 3층
수신거부 Unsubscribe
stibee

이 메일은 스티비로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