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남의 인생을 사는 일이다. 제가 좋아하는 김영하 작가가 한 말입니다.
매거진 지금부터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세상이 연결되는 282북스의 온라인 매거진입니다.
#19_잠시 그 사람의 인생을 살아보는 일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남의 인생을 사는 일이다."

제가 참~좋아하며 덕질하는 김영하 작가가 한 말입니다. 저는 여기에 살짝 말을 덧붙여 봅니다.

"남의 인생 이야기를 듣는 것은, 잠시 그 사람의 인생을 살아보는 일이라고."

 

탈가정 청년들과 <궤도이탈; 청년 독립 선언>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하는 활동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방향성은 청년들의 세계관 확장하기에 맞춰집니다. 그리고 세상을 다시 연결해주는 일을 덧붙이죠. 우리 청년들에게 세상은 종종 낯설고, 때로는 적대적이기도합니다. 혼자가 되는 법은 이미 배운 친구들이지만, 함께 살아가는 법은 아직 배워야 할 때가 많습니다. 


이번 호는 지역으로 내려 간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 살아가는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지난 8월 다녀 온 여름 캠프에서 진행 된 지역 청년과의 잡담회를 기록해봤습니다.


누군가의 성공담이나 영웅담이 아니라 우리 친구들과 또래인 청년들이 겪은 실패와 선택,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잠시 함께 살아보는 경험이 청년들의 세계를 조금 더 넓히고, 다음 한 걸음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거라고, 믿어봅니다. 


이번호는 이야기가 깁니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읽어봐주세요.


“ 당신은 어떤 이야기를 가진 사람인가요? 언젠가 우리 청년들과 만나 그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Edit. 미쉘 -


발행일 2025. 9. 30

탈가정 청년들의 가지가지 여러가지 활동들
2025년 9월 <어쩔수가 없다> 영화보기!
서울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아너소사이어티 청청모 회원이신, 퍼스트룩의 두 대표님이 이번에도 영화데이를 만들어 주셨어요. 이번 영화는 핫!!하고 핫!!한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 없다>입니다. 처음 오프라인에 참여한 친구들도 있어서 더더욱 반가웠고요!
청청모 회원이신 심재원 대표님의 용돈으로 맛있는 저녁까지 호로록 먹고 즐거운 시간 보내고 왔습니다. 🎞
2025년 10월 추석 모임은 <고궁 나들이>
추석모임! 오는 10월 4일, 추석을 맞아 다 같이 한복 입고 경복궁 나들이를 갑니다. 가을을 한 껏 느끼고 올 예정이에요!

더불어, 우리 청년들 커뮤니티 내 소모임으로, 명절 당일 노숙인을 위한 배식 봉사를 가기로 했다지요! 탈가정 청년들의 노숙인 배식 봉사라니...! 의미있는 활동을 기획하고 움직이는 우리 청년들 너무 멋집니다!
얘들아 밥먹을 시간이야, 첫 번째 시간!

탈가정 청년 밥챙김 서비스 <얘들아, 밥먹을 시간이야> 첫 번째 시간이 진행되었습니다.
9월의 식단 <불고기, 콩나물국, 어묵볶음, 계란장조림, 콩나물 무침>으로 밑반찬을 만들어 봤습니다. 이달의 요리사는 자취왕 미쉘! 일주일치 밑반찬을 만들어 보는 시간이었어요.

줌으로 만나 뚝딱거리며 요리를 만들고, 예쁘게 상차려 먹었습니다. 석달동안 진행되는 이번 프로그램으로, 우리 친구들이 더 건강한 식사를 할 수 있길 바라봅니다!
추석 명절, 선물셋트 보내드립니다.
명절 3주 전, 괜히 울적해진다는 글이 단톡방에 올라옵니다.  매 명절마다 오프라인으로 만나고 있지만, 우리 지방이들은 멀어서 오지 못하기도 하구요. 지방이들위해! 탈가정 청년에게 추석 선물 셋트를 보내드립니다. 예산의 한계로 많은 분들에게는 드리지 못하고, 추첨 7명에게 선물을 발송합니다. 명절 선물의 꽃! 참치셋트!
(주)위밋업스포츠 신혜미 대표님의 용돈과 비비안의 마음과 미쉘의 마음을 모아모아 진행되는 이벤트입니다.
20대 탈가정 빈곤 청년, 생계급여 분리 수급 실험이 시작되었습니다.
20대 탈가정 빈곤 청년 중 원가정과 가구 분리가 되지 않아 행정적으로 기초생활보장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복지부 간담회와 연구 인터뷰를 진행했는데요, 26년 2월까지 4개 기초지방자치단체에서 별도가구 분리수급 모의적용 실험이 진행됩니다. GOOD~~~~!!!!

관련해서 도움이 필요한 청년은 282북스로 연락주세요!

I 반갑습니다. 우선 간단히 소개 한번해 주시죠.


진수 I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이제 원래 고향은 부산이고, 서울이랑 대전, 김해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여기 남원시 산내에서 식품 제조업 액상 차를 제조하고 있는 그린 라인 대표 이진수라고 합니다.


니은 I 저는 임실에 살고 있고요. 부모님이 임실에 계시고 저는 20살 때부터 쭉 서울에 있다가 3년 전에 잠깐 쉬러 온 건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카페를 하면서 자리 잡게 되어버려가지고요. 남원이 어떤 곳인지 임실이 어떤 곳인지 지금도 계속 알아가는 중입니다.


