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27. 세번째 이야기
70대 아버지, 30대 두 딸이 함께 취향을 담아 상상 속의 공간 '땡비'를 만들어가는 뉴스레터
오늘도 땡비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땡비에서 나눠볼 이야기는 '가장 좋아하는 말'입니다. 여러분에게는 마음에 울림이 생기기도 하고 왠지 모를 힘을 받는 그런 구절이 있나요? 인생에 훅 들어와 오랜 시간 함께 마음에 남은 말을 곱씹어보았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말을 되뇌이며 왜 이렇게 이 말이 좋은지 깊이 고민하고 글을 쓰다보니 말의 참뜻을 알게되어 더 좋아졌습니다. 이 에너지가 여러분에게도 전해지길 바라며 오늘의 땡비 시작합니다 🌱
기쁜 우리 젊은 날(@흔희)
  스무살이 된 1월의 어느 겨울 날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고등학교 때 짝이었던 친구가 같은 칸에 타고 있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서로의 목적지를 물었다. 그 친구는 대학생이 되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가는 길이라고 하였다. 나의 행선지는 서면이었다. 대형 재수학원에 등록한 후 첫 수업을 들으러 가는 길이었다. 같은 스무살의 시작이 갈리는 지점이었다. 나의 청춘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초여름의 계절을 좋아한다. 봄이 밀려가고 여름이 달음박치며 달려오는 이 시기가 좋다. 푸르게 녹음진 가로수 길을 건너다보면, 내리쬐는 햇볕 속에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다. 여름의 초입은 청춘과 닮아있다. 계절이 주는 청량감도, 삶의 제 2막을 시작하는 청춘이 주는 청량감도 모두 좋다. 그런 이유에서일까 나는 다른 말보다 유달리 ’기쁜 우리 젊은 날‘이라는 구절을 좋아한다.

  나는 늘 처음이 서툴고 적응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래서 ’기쁜 우리 젊은 날‘을 누리기 위해서는 조금의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초수에 미끄러진 대학 입시가 삼수로 이어졌다.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은 떠나가고 혼자 우두커니 남아 야간 학습을 마치고 학원 계단을 터덜터덜 내려갔다.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렀다. 같이 재수했던 친구들이었다. 독하게 마음을 먹고 연락까지 두절한 내가 보고 싶어 학원 문 앞에서 무작정 진을 치고 있던 참이었다. 옆 건물에 있던 패스트푸드점에 함께 올라갔다. 울컥 올라오는 눈물을 감자 튀김과 함께 삼키며 헛기침을 하니 친구가 콜라를 건네주었다. 지금은 다소 늦게 시작하지만 곧 내 청춘은 피게 될 것이고 그렇게 맞이한 청춘은 함께 기쁘고 찬란할 것이라고 소망하며 수험생활을 버텨나갔다.

  다행히도 삼수 끝에 나는 소망하던 대학생이 되었고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만큼 대학 생활을 활발하게 해 나갔다. 각자 대학 생활에 바빠 고등학교때만큼 늘 붙어있지는 못했지만 친구들과 짬을 내어 제주도로 여행을 가기도 했고 대학 축제로 주막을 운영하면서 손님으로 온 외국인과 함께 술을 주고 받으며 비욘세의 노래를 열창했던 적도 있었다. 졸업하여 주막을 찾아온 선배는 대학 생활이 인생의 방학같은 시기라고 말하곤 했다. 정말 방학같이 즐거웠던 세월은 잠깐이었다. ‘기쁜 우리 젊은 날’을 이제 누릴만한데 취업이라는 거대한 산이 버티고 있었다. 취업 시험을 준비하며 나는 또 3년간의 수험생활을 시작하였다.

  두번째 취업 시험은 소수점 차이로 최종 전형에서 아깝게 낙방을 하였다. 또 다시 1년을 버텨야했다. 도저히 제정신으로 견딜 수가 없어 서울에 있는 동생의 자취방으로 향했다. 서울역에서 누렇게 뜬 얼굴로 감자칩을 우적우적 씹어 먹으며 동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찌릿찌릿하게 살을 파고 드는 추위에도 불구하고 내가 선택했던 서울나들이 코스는 경복궁이었다. 2시간동안 이어지는 해설가의 설명을 아무 생각 없이 쫓으며 그렇게 현실을 잊어버렸다. 동생과 함께 희덕거리는 그 며칠간의 시간에서 위로를 받으며 부산으로 다시 내려왔다. 3월. 딱 한 달을 방황하고 다시 트레이닝복을 입고 독서실로 향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이 올 때마다 엄마는 3년 내내 독서실에서 봄을 보내는 큰 딸이 떠올라 눈물 지으며 거리를 다녔다고 한다.

