캬-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반가운 봄비 소식이 가득한 삼월 중순입니다. 
사실 겨울과 봄의 경계를 정신없이 보낸 터라
여전히 제 옷장과 집 구석구석에는 코트와 단단한 짜임의 스웨터로 가득한데요.
이렇게 봄비가 내릴 때마다, 회백색 범벅이었던
산의 색깔이 바뀌어 가는 걸 볼 때마다 봄을 아주 실감하고 있습니다. 
컴컴한 서랍에 갇혀있을 봄옷들을 얼른 꺼내줘야 겠다 다짐도 하고요.

봄과 설렘을 연결짓는 건 다소 뻔하지만,
전 뻔한 종류의 사람이라 다가오는 봄이 매번 기대되고 행복합니다.
도다리와, 쭈꾸미, 미나리, 두릅, 냉이와 달래도요.
벌써 향긋해 지는 기분이네요.

달래 튀김과 냉이전을 생각해서 그런지
오늘은 시원한 탄산 빠방한 술들이 끌리는 날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맥주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고 해요. 

이번 레터는 제가 좋아하는 봄 노래,  
함께 들으며 읽어주세요.  
*가사는 흐린 눈 하는 게 좋습니다!^^
오늘의 술
구독자님, 맥주 좋아하세요?
어쩐지 '술을 좋아하세요?' 보다 '맥주를 좋아하세요?'라는 물음에 더 답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맥주는 워낙 범위도 넓고 마니아층이 딴딴한 술이라서 일까요. 디깅하는 타입보다는 그저 들이 붓기만 하는 저라, 이런 질문이 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 지 망설이게 됩니다. 잘 모르긴 하지만 그래도 맥주는 자주 마시기도 하고, 좋아하기도 합니다. 맥주만이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기분은 분명 존재하니까요.

술은 마시고 싶은데 부담 없이 한 두 잔 즐기고 싶을 때, 맥주를 부르는 음식을 먹을 때, 3차를 하고 나서 도저히 다른 술이 들어가지 않을 때, 여행지의 레스토랑 테라스에서, 오늘은 낮부터 나른해지고 싶을 때 저는 맥주를 마십니다. 그리고 가리지 않아요. 가볍거나 무거운, 시거나 고소한, 탄산감이 많거나 드라이한, 도수가 높거나 낮은 모든 맥주를 다 좋아합니다. 
그리고 요즘, 맥주를 마시는 때가 하나 더 늘었습니다. 바로 퇴근 후 술자리에서 500cc 생맥주를 한 잔 먼저 들이키고 술자리를 이어가는 것인데요. 사실 몇 년 전에 먼저 취직한 오빠들이 이렇게 하는 걸 보고 몇 번 따라하다가는 잊고 있었는데, 최근에 다시 해보니 너무 좋은 거 있죠! 그때부터 중독되어서 요즘 소주나 맥주를 마시는 자리에서는 꼭 한 잔 쭉 마시고 있습니다. 나름 술 리추얼이라고나 할까요?😁

아, 이 술에는 조건이 세 개 있습니다. 
1. 퇴근 후여야 할 것
2. 가장 처음 마시는 술이어야 할 것
3. 가능한 한 원샷해야 할 것

평일에 술을 마시려고 모이면 정신이 없어요. 
외근을 갔다가 교통체증에 걸려 진이 빠진채로 도착한 친구, 아직 정신은 회사에 두고 몸만 여기에 온 친구, 갑작스런 야근에 아직 도착하지 않은 친구, 카톡이나 슬랙으로 울리는 업무 알람, 게다가 가게로 밀려들어오는 다른 직장인들까지.

다들 제각기로 번잡한 이 분위기를 한 번에 정리할 수 있는 게 바로 퇴근 후 오백 원샷입니다. 