크롱 I 네 안녕하세요. 저는 크롱(가명)이라고 하고요. 저는 이곳에 귀촌 한지 10년 정도 됐고, 지역에서 친구들이랑 같이 커뮤니티 비즈니스 형태의 식당도 해보고, 지역 시민단체에서 활동가로 일하기도 했고, 지금은 취업을 해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얘기를 해야 될지 잘 모르겠고.. 그렇습니다. 하하

 


I 천천히 천천히 풀어 나가보도록 할게요! 오늘 이 자리에 세 분을 모시게 된 이유를 먼저 설명을 드려볼게요. 궤도 이탈 프로그램 중에 특히 매거진을 통해서 탈가정 청년들에게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만나는 자리를 마련하고, 그 자리들을 통해서 듣는 이야기로 청년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넓어지길 바랐어요. 오늘 이곳에 온 친구들은 지역에서의 삶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입니다.

 

2025년부터 남원에 내려오면서 만난 분들 중에서 특히 이 세분을 만나면서 어떠한 자기 삶에서 포인트 포인트의 변화를 계속 주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이상을 많이 받았어요. 제 기준으로 자기 삶을 굉장히 주체적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또 그런 점이 우리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눴을 때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지역에서 뭘 해봤고, 어떤 일을 하고 하는 이야기보다 제가 요청드렸던 건, 그 도전이나 실현의 과정에서 어떠한 생각으로 이걸 하게 됐고 그걸 하는 과정에서 또 어떤 것들을 경험하고 생각했는지 나눠주길 부탁드렸습니다. 그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오늘 이분들의 이야기를 통해 여러분의 세상이 조금 더 넓혀지길 바라는 마음이고요~ 자, 먼저 우리 진수 대표님의 삶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진수 I 저희 아버지께서 고등학교 선생님이시거든요. 그 기대에 부응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어렸을 때는 공부 학원도 막 다니고, 그러다가 어떻게 입시를 거쳐가면서 성적에 맞춰서 대학에 들어갔는데 경영학과였어요. 그런데 저는 이렇게 뭔가를 만드는 걸 좋아하고 요리도 좋아했고 그런 사람인데 내가 이거를 굳이 학교에 앉아 있으면서 약간 그 어린 마음에 이건 허송세월한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부모님 몰래 요리 학원 등록을 하고, 제빵 학원도 등록을 하고 몰래 다녔어요.



I 몰래 하셨다고요?


진수 I 네, 몰래 했어요. 그러다가 군에 가게 되었는데, 군 복무 시절에 제가 산업체 복무 요원으로 근무를 하면서 나름 돈을 벌 수 있었거든요. 돈도 벌고, 군 복무 마칠 때쯤 부모님께 덜컥 ‘이제 하고 싶은 거 해보면 안 되겠냐’ 그렇게 말하고 영어 공부하고, 제과제빵 학원을 다니다가 그냥 막연하게 영국으로 유학을 갔어요.



I 갑자기요? 갑자기 영국? 대표님 시작부터 너무 좋습니다.


진수 I 네, 외국에서 유학을 해보고 싶었어요. 요리하는 것도 보고 싶었고. 근데 이게 또 갑자기는 아닌 게 그래도 나름 거의 한 3년 동안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았어요. ‘저 유학 갈 거니까 도와주세요.’가 아니라, ‘저 이만큼 모았으니까..’ 부모님께 또 이렇게 드릴 말씀이 뭐라 해야 되지?



I 면이 선다? 할 말이 생긴다?


진수 I 네, 면이 서는 거죠. 제가 이만큼 모았고, 제가 모은 이 돈은 제가 하고 싶은 거 해보겠다. 그래서 덜컥 대학교 2학년까지 다니다가 안 한다고 그러고 그냥 ‘르 꼬르동 블루’라고 그 학교에 들어가게 됐어요.

영어 공부를 한다고 했는데 제가 또 막 영어를 잘하는 건 아니라서 막 고군분투하고 거기서 또 이제 학생 신분이면서도 외국인 노동자로 있었어요. 학교 일과를 마치면 호텔 주방에 들어가서 설거지도 하고, 설거지를 하게 되니까 이제 또 같이 일하는 셰프님들이 좀 좋게 봐주셨나 봐요.


그때부터 뭐 만드는 거에도 참여를 시켜주시고 그렇게 해서 이제 우여곡절 끝에 이제 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 들어와서 바로 구직 활동을 했어요. 했는데 이게 생각만큼 쉽지는 않더라고요. 그 당시만 해도 이 업계가 너무 바쁜 데다가 근무 여건이 아실지 모르겠는데, 제과제빵이라는 게 이제 아침 새벽 일찍부터 준비를 해가지고 만들어서 저녁 손님이 나갈 때까지도 계속 만들어내야 되는 그런 업종이거든요.


대전의 유명한 빵집에 입사를 하게 됐는데, 제가 배웠던 거는 약간 뭔가 메뉴를 구성하고, 디저트를 개발하고, 약간 그런 걸 배워왔다면은. 그곳에서 일을 하다 보니까 그런 것과는 멀게 느껴지더라고요. 새벽 6시부터 바쁠 때는 10시 11시까지 계속 만드는 거예요. 빵을.



I 빵만드는 기계?


진수 I  네, 약간 그렇게 느껴지더라고요. 처음에는, 대학 때 했던 공부도 그랬다시피 내가 원하던 삶은 아닌데... 생각했죠. 그러니까 내가 좋아하는 걸 시작을 했지만, 내가 원하던 삶이 아닌 삶을 살고 있었던 거죠.

그러던 중에 영국에서 알게 된 셰프, 그러니까 가르쳐 주신 셰프님이 청담동에 이탈리안 친구가 디저트 숍을 오픈한다고, 거기를 가보라고 권유해 주셔 가지고 가게 된 거예요. 거기서는 디저트 개발하고, 같이 만들고, 예쁜 거 만들어보고 이제 판매도 하고 그랬는데 이제 한 2년 정도 하고 나니까 내부 경영진들의 트러블 뭐 이런 것들로 그 사업이 무마가 되는 거예요.


