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은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일인데요. 이를 맞아 DJ의 정치 입문 스토리를 살펴보겠습니다. 총 2편으로 다룰 예정인데요. 1편에서는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성장 스토리와 무소속으로 출마해 낙선하기까지의 이야기를 사실관계 중심으로 담아 봤습니다. 이렇게까지 정치해야 되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DJ의 인생 스토리 시작인 '정치 입문기'. 지금 출마를 생각하고 있는 보좌진이 계신다면 꼭 보셔야 합니다.
*이후 계속해서 다른 대통령들의 스토리도 준비하겠습니다.
조국의 해방
김대중의 아버지는 마을의 이장이었는데, 정치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하의도 소작 반대 투쟁에 앞장섰던 아버지에게 영향받음. 해방 후 여운형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조선건국준비위원회(건준) 목포지부에 참여해 선전부원으로 활동. 1946년 초에는 민족주의 성향의 좌우합작 노선을 내세우는 조선신민당 목포시지부 조직부장이 되나 소련을 추종하는 세력과 갈등을 빚으면서 당을 나옴. 1947년에는 장인의 권고에 따라 한민당 목포지부에 입당해 운영위원으로 활동.
한국전쟁의 경험
목포를 점령한 인민군들에게 자본가라는 이유로 붙잡혀 사형선고를 받고 처형 직전까지 갔다가 인민군들이 철수해 처형은 면함. 민족 간 서로 학살하고 증오하던 이때의 경험으로 남북 간에 평화와 화해의 필요성을 느낌. 살아남은 김대중은 선박운수사업을 다시 시작. 1950년 목포일보를 인수해 사장이 되었음. 목포에서 유망한 청년 실업가로 알려짐. 1950년 연말에는 해상 방위대에 입대해 전라도지구 부사령관이 됨.
이후 회사를 부산으로 옮겨 배 10여 척을 갖게 된 중견급의 선박회사로 성장. 김대중은 부산에서 이승만이 정권 연장을 위해 폭력을 행사하는 등의 개헌 시도를 한 발췌개헌 파동을 겪음. 정치가 올바르지 못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사실을 실감.
정치활동 준비와 무소속 출마
부산에서 사업을 하면서 적극적으로 사회활동도 함. 독서회에서 장택상 총리와 토론에 참여하는 등 정치인들과 토론하기를 즐겼음. 장인의 권고로 한민당에 입당해 시당 상무위원도 역임함. 1953년에는 부산 건국대학교(현 동아대로 합병) 정치외교학과로 편입했지만 오래 다니지 못함. 1954년 서른 살이 되던 해, 선박회사를 넘기고 사업에 손을 뗌.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위해 부산 생활을 정리하고 목포로 돌아감.
제3대 민의원 선거는 1954년 5월에 있을 예정이었음. 김대중은 사업으로 재산도 모았고 목포지역 노동계와도 관계가 좋았음. 당시 목포의 정치 역학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이 노동조합이었음. 해운업이 활발해지면서 노동조합의 영향력이 커졌기 때문. 제2대 민의원 선거도 노동조합 출신이 당선됨. 김대중은 목포일보를 경영할 때도 노동자 권익을 위해 노력하여 평판이 좋았고 조합장이 김대중을 열성적으로 지지하였음.
출마를 앞두고 당을 선택해야 하는데 노동조합에서 야당으로 출마하지 말아 달라고 조건을 걺. 그렇다고 이승만의 자유당에 들어갈 수는 없었음. 결국 무소속으로 출마를 결심함. 하지만 이승만 정부가 노조 간부들을 모두 체포함. 당시 노조는 정권의 기간단체였는데 자유당 후보가 아닌 무소속의 김대중을 지지했기 때문. 결국 노조는 김대중 지지를 철회하고 선거에서 5위로 낙선함.
아직 끝나지 않은 낙선...DJ의 정치 입문기 다음주 2편에서 이어집니다...
참고: 김대중 평전1(시대의 창), 행동하는 양심으로(김대중, 금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