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6일 월요일
님,

미국의 러시아 전문가가로서 <이콘과 도끼>라는 명저를 남긴 제임스 빌링턴(1929~2018)은 <러시아 정체성>(2004)에서 소련 해체 뒤 러시아에서 새로운 ‘유라시아주의’가 형성된 맥락을 이렇게 풀이합니다. “포스트소비에트 러시아에서의 유라시아주의의 부활은 대부분 제국상실에 대한 분노와 새로운 서구 지향적 시선을 지닌 자유주의적 엘리트들의 ‘러시아공포증’(루소포비아)에 대한 혐오감에 기인한 것이었다.” “대다수 러시아인들에게 유라시아주의는 아시아에 대한 이해도, 호감도 의미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오히려 그들이 여전히 모호하게 ‘서구’라고 불렀던 것에 의해 느꼈던 모욕감에 맞선 항의의 형태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냉전 종식 당시 고르바초프는 러시아만 고립되지 않도록 서방 세계와 함께 ‘유럽 공동의 집’을 지어야 할 필요성을 강하게 제기했지만, 미국은 끝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확대를 통해 러시아를 옥죄는 길을 택했습니다. 오늘날 우크라이나전쟁을 포함해 수많은 분쟁들의 뿌리가 여기에 닿아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미국이 그런 선택을 한 데에는, 두말할 것도 없이 유라시아를 하나의 거대한 체스판으로 상정하고 그 속에서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브레진스키류의 지정학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서방 세계에서 배제된 러시아가 그에 대항하는 유라시아주의를 재발명해낸 데에서 볼 수 있듯, 이쪽의 지정학은 늘 저쪽의 지정학을 낳기 마련입니다. 지정학을 앞세워 “현실은 단지 비정한 것”,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 따위의 인식을 서로 주고받으며, 국제 사회에는 서로를 먹잇감으로 삼으려는 수작들만이 점점 더 치열하게 전개됩니다. 다시 찾아온 이 지정학의 새 전성시대가, 다만 암담하게 여겨질 따름입니다.

2022년 2월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전쟁은 1년이 다 되어가도록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희생시키며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국제정치경제 전공자 이해영 한신대 교수의 <우크라이나전쟁과 신세계질서>는 서구 중심의 시야에서 벗어나 다른 눈으로 이 전쟁을 바라보려는 시도를 담고 있습니다. 소련 해체 이후에도 러시아를 견제해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려한 미국의 기획, '돈바스 내전'에서 극단으로 치달았던 우크라이나 내부의 분열 양상 등 전쟁의 복잡한 연원을 톺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다만 러시아의 팽창주의나 제국주의만을 부각하는, 서구 중심의 전쟁 서사를 접할 때와 마찬가지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비판적으로 읽어야 할 필요성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칫하면 이 전쟁을 '필연적인 것'으로 여기는 등 러시아에 면죄부를 주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균형 있는 인식을 위해서는 한쪽에 대한 일방적인 '악마화'와 언제나 거리를 둘 필요가 있습니다. 스위스 언론인 기 메탕의 <루소포비아>는 서방 세계가 역사적으로 증폭해온 러시아에 대한 혐오와 공포를 파헤치는 책입니다.

🐟전쟁을 정당화하려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는 진정한 국가의 전통이 없다"고도 주장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세르히 플로히 미국 하버드대 우크라이나연구소장이 쓴 <유럽의 문 우크라이나>는 우크라이나 정체성이 만들어져온 2천년 역사를 정리한 책입니다.

'유사'(遺史)가 아닌 '유사'(遺事)를 제목으로 썼다는 데에서, 일연이 본격적인 역사서로서 <삼국유사>를 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이유로 "신비한 일들로 역사를 쓰겠다"는, 이처럼 독특한 시도를 한 것일까요?


시인이자 불문학자인 김정란<꿈꾸는 삼국유사>에서 일연이 당시 몽골 침략 등으로 고통받는 민중들에게 "이야기를 통해서라도 희망을 불어넣고자" 했다고 풀이합니다. 이 때문에 지은이는 수로부인 이야기, 처용 이야기 등 <삼국유사> 속 설화들을 '신화'로서 읽어내는 작업을 펼칩니다. 이름 높은 수로부인의 아름다움을 그녀가 신성함과 맺고 있는 관계에서 생겨난 특질로 분석하고 그 안에서 '우리 내면의 여자'를 발견하는 등 신선한 풀이들이 담겼습니다.

'추리소설의 창시자' 에드거 앨런 포는 아무 연고도 없는 볼티모어 길거리에서 인사불성이 된 상태로 발견되어, 병원에 옮겨진 나흘 뒤에 숨졌습니다. 발견 전 닷새 동안의 행적이 오리무중이라, 그의 죽음은 그의 소설만큼이나 극적인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노르웨이 소설가 니콜라이 프로베니우스의 소설 <공포를 보여주마>(2008)는 포의 죽음 뒤에 도사린 비밀을 추적하는 내용의 팩션입니다. 실존 인물인 문학평론가 루퍼스 그리스월드로 대표되는 당대 미국 문단과 포 사이 문학관의 차이, 그로부터 비롯한 갈등이 소설의 주된 배경으로 제시됩니다. 여기에 포가 죽기 직전 여러 차례 외쳤다는 '레이놀즈'란 이름이, 가상의 인물로서 등장합니다. 픽션과 현실 사이에서 세 인물이 그려가는 광기의 이야기를 만나보시죠.