삶이 참 내가 원하는 대로 내 마음 같지 않구나. 약간 그런 시간들이 있었죠.


그런데 또 이제 일을 하니까, 돈이 모였어요. 뭘 할까 고민하다가 부모님이 김해에 계셨는데, 부모님 계신 김해에 가서 내 걸 해보자 해서 숍을 오픈했어요.

앞에 삼계탕 집 크게 있고, 장어집 크게 있고, 뒤에 아파트 단지가 크게 있고 해서 나름 잘 됐어요. 제가 하고 싶은 디저트 계속 만들고, 주문받아서 케이크도 만들어서 이렇게 하기도 하고. 저는 좀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돈을 조금 벌었어요. 그런데 이제 또 갑자기 또 코로나가 터지기 시작한 거죠.



I 운이 좋은 거 맞나요, 대표님?


진수 I  네, 뭐. 하하 일단 어떻게 버텨볼까 말까 고민을 하던 찰나에 인수하겠다고 하신 분이 나오셔가지고 넘기고 나니까, 그때 좀 힘든 마음이 들더라고요.

 

아침 6 7시에 나와 가지고 디저트 만들고, 판매하고, 혼자 하다 보니까 아침에는 주로 이렇게 만드는 시간 10시부터 밤 10시까지는 그냥 저 혼자 커피 내리고 손님 응대하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그런 삶을 또 거의 한 3년 동안 하다 보니까 막 번아웃이 온 거예요. 영국에서 돌아와 대전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런 라이프 스타일을 계속 이어오다 보니까 거의 한 7년간을 그런 삶을 살아오다 보니까 휴식이 없었던 거예요.

 

이참에 한 1년 마음먹고 좀 쉬자, 여기저기 좀 돌아다니고 맛있는 것도 먹어보고 재충전해서 다시 시작하자고 하는 그런 시기에 여기 남원, 산내에 온 거죠.

 

이런저런 생각을 했어요. ‘내가 이 제과제빵 업을 다시 할 용기가 있을까?’ 약간 그런 생각도 해보고 지난 시간도 돌이켜 보고하는데 여기 뱀사골 주변에 약재류들 그리고 임산물들이 엄청 많은 거예요. 주로 하시는 걸 보니까 그냥 단순 가공 말려서 이렇게 파시고 그러다 보니까 저런 걸 또 예쁘게 패키징도 해보고 가공도 해보고 할 수 있는 방향이 있을 텐데 그런 걸 안 하시더라고요. 주로 주민들이 연세도 있으시고 하다 보니까. 그래서 여기 남원 농업기술센터에 식품 가공기능사 그런 교육들이 되게 많더라고요. 알아보니까 국가 자격증도 따게 되고 그렇게 해서 이제 식품 제조 가공업을 이렇게 또 시작을 하게 된 거죠.

I 대표님 뭔가 파랑새를 찾는 모험을 떠나며 되게 산 넘고, 물을 건너고, 태풍을 맞고, 비바람 속에 있다가 잠시 피하러 동굴에 들어갔더니 산삼이 있더라~ 이런 이야기 같은데요?


진수 I 살아보니까 인생이 내 마음 같지도 않고 흘러가는 대로 하다 보니까 또 길은 있고 그 길을 적극적으로 좀 찾는 노력은 해봐야 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도 생각을 해봤어요.

왜냐하면 예를 들어서 농업기술센터에 다양한 교육이 있는데 그 교육들이 나한테 맞는지 안 맞는지도 찾아봐야 되고 그런 거는 이제 적극적인 노력을 할 수 있는 건 할 수 있는 주체는 본인인 거잖아요.


결국은 선택도 본인이 하는 거고.



I 디저트는 이제 안 하세요?


진수 I 언젠가는 할 건데, 디저트만 해오다 보니까 좀 나이 들어서는 그냥 조용히 빵 조금 화덕에 굽고 하는 그런 꿈은 있어요. 그런 꿈은 있는데, 사실 저희 가족 대부분이 여기 들어와 있다 보니까 제 어깨가 좀 지금 많이 무겁습니다.


제가 다 데리고 온 건 아닌데, 제가 들어와서 뭔가를 일을 하고 있으니까 동생 내외도 들어오게 되고. 뭐 그럴 것 같으면 같이 일하자! 해가지고 지금 같이 하고 있어요.


저는 또 평소에 어떤 마인드로 살아가고 있냐면 타이쿤이라고 하잖아요. 그 게임 붕어빵 타이쿤 이런 거 있잖아요. 자기만의 세계를 농장 타이쿤이라고 하나요? 자기만의 농장을 한다든가 자기만의 레스토랑을 운영한다던가 약간 저는 그런 삶을 좀 지향하는 스타일인 것 같아요.


항상 플랜비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워낙 제가 살아온 경험 경험들이 이게 다 내 맘 같지 않고 언제 어떻게 내 삶이 바뀌는 흐름을 가지고 삶의 흐름이 바뀔지 모른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항상 플레이비는 생각하는 그런 습관을 가지고 있으려고 노력은 하고 있어요.

 


I 경험에서 나온 플랜비의 필요군요.


진수 I  지금도 뭐 식품 제조업. 액상 차를 제조를 하고 있지만, 식품업계의 트렌드가 보면 항상 언제 바뀔지 모르거든요. 꼭 같은 동종업계 계열이 아니더라도 언제 어디서나 내가 흥미가 가고 이거 괜찮은 분야인 것 같다는 그런 확신이 생기면은 그런 플랜 b를 또 그때의 상황에 맞게 펼쳐 보는 것도 참 행복한 인생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I 진수 대표님은 우리가 남원에 내려오면서 만나게 된 대표님인데, 이런 스토리를 가지신 분인 줄은 몰랐어요. 대표님 얘기를 듣는데, 세 가지 생각이 들었어요.


