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에 대처하는 20대 후반 여성의 3단계 변화
숭이      "미디어 산업, 특히 예능과 만화를 사랑하는 에디터 숭이입니다! 재밌는 건 같이 봐요 ◠‿◠"

안녕하세요. 객원 에디터 숭이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여러분의 첫 이별은 언제였나요? 저의 경우는 생후 6개월부터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서 살아서인지 초등학교 입학 무렵 두 분을 떠나오는 것이 가장 크고도 거대한 첫 이별이었습니다. 그 뒤로도 학교에서 학년이 바뀌면, 아예 졸업을 하면 많은 사람들과 이별을 해야 했죠. 저는 헤어지는 것이 너무 아쉬워 반 친구들 40명 한 명 한 명에게 편지를 써서 건네주곤 했었어요. 어린 만큼 헤어지는 경험도 적어서 그런가, 그때그때 영영 다시 못 볼 것 같은 기분이 들었거든요. 이제는 지난 회사를 떠나오면서도 ‘볼 사람은 또 보겠지’ 하고 가뿐히 마지막 출근을 마칠 수 있지만요.

©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도 결코 쉽지 않은 이별도 있습니다. 바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는 이별입니다. 2025년 한국을 강타한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속 7년 연인이었던 금명·영범의 이별처럼요. 두 사람은 드라마의 클리셰 ‘부모의 반대’를 살짝 빗나가긴 하지만 그와 크게 다를 것도 없는 제 3자 요인을 가장 큰 이유로 이별을 하게 됩니다. 물론 이 만남에 마침표를 찍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은 영범의 우유부단함이지만 말입니다. 


이번 주제로 상실에 대처하는 방법을 선정한 이유는 사실 제 이야기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저도 발행 시기로 따지면 약 3개월 전, 2021년부터 4년 정도 이어져 온 연애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잊고 싶지 않아서 몸부림 치다가 조금씩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거쳐 온 단계들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모든 만남을 더 소중하게 해주는 상실 경험에 대하여!

1. 1단계 현실부정: 우리 관계는 특별하므로 다시 만날 것이다
2. 2단계 공감구걸: 다른 사람들의 이별과 애도를 보고 싶다
3. 3단계 현실인식: 어쨌든 살아나가야 한다
1단계 현실부정: 우리 관계는 특별하므로 다시 만날 것이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은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게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입니다. 저는 이를 조금 바꾸어 말해 ‘행복한 연애는 모두 비슷하지만, 이별은 저마다의 이유로 힘들다’고 말하고 싶어요. 유튜브 이별 플레이리스트 댓글창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는데요, 한 달을 만난 사람부터 10년을 만난 사람까지 인연의 시간에 국한되지 않고 이별을 한 사람들은 모두 힘들어 합니다. 한때 같은 추억을 공유하고 가장 친한 친구였던 어떤 사람이 나의 세계에서 사라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가 이별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유튜브 재회타로를 보는 일이었습니다. 유튜브 타로 채널 구독자 50만명이 넘는 타로마스터 정회도는 온라인 점 시장의 가장 큰 주제가 ‘재회’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재회 타로가 무엇이냐, 유튜브의 무궁무진한 기능을 활용한 아이템인데요. 영상을 켜 놓고 화면에 펼쳐진 4-5장 카드의 앞면, 뒷면, 혹은 원석을 본 뒤 자신이 끌리는 카드를 선택해 그에 맞는 타임코드로 이동하여 설명을 듣는 것입니다. 복채는 주로 좋아요, 알림 설정, 구독, 혹은 나아가 후원까지 가능합니다. 대체로 영상을 살펴 보니 둘이 어떻게 헤어졌을지 추측하고, 앞으로 관계 흐름은 어떻게 될지, 상대방은 나를 그리워할지, 내담자가 앞으로 어떤 마음을 가지면 좋을지까지 타로를 바탕으로 리딩 해 주더라고요. 전 매일 밤마다 거의 자장가를 듣듯이 영상을 봤답니다.

