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석가탄신일에 등산에 다녀왔습니다. 새로 산 등산화와 친구들과 함께요. 제대로 된 등산은 처음이었지만, 그동안 헬스로 다져온 체력을 믿고 초중급 난이도라는 대둔산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웬걸 입구부터 만난 엄청난 경사에 금세 숨이 차더라고요. 등산로 초입에 만난 아저씨가 건넨 정상까지는 오래 안 걸려요. 근데 그 말은 엄청 가파르다는 거죠.”라는 말에 겁도 먹었고요. 그런데도 그냥 조금만 더 가보자, 저기까지만 가보자하면서 한 발짝씩 계속 뗐습니다. 숨이 차면 바닥이 어떻든 앉아 쉬기도 하고, 뒤에서 누가 오든 신경 쓰지 않고 제 속도를 유지했죠. 그러다 보니 정상에 도착하더라고요. 도착하고 나니 과정이 어떠했든 결말을 냈다는 성취가 엄청 컸습니다. 이 기쁨을 노가리클럽 부원들에게도 나눠주고 싶어요. 그래서 오늘 메뉴는 과정이 엉성한들 어쨌든 끝장을 보는 영화를 준비했습니다. 오늘의 추천 메뉴 <카메라를 멈추면 안돼!>입니다.
명심하세요, 38분부터가 진짜입니다!
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돼!>

<카메라를 멈추면 안돼!>의 시작은 원테이크 좀비 액션 영화입니다. 약 37분에 걸쳐 좀비물이 재생되죠. 좀비물이기에 실감 나는 CG가 중요하지만 완성도는 높지 않습니다. 배우들의 어색한 좀비 연기, 허접한 분장과 소품, 서투른 카메라 앵글까지 좀처럼 관객들은 좀비 세상에 과몰입할 수가 없죠. (실제 영화 자체도 저예산으로 만들어졌다 보니 유명 배우 하나 등장하지 않아요.) 그런데 왜 추천하냐고요? 이 영화는 원테이크 좀비물이 끝난 38분부터가 진짜이니까요.


38분부터 시작되는 제2막은 이 영화를 찍는 사람들을 비춥니다. 쉽게 말해 좀비물을 원테이크로 찍기 위해 우여곡절하는 앵글 뒤의 영화인들 이야기인데요. 이 좀비물의 감독 '히구라시'는 방송사로부터 "원 테이크 좀비 영화를 찍어달라"는 요청을 받습니다. 퀄리티는 보장하지 못하지만 촬영을 끝내기는 하는 B급 영화 감독으로 알려진 '히구라시'는 어렵사리 제안에 승낙을 하고 촬영에 나서지만 금세 복병을 만납니다. 발연기를 하는 배우 탓에 같은 장면을 40번이 넘게 찍어야 했거든요. “연기를 그따위로밖에 못 해? 영혼을 담아서 좀 하라고!”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배우의 연기에 화가 난 히구라시는 밖으로 나가버리고 촬영은 중단되죠.


이때 한바탕 소란이 일어나는데요. 화가 난 감독 때문이 아니라 ‘진짜’ 좀비가 나타났기 때문이에요. 진짜 좀비는 스탭에게 다가가 공격을 가하기도 하고요. 허접하던 촬영 현장은 진짜 좀비가 나타나는 리얼 공포 현장으로 뒤바뀝니다. 배우들도 가상의 상황이 아닌 진짜 좀비를 피해야 하는 상황을 직면해요. 물론 감독도요! 그런데 감독은 괜히 감독이 아닐 터. 감독은 실제 좀비에게서 도망치는 배우와 스탭들을 따라다니며 촬영에 나섭니다.


“바로 그게 진짜 연기야! 카메라를 돌려! 지금부터 절대 카메라를 멈추면 안돼!”


좀비를 보고 공포에 떠는 사람들의 모습을 여실히 카메라에 담죠. 일부러 좀비를 유인해서 실내로 데리고 오기까지 하고요. 어떻게든 촬영을 해내려는 감독의 모습에 스탭들도 그의 지휘에 맞춰 움직이는데요.

<카메라를 멈추면 안돼!>는 카메라 밖에서 펼쳐지는 또 다른 차원의 세계를 구경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감독과 스탭들은 돌발상황이 생길 때마다 부단히 임기응변을 하고,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발휘해요. 이런 장면은 웃음을 넘어 감탄을 자아냅니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현장감까지 느껴지죠.


저는 이들이 카메라를 멈추지 않고 엔딩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인생과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인생은 아무리 각본을 짜두어도 수많은 돌발상황과 우연으로 쉽게 틀어지기도 하잖아요. 계획대로 되지 않는 세상일지만, 포기하지 않는 한 엔딩은 오기 마련이고요. 인생은 “잘 되면 컷, 안되면 N.G” 할 수 없다는 게 다르지만요.


감독은 진짜 좀비가 나타난 상황을 어떻게 담아냈을까요? 이 결과는 영화의 후반부에서 알 수 있는데요. 굉장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말을 아끼겠습니다. 감독 히구라시가 어떤 끝장을 냈는지는 영화에서 직접 확인해보세요!

영화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

말 그대로 난장판인 영화. 라디오 드라마 생방송을 위해 성우 네 명이 모입니다. 이 중 ‘녹코’라는 스타 성우가 대본을 제멋대로 바꾸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예요. 녹코는 무작정 자신의 극 중 이름을 바꾸고, 자신의 어머니가 미국인이라는 세부 설정까지 바꾸죠. 초기 극본과 완전히 달라진 수정본을 무사 송출하기 위해 제작진은 이리저리 뛰어다닙니다. 소금을 공수해 빗소리를 내고, 청소기로 로켓 소리(어느덧 배경은 우주가 됐습니다)를 연출하죠. 이들의 놀라운 연출력이 궁금하다면 이번 주말엔 이 영화 앞에 앉아 보세요.

영화 <썸머 필름을 타고!> 

사무라이 영화를 좋아하는 주인공 ‘맨발(극 중 별명)’이 자신이 쓴 시나리오로 감독 데뷔에 도전하는 영화입니다. 문제는 촬영, 연기, 연출 모든 게 처음이라는 거죠. 맨발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모으는데요. 이들과 함께 고민이나 취향을 나누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요. 좋아하는 것을 말할 때면 잔뜩 상기된 볼, 자신이 무언가를 좋아하는 이유가 상대에게 가 닿을 때까지 열심히 설명하는 행위 자체를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해진달까요.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 그리고 시작하는 마음을 다잡고 싶을 때 추천하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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