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릉골을 지키는 사람들
7월의 코트워치
2026. 7. 18.

비영리 미디어 코트워치의 한 달을 보내드립니다.
'보통의 언론사'와는 조금 다른 활동 이야기들을 담았습니다.

함께하는 시간의 힘

6월 30일, '정릉골을 지키기 위한 연대문화제'가 열리는 날 정릉골에 갔습니다. 


낮은 언덕이 시작되는 길목부터는 마을버스가 운행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카카오맵이 알려주는 최단 경로에 길이 없어서 산책로가 있는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큰 바위를 가운데 두고 갈림길이 나왔을 때 연대문화제 장소를 안내하는 흰 종이가 보였습니다. 그 길로 굽이굽이 골목을 따라 올라가니 집이 한 채, 두 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오래전 닫힌 대문에는 '관계자 외 출입을 금하는' 경고장이, 담벼락에는 마을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적은 글과 그림이 있었습니다.


오르막길이 끝나는 곳이 정릉골 안골이었습니다. 

정릉골은 북한산 자락에 자리한 서울 성북구의 작은 마을입니다. 1960~70년대 서울 도심 개발로 밀려난 사람들이 터를 잡으며 마을이 형성됐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인 2012년, 재개발 정비구역으로 지정됐고, 2024년에 개발이 본격화하면서 대부분의 주민이 마을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마을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재개발 계획이 처음 공개된 공람공고일(2009년)을 기준으로, 그 이후 들어온 세입자들은 이주 대책 '비해당자'로 분류돼 아무런 보상 없이 떠나야 했고,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몇 세대는 마을에 남았습니다. 


남은 주민들은 세입자 대책 마련을 요구했지만, 돌아온 것은 법원에서 발행한 강제집행 계고장(집을 비우지 않으면 강제로 집행하겠다는 통보)이었습니다. 


이후 6월 한 달 동안 세 차례 강제집행이 시도됐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연대인들과 함께 그 시간을 버텼습니다. 정릉골의 집과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모인 연대인들은 마을에 상황실을 꾸려 언제 시작될지 모를 강제집행에 대비했고, 집행이 시작되면 사람들을 모아 집을 지켰습니다. 그렇게 세 번의 강제집행이 무산됐습니다. 

정릉골에서 오랜 시간 연대해 온 옥바라지선교센터 이은해 사무국장은 연대문화제에서 아래와 같이 발언했습니다.


"정릉골에서 사람의 힘을 많이 느꼈습니다. 강제집행을 막고 있던 사람이 10명이었다가, 30분이 지나면 50명이 되고, 1시간이 되면 100명이 되는 기적을 정말 맛봤습니다. 사람이 있다면, 모이는 힘이 있다면 그 어떤 것도 이뤄낼 수 있다는 용기를 저는 정릉골에서 얻었습니다."


정릉골 재개발 주거세입자대책위원회 김우권 위원장은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


세 번의 강제집행 시도 이후 성북구청이 꾸린 갈등조정위원회 논의를 통해 이주 대책에서 제외됐던 4개 세대에 대한 구제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김 위원장은 함께 마을을 지킨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여태껏 연대인들과 함께 어렵게 어렵게 투쟁하고 했던 것들이 내일이 지나고 모레가 지나고 그러면은 없어지겠죠. 그렇지마는 그 흔적들은 내 속에 남아 있을 겁니다.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나지 않고, 아무 형체도 없지만."


7월이 지나면 남은 주민들도 정릉골을 떠나고, 지금의 마을은 사라집니다. 


남은 시간 동안 주민들과 연대인들은 이곳에서 여러 행사를 열고, 마지막 여름을 보낼 예정입니다. 


* * *


7월 한 달 동안 코트워치는 정릉골을 비롯한 다양한 현장에서, '함께하는 시간의 힘을 믿는' 사람들을 인터뷰했습니다. 


처음에는 그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기록이라고 생각했지만, 모으고 보니 그들이 현장에서 연대하며 함께해 온 사람들과 시간에 관한 기록이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물이 담긴 새로운 소식은 8월에 전해보겠습니다.


비가 많이 내리는 토요일 오전입니다. 비 피해 없는, 평안한 주말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이 레터는 코트워치 후원회원 워처 91분의 지원을 받아 김주형 기자가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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