이런 콘텐츠는 타로 리더 입장에서는 내담자를 대면하지 않아도 유튜브 조회수를 활용해 수익을 낼 수 있게도 하고, 이별 당사자에겐 높은 접근성의 위로를 건네 줍니다. 제목엔 제목에 ‘신점급’, ‘소름보장’, ‘적중률’을 강조하는 콘텐츠들이 많은데요, 괜히 궁금해져서 모든 카드 번호를 눌러본 결과 대체로 희망적인 이야기가 많습니다. 오히려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강한 이야기를 하는 타로라면 제목에 ‘희망고문 없는 팩폭’이란 키워드를 달아두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조회수 순으로 콘텐츠를 보았을 때 이러한 솔직한 리딩은 후순위에 위치합니다. 타로 리딩 채널의 영향력도 있겠지만, ‘재회’라는 키워드 특성 상 당장 이별에 대한 위로를 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필요한 건 희망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게다가 타로 리더 분들 목소리도 아주 사근사근하고 좋으시거든요.


유튜브 재회 콘텐츠로 또 유명한 것은 ‘주파수’가 있겠는데요, 심지어 구연인이나 구썸남 연락 오게 하는 주파수는 벌써 조회수가 700만을 넘기도 하였습니다. 영상 길이가 3-4시간을 훌쩍 넘는 만큼 주로 자면서 많이 틀어둔다고 하는데, 저는 자장가 콘텐츠로 ‘침착맨’을 듣기 때문에 따로 시도한 적은 없습니다. 이러한 영상은 10대~20대에서 가장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합니다. 주파수를 듣지 않았던 것만으로 제가 30대에 가까워진 것이 확실한가 봅니다.

주파수는 단어만으론 무엇인지 감이 오지 않겠지만, 영상을 틀어보면 ASMR과 유사합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영상에 ‘양자역학’과 관련한 에너지가 담겨있다고 여겨지는 것입니다. 간절한 마음이 무언가를 끌어당긴다는 논리인 것입니다. 댓글을 보면 ‘이게 무슨 과학이냐’고 조롱을 하러 온 댓글과 양자역학에 대한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는 걸 보면, 모두 소망에 간절한 것이겠지요.

구글에 ‘재회 상담’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이번 이별을 경험하면서 사람들이 재회에 생각보다 진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학을 갈 때 각자 상황에 맞춰 상담을 받는 컨설팅 업체가 있는 것처럼 연애 시장에서도 ‘재회 컨설팅’은 큰 손이 되어 있었습니다. 제 주변에도 이 서비스를 이용해본 사람들이 꽤 있었는데요, 그들로부터 들은 가격대는 50만원 전후대로 잡혀 있습니다. 이별을 했다는 사실은 한 사람에겐 큰 일이지만 친구들을 언제까지고 붙잡고 이야기를 늘어놓기가 미안해서, 혹은 당장 내가 어떻게 해야할지 전문가의 입장에서 조언을 듣고 싶어서 스스로 ‘전문적’이라고 주장하는 업체에 손을 뻗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업체의 서비스 가격은 역시나 천차만별인가 봅니다.
⟨실화탐사대⟩에서 취재에 의하면, 실연당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컨설팅을 진행한다고 주장하는 이런 업체들의 비용은 부르는 게 값인 모양입니다. 저 비용이면 영화 ⟨시라노 연애조작단⟩처럼 의뢰인 주변에서 연극이라도 해주나? 싶지만 그것도 아닙니다. 정해진 기간 동안 의뢰인이 어떻게 행동하면 좋을지, 상대방에게 어떤 메시지를 보낼지 이야기해 주는 정도입니다. 이별 후에는 상대방이 볼 수 있도록 각종 SNS 프로필사진을 아름답게 바꿔두는 것이 ‘국룰’이라 사진을 골라주기도 합니다. 간절한 사람의 마음을 지배하는 서비스인 것입니다. 누군가는 전문가들로부터의 심리상담을 이용하라고 할테지만, 당장 예약이 가능하고 24시간 동안 반응해주기도 하는 저러한 업체들에 더 자연히 마음이 가는 것이지요. 

