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08 

MOMO, LETTER
모두가 모두로부터 배우는 시간



구독자 님, 안녕하세요. 

작년 호주에서 발생했던 대형 산불을 기억하실까요?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거나 어렵게 땅으로 내려왔지만 잔불이 계속해서 타는 탓에 손발에 심한 화상을 입고 구조된 코알라의 모습들을 뉴스를 통해 보셨을 거예요. 당시 호주 산불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과 동물들, 식물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산불의 원인에는 분명히 기후위기가 큰 영향을 미쳤지만 호주 시민들은 호주 정부의 무능한 대응이 산불 피해를 키웠다고 비판했어요. 그러던 와중 한 동물의 이야기가 큰 관심을 끌게 됩니다. 바로 호주에서만 만날 수 있는 동물, 웜뱃의 이야기였어요. 

웜뱃은 호주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동물인데요. 땅굴을 파고 그 속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처음에 태어나면 ‘콩’처럼 아주 작지만 다 자란 성체는 길이가 120cm까지도 자란다고 알려져 있고, 캥거루처럼 아기주머니가 있어 태어난 아기 웜뱃은 생후 10개월 정도까지 엄마의 아기주머니 속에서만 지낸다고 해요. 또, 사람들을 좋아해서 어디든 마주치면 만져 달라고, 안아 달라고 다가온다고 합니다. 이런 웜뱃의 이야기가 왜 대체 화제가 된 걸까요? 

이 이야기는 한 트위터 이용자의 게시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호주에 큰 산불이 벌어지고 있을 때, 웜뱃이 위기에 처한 다른 동물들을 자기 집으로 안내하고, 집을 피난처로 내어주어 수많은 동물들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는 거예요. 그는 이런 면에서 호주정부보다 웜뱃의 리더십과 공감능력이 더 훌륭하다는 평가를 덧붙이기도 했지요. 이 소식이 알려진 후, 사실관계에 대한 확인도 이어졌어요. 그리고 동물행동 전문가들은 동물들이 웜뱃의 집을 피난처로 사용했을 가능성은 굉장히 크고, 웜뱃이 자신의 집에 들어온 다른 동물들을 내쫒지 않았을 것은 분명하지만 웜뱃이 화재로 인해 피할 곳을 찾는 동물들의 대피를 적극적으로 도왔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땅 속 깊은 굴에 옹기종기 모여 뜨거운 산불을 피했을 다종다양한 동물들의 모습을 떠올려보세요. 얼마나 두렵고 다급했을까요? 자기의 집을 선뜻 피난처로 내어준 웜뱃은 대체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혹자는 동물을 의인화하는 것에 대해 지나친 감정이입 또는 낭만주의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위기를 피해 자신의 집을 찾은 사람에게 집을 내어주는 웜뱃을 보며, 사람들이 사람들을 향해 닫아버린 많은 ‘문’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네요. 2010년부터 2020년간 한국정부의 난민인정률은 1.3%로 유럽연합을 제외한 G20에 속하는 국가 19개국 중 18위를 기록했습니다. 한국정부에 난민지위를 신청한 5만2천여명 중에서 655명만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것이지요.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에 따르면, 2020년 한 해에만 전 세계 39개 국가에서 무력분쟁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유엔난민기구의 2020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1년간 2,64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고, 국내실향민을 포함한 강제실향민 전체의 숫자는 8,240만 명에 달하며 난민으로 태어난 아기는 한 해 평균 29만 ~ 34만 명으로 추정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다급함과 두려움으로 피난처를 찾고 있을 이들을 떠올립니다. 포탄이 쏟아지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실향하게 된 사람들에게, 기후위기와 난개발로 인해 살 자리를 잃고 도시로 떠밀려오는 동물들에게 이 사회가 웜뱃의 동굴 같은 삶과 돌봄의 공간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피스모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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