'소피스트'라고 하면 부정적인 이미지가 떠오르기 쉽습니다. 소크라테스가 그들을 '지식 장사꾼'으로 비판한 것이 오랫동안 서양 주류 철학에 새겨져 왔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나 아리스토파네스가 자신의 희곡에서 소크라테스를 "소피스트"라 칭한 데에서 보듯, 소피스트의 철학 전통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강철웅 강릉원주대 교수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소피스트들의 텍스트들을 엮고 우리말로 옮긴 <소피스트 단편 선집>은 고대 서양 철학의 지형을 온전히 파악하기 위한 우리 학계의 소중한 성과라고 할 만합니다. 말, 곧 로고스(logos)야말로 소피스트들을 관통하는 열쇠말입니다. 그러니 평생 한 줄의 글도 쓰지 않고 오로지 말에 의존했던 소크라테스 역시 소피스트로서 한 자리를 차지하겠죠. 그러나 누구보다 주목해야 할 철학자는 최초의 소피스트인 프로타고라스일 겁니다.

아이들과 문해력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들 합니다. 딱딱한 수업과 독후감 같은 과제 말고, 아이들이 정말로 '글쓰기'를 사랑하고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826내셔널'은 2002년 미국에서 시작한 비영리조직이자 그들이 이끄는 운동으로, '위장점포'를 통해 아이들이 부담없이 놀면서 글쓰기를 즐길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을 목표로 삼습니다. 1호점이 '해적상점'을 컨셉트로 잡았던 데에서 출발, 미국 전역에 마술사, 외계인, 슈퍼히어로 등 다양한 컨셉트를 지닌 '826'들이 생겼고 전세계에도 수십 개의 동조 그룹이 생겼다고 합니다. <이렇게까지 아름다운, 아이들을 위한 세계의 공간>은 이 가운데 대표적인 위장점포 34곳을 골라 풍부한 사진과 문답식 글로써 소개하는 책입니다. "창의성과 감성을 키워주고 싶다면 과하다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것으로 주변을 채워야 한다"는 말이 참 인상적입니다.
집도 사람도 책도 나무처럼 자라고
부부건축가 임형남 노은주
부부건축가 임형남·노은주는 옷 빼고는 모든 걸 '지으며'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설계나 글쓰기나 누군가 먼저 시작하면 끝말잇기 하듯 받아서 이야기를 붙이고 다시 받아서 다듬어 집도, 책도 엮어낸다고 합니다. 1998년 사무실을 연 뒤 처음 맡아 지은 집과 함께 첫 책 <나무처럼 자라는 집>이 나왔고, 그 뒤로 여태껏 17권을 책을 함께 지었습니다. 집도, 사람도, 생각도, 시간이 완성해간다는 생각에서 지은 제목처럼, 이 책은 10년 터울로 두 차례 증보판을 내며 '나무처럼 자라는 책'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임형남·노은주가 함께 지은 책들 가운데 네 권을 더 꼽았습니다. 왼쪽부터 <서울풍경화첩>(2009), <작은 집 큰 생각>(2011), <그들은 그 집에서 무슨 꿈을 꾸었을까>(2015), <공간을 탐하다>(2021)입니다.
'책여권' 든 도시 여행자를 위한 책방
뜻밖의책방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경수대로 713-1(호계동) 1층

🔗instagram.com/surprising.books


"오후 2시. 햇살이 책방으로 들어와 넓게 퍼지기 시작한다. 긴 햇살이 구석구석을 돌며 책과 인사하는 시간. 아침의 책 냄새가 종이 날것의 인기척이라면, 이때의 책 냄새는 글들이 서로 말을 걸어 웅성웅성 한바탕 난장이 펼쳐진 느낌이다. 깊고 기분 좋은 책 냄새. 지난해 봄, 책방을 열고 시간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이 오후의 공기를 함께 즐기고 나눌 분이 많아졌다. “우리 동네에도 책방이 생겼다!”며 하루가 멀다고 들르는 분들부터 카페인 줄 알고 들어왔다가 그야말로 ‘뜻밖의’ 책방을 발견해낸 기쁨에 지인을 데리고 와 자랑하는 분들까지, 우리 책방은 지금 이웃과 느슨하고도 끈끈한 연대를 맺는 중이다.

 책이 할 수 있는 수많은 일 가운데 내가 최고로 꼽는 것은 우리네 소소한 일상을 조금 더 각별하게 만들어주는 책의 힘이다. 일개미의 하루부터 수천억개의 별이 모인 우리 은하까지, 길바닥 그림자부터 나무 꼭대기의 잎줄기까지, 사랑 시부터 인류 역사의 강줄기까지… 책으로 여행하는 동안 우리는 얼마나 풍성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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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자막을

끝내 읽지 못해도

 

붉은 것은

붉은 것

 

흔들리지 말자

 

열에서 

하나를 덜다

아홉을 

파묻은 자리



📖김보람 시집 <이를테면 모르는 사람>(시인동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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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등 기탄없이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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