 세 번의 시험을 끝으로 나는 취직을 하였다. 빨간 패딩에 파란색 트레이닝복 바지를 벗어던진 나는 원피스를 곱게 차려입고 다시 동생의 자취방으로 향했다. 3월의 그 추웠던 봄의 경복궁을 기억하며 따뜻한 봄날의 경복궁을 함께 누볐고 좋아하는 가수의 소극장 콘서트에도 들렀다. 관객들의 사연을 편지로 받아 즉석에서 노래의 가사로 불러주는 코너가 있었다. 입장하기 전에 동생과 나는 각자 엽서에 사연을 썼다. 가수가 읊조리듯 내뱉는 노랫말 속에 우리의 사연이 있었다. ‘우리 언니가 드디어’라는 소절로 시작하는 가사를 듣자마자 동생과 나는 서로를 쳐다보았고 함께 눈시울을 붉혔다. 
  어느덧 삼십대 후반이 되었다. 얼굴에는 기미가 올라오고 눈주름도 설핏설핏 지기 시작한다. 체중관리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운동을 시작하는 시기가 되었다. 친구들과의 만남에서 누군가가 물었다. ’우리는 젊은 걸까, 늙은 걸까?‘ 그러자 하나가 말했다. ’어리지는 않지!‘ - 이제는 안다. 인생이 늘 기쁘기만 할 수는 없다는 것을. 매 순간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그 노력이 늘 기대했던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사람마다 가슴에 외로운 섬 하나씩 안고 살아간다는 것도 안다. 어쩌면 ’기쁜 우리 젊은 날‘은 지나가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젊다고 하기에도, 늙었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그런 나이가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각자 인생의 부분에서 치열하게 공유했던 한 지점이 있는 사람들과 함께 늙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기쁜 우리 젊은 날‘에서 방점은 ’우리‘에 찍혀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있었기에 슬픈 날도 억울한 날도 버틸 수가 있었고 기쁜 날을 맞이할 수 있었다. 이제 우리는 늙어가면서 함께 우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시인 박준의 말처럼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같이 울면 덜 창피하고 조금 힘도 되고 그럴테니까 말이다.

그래도 함 해봐! @못골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기 너머로 오랜 친구인 A의 다급한 목소리가 전해진다. “야 동일아! 큰일 났다.” “무슨 일인데?” “응! 아내가 임신한 아이 지우려 금사동 K산부인과로 갔는데 수술이 잘못되어 아기 집을 드러냈다.” “수술에는 동의했나? 응! 그래 알겠다. 수업 마치고 바로 갈게”

수업을 마치고 주섬주섬 급히 가방을 챙겨 동삼동과 석대로 나누어지는 대로변 산부인과로 찾아갔다.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의사 면담을 요청했다. 의사는 “아이 터울 조절을 위해 임신중절수술을 했다. 수술 뒤에는 자궁이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면서 점차 수축이 되어 원래대로 자리 잡는다. 이번 경우는 계속 이완 수축만 반복하고 축소가 되지 않으면서 하혈이 심해 어쩔 수 없이 아기 집을 드러냈다”라고 한다. 그러면서 의사는 알코올 병 속에 있는 태아를 보여주며 자신들은 과실이 없다고 적극 변명을 했다. “수술 전 산모가 위험해지는 경우를 미리 확인하고 수술을 해야 하지 않나?” 하고 묻자 “수술 전에 체크하기 어렵다”라며 역시 자신들의 입장을 변명만 했다.


의료사고는 과실의 원인과 정도를 정하기가 몹시 어렵다. 판정관도 의사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잘못을 의사집단에 유리하게 판결하고 스스로 덮어버린다고 한다. “사전에 치밀한 검사를 하지 않아 예상치 못한 사고가 수술 도중에 발생한 것은 당신들에게 의료책임이 있다”라고 그들에게 이야기하고 병원을 나왔다. 친구는 “수술 전에 수술동의서를 달라고 해서 써 주었는데 괜찮겄나?”하고 묻는다. “그 상황에서 어떤 놈이 동의서 안 써 주겠노? 일단 써주고 그 다음에 일을 처리하는 게 순서다. 잘했다!”라고 하며 친구를 달랬다.