최근 생생한 이별을 겪어본 입장에서, 이용자들이 어리석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그 시기에 쥐푸라기라도 잡고자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평소에 쉽게 냉소하는 태도를 가진 저에게도 유효했습니다. 대신 저는 평일 새벽, 어디라도 털어놓고 싶어 30초마다 과금되는 전화운세 서비스를 이용하였답니다. 다음 달 핸드폰 청구서를 보면서 후회되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 서비스를 이용한 것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이 돈이면 함께일 때 제대로 된 선물이라도 하나 더 해줄걸’ 싶어서 속이 꽤 아팠답니다.  
2단계 공감구걸: 다른 사람들의 이별과 애도를 보고 싶다 

이별 이후 힘든 것 중 하나는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더 버거웠던 것은 공기처럼 다가오는 상실의 감각이었습니다. 저는 헤어진 다음 날 다른 때처럼 회사에 출근했습니다. 현대인이라면 당연한 일입니다. 갑자기 교통사고처럼 벌어진 일을 받아들일 여유도 없이 밤새 울고 또 아무렇지 않게 일상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제 직업은 예능PD라서 주변 사람들에게 “어디 아파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으면서도 2주일에 한 번 있던 시사 준비를 했습니다. 널찍한 화면을 통해 다른 PD님들이 편집해 온 구간을 보고 웃다가도 시선이 살짝 움직여서 벽에라도 닿을라 치면 눈물이 흘렀습니다. 청승맞게 운 걸 숨기려고 화장실에 가 눈물을 훔치고 와야 했습니다.


처음엔 아주 무거운 바위가 심장을 누르고 있는 것 같아서 숨도 막히고, 내 경험을 어디 좀 쏟아 놓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 그 순간이 조금 지나며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차피 그 시기에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온통 이별 생각 뿐이니 그와 비슷한 무언가를 채워 넣어야겠다 싶었습니다. 일이 너무 바빠서 독서를 미뤄오고 있었는데요, 이별의 시기라는 데 의미를 부여하면서 두 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한 권은 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걷는 나무 출판), 또 한 권은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조찬 모임(백영옥 저, 김영사 출판)입니다.
© 걷는 나무

⟪애도일기⟫는 프랑스 철학자 롤랑 바르트(1915-1980)가 어머니의 죽음 이후 써내려간 일기를 모아둔 에세이입니다. 이별의 한 형태로서 누군가의 죽음을 경험한 것이지요. 그가 ⟪신화론⟫으로 잘 알려진 기호학자인 만큼, 어머니의 죽음를 중요한 기호로 받아들이고자 부단히 노력한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저자가 직접 마무리한 것은 아니지만, 원고가 현대저작물 기록 보존소에 보관되어 있다가 그의 사망 이후 다른 사람에 의해 한 권의 책으로 정리되었습니다. 책의 목차를 살펴 보면, 이 책은 ‘애도 일기’, ‘후속 일기’, ‘이후에 쓴 일기’로 나뉘어 날짜 순서대로 그 날의 짧은 일기들이 작성되어 있습니다. 또, ‘날짜 없이 남아 있는 단장들’과 ‘마망에 대한 몇 개의 메모’도 함께 수록되어 있어요. 

이 책은 카페에서 펜 하나를 들고 줄을 그으며 한숨에 읽어내려 갔는데요, 누군가의 가장 내밀한 공간에 들어간 것 같았습니다. 장례식을 치르는 중간 작성된 일기 초반에 그는 ‘다시는 어머니를 만날 수 없다’는 사실에 힘들어 하다가, 그 말에 모순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언젠간 죽게 되니까요. 장례 이후에도 그는 일상생활을 이어나갑니다. 어떤 날은 일기가 길게 적혀 있다가도, 또 어떤 날은 ‘견딜 수 없었던 하루. 점점 비참해지는 날들. 울다.’(55쪽) 라고 한 줄만 적혀 있기도 합니다. 롤랑 바르트가 정의한 애도는, ‘꼼짝할 수 없는 상태. 그 어떤 방어수단도 없는 상황.’입니다(91쪽). 상실은 그 자체로 거대하고 세상을 흔들어 놓는 경험인 것입니다. 


동시에 그는 다시 ‘살아가는 의미’가 도착하기를 기다립니다(90쪽). 그러다가도 ‘일에 열중하고 일에 쫓기는 흥분 상태 속에서 우리 자신을 잊어버리면, 그때 가장 깊은 비애 속에 빠지고 만다는 사실(110쪽)’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종류의 이별이든, 무언가를 상실했을 때 위로의 말로써 가장 많이 듣게 되는 것이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말인데요. 바르트는 ‘시간은 그저 슬픔을 받아들이는 예민함만을 차츰 사라지게 할 뿐이다(111쪽)라고 정리하였습니다.


