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법무부가 지키지 않은 약속
⚖️
질문에 시달리는 스토킹 피해자
경향신문 뉴스레터
2023.02.10. 금요일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 주의 큐레이터 허남설 기자입니다. 딱 잘라 말하기 애매한 지점을 건드린 기사를 좋아해요.

지난 2월7일, 법원은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가해자 전주환(32)에게 징역 40년을 선고했습니다. 전주환은 2022년 9월14일 스토킹하던 직장 동료를 살해했어요.

가해자가 치러야 할 죗값만큼이나 중요한 쟁점이 있습니다. 바로 스토킹처벌법의 '반의사불벌죄' 조항입니다. 이 조항에 따라 스토킹 피해자가 가해자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히면, 가해자는 재판을 받지 않고 처벌을 면합니다. 그래서 스토킹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합의해 달라고 집요하게 요구합니다.

임아영 소통·젠더 데스크가 이 조항을 아직까지 살려둔 법무부를 비판하는 칼럼을 썼습니다. 기사는 약 3분 분량입니다.
☑️ 법무부는 2022년 9월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이후 스토킹처벌법의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그해 안에 없애겠다고 발표했다.
☑️ 스토킹처벌법은 2021년 4월 제정됐는데, 이 법에 대해 논의할 때 법무부는 반의사불벌죄 조항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었다.
☑️ 해가 넘어갔지만 법무부는 아직도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뺀 스토킹처벌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았다.
여성들의 피해는 왜 늘 뒷전으로 둘까
2023. 2. 9. 임아영 기자
2022년 9월18일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현장에서 한 시민이 희생자를 추모하는 내용을 적은 메모장들을 읽고 있다. 이준헌 기자
지난해 9월14일 서울 신당역에서 순찰을 돌던 여성 역무원이 사망한 다음날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신당역을 찾아 “국가가 피해자를 지켜주지 못했다. 대단히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터’에서 여성이 일하다 죽은 끔찍한 사건, 여성들의 분노가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 때처럼 커질까 두려웠을까. 그로부터 한 달 뒤 한 장관은 브리핑을 열어 스토킹 범죄에 적용되던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폐지하고, 온라인상 스토킹 범죄도 처벌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스토킹처벌법 개정안을 ‘직접’ 발표했다. 당시 법무부는 “11월 국회 제출 후 연내 국회 통과 추진 예정”이라는 일정표도 제시했다.

장관이 직접 브리핑을 열 만큼 사안을 챙기고 있다는 인상을 줄 법도 하지만 이전에 법무부가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어떻게 대했는지 살펴보는 게 순서다. ‘반의사불벌죄’는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형사처벌을 할 수 없는 범죄다. 여성에 대한 폭력 범죄에는 유난히 반의사불벌죄 조항이 끼어 있다. 스토킹 범죄뿐 아니라 가정폭력도 반의사불벌죄다. 강간죄와 강제추행죄도 반의사불벌죄였지만 가해자가 합의해달라고 피해자를 압박하는 문제가 반복되자 2013년에야 폐지됐다.

전주환도 스토킹 범행에 대한 합의를 요청하기 위해 피해자의 주거지를 찾아갔다. 이처럼 반의사불벌죄 때문에 가해자들이 피해자를 압박해 처벌의 수위를 낮추려 하는 일이 자주 발생하지만, 이 조항이 필요하다는 쪽에선 되레 피해자의 ‘선택권’을 높일 수 있다고 한다. 신당역 사건이 발생하기 1년 전 스토킹처벌법을 논의할 당시 법무부는 반의사불벌죄를 고집했다. ‘선택권’을 주장하고 싶었을까. 신당역에서 사람이 죽고 나서야 법무부는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폐지하겠다고 했다. 법무부 발표 이후 많은 언론들이 ‘반의사불벌죄 폐지’를 제목으로 선택했지만 ‘이제서야 반의사불벌죄 폐지하는 법무부’라고 적어야 적확한 표현이다.