친구는 수술비, 입원비 때문에 사는 집을 전세로 내놓았다고 한다. “너무 서두르지 말고 잠시 기다려 봐라”하고 친구를 진정시켰다. 이미 입원실에 어머니와 친구 부인이 함께 있었다. 어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잘 해결될 것이라며 안심시켜 드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모두가 싸우기 어려워하는 의료분쟁이다. '어떻게 싸움을 풀어나가지?'하고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싸매고 묘안을 궁리해 봤다. 각종 전문적 지식은 의사가 갖고 있으니 수술 과정의 잘못을 알아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여론전이 대세라는 결론을 내렸다.

다음 날 지역 대표신문인 ㅂ신문사 직원인 친구에게 찾아가서 대충의 과정을 이야기하고 그에게 부탁했다. “기자라고 하지 말고 그냥 ㅂ신문사에서 왔다고 하고 의사 면담만 한번 해다오” 하니 “그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다”라고 한다. 그 친구가 다음 날 병원에 가서 “ㅂ신문사에서 왔다”라며 의사 면담을 요청하니 간호사가 “여름 휴가를 가고 병원에는 자신 혼자뿐이라”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이 친구 “뭐? 바캉스? 너거들은 생생한 사람 저렇게 만들어 놓고 휴가가 그렇게 중요하냐?” 하면서 의자를 들고 던졌다. (던졌을 뿐 다른 기물 파손은 없었다) 복잡한 분쟁 속으로 과감히 들어와 주는 친구의 우정이 고마웠다. 그리고 병원을 나왔다. 수고했다며 근처 식당에서 소주 한잔을 하고 헤어졌다.


다음 날 옆자리 영어 선생에게 이 사건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부탁했다. “어떻게 도와주면 되겠냐?” “혹시 방송국에 아는 사람 없나?” 하고 물으니 “지상파 방송국 보도국에 육촌형이 근무하고 있다”고한다. “옳구나! 궁하면 통한다는 말이 맞네!” 그래 이 내용을 간략히 이야기하고 “산부인과에 방송국이라며 확인해보는 전화만 한 통을 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퇴근을 하고 이 친구와 함께 다시 산부인과를 들렀다. “보호자 친구인데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라며 다시 의사에게 면담을 요청하고 사건의 경위를 물었다. 의사가 보기에는 보호자의 직업이 그냥 막노동하는 친구이니 얕잡아 볼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 사람의 주변에 문제 제기를 잘하는 사람들이 많이 어울려 있다는 일종의 심리적 암시를 의사에게 주어 당신 마음대로 원하는 대로 사건이 마무리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선전포고였다.

같은 내용이 반복되자 이 친구 역시 “의료 과정 중에 문제점이 있고 수술 자체가 합법적인 것은 아니지 않으냐?”라며 추궁을 했다. 그러나 의사는 역시나 자신들의 입장을 변명하며 책임 없음을 이야기한다. 면담 후 집으로 돌아왔다.

 

도저히 이길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 마무리해 나가지? 하며 몰려드는 스트레스로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다음 날 병원을 찾았더니 친구가 전하는 말. 병원에서 “방송국에서 전화가 왔더라며 이렇게 나가면 자신들도 굉장히 복잡하게 일을 처리할 수밖에 없다”라고 큰소리를 치고 돌아갔다고 한다. “오호! 병원도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구나! 누가 질긴지 한번 해보자”라는 오기가 돋았다. 입원실의 어머니는 싸움이 확대되는 것이 무섭다며 “그냥 전세금 빼내어 병원비 주고 퇴원하자”라고 한다. “어머니 좀 더 기다려 보세요! 좋은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하고 친구와 소주 한잔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11시경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병원에서 “일단 퇴원하고 병원비는 퇴원해서 갚으라”라고 한다. “어떻게 할까?” 하는 전화였다. 이제는 병원 측이 급해진 모양이구나. 입원비는 퇴원하면 청구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친구에게 “입원비 나중에 내라고 하는 것은 안 받겠다”라는 표시다. “일단 병원비 지급 없이 집으로 퇴원을 해라”라고 하니 친구도 그렇게 하겠다고 한다. 그것으로 그 사건은 끝났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가니 나보다 나이 많은 친한 선배가 기다리고 있었다. 근처 시장에서 사 온 싼 선어회를 함께 먹으며 이야기를 듣고 씨-익 웃는다. “그래서 네가 좋다”는 말이 그의 얼굴에서 뿜어 나왔다. 되지 않을 것 같은 불가능한 일도 부딪쳐 보고 나서 좌절하면 그 일에 대한 후회가 남지 않는다.