첫 번째는 ‘오! 저분은 돈을 잘 모은다. 목표가 있으면 그걸 하겠다고 일단 돈을 모으는구나!’ 요리 학교 르 꼬르동 가기 전에도 영국 가겠다고 돈을 3년 모았고, 그다음에 청담동 가게 다니면서도 돈을 모으고, 잘 안 쓰시나 봐요. 거기서 돈 모아서 김해 가서 뭘 하시고.

두 번째는 ‘뭔가 하나 좋아하는 게 생기면 쭉 계속하시는구나.’ 지금 액상 차 제조를 하고 계시지만 언젠가는 또 빵도 하신다고 하니까.

세 번째는 ‘아, 이 분은 3년 주기로 계속 위기를 맞는데, 이거 자꾸 일어난다.’ 대표님은 그동안 많은 실패를 여러 번 하셨는데 멘탈은 괜찮으세요?


진수 I  모르겠어요. 실패의 기준은 잘 모르겠는데, 저는 실패라고 생각을 안 해요.



I 오! 실패라고 생각을 안....?


진수 I  네, 실패라고 생각을 안 해요. 왜냐면은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플랜 b를 생각을 하니까 이게 그래도 조금 주춤하네. 그러면 조금 다른 시각으로 생각을 해서 이 방향으로도 한번 해볼까라고 그렇게 생각을 하니까. 뭔가 힘든 시기는 있는데, 그 힘듦이 실패거나 좌절이라고 생각했던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어쩔 수 없는 거잖아요. 제가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 밖의 일이니까.



I 오! 그렇군요. 저의 너무 큰 우문이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냥 저분 가게가 코로나 때문에 잘 안됐으니까 실패야.라고 생각했는데, 본인은 그게 아닌 거군요. 오 너무 좋은데요?  감사합니다.


다음으로 1부에서 너무 멋지게 PT까지 준비해서 발표해 주신 우리 나그네의 주머니 공간지기 니은님! 멋지게 이야기해 주셨어요. 가볍게 와주셔도 되는데, PT 준비해야 하느냐 물으시리라, 저야 뭐 사양할 것이 없잖아요? 날름 그럼 좋지요~ 해버렸습니다. 너무 감사해요. PT 내용을 짧게 요약해서 한번 얘기 나눠 주시면 어떨까요?



니은 I 제가 새벽 4시에 PPT를 완성 해서 어떻게 들으셨을지 걱정도 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전라북도 남원시 용남시장 안 8평짜리 작은 카페 ‘나그네의 주머니’를 지키고 있는 니은이라고 하는데요. 니은이라는 이름은 이제 제 이름의 초성이 니은 자로 시작을 해서 니은이라고 이렇게 지었습니다.

나그네의 주머니는 저희 가족 4명이 힘을 합쳐서 만든 카페인데요. 카페 시작 전에 짧게 제 이야기를 먼저 얘기하자면 저는 3년 전에 이제 7년간의 서울 살이에 이제 너무 지쳐서 웬만해서 돌아오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남원으로. 고향으로. 돌아오게 돼요.

고향에 딱 돌아왔을 때 이제 먹고사는 것도 지겹고 꿈을 키워가는 것도 지겹고 사람 만나는 것도 다 그런 무기력한 상태였는데, 그런 모습을 아버지가 잠자코만 보실 수가 없으셨는지, 제가 그간 모아온 돈으로 갑자기 어떤 가게를 계약해버리고 오셨어요. 그렇게 만들어진 게 카페 나그네의 주머니입니다.

I 아버지가 그냥 계약을 하신 거예요?


니은 I 네, 이제 한다~한다 이렇게 넌지시 얘기하시긴 했는데, 진짜 할 줄 몰랐어요. 굉장히 낙후된 시장 골목에 아주 작은 가게에요. 되게 처음에 이렇게 꾸며지기 전 나그네를 봤을 때는 뭔가 내가 고등학교 때부터 뼈 빠지게 모아온 돈의 결과가 겨우 이 정도 규모밖에 안 되는구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뭔가 그게 애틋하면서도 되게 복잡했던 것 같아요.

오픈 후 제일 많이 받았던 질문이 카페 이름이 도대체 무슨 뜻이냐고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요. 나그네의 주머니라는 이름에는 서성이던 시간 속 우리 이야기로 꾸린 작은 카페라는 뜻이 있습니다.

나그네를 만든 저희 네 가족이 저마다 각자 외로움의 시절을 겪어왔는데, 각 사람마다 그 시절을 버티게 해준 것들이 있었고, 나를 버티게 해줬던 그것들로 언젠간 누군가에게 위로로 나눠주고 싶다는 바람이 늘 있었어요.

그게 아빠에게는 레코드판 나무 이런 거를 계속 모아오셨고, 엄마에게는 그림책이 있었고 저에게는 노래와 시가 있었고 동생에게는 이제 만화책과 매 한 점씩 키운 용기 같은 게 있었습니다. 이런 저마다의 노하우로 소중한 것들을 꺼내서 만든 카페가 나그네의 주머니입니다.

이 공간을 통해서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줬으면 하는 게 가장 큰 바람이었던 것 같아요.



I 많은 사람들이 그러잖아요. 작은 동네에 나만의 것들로 채워진 작은 카페를 하고 싶다. 하고요. 그걸 실현시킨 거네요?


니은 I 네, 근데 카페 운영은 현실이었고요. 그 현실도 모르고 낭만만 가득 차 있었던 거죠. 시작했을 때 환영과 응원보다는 정말 온갖 잔소리 속에서 시작됐어요.

젊은 사람이 시골에 와가지고 시간을 허비한다. 우리 딸은 서울에 있는데 이런 말부터 장사가 소금물인 줄 아냐 왜 전쟁통에 굳이 굳이 뛰어들었냐 제일 힘들었던 말은 너의 뜻은 아름다운 거 알겠는데 망할 거야 하는 말이 제일 힘들었던 것 같아요.