주문을 할 때는 배에 힘을 빡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시끄러운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없어요. 직원들이 약간 한가해지는 틈을 타, 가게가 조용해지는 찰나에 "사장님 생맥 네 잔이요~"를 외친 후 주문이 들어갔는지 눈으로 확인합니다. 기본 안주를 깨작거리다 베테랑처럼 보이는 직원이 양손 가득 맥주 잔을 손가락에 끼고 저쪽에서 나타나면, 미어캣처럼 흘끔거리는 걸 멈추고 자리를 정리합니다. 수저와 휴지와 기본 안주를 한 쪽에 제쳐놓고, 손도 테이블 아래로 내린 채로, 온몸으로 이 곳의 맥주라는 걸 표현하죠. (이는 버스 정류장에서 내가 타지 않을 버스가 왔을 때 온몸으로 'X'를 표시하는 것과 닮은 비언어적 표현입니다) 결국 자리 위에 육중한 소리를 내며 맥주 잔이 내려지고, 손잡이를 단단히 잡은 채로 맥주 잔을 치켜 올립니다. 그리고 '짠-'
일순간 주변은 조용해집니다. 귀에는 내가 맥주를 꿀떡꿀떡 마시는 소리만 크게 들릴 뿐. 술집의 소음들은 저 멀리 사라집니다. 향긋한 보리 내음이 콧등을 간지럽히고 탄산이 북적이며 내 목을 지나갑니다. 꼴딱꼴딱 삼키는 소리는 심장 소리처럼 규칙적입니다. 둥- 둥- 저 멀리서 누군가 북을 치고 있습니다. 아, 차르르르 소리도 들리네요. 어느새 저는 드넓게 펼쳐진 청보리밭 한 가운데 서있습니다. 절경이네요. 천국이고요. 

크- 소리를 내며 잔을 탕 내려놓는 건 국룰입니다. 번잡했던 생각들은 맥주 탄산과 넘겨진지 오래고요.

그럼 이제야 술자리를 시작해 볼까 싶은 거죠. 
오늘의 술토리
#맥주빨리먹기대회
 꺼낼까 말까 망설였던 이야기지만 저는 맥주 빨리 먹기 대회에서 1등한 적이 있습니다. (절대 제가 직접 나간거 아님 ❌ 갑자기 손 붙들려 끌려간거 ⭕️) 그때까지 저는 한 번도 맥주를 빨리 마시려고 경쟁해본 적 없는 사람이었는데요, 어쨌든 나간 거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처음에는 마음도 급하고 해서 막 들이부었었는데 나름 이것도 공식이 있더라고요. 혹시나 저처럼 갑작스럽게 맥주 빨리 먹기 대회에 출전하실 수 있는 구독자님을 위해 팁을 놓고 갑니다(총총) 

맥주 빨리 먹기 𝕥𝕚𝕡
  1. 다리를 어깨 너비보다 조금 넓게 벌리고 지지하기
  2. 여러 잔의 맥주를 먹을 때, 맥주캔/병이 생각보다 무겁습니다. 두 손과 팔로 든든하게 잡아주세요. 
  3. 처음 맥주를 들었을 때, 내가 삼키는 속도와 맥주를 기울이는 각도를 맞추는 게 중요합니다. 우선 이것만 되면 절반은 성공입니다. 맥주캔/병을 너무 높게 들지 마세요. 팔도 아프고 맥주도 입으로 빠르게 쏟아져서 마시기 힘들어집니다. 
  4. 삼킬 때 빨리 먹겠다고 많은 양을 삼키려다가는 뿜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내가 마실 수 있는 적당한 양을 규칙적으로 삼키려고 해보세요. 처음 박자를 그대로 이어가는 게 중요합니다. 꿀꺽꿀꺽꿀꺽이면 계속 그렇게 가야 합니다. 옆 참가자들이 나보다 더 빨리 맥주를 내려놓더라도 초연하게 꿀꺽해야 합니다. 만약 여기서 평정심을 잃고 꺽꿀, 뀰껶, 껶을 하게 된다면 탄산 많은 맥주는 구독자님의 목에 걸려버릴 지도 몰라요. 
  5. 마지막으로 탄산을 의식하지 마세요. 오투잼이나 펌프같은 리듬 게임을 할 때 무아지경으로 누르던 손가락을 의식하는 순간부터 올퍼펙트는 깨집니다. 탄산도 그렇습니다. 꿀꺽의 박자만 신경쓰세요. 그러다 보면 의도치 않았던 맥주 빨리 먹기 대회의 1등을 거머쥐게 되고 말거예요. 

#맥주몇잔까지드셔보셨나요?
 맥주, 하니까 생각난건데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무제한 맥주 회식을 한 적이 있었어요. 이런, 보는것 보다 작은 위를 가진 저는 눈앞이 캄캄했어요. 저는 맥주 3병을 먹으면 안주도, 술도 먹을 수가 없기 때문이죠. 그런데 쇼케이스 안에 가득 들어찬 세계맥주를 보는 순간, 제 안의 의지가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회식 자리에는 맥주를 정말 잘마시는 사람이 둘 있었습니다. 등산을 갈 때 앞사람 발만 따라가면 어느새 정상에 오르듯, 전 그 분들이 새로운 병을 꺼낼 때 함께 따라가며 박자를 맞췄습니다. 결국 인생에서 가장 많은 맥주를 마실 수 있었어요. 무려 1N병을 마시고는, 2차까지 갔습니다.  