 

그래도 한번 해보지 않고 중도에 한 포기로 무산되어 버린 안타까운 경우도 있었다.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고등학교 진학을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고민으로 생각이 꽉 차 있을 때였다. 우리 집에 소녀가 물을 길으러 왔다. 서너 채 앞쪽에 있는 붉은 색 서양식 기와집에 살았다. 상의에 붉은색 니트를 입고 둥근 얼굴에 하얀 피부의 충청도 소녀였다. 몇 번 지나치다 어느 날 대담한 용기를 내어 물어보았다. “이름이 뭐예요? 한혜련이어요!” 참새 가슴처럼 콩닥거리는 마음을 감추고 만남을 물었다.

추석을 앞둔 때였다. 저기 국보극장 앞에서 추석 전날 4시 기다릴게요. 그렇게 일방적 약속을 했지만, 소녀는 ‘이다, 아니다’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모르는 머슴아가 만나자고 할 때 어떻게 할 것인가? 이도 저도 아닌 그런 애매한 반응 말고 또 어떻게 반응할 방법이 있나? 혼잣말로 스스로 위로를 하며 기다려 보지 뭐! 하는 심정이었다.

추석 전날이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진다. 내가 일방적으로 정한 약속, 이런 궂은 날씨에 올 리가 만무하지! 이런 날씨에 바람맞고 비참해질 자신을 생각하며 스스로 한 약속을 스스로 뭉개 버렸다. 며칠이 지나고 그 소녀가 다시 집 수돗가에 물을 받기 위해 서 있었다. 마주치자 들릴 듯 말 듯 한목소리로 “그 날 왜 안 나왔어요?” 하는 책망의 말이 마음을 후려쳤다. 그랬구나! 하고 후회가 앞섰지만 이미 일어난 일, 미안한 마음에 어떤 말도 못 하고 얼굴만 붉어진 채 밖으로 나와 버렸다. 그 날의 무책임을 사과하고 다시 만나자고 하면 될 텐데 융통성 없는 어린 마음에 후회만 안은 채 그대로 끝이었다. ‘그 날, 그 소녀는 얼마나 낙심했을까?’ ‘그래도 한번 가봤어야지!’ 하고 최선을 다하지 않은 돌이킬 수 없는 후회였다. 그날의 충격을 평생 잊지 못한다.

 

임용시험에 계속 낙방하자 좌절하여 응시원서를 냈지만, 시험을 치르지 않으려고 하니 아내가 등을 떠밀어 시험장으로 갔다. 그래서 치른 시험에 합격하여 학교로 진입하게 되었다. 운전면허증 교부 때도 시간이 넘어 '신청하러 가도 접수해 줄까?' 하고 회의감이 들었지만, 접수하니 그래도 받아준다. 되지 않을 것 같은 일들이 성사될 때는 그 성취감으로 삶의 희열을 느낀다. 저 아가씨에게 만나자고 해볼걸. 하고 마음만 졸이다가 흘러가 버린 경우는 후회가 남지만 만나자고 하여 딱지 맞으면 후회도 미련도 남지 않는다.

우리 인생이 그러하다. 미리 포기할 것이 아니라 안 되는 것은 나중에, 결론 뒤에 포기해도 포기는 늦지 않다. 가장 하기 쉬운 것이 중도 포기이다. 우리들의 중도 포기는 대개 90% 정도의 성취가 이루어졌을 때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이 고비를 넘길 수 있는데 지금 수준을 지나치게 하향평가하고 포기해 버리는 것이다. 참 안타깝다. ‘그래도 함 해봐!’ 하고 자신의 투지를 고조시키는 스스로에게 하는 마음의 소리가 필요하다. 재담가 김제동이 “로또 복권이라도 사고 나서 안 된다고 불평해라!”는 말이 맞다. 할 수 있는 데까지 자신이 최선을 다해 보는 것이 우선이다.

최선을 다한다고 모두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루어질 가능성은 매우 커지지 않을까?

신호등이 깜박일 때 건너갈 수 있을까 하고 의심 속에 건너보면 시간이 남는다. 선택의 순간이 되면 “그래도, 함 해봐”를 늘 마음속에서 불러낸다.