오픈 초기 때는 이런 잔소리들이 있어도 이제 부푼 마음이 더 크니까 되게 해맑게 이런 잔소리들을 넘어왔는데, 5개월간의 공사 준비 기간을 거쳐서 오픈을 딱 시작하니까 하루에 한 손님이 네 팀 정도 오셨어요. 그때는 처음이라 네 팀만 와도 너무 고맙고 소중하니까 막 있는 재료 없는 재료 다 끌어다가 막 간식도 나눠 먹고 막 그랬었는데 이제 그런 날들을 보내다 보니까 한 달 안에 하루 네 팀 손님에서 이제 10팀 손님으로 이제 성장해 가더라고요. 근데 이제 문제는 10팀 손님이 오시니까 그다음을 계속 바라게 되는 거예요. 빨리 더 손님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이런 식으로.


언젠가부터 마음이 10팀이나 오셨네 하고 너무너무 기쁘고 소중하고 그랬는데 언젠가부터 10팀밖에 오늘도 10팀밖에 안 왔네로 마음이 서서히 바뀌어 가는 거예요.


가진 거는 거의 다 썼고 낭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쨌든 뭔가가 경제적으로 받쳐줘야 되는데 이제 그게 후달리기 시작하는 거죠. 오픈 3개월 차에 한계를 깨닫게 되고요. 낭만만으로는 결코 충분할 수 없구나를 깨달으면서 시작했을 때 들었던 그런 잔소리들이 되게 더 크고 선명하게 들리기 시작했어요.

결국 그 말들에 이제 그 잔소리에 갇혀서 이제 막 자기 비교하고 자기 책만 하고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했다면 더 잘했을 텐데 하는 그런 마음으로 되게 힘들었던 것 같아요.



I 낭만만으로는 이제...?


니은 I 나그네를 통해서 이제 생활이 안정되기를 바랐어요. 돈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그래서 저희가 바랐던 거는 부모님한테 소정의 감사비를 드리고. 못해도 이제 공간을 지키는 저와 제 동생이 각각 한 사람씩 100만 원이라도 가져가길 바랐는데 되게 소박하게 설정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되게 어려운 게 현실이더라고요.


이제 경제적 목표를 앞에다가 그러니까 나그네 경제적 가치로서 계속 바라보게 되니까 뭔가 나그네를 있게 했던 그런 뭔가 중요한 요소들 뭐 낭만이라든지 또는 경제적 가치와 로 매길 수 없는 어떤 중요한 것들이 되게 뭔가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기 시작하는 거죠.


그래서 저는 그 기간 동안 되게 널브러졌다가 다시 주섬주섬 어쩔 수 없이 계약 기간이 있으니까 일어났다가 그러다가 다시 또 없어지다가 이런 생활을 반복하다가 이제 정신 차려야겠다고 결심했던 게 이제 단골손님들 덕분이었거든요.


환경미화 일 마치고 꼭 나그네에서 저녁을 마감하시던 아주머니도 계셨고, 또 자주 이렇게 서로 좋아하는 책 갖고 놀러 오시면 아빠와 딸 손님도 계셨고, 또 휠체어가 들어오기 힘든 구조인데 또 굳이 굳이 들어서 들어오시는 손님들도 계셨고, 일부러 먼 길로 와서 테이크아웃을 해 주시는 분들도 계셨고, 그런 단골손님들의 마음이 어느 순간 이렇게 내가 진짜 나도 정신 차려서 나그네를 잘 지켜야겠다고 이렇게 힘이 되어 주셨던 것 같아요.


저도 나그네를 예전에는 마음으로서 노력을 했다면 이제는 그냥 패턴을 만들어서 노력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의식적으로. 어제 전날에 손님이 많았던 적었든 상관없이 그냥 매일 아침에 공간 구석구석 다 청소하기, 한 달에 두 번씩은 꼭 공간에서 일어난 추억을 글로 써서 간직하기, 식사 규칙적으로 하기, 매달 그냥 매달 얼마나 흥행할지 모르지만 새로운 메뉴 하나씩 꼭 개발하기. 이런 식으로 그냥 규칙을 만들어서 계속 노력을 해왔던 것 같아요.


경제적 기준만으로 나은의 가치를 재는 일은 이제 오히려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거를 자연스럽게 알게 됐고요. 경제적 중요도 외면할 수 없다는 게 현실이니까 결국 나그네는 시스템 재정비에 들어서게 돼요. 이제 1년을 운영한 결과 나그네는 이제 평일에는 한가하고 주말에 바꾸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평일에는 기역과 니은 둘 중 한 명이 나그네 밖에서 구직 활동을 하기로 결정을 합니다.



I 기역님도 잠깐 소개해 주세요!


니은 I 기역은 제 동생인데요. 함께 공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근데 제 동생 기역은 경계선 지능인이라 구직이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비교적 구직이 가능한 제가 나그네를 좀 더 오래 지키기 위해서 일을 찾기로 결정합니다.

제가 구직활동, 투잡을 하면서 제 동생 기역이 많이 씩씩해졌어요. 항상 누나 뒤에서 이렇게 보조적으로만 일했던 기역이 이제는 대장이 돼서 스스로 운영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항상 이 친구는 자신이 경계성 지능인 거에 대해서 되게 위축되고, 항상 내가 할 수 있을까 그런 마음으로 되게 위축되어 있다면, 지금은 뭐 어떻게 해야지라면서 점차 이제 생각보다 나는 해낼 수 있는 게 많고 나라면서 많이 씩씩해졌어요.