‘실세 장관’이 있어서인지 요즘 법무부는 무소불위의 모습이다. ‘젠더 갈등’을 핑계로 중요 여성 이슈를 뭉갤 수 있다는 자신감일까. ‘비동의 강간죄 9시간 만에 철회 논란’은 그 정점이었다. 여성가족부는 형법상 강간죄의 구성 요건을 ‘폭행 협박’에서 ‘동의 여부’로 개정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법무부가 ‘신중 검토’ 의견을 제시했다고 맞받아치자 9시간 만에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주워담기 바빴다. 양성평등위원회가 심의·의결한 ‘제3차 양성평등기본계획’에 적시까지 한 내용이었지만 “윤석열 정부에서 새로 검토되거나 추진되는 계획이 아니다”라는 희한한 결론으로 끝났다.

부처 간 이견 문제도, 부처 간 힘이 밀리는 문제도 아니다. 부처 간 머리를 맞대 논의하고 양성평등위원회 심의까지 거친 정책을 담당 부처들은 부정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여성 이슈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리트머스 시험지 같은 풍경이다. 이런 풍경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힘을 잃고 흩어진다. 강간죄를 인정받기 위해 ‘죽을 만큼 저항했는지’를 입증해야 했던 수많은 사건들을 잊었는가. 여성에 대한 폭력은 ‘저항했는지’ 여부로만 판단하고 싶다는 주장에 어디까지 대응해야 하는가. ‘비동의 강간죄’는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가 한국 정부에 권고한 바 있는 사안으로, 국제형사재판소와 유럽인권재판소는 동의 여부에 따라 강간을 판단하고 있다는 얘기는 현재 상황에서 사치스러울 정도다.

스토킹처벌법 개정은 어떻게 됐을까. 지난해 11월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했던 정부 발의안은 아직도 국회에 올라오지 않았다. 왜일까. 여성들의 피해는 늘 뒷전으로 두기 때문이다. 1월에도 스토킹 신고에 앙심을 품고 옛 연인을 흉기로 찌른 50대 남성이 구속됐다. 피해자는 흉기로 여러 곳을 찔려 중상을 입었다. 팔짱을 끼고 법의 합리성을 따지는 남성들이 흘려보내는 시간 속에서 여성들은 죽을 위험에 처하고 또 죽기도 한다.

젠더 기반 폭력에 대응하는 법·제도 전반을 개선하기 위해 지난해 출범한 법무부 자문기구는 1년 동안 단 한 개의 안건만 논의한 채 활동을 끝냈다. 그러면서 법무부는 유엔 회원국들이 ‘4차 국가별 정례인권검토’에서 인신매매방지법을 거론하며 2017년 대비 인권이 더 신장됐다는 긍정 평가를 했다고 ‘홍보’했다. 그러나 회원국들이 피해자 보호 조치와 가해자 처벌 조항을 보완해야 한다는 권고를 내놓은 것은 알리지 않았다. ‘잘한 것도 있다’고 홍보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일관적이어야 한다. 여성들의 피해는 늘 뒷전으로 두면서 젠더 이슈를 액세서리처럼 쓰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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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범죄를 많이 접한 법조인과 여성단체 활동가는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두고 "가해자더러 피해자를 찾아가라고 부추기는 셈"이라고 말합니다. 경찰 등 수사기관은 이 조항 때문에 스토킹 피해를 입었다는 사람에게 "정말 처벌하길 원하세요?"라고 수차례 확인할 수밖에 없습니다. 피해자가 '합의를 유도하는 건가? 수사할 의지가 있는 건가?' 이렇게 생각하는 게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법무부도 약속을 어겼지만, 법을 바꿀 수 있는 국회와 정당도 말만 늘어놓습니다. "2월 임시국회에서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반드시 삭제하여 스토킹 피해자가 협박 등의 2차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겠다"(2월7일 국민의힘 논평)라고 하는데, 지금까지는 뭐했을까요.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서 검색해 보니, 신당역 사건 이후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삭제한 스토킹처벌법 개정안이 최소 10건 이상 등록됐습니다. 진행 상황은 모두 '접수'라고만 나옵니다. 법안을 내긴 했는데, 회의를 열고 논의한 적은 딱히 없다는 겁니다.