 그럴 수 있죠(@아난)

사람마다 각자의 틀이 있다. 그 틀을 중심으로 이 사람을 곁에 두고 싶은지 아닌지 선호도를 결정한다. 말투, 성격, 가치관 등 살아가면서 쌓이는 다양한 정보들이 각자의 틀을 견고하게 만든다. 나는 내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비슷한 유형의 사람들과 함께 해왔다. 학생일 때는 주변에 맞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거리를 두고 보지 않으면 되었다. 그런데 직장생활을 시작으로 원하지 않는 사람과도 부대끼며 지내야 한다. 거기다 어린 시절부터 가까웠다고 생각한 사람들에게서 커보니 다른 면이 드러나 놀라기도 한다. 주변에서 겪어본적 없던 상사들의 구시대적 사고관, 성차별적 발언, 불합리한 사회구조를 답습하는 또래들의 일상적인 발언들이 내 심장을 빨리 뛰게 했다. 나는 이런 다른 틀의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반발했고 바꿔야된다고 생각했다. 

그런 나의 심장을 가라앉힌 내 인생의 무게 중심 같은 말이 있다. 바로 ’그럴수 있죠‘ 다. 꼭 내가 당신과 같은 생각이 아니더라도 상대를 존중하면서 예의를 지키는 발언이다. 틀림이 아니라 다름을 이해하면서 마음에 여유를 키워나갈 수 있는 말이다. 이 말이 내 인생에 들어오기 전에는 내 입장을 상대에게 이해시키고 납득시키려다 진이 빠졌다. 그러나 지금 나는 굳이 내가 상대를 다 이해할 수 없고 아무리 말로 항변해봐도 상대도 나를 이해할 수 없음을 알기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렇게 생각할수도 있죠‘라고 되새기다보면 상대방은 상대방, 나는 나로 구분된다. 내가 상대가 이해가 되지 않듯 상대도 내가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서로 있는 그대로 있을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두는 말이다. 

’그럴 수 있죠‘는 내가 겪어온 싸움의 전형적인 패턴을 끊어주는 말이기도 하다. 보통 싸움의 패턴은 A라는 문제를 두고 나와 상대가 싸우면서 시작된다. 그러나 A를 두고 기분이 상한 쪽이 거친 말이나 행동을 하면 그 상황 자체가 또다른 싸움으로 전환이 된다. “너 말투가 그게뭐야. 건방지게 말이야. 왜 소리쳐“ 라는 식으로 A라는 문제의 논점은 사라진다. 말꼬리를 잡거나 비슷한 과거의 일까지 다 등판하며 왜 갈등이 일어났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고 서로 비난하고 상처준 말만 남게된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그럴수 있죠”는 패턴을 깨부순다. ’어? 이쯤이면 짜증내야 하는데‘ 하는 순간에 침착하게 상대의 눈을 보며 ’그래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죠‘라고 하면 대부분의 상대는 당황하며 싸움이 중단된다. 함께 버럭해야할 상대가 생각을 존중해주면서도 예의를 지켰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명확하게 자신과 선을 그으면서 ’당신의 생각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럴 수도 있다는 공감은 된다.”로 끝이 난다. 

‘그럴수 있죠’를 말하며 나는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만큼만 진심을 눈동자에 담고 말한다. 굳이 이해가 되지 않는데 나를 져버리면서까지 거짓된 눈동자로 말할 필요는 없다. 지금 이 갈등에서는 한 쪽이 다른 한 쪽의 감정을 받아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럴수있죠‘는 내가 먼저 서로를 향한 자극을 끊어내고 대화의 전환을 만들어내는 말이다. 갈등 중에 이 표현을 내뱉는다는 것 자체에 ’존중‘이 이미 담겨 있기 때문에 무리할 필요가 없다. 내가 억울하고 내 생각을 상대에게 납득시키고 싶듯이 상대도 분명 같은 마음이기에 갈등이 일어난다. ’그럴수있죠‘는 우리 모두 사실 ’같은 마음‘인 것은 이해가 충분히 되지만 ’같은 생각‘은 아니라는 점을 전달한다.