 

가게를 한 2년 가까이 운영해 보면서 애정을 담아서 시도하는 일에는 늘 성취와 한계가 반복한다는 사실을 알 것 같고, 이렇게 말하는 기회를 통해서 다음에 또 한 기회를 마주했을 때 저도 망했다고 이렇게 생각하기보다는 또 그냥 그 시기가 왔구나 다시 한번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또 어디를 향해 가고 싶은지 재탐색해야겠다고 조금 더 빠르게 알 수 있지 않을까 싶고요.


여기 남원에서 이제 새롭게 여정을 준비하시는 분들의 여정도 제가 다 알 수는 없지만 정말 정말 응원하고 저 또한 매일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걸로 계속해서 동참하도록 하겠습니다.


(니은님의 이야기는 발표 자료를 기반으로 재 편집되었습니다.)

I 다음은, 오래 기다려주신 크롱님!


크롱 I 저는 크롱(가명)이라고 하고요. 이 동네에 처음 이주한 건 10년 전인데, 저는 좀 다른 배경을 가지고 이주를 한 것 같아요. 저는 대학에 가지 않고 홍대 근처에서 인디 음악을 하는 분들이랑 같이 페스티벌 기획이나 음반 제작 공연 기획 일을 했어요. 하는데... 그 일을 하는 게 너무 힘든 거예요. 너무 몸이 갈려 나가는 일이고 돈은 정말 못 벌고 음악이 정말 좋아서 하던 일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게 주객이 전도된 것 같고. 그건 좀 다른 일을 해보고 싶은데 어떡하지, 대학을 가야 되나 이런 고민을 하던 차에 동생이 어머니랑 먼저 이 지역에 귀촌을 해 있는 상태였어요.

 

동생은 이 근처에 대안학교를 졸업했거든요. 보통 졸업을 하면 지역을 떠나게 되는데, 동생은 같이 졸업을 하거나 근처에 마을에서 알고 지내던 청년들이랑 떠나지 않고 지역에서 뭔가 좀 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서 지역에 남아 있는 상태였거든요.

그러던 차에 이제 저도 군대를 갔다 와서 이제 뭘 하고 살아야 될지 모르겠다 그러면 나도 좀 머리 식히러 좀 내려와야지 이런 비슷한 마음으로 겨울 한 계절만 지내고 올라가야겠다 이러면서 내려왔는데요. 동생이 저한테 할 일 없이 한량처럼 놀지 말고 와서 서빙이라도 해라라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동생과 친구들이 커뮤니티를 겸해서 하던 식당에서 서빙을 하다가 친구들을 만나고 지금 만나는 짝꿍도 만나고 동네에 있는 어른들이랑 관계를 맺게 되면서 이렇게 좀 좀 깃들어 살게 된 케이스인 것 같고요.



I 동생이랑 친구가 뿌리내리게 해줬네요.


크롱 I 그렇죠. 그 식당에서 지내면서 지역에서 활동하는 조금 적극적인 어른들이랑 굉장히 잘 연결이 되기 시작했고요. 지역에서 어떤 청년들의 역할들이 좀 부여되는 게 있어요. 특히나 시골 같은 경우에는 청소년들에게 약간 롤 모델이 돼 준다든지 아니면 지역에 약간 다시 이주해서 돌아오는 삶에 대해서 얘기를 이렇게 해 준다든지, 혹은 좀 여러 가지 그런 역할들을 자꾸 지역에서 부여해 주려고 하는 것들이 좀 있더라고요.

처음에 식당을 시작한 이유가 나는 요리로 뭔가 꼭 성공하겠어 이런 식의 의지로 시작한 게 아니라 그냥 동네 삼촌이 너네 맨날 밥해 먹는 모임이니까 식당을 해봐라라고 해서 시작한 거예요.

 

사실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웠어요. 막 핫한 콘셉트 잘나가나는 셰프 출신 이런 게 아니라, 커뮤니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역 청년들이 만나는 게 중요한 공간이었기 때문에 수익을 남기겠단 생각도 못 했어요. 항상 문을 닫을까 말까 고민을 했던, 마을 어른들이 어느 정도 인건비처럼 쓸 수 있게 활력 기금 같은 걸 만들어서 주시는 거예요.


청년들이 정착하기 힘든 지역에서 뭐라도 해보겠다고 하는 활동들이 충분히 마을에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고, 이게 의미가 있을 거고, 이게 앞으로 되게 좋은 다른 효과들을 만들어 낼 거라고 1년 동안 지원금을 주시더라고요.



I 와, 산내 되게 특이한 곳이네요.


크롱 I 맞아요. 되게 특이한 동네입니다. 그때 제가 느꼈던 거는 진짜 여기서 저는 한 달에 50만 원으로 2년 동안 보고 살았는데 되게 힘들잖아요. 근데 그걸 받으면서 아 내가 이 마을에서는 절대 굶어 죽을 일이 없겠다는 걸 좀 느꼈던 것 같아요.

어떤 환대의 감각들 나를 잘 모르고 근데 내가 여기서 뭔가 그냥 잘 살아보겠다고 하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렇게 자기가 가진 것들을 충분히 내어주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 있구나. 뭔가 되게 다르다.

‘이전에 내가 서울에서 느꼈던 감각들이랑 너무 다른 삶이다.’ 이거는 그래서 그런 것들을 느끼면서 그 한 달 동안 사실 1년에 한 600만 원 정도를 받았는데 그 감각을 지금까지 가지고 살게 된 것 같아요.


내가 누군가에게 조건 없는 환대를 이렇게 받았기 때문에 나도 누군가 이 지역에 온다고 하면은 조건 없이 환대할 수 있어야겠다 그런 삶을 내가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저는 좀 되게 가지게 됐어요.