1978. 6. 24.

  자기만의 고유한 슬픔을 지시할 수 있는 기호는 없다.

  이 슬픔은 절대적 내면성이 완결된 것이다. 그러나 모든 현명한 사회들은 슬픔이 어떻게 밖으로 드러나야 하는지를 미리 정해서 코드화했다.

  우리의 사회가 안고 있는 패악은 그 사회가 슬픔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65쪽, ⟪애도일기⟫)



마지막으로 위 글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는 의미를 전달하는 단위인 기호가 어떻게 사회적이고 문화적 맥락에서 공유되는지 연구해 왔습니다. 그러나 말년에 쓴 위 글을 통해 상실의 슬픔은 언어적 체계로서 표현할 수 없는 경험이므로 전달에 한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기호학적 시스템이 내면 경험의 복잡함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새로운 시각에 맞닥뜨리게 된 것입니다. 개개인이 가진 슬픔은 도저히 말과 글로 놓이기 어렵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감히 그는 어떻겠다고 추측할 수 없었습니다. 여담이지만, 이러한 일기들을 쓰고 약 2년이 지난 1980년 초 롤랑 바르트는 교통사고를 당하지만 치료를 거부하다가 사망하였습니다.

© 김영사

이전 레터에서도 소개된 적 있는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은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이별한 여러 남녀가 한자리에 모이는 특수한 조찬 모임으로 시작하는 장편소설입니다. 읽으려고 하고 보니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수지·이진욱 주연의 영화가 올해 초 크랭크업 하여 2025년 하반기에 만나볼 수 있다고 하는데요, ⟨이두나⟩에서 쓸쓸함을 연기한 수지와 ⟨로맨스가 필요해⟩, ⟨나의 해리에게⟩ 등에서 회피형 전 남친 전문 배우 이진욱의 만남이 아주 기대가 됩니다. 다 읽고 나니 캐스팅을 아주 잘한 것 같습니다. 저는 이별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친한 언니가 책을 선물해 주어 읽게 되었습니다. 제목부터 ‘실연당한’이라고 밝혀져 있으니 제가 대상 독자에 아주 적합하다고 생각하면서······.


이 소설은 이별을 한 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서 읽었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여느 러브 스토리가 그러하듯 지난 이별을 잘 극복하고 새로운 사람들이 만나게 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무렵엔 도저히 다음으로 나아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과거 정리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랑에 생기는 균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화 ⟨블루 발렌타인⟩을 보면서도 ‘진짜 사랑은 이렇게나 시궁창일 수 없어!’하고 마냥 부정을 하거나, 그렇게나 전부터 좋아했던 영화 ⟨라라랜드⟩ 속의 갈등 씬과 둘의 성공 서사를 더 이상 사랑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한때는 “People love what other people are passionate about!”이라고 외치는 모습을 보면서 환호성과 함께 박수를 쳤는데도 말이죠. 


하지만 이 소설에서 인물들의 회복을 다루는 방식이 좋았습니다. 각자에게 사정이 있었을 뿐이고, 둘이 그것을 함께 껴안기엔 타이밍이 안 맞았을 뿐이라고요. ‘안녕’이 첫 만남에서도, 작별할 때도 쓰이는 것처럼 결국 끝이 나면 새로운 시작도 있을 것이라는 점을 아주 천천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나 찰떡같이 맞는 인연이 다가올 수 있는 것은 픽션이라 가능한 것이겠지만 누구에게나 픽션 같은 순간이 올 수는 있으니까요. 이번 챕터를 닫으면서 이 책의 느좋 문단을 하나 공유하겠습니다. 