이 말이 내 인생에 들어오면서 내 삶은 한결 수월해졌다. 특히 ’이유없이 무례하게 대하는 사람은 왜 저럴까?‘ 라는 것이 오랜 의문이었는데 이해하게 되었다. 무례한 사람들은 자신만의 틀에 맞춰 상대에게 원하는 답과 반응을 바라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것을 구체적으로 말할 능력은 없고 상대가 내심 알아서 해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 틀을 벗어나면 화가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사람을 자극한다. 이럴 때 심장이 빨리 뛰는 사람이 진다. 무례한 사람이 이상한 말로 자극 할 때 ‘원하는 답은 안 나오고 성에 차지 않아서 자극하는구나.‘로 생각하고 ’그러셨구나‘하고 넘기고 만다.

회사에서 사수와 큰 갈등을 겪은 적이 있다. 나의 사수 B는 반드시 저녁 회식이 필요하다고 했다. 반대로 나는 점심 회식으로 충분하다고 하였다. B는 저녁 회식이 직원 단합에 있어 가장 효과적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나는 B에게 시대가 변했고 저녁회식은 다음 날 업무에 지장이 있어 효과적이지 않다고 직언했다. 그러자 B는 ’이번 프로젝트 기간 동안 우리는 저녁회식이 없다‘고 공표했다. 나는 B에게 ’이 시대의 리더‘라며 박수와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그의 말이 바뀌지 않도록 직원들 앞에서 말했다. 그러나 B는 다음 프로젝트에서 곧바로 저녁회식을 부활시켰다. 지난 프로젝트에서 직원들 간 사이가 좋았음에도 저녁 회식이 없어서 분위기가 안 좋았다는 사실과 다른 이유를 갖다붙였다. B가 다시 연 저녁 회식에서 그는 직원들에게 어서 힘든 점을 말하라고 했다. 그러나 직원들은 ’지금 이 힘든 점을 말하라고 하는게 제일 힘들다‘고 말하며 지하철 막차 시간을 보기에 바빴다. 그러자 B는 이제는 직원 한 명 한 명에게 가서 힘든 점을 말하라했다. 그 때 깨달았다. B의 해소구가 필요했던 것이구나. B는 술의 힘을 빌려 자신이 힘든 것을 털어놓고 싶은데 아무도 털어놓지 않자 '단 한 명이라도 먼저 털어놓으면 나도 털어놓을텐데' 하며 누군가 필요했던 것이다. '무슨 아직도 저녁회식 타령이냐'면서 꼰대라며 B를 종종 까던 내가 이제는 ’그럴수있죠.‘하고 넘긴다. 여전히 나의 생각은 변하지 않았기에 술의 힘을 빌려 말해놓고 기억도 못할 바에야 맨 정신에 힘든 점을 서로 대화하는게 낫다고 본다. 그래서 나는 내 나름대로 저녁회식 없이 동료들과 소통하며 잘 지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틀이고 저녁 회식은 B가 원하는 틀이기에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저녁 회식을 없애게 만든 과거의 나를 B가 맹비난하며 자극해도 심장이 빨리 뛰지는 않는다. 힘들다는 말이구나. 이야기가 하고 싶다는 말인가보다. 그럴 수 있다. 

별별 인간들이 나를 속시끄럽게 하며 자극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이해가 안되더라도 우선 ’그럴수있죠‘를 내뱉고 본다. 나를 지키는 방패막이자 상대에게 존중을 표현할 수 있는 말로 갈등의 방향을 확 바꿔버린다. 그리고 다시 되뇌인다. 이 말과 함께 하다보면 정말로 상대가 그렇게 생각할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내 마음의 여유공간이 한껏 넓어지는게 느껴진다. 편안하게 뛰는 내 심장소리를 느끼며 나를 다독인다. 

너무 애쓰지 않아도 된다. 당신도 나도 다 그럴수 있다. 
🍯 땡비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 소개
 - 못골👨🏻‍🎨 : 한 평생 아이들을 가르치고 사진을 찍어왔다. 한계를 넘어 뭐든 끝까지 가는 남다른 의지력을 지녔다.
 - 흔희👩🏻‍🎤 : 눈치를 보지않아 어디서나 '인간 사이다'로 불리나 K장녀로 은은히 돌아있다. 직업 때문에 생계형으로 낱말수집을 한다.
 - 아난👩🏻‍🍳 : 목구멍 보이게 웃는 큰 리액션과 미친 에너지 때문에 '어린 짐승'으로 불렸다. 빵을 굽는 방구석 빵수니. 
오늘의 땡비 어땠나요?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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