식당을 정리하고 나서 지역 시민단체에서 일하면서 지역에 있는 청년들을 지원하고 만나고 네트워킹 하는 일들을 했었고요. 그다음에 지금 사는 집도 청년들이 이주하는 데 좀 베이스캠프가 될 수 있도록 셰어하우스를 운영해서 저희 집은 되게 특이하게도 방이 5개 있고 화장실이 5개 있는 옛날 민박집인데, 그 집에 이제 4명 5명씩 옹기종기 살면서 한 명씩 독립해서 나가기도 하고 외지의 청년이 들어와서 몇 달씩 지내다가 또 여기 자리 잡기도 하고 또 떠나기도 하고 뭐 그런 이제 삶의 형태들을 계속 저는 꾸려 나가게 됐던 것 같아요.


4년을 일하다가 그 호시절을 그만두고 저는 사진 찍는 일을 되게 예전부터 좋아했어 가지고 나 좀 사진 찍는 일로 먹고살아보고 싶다.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여기서 지금이라면 내가 해볼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안정된 기반이 없어도 이 어떤 호외적인 관계망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라든가 이런 것들을 시도해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이 들어가지고 이제 사진 찍는 일을 한 3~4년 정도 하면서 먹고 살아가기도 하고요. 지금은 제가 개인적인 가족 이슈로 인해서 돈을 좀 벌어야 되는 상황이 돼서 취직을 했고요.


저는 사실 이준수 대표님이랑 다르게 꾸준히 돈을 모으지도 못했어요. 저는 올 초에 취직하기 전에 겨울에 통장에 8천 원이 있었거든요. 저는 진짜 돈도 잘 못 모으고 되게 삶의 방향도 엄청 바뀌고 그런 삶을 살았던 것 같은데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제가 여기서 맺고 있는 어떤 관계망들, 제가 무언가를 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청년들이 뭔가 여기서 한다고 했을 때 그리고 그게 어떤 조금 공익적이거나 조금 비영리적인 어떤 활동과 연결되었을 때, 충분히 지지 받고 응원받을 수 있고 그것만으로도 어떤 삶을 꾸려 나갈 수 있겠다는 확신을 저는 이 마을에서 받았기 때문에 좀 가능했던 것 같아요.


물론 제가 10년 전에 귀촌했을 때랑 지금의 분위기는 굉장히 다르고, 지금은 이제 또 청년들이 많이 생기기도 했고 또 각자 다른 이슈들로 이제 지역에 입주했기 때문에 조금 더 넓고 약간 느슨해진 감은 좀 있는 것 같아요.

I 세 분모두 남원에 내려와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내려온 건 아니잖아요. 여기에서 살아야지 마음먹고 내려왔다기 보다, ‘잠깐 쉬었다가가야지.’ 했다가 머무르게 된 계기가 있을 것 같아요.


니은 I 너무나도 많은 돈이 들어가는 게 서울 사이였던 것 같아요. 너무 지쳐서 마음이 지친 것뿐만 아니라 몸도 이제 안 좋아지니까 부모님이 내려오라고 한 거죠. 이제 부모님이랑 같이 살고 싶지 않았거든요. 근데 어쩔 수 없이 잠깐만 쉬자 하고 내려왔는데...

사실 저는 계속 서울로 다시 돌아오고 싶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제가 좋아하는 것들은 다 서울에 있고 그게 이런 지방에는 너무 적다. 문화생활이나 이런 것들.

근데 어쩌다 보니, 사실 그때 제가 뭔가 세상과 교류하지 않으려고 자꾸 하니까 아빠가 안 되겠다 생각을 하셨나 봐요. 사실 제가 카페를 차리고 싶어 하기도 했는데, 제 스스로 하길 기다려 봤자 의미가 없다 생각하신 건지. 아빠가 먼저 저질러버리신 거예요.

그래서 그냥 시작을 해버리신 거죠. 질문이 뭐였죠?



I 이곳에 머물러야 되겠다고 생각 여기에 좀 뿌리를 좀 내려봐야 되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


니은 I 네, 맞아요. 그래서 카페 계약 끝나면 계속 여기 있을지는 물음표였는데, 지금은 최근에 어떤 분이 서울 가서 같이 일할래? 뭐 이런 얘기를 하셨는데 전 여기 있고 싶어요.라는 마음이 딱 들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그런 마음이 생기게 됐지라고 질문을 해주시니까 생각해봤는데, 조금 지방의 매력을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아요.


뭔가 서울은 너무 넓고 그러다 보니까 연결되려면 더 많은 힘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저한테는 목소리를 내도 그 목소리가 이렇게 누군가가 지금 말을 하고 있구나 이런 걸 누가 알아주기까지도 되게 시간이 많이 걸리고. 근데 지방에서는 이준수 대표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내가 열심히 뭔가를 지속하기만 해도 그게 빨리 눈에 확 띄는 거예요. 그런 매력도 있고. 또 제가 여기서 뿌려놓은 것들이 이제는 뭔가 두고 이렇게 떠날 수 없으니 더 소중해져 있었고 또 문화생활이나 그런 것들도 저는 서울보다 남원 생활하면서 더 많이 얻었던 것 같아요.


그 서울 살 때보다 남원 살 때 더 뭐라야 될까 아까 표현한 것처럼 되게 조용하지만 되게 비범한 사람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조용하지만 뭔가 되게 꿈틀 꿈틀 거리는 게 많은 분들. 그래서 그분들하고 할 수 있는 게 아직은 너무 많은 것 같고 그걸 할 수 있는 경험들을 좀 더 보고 싶고 그래서 굳이 도시로 가는 것보단 여기서 조금 더 다채롭게 살아가는 경험을 더 많이 해보고 싶다고 마음이 바뀐 것 같아요.


