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 아빠의 유혹

Fathers’ Note

자다가 인기척에 일어나면 발치에 막내 아이가 강아지처럼 자고 있기도 하고 새우잠을 자고 있기도 하죠. 아빠는 밤마다 찾아오는 아이를 옆에서 재워야 할까요? 아니면 아이들 침대로 돌려보내야 할까요? 이번 레터는 아들 셋 아빠 정우님이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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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 발끝에 뭔가 차인다. 잠결에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막내가 애착 베개를 안고 강아지처럼 발치에 잠들어있다. 뭐 이렇게 사랑스러운 존재가 있지? 한참 아이의 이마를 쓸고 손가락 발가락을 조몰락거리다 좁은 슈퍼싱글 침대 벽 쪽에 눕힌다.

세 아이 모두 거친 과정이었다. 수면교육이 적성에 맞았는지 세 아이 모두 백일 무렵부터 우수한 성적으로 혼자 자기 교육을 이수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네다섯 살이 될 때쯤 잠이 안 와서, 무서워서 아빠 침대로 왔다. 형들도 얼마간 그러다가 이제는 한 번 잠이 들면 잘 깨지도 않는다. 경험상 막내도 곧 아빠 침대를 더는 찾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밤손님이 아주 약간은 성가시면서도 더 자주 더 오래 머물렀으면 하는 마음이다. 때로 아이들을 아이들 방에서 재울 때 막내에게 윙크한다거나 귓속말로 ‘자다가 무서우면 아빠 침대로 오라는 신호’를 보낸다. 아이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아내는 이게 영 못마땅한 모양이다. 아내도 마음이 여려 아이가 침대로 오면 늘 안아주고 옆에서 재우곤 했었다. 하지만 일정 시기가 지나자 아내는 더는 아이를 받아주지 않았다. 밤 중에 찾아온 아이를 안아주기는 했지만 다시 아이 침대로 돌려보내 재웠다. 때가 되면 새로운 ‘규칙’이 생기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아이들은 이 새로운 규칙들을 이해하거나 납득하지 못한다.

아내는 아이들에게 엄격한 편이다. 특히 ‘규칙’에 대해서는 더. 아이들은 저녁 9시에 잘 준비를 모두 마치고 침대에 누워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늦어도 8시 45분에는 양치를 해야 하고 그러려면 8시 30분에는 거실과 방을 정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꼭 이렇게까지 엄격하게 해야 되나?’하는 마음을 늘 갖고 있었다. 아내가 약속이 있어서 늦게 들어오는 날이나 너무 피곤해서 일찍 잠든 날이면 나는 아이들에게 조금 더 놀다가 자라고, 평소보다 조금 늦게 자는 게 대수냐면서, 좋은 아빠라도 된 것처럼 손쉽게 말한다.

외출할 때도 마찬가지. 선선한 날씨에도 아내는 아이들을 최대한 따뜻하게 입혀서 나간다. 나는 날이 조금 풀렸다 싶으면 아이들 겉옷을 입히지 않고 나간다. 아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분명히 덥다고 겉옷을 벗어던질 것이다. 아내가 같이 없다면 그 벗어던진 겉옷은 내가 혼자 들고 다녀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감기라도 걸리면 머쓱한 변명을 시작한다.

‘아이들은 아무리 꽁꽁 싸매도 감기에 걸려’

‘어릴 때 자주 아파야 나중에 커서 덜 아프대’

‘오히려 지금 감기에 걸린 게 잘 된 거야’

이 정도 수준으로 고도의 합리화(?)가 진행되면 아내의 이마에 힘줄이 솟는 게 느껴져서 멈칫한다. 지금 당장 조금 더 편하자고, 더 아이들을 위한다고 규칙이 느슨해지면 결국에 그 부담은 고스란히 엄마에게 간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아빠가 몰래 준 초콜릿을 받아먹은 아이들은 엄마가 주는 건강한 간식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아빠가 조금 늦게 자도 된다고 한 날이면 다음 날 아침 기상 시간부터 엄마가 만들어놓은 규칙들이 차례차례 깨지기 시작한다. 감기에 걸린 아이는 아빠보다 엄마를 찾는다. 엄마가 어렵게 만들어 놓은 규칙에 아빠가 쉽게 구멍을 내고 그 구멍은 엄마가 다시 어렵게 메우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빠가 아이를 유혹할 수록 엄마가 더 힘들어지는 것이다!

늦은 밤 아버지들이 전기 통닭을 사와 자는 아이들을 깨워 같이 먹었다는 이제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다. 아이들은 자다가 느닷없이 맛있는 통닭을 먹어서 좋고. 아버지들은 평소에 부족했던 사랑을 보여줄 수 있어서 좋고. 어머니들은.. 마냥 좋을까? 물론 모두가 흐뭇한 그림이다. 하지만 아이들을 다시 재우고 다음 날 아침부터 다시 규칙적인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면 흐뭇한 마음 한 켠에 불안이 자리할 것이다.

아내가 일이 있어 이른 아침에 집을 비운 날이었다. 일어나보니 아이들은 이미 찬장에서 그릇과 시리얼을,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서 먹고 있다. 아이들 옷을 꺼내 놓으면 아이들이 스스로 옷을 입는다. 아이들이 준비하는 동안 얼른 샤워를 하고 나왔다. 이제 학교 가자고 말하려는데 아이들은 입에 칫솔을 물고 있었다. 나는 양치를 하고 학교에 가야 한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엄마가 만들어놓은 규칙을 잘 따르고 있었다. 엄마가 자리에 없음에도. 아무도 시키지 않았음에도. 규칙과 시스템은 작동하고 있었다.

그 일이 있고부터 아이들을 유혹하는 횟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막내가 애착 베개를 안고 강아지처럼 발치에 잠들어있는 횟수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여전히 얼굴에 점을 찍고 나타나 아이들을 유혹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생기지만 아내가 만들어 놓은 규칙에 최대한 맞추려고 한다. 그 규칙이 만들어낸 시스템이 모두를 위한 것임을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