모든 연애에서는 마지막이 필요하고, 끝내 찍어야 할 마침표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날 때마다, 들리지 않는 것이 들릴 때마다 사람은 도리 없이 어른이 된다. 시간이 흘러 들리지 않는 것의 밖과 안 모두를 보게 되는 것. 사강은 이제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기로 했다. (320쪽,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 모임⟫)

3단계 현실인식: 살아나가야 한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뒤에도 일상을 굴러갑니다. 8월 초, 후쿠오카로 퇴사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이별 한 직후에 회사에서 일을 해야 했다고 위에 썼던 것처럼, 이별 후 약 두 달이 조금 넘고 나서 업무도 종료되고 그 덕에 해외도 나갈 수 있었던 것이죠. 저는 핸드폰 일기 어플 데이그램을 2016년부터 사용하였는데요, 최근 기록들을 돌이켜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한 사람의 이름이 반복되어 적혀 있다가 어느 순간부터 그 횟수가 줄어드는 게 보입니다. 특별히 그를 생각하지 않아서가 아니었습니다. 이제는 굳이 어플을 켜고 적어야지만 속쓰림이 나아질 딱 그 정도에서 조금씩 더 무뎌지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사실 정신을 콱 차리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직접 연락을 해 보는 것입니다. 제가 받은 답변은 더 이상의 만남은 거부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메시지를 보내기 전까지만 해도 거절을 또 들으면 두 번째 이별이구나 싶어 두렵기도 했는데, 신기하게도 마음은 조금 괜찮아졌습니다. 아무래도 혼자 김칫국 가능한, 둘이 함께할 수 있는 방향으로의 미래를 준비를 하면서 ‘최선을 다했다’는 느낌을 받아서일까요? 사실 그것도 영향을 끼쳤겠지만, 저에게 이 경험이 도움되었던 더 직접적인 이유는 현재 그 사람과 그의 바람을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긴 연애를 하다 보면 워낙 추억이 많지만 결국 뇌는 서로를 사랑했던 아름다운 때를 가장 크게 기억하기 마련입니다. 또, 헤어지지 않고 싶어하던 장면들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현실을 직접 마주하면 그 기억 속에 사는 두 사람이 아니라 지금 이 상태의 두 사람이 마주하는 것이지요.
© 영화 라라랜드

그리고요, 이별의 완전한 극복이 이루어지기 전의 홀로 여행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저의 여름휴가인 후쿠오카 여행은 총 5박 6일이었습니다. 동행인의 일정상 3박 4일은 둘이 함께지만 마지막 2박 3일은 저 혼자였는데요, 둘이 있든 혼자 있든 기억이 덮쳤습니다. 거의 1년 만에 가는 해외여행인 데다가 그동안 일 때문에 정신이 없었던 터라 출발은 아주 새롭고 들떴습니다. 하지만 인천공항에서, 첫 외국어를 마주한 현지 공항에서, 사소하게 웃긴 일이 생길 때, 버스를 타면서 등등 경우를 다 늘어놓을 수도 없을 정도로 시시때때로 함께했던 순간이 머릿속에 펼쳐졌습니다. 더 최악은 여행 메이트가 일정 때문에 먼저 귀국한 뒤였습니다. 혼자 있으면서 그곳이 숙소든, 식당이든, 길거리든 생각할 시간이 무한대로 늘어나 이별이 확 와닿았던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새로운 곳에서의 적응 스트레스는 이별 스트레스 상황에서 우울한 감정을 악화시킨다고 하네요.


하지만 다행히 회복에 아주 크게 도움이 된 것이 제게도 하나가 있었습니다. 강력히 추천합니다. 이별 직빵 약, 바로 운전을 하는 것입니다! 20대 때 대학교와 집의 거리가 멀어 차로 통학하던 친한 친구가 저에게도 운전을 권유하면서 이동의 자유가 있는 건 아주 큰 해방감을 준다고 말해줬었는데요, 직접 해보고 느낍니다. 운전은 이별 후 회복에 아주 효과적입니다. 관련 연구가 있나 찾아 보았으나 찾지 못해서 제가 느낀 점을 공유해 볼게요. 첫째, 핸들만 조작하면(물론 기름도 넣어줘야 하지만) 아주 멀리 나갈 수도 있다는 감각이 자유로움을 줍니다. 둘째, 운전이 서툴다면 연수를 하면서, 혹은 혼자 연습해 보면서 오로지 운전 그 자체에만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크게 음악을 켜 두고 정해진 길을 찾아 가는 것이 꽤 재밌습니다.

정말 화목하고 재밌어 보이지 않나요? © 유튜브 빠더너스.