그 후로도 종종 맥주 많이 먹기를 시도해보지만 3병에서 늘 나락입니다. 그때 그 시절의 위와 템포, 두 동료. 모든게 맞아 떨어졌던 그때가 가끔 그리워요. 
산티아고술례길 술일기
마시고 걸어요 산티아고례길 3화⛰️
맥시멀리스트는 산티아고에도 맥시멀리스트로 배낭을 싸서 갔습니다. 배낭 무게는 그렇다 치고, 첫날부터 원래 가려던 루트로 갈 수 없다는 소식을 듣게 되는데...🙄

Q. 제 산티아고 배낭의 무게는 몇 kg 였을까요?
(여성 기준 보통 7~8kg) 
술이 술술들어가는 술집
여기 맥주 마시기 좋아요! 콸콸콸
📌 아현 테라스
✅ 호프집(오후에 문을 열어요!) 
🔊 테이블 간 간격이 있어 시끄럽지 않은 편 
💬 레트로한 분위기/돈까스안주는 꼭! 

 협소한 2층 계단을 오르면 펼쳐지는 정감있는 인테리어. 의자, 벽화, 맥주잔이 1990년에 멈춰있는 듯한 곳입니다. 인테리어 만큼이나 안주의 맛도 어렸을 때 먹던 그 맛을 닮았어요. 데미그라스 소스가 인상적인 돈까스안주, 케찹과 마요네즈를 섞은 맛이 나는 멕시칸사라다 등 옛 느낌 그대로입니다. 메뉴판도 재밌는데요, 싱가폴 슬링, 마티니 같은 칵테일도 있고 무려 팥빙수와 생과일주스도 있습니다!
tip. 맥주 1000cc를 시키면 예쁜 잔에 나올지도!
📌 고려대 삼성통닭 본점(오거리쪽)
✅ 치킨/호프집
🔊 공간이 넓어서 그다지 시끄럽지 않음

첫 짠을 하자마자 세 명이 동시에 '맥주에 뭐 탄거 아니냐'는 말을 했을 정도로 생맥주 맛이 좋았어요. 거짓말 조금 보태서, 여기서 맥주 만드는 거 아니냐는 생각도 했을만큼이요! 마늘 통닭도 최고최고! 여태까지 마늘맛이 발라진 치킨만 먹다가 마늘 소스랑 같이 끓여나오는 치킨을 마주하니 지금까지 먹은 건 모두 가짜였구나 싶더라고요. 요즘도 종종 생각나는 치킨입니다. (진짜 진심으로 먹고 싶어요 정말) 

그리고 동아리나 학과 모임 네댓개는 동시에 진행할 수 있을만큼 가게가 넓어 쾌적해요. 제일 좋은 건 맥주 흐름이 끊기지 않을 만큼 서빙이 빠르다는 거!
p.s. 다들 설문에 참여해주셔서 감사드려요. 
덕분에 읽어주시는 여러분을 부를 이름을 결정했습니다!
바로 '뱅이'로요! 너무 귀엽죠🥺
다른 좋은 별명들도 많이 보내주셔 결정하는데 시간이 정말 오래걸렸답니다!

설문에 참여해주시고, 좋은 별명 보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선물은 한 명만 선정해서 드린다고 했는데,
그럼 너무 야속할 것 같아 참여해주신 분들 모두에게 보내드리려고 해요.
이메일 적는 걸 깜빡하신 분들은 제게 한 번만 다시 말씀주세요! (메일/아래 피드백 링크 둘 다 가능)
(ㅇㅈㅈ, ㅊㅇㅅ, ㅈㅇ, ㅅㅊㄱ)
*보내주셨던 별명의 초성만 실었습니다! 

당첨된 분께는 적어주신 메일로 편지를 보내드릴게요 :-) 
+)
자유롭게 담소를 나눌 수 있는 담벼락을 만들었어요!
익명이니 편하게 이용할 수 있고, 빈 화면을 더블클릭하거나
오른쪽 하단의 '+' 버튼을 누르면 메모를 쓸 수 있어요. 
저도 레터에 싣지 못한 후일담이 있다면 여기에 적어놓을게요!  
많이 많이 놀러와주세요!

그럼 30일에 봐요 술독이들😘

오늘 술레터는 여기까지! 
모두들 술람찬 하루 보내세요! 
주(酒)-멘 - 🙏


◡◡◡오늘 레터는 어떠셨나요?◡◡◡ 


술레터(술 한잔, 레터 한 장)
2smming@kakao.com
수신거부 Unsubscribe😥😭(정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