파급력 큰 사건이 일어나면 국회의원들이 앞다퉈 관련 법률 개정안을 내는 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미디어에 한번이라도 더 노출돼 얼굴과 이름을 알릴 기회라고 보는 것 같아요. 안전과 생명이 달린 일에는 그저 해야 할 일을 하길 바라봅니다.
 

🔗 모든 스토킹 피해자들에게 전하는 말

송란희 여성의전화 공동대표 인터뷰 기사입니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발생 직후 만나 이야기를 들었어요. 20여년 동안 피해자들을 만나면서 정리한 스토킹 범죄의 양상을 설명하고, 이 범죄의 심각성을 여전히 깨닫지 못하는 정부, 국회, 법원, 검찰을 비판했습니다. 그는 "그래도 달라지고 있다"라며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 3명 중 1명은 가해자 처벌 의지를 꺾는다

스토킹처벌법 내 반의사불벌죄 조항의 '힘'을 분석한 기사입니다. 이 법 시행 이후 등록된 판결문 218건을 모두 살펴봤습니다. 피해자 3명 중 1명이 가해자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밝혀 재판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는 조치가 될 징역형은 10명 중 1~2명에게만 선고됐습니다.
난방비 대란, 봄이 온다고 잊어선 안 되는 이유?

난방비를 놓고 정치권의 ‘네탓 공방’이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고지서에 놀란 민심에 지지율이 떨어지자 대통령은 “중산층까지 지원하는 방안을 알아보라”고 지시했다는데요. 아직 구체적 방안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제 곧 날이 따뜻해지면 우리는 이 문제를 잊게 될까요? 그래서는 안 되는 이유를 다음 회차 점선면에서 함께 알아봅니다. 에너지를 둘러싼 전 세계 상황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거든요. 이건 몇 달치 가스요금을 정부가 대신 내 준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니까, 우리 모두 조금 더 잘 이 문제를 이해해두는 좋겠습니다.

난방비와 관련해 궁금한 점 혹은 의견을 가지고 계신 구독자님, 많이 많이 남겨주세요! 다음주 수요일의 점선면에 반영합니다.
구독자님의 이야기
📬 어제 보내드린 점선면Lite 레터 <'거리의 눈'이 된 라이더들>편에는 따뜻해진 마음을 전해주신 독자님들이 많았습니다.

평화바람님은 "사회에 기여하는 모습들 건강한 사회를 함께 만들어가는 현장들이 생생하게 전달되어서 감동입니다"라고 하셨고요, 닉네임을 남기지 않은 다른 독자님은 "평소 라이더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이 팽패하던데 좋은 사례도 종종 보도 되니 부정적 인식의 개선이 하루 빨리 이루어졌으면 좋겠네요"라고 남겨주셨어요.

레터를 읽고 떠오른 취재 아이디어를 보내주신 분도 계셨는데요, 한 독자님은 "일상 속에서 자주 접하지만 그 속사정을 자세히 알기 어려운 직업(예를 들면 대중교통 운송 종사자, 각종 아르바이트, 환경정화 종사자)에 대한 심도있는 취재도 이루어지면 좋을거 같습니다"라고 제안하셨습니다.

꼼빠니아님은 "동네를 안전하게 하는 가게에서 떠오른 건데, 커뮤니티 내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는 공간들을 소개해주세요. 약국이라든지 부동산이라든지 등등"이라고 남기셨습니다.

📝 독자님들의 반응을 보고 다시금 깨닫습니다. 미디어는 항상 사회적 지위나 유명세가 비범한 소수의 이야기에 주목하지만, 사실 우리는 평범한 다수의 이야기에서 우리가 사는 세계의 진면모를 알 수 있다는 것을요.

'커뮤니티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는 공간'이라... 음. 누구에게나 그 중심이 하나씩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과 사람이 실제로 만나는 공간,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교회일 수도 있고, 경로당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아니면 많은 학부모들이 하교하는 아이를 기다리는 초등학교 정문 앞이나 근처 카페일 수도 있고요. 그런 장소를 주제로 쓴 도시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의 <제3의 장소>란 책도 살짝 추천해 봅니다!
경향신문 뉴스레터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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