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088_26.10.31.
모호 성원 / 모순 영인

살면서 좋아하는 다큐멘터리, 음악, 사진 하나씩만 있더라도
매주 금 기습적으로 발송

지난 주말에는 아버지의 예순 번째 생일 잔치가 있었다. 대전에 도착해 예약해둔 꽃다발을 찾고 성심당 근처에서 누나와 매형을 픽업했다. 마음이 급했다. 식당으로 이동해 아빠가 오기 전에 누나가 준비한 편지지에 편지를 써야하기 때문이었다.


무슨 말을 쓰지. 떠오르는 건 항상 감사하고 건강하시라는 문장 뿐이었다. 어쩌면 미안함에 전부 속하는 감정들. 성인이 되고 아빠에게 처음 편지를 썼다. 글을 쓰고 싶다고 내가 처음 선언한 사람도 아빠, 글을 쓰는 일의 괴로움에 대해 말하며 나를 만류한 것도 아빠, 직장에서 얻은 병과 슬픔에 대해 내가 처음 고백한 사람도 아빠, 그런 나에게 언제든 회사를 그만두어도 괜찮다고 말한 사람도 아빠지만 어쩐지 나는 아빠에게는 한 문장도 쓴 적이 없었다. 서툰 편지를 썼다. 돋보기가 없어 작디 작은 내 글씨가 보이지 않던 아빠는 집에 가서야 편지를 읽었다.


by 모호

1. 금주의 다큐멘터리
<가능한 사랑> by 모호

2. 금주의 음악 앨범
<Playbook> by 모호

3. 금주의 사진
<설산> by 모순
금주의 다큐멘터리

가능한 사랑

by 모호

제목  가능한 사랑

감독  이창동

공개  2026

길이  2시간 44분

국가  한국

언어  한국어

관람  넷플리스 공개 예정

삶보다 더 중요한 건 없다. 영화를 좋아하게 될수록, 좋은 영화를 만날수록 나는 이 문장을 관객이자 제작자의 마음으로 되새긴다. 삶을 잘 살아가는 것보다 중요한 건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영화가 싫다. 예지의 직업이 하필 다큐멘터리 감독이어서, ‘다큐멘터리의 카메라’와 ‘극영화’의 카메라를 넘나드는 영화의 모든 상징들이 불쾌할 정도로 명확해서, 스치듯 활용된 해고 노동자들의 삶들이 자꾸만 기억 속 영화와 겹쳐보여서, 아이의 묘사가 맘에 안들어서. 결정적으론 극에서의 재현에 윤리적 책임을 느낀다는 감독이 말이 영화와 어긋나 자주 미끄러져서. 영화를 보고 나서 며칠 간 이런저런 트집을 잡았다.

시간이 흐르고 영화를 소화하며 내가 내린 결론은 크게 다르진 않다. 나는 여전히 이 영화가 싫다. 다만 영화관에서는 영화 만드는 일의 무상함에 대해 고민했다면, 이젠 반드시 영화를 잘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적어도 숨거나 핑계 대지 않아야겠다고. 영화에서 삶을 떨어뜨려 놓지 않겠다고. 
  
금주의 음악 앨범
Playbook
by 모호
트랙리스트
1. 축제
2. 무슨 일
3. 환각 (feat. 사뮈)
4. 9평 남짓한 공간
5. intro (for 충훈부)
6. 충훈부
앨범  Playbook
아티스트  놀이도감
발매  2019
길이  19min
스트리밍  모든 플랫폼
충훈부에 가보고 싶다.   
이 앨범을 자주 들을 때는 사당에 가까이 살고 있었다. 사당 옆에 붙은 남성과 이수는 흥미롭지만 당시 사당은 정을 붙이기 어려운 동네였다. 서울을 거쳐 가는 이들이 가장 많은 곳. 빨간 버스와 파란 버스, 초록 버스가 뒤엉켜 경적 소리가 끊이지 않는 대로에서 흔한 건 분주함과 저녁 술기운이었다. 어쩐지 나도 발걸음이 분주해져서, 나도 경기도로 가야해서, 혹은 집으로 가야만 해서 사당에선 진득한 시간을 보낸 기억이 없다. 

사당이 시간이 흐르며 나에게 인상깊은 서울의 장소로 남아있는 건 오히려 그 때문이다. 경기도에 살던 친구들과 인사하는 곳, 창밖에 보이면 이제 서울이구나 할 수 있는 곳. 바위가 많은 관악산으로 가는 곳. 앨범 속 나의 베스트 트랙 충훈부는 (당연하지만) 정말로 존재하는 곳이었다. 사당에서 버스에 내려 역으로 걷다가 봤다. 버스 옆면에 쓰여진 종착지 '충훈부'를. 사당은 어디든 갈 수 있는 곳. 훌쩍 충훈부로 떠나버릴 수도 있는 곳. 
금주의 사진
설산
by 모순

또 흔들린 사진이다. 작년 아이슬란드 이사피오르뒤르라는 작은 마을에 머물 때 찍은 풍경이다. 밤이 되면 저 설산들이 무서웠다. 압도적인 덩치로 나를 둘러싼 채 꼭대기조차 보여주지 않았다. 어둠 속 거대한 흉상은 원초적 공포를 건드렸고, 깊은 밤의 설산은 오직 감정으로만 남았다. 그런건 찍을 수 없었다. 마침내 해가 뜨고 환하게 드러난 산은 밤의 기운을 완전히 감추었다. 그러나 이 흔들린 사진 속에서야말로 밤의 모습이 떠오른다. 선명하지 않은 능선과 뭉개진 눈이 어젯밤 나를 짓누르던 또 다른 얼굴을 흘려보낸다. 처음이었다. 두려우면서도 그 서늘한 무력감을 다시 마주하고 체감하고 싶어지는 감정. 그야말로 숭고함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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