다시 인사 드립니다! 에디터 숭이입니다. 처음 이 닉네임으로 인사 드리는데요, 주제가 이렇다 보니 첫 글에서 개인적인 이별 소식이 가득합니다. 이별이라는 게 아주 사적인 일이라서 누군가에겐 너무나도 사소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직접 겪어 보니 정말 세계를 흔드는 일이더라고요. 헤어진 직후엔 누군가는 비슷한 경험이 없을까, 어떻게 이 시기를 이겨냈을까 궁금해 하면서 열심히 글과 영상을 찾아 보았던 시기가 찾아 왔습니다. 심지어 아주 하고 싶어서 하게 된, 제 일도 아주 무의미하게 느껴져서 ‘삶의 의미를 찾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니까요. 그래서 저도 꼭 이 슬픔의 시기를 건너가게 된다면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지 써 보고 싶었어요! 물론 완전히 회복을 한 건 아니지만 완벽한 회복을 기대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답인 것 같습니다. 살다 보면 어떻게 되겠지요.


전 천상 문과지만, 그래도 중고등학교 쯤 과학 시간에 배웠던 내용이 생각나요. 판 구조론에서는 판이 서로 깨지거나 충돌할 때 새로운 지각이 생기거나 산맥·해구가 생긴다고 했었죠. 확실히 인생에 깨지는 경험이 있으니 그에 의해 저 자신도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움직이게 되네요. 물론 바로는 그렇지 못 했지만 두 달 정도 지나 보니 그 사이에 저는 조금씩 변화해 왔습니다. 저는 이별 이후 얼마 안된 시점에 원래 하던 프로젝트가 끝이 나서 8월부터 백수가 되었는데요, 그 동안 올해 초만 해도 생각지 못 했던 새로운 길을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이별이 없었다면 고려치도 못 했던 방향이에요. 새로운 기회가 열려가는 이 시점에, 혹 그것이 잘 되지 않아 원래 가던 길을 간다고 하더라도 또 그대로 가질 것 같고요. 그러니까, 스스로 조금은 단단해진 느낌이 듭니다. 


그래도 이 글을 보는 여러분은 슬픈 이별 없는 나날이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다들 이별 후엔 새로운 만남이 온다고 말하지만 그건 다 위로하려고 하는 말 아니겠습니까?! 꼭 새로움이 필요한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제가 실천하지 못 한 일들을 행동강령으로 추천 드리겠습니다. 곁에 있는 사람에게 항상 상냥하게 대해주시고, 모든 관계에는 끝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시면서 ‘오늘은 또 얼마나 재밌게 보내볼까! 어떻게 이 사람(들)을 웃겨볼까!’ 고민해 보시는 것 어떨까요? 저도 가족과 친구들을 비롯하여 곁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해 보겠습니다! 8월 마무리 잘 하시고 9월은 조금 더 선선해진 날씨와 함께 좋은 하루들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편집/윤문 | 구현모

Andrew Garfield Performs 'Swimming' | tick, tick...BOOM! | Netflix

에디터 <숭이>의 코멘트

올해 30살이 되는 숭이가 본 감명 깊은 넷플릭스 영화 <틱, 틱… 붐!>을 추천합니다. 뮤지컬 <RENT>로 유명한 작곡가 조나단 라슨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았어요. 주인공은 자신이 동경하는 음악가들은 이미 20대에 뭔가를 이뤘는데 반면 자신은 30살 생일이 다가오는 지금까지도 별 성과를 내지 못 했다는 불안함을 갖고 있습니다. 사랑, 꿈, 선택에 관한 이야기들은 재밌을 수밖에 없죠? 좋은 음악들이 가득한 뮤지컬 영화지만 특히 위 영상의 수영장 씬은 연출이 끝내주니까 한 번 감상해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 후원하기 buymeacoffee / 카카오뱅크 3333-24-9576078 ㄱㅎㅁ
💌 오늘의 레터를 피드백해주세요! 
💜  어거스트 구독하 : 어거스트 구독 링크를 복사해 친구들에게 알려주세요!
💌  협업문의  augustletter08@gmail.com
Written by  Zoe • 구현모 • 찬비 • 오리진 • 요니
Copyright © AUGUST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