크롱 I 저는 뭔가 관계 맺기가 되게 재밌고 그게 되게 힘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저 아까 막 올해 연초에 지갑이 아니라, 전 재산이 진짜 8천 원밖에 안 남았는데 근데 별로 그렇게 생계가 걱정되지 않는 거예요. 어떻게 또 지나가겠지 약간 이런 생각이 들고. 그 배경에는 때 되면 뭐 저를 좀 긍휼히 생각해 주시는 어르신들이 농사짓는 어르신들이 쌀도 보내주시고 뭐 감자 철 되면은 좀 캐가라면서 감자도 나눠 주시고 약간 이런 식의 어떤 되게 그냥 나누고 같이 밥해 먹고 어떤 관계 맺으면서 그 속에서 어떤 호혜적인 어떤 뭔가가 생기는 것들이 되게 저한테는 이 공간이 처음 경험해 주고 경험했던 곳인데 이제 그런 것들을 그냥 지역에 계속 살게 만드는 것 같아요.


서울에 가서 이거 할 수 있을까 생각했을 때 니은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서울은 일단 최저 생계비가 너무 높고 그걸 벌기 위해서 해야 되는 노동의 시간도 너무 길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사람들과 충분히 관계 맺지 못하고 그렇기 때문에 삶이 되게 충만해지지 못하고 그런 것들을 생각했을 때는 내가 돈을 못 벌더라도 내 삶이 이곳에서 이렇게 관계 맺고 사람들과 살아가는 게 너무나 충만하고 행복한 그게 저는 이곳에서 계속 살게 해주는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아요.


진수 I 남원이라는 도시 특히 여기 산내 쪽은 모든 게 막 평화롭고 여유롭고 깨끗하고 맑고 그렇게 보이잖아요. 근데 이게 멀리서 보면 그렇죠, 멀리서 보면. 시골이라고 해도 대도시권이랑 별반 다를 게 없는 이제 사람 살아가는 세상이다 보니까. 제 경험으로 비롯해서 다른 점이 있다면, 서울에도 있었고 대전도 있었고 김해, 부산에 있다 보니까 그곳에 있었던 저의 라이프 스타일과 여기 라이프 스타일의 제일 큰 차이점은 여기가 훨씬 더 그냥 저로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곳인 것 같긴 해요. 대도시권은 그 사회 속에 저를 약간 욱여넣는 그런 라이프 스타일이 주였던 것 같고, 여기는 훨씬 더 마음이 편하고 제가 해볼 수 있는 것들을 다채롭게 할 수 있는 기회가 좀 많은 도시인 것 같아요.


여기 내려온 첫날은 진짜 밤늦게 오기도 했는데, 여기서 뭘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어요. 들어가도 들어가도 약간 암흑 속으로 들어가는 그런 느낌이었는데, 딱 아침에 날 밟고 보니까 경치도 너무 좋고 조금만 나와도 계곡이 흐르고 있고 그리고 또 근처 큰 지역인 함양 남원이 여기서는 어디든 가까운 위치인 거예요. 지리적 위치가 그렇다 보니까 사실 뭐 문화적 교류라든지 의료적 혜택이라든지 조금 떨어지긴 해도 뭐 제가 뭐 마음만 먹고 시간만 내면은 뭐 그런 경험들은 다양하게 한두 시간 내외로 이렇게 해가지고 다 경험할 수 있는 지역들이 두루두루 이제 근처에 있고 무엇보다 이제 사람들도 좋으신 분들이 또 많아요.


제가 또 활동을 하다 보니까 그로 인해서 또 영향을 받아서 저도 조금 좋은 사람이 더 될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는 것 같고 그래서 좋은 도시가 이에는 좀 틀림없다.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어요.


크롱 I 저희가 너무 좋은 얘기만 했나요? 쓴맛과 짠맛 이런 것도 말해달라고 미쉘이 그러셨는데.


진수 I 쓴맛, 쓴맛을 좀 말씀을 드리자면은 어떻게 보면 이제 귀촌인들은 원주민들과의 그런 남원시에서 주는 혜택들이나 기회 제공적인 부분에 있어서 어떻게 보면 공생 관계일 수도 있지마는 어떻게 보면 또 나름 경쟁을 해야 돼요.

예를 들어서 저는 또 사업을 하고 있다 보니까 지자체에서 하거나 이제 도에서 하는 것 같은 경우는 일단 토착 기업과의 경쟁에서 또 살아남아서 선정이 되어 보려고 부단히 노력을 하는데 사실은 초창기에는 어떤 좀 불미스러운 경우가 있었어요. 그래서 약간 남원시에 대한 그런 이미지가 완전히 바닥이었어요. 저한테는 한 1년 동안에는 어떤 경우였냐면은 그런 거죠. 이제 지원 사업도 이제 토착 기업이고 이제 막 유지고 이런 분들은 관공서 약간 그런 인맥과 연을 통해서 되는 그런 사례들을 보다 보니까 이 남원시가 약간 그런 거 있잖아요.


춘향이의 도시로 안 보이고 변사또의 도시로 바뀌고 약간 너무 약간 그런 도시로 보이는 거예요.



I 변사또의 도시? 와하하하하


진수 I 근데 그런 이런 사회도 있구나라고 한 3년 차 때 현실을 깨닫게 되었고요. 그래 그러면은 이 사회에 맞춰서 나도 지역이랑 소통하러 나가보자고 생각해서 그때부터 좀 사람들도 만나고 활동하게 되고 그러면서 뭐 물론 불미스러운 사건이 있었던 그분과는 아예 그냥 저는 상종을 안 하지마는, 그런 분도 있는 반면에 너무 좋으신 분들 많은 거예요. 활동을 하면서 좋은 분들을 많이 보고, 좋은 것도 많이 보고 하면서 이 도시에 뭐 좋은 점이 뭐가 있을까라는 거를 조금 거기에 염두를 두고 이 삶을 살아가다 보면은 그게 더 훨씬 더 윤택한 삶을 살아가는 길이지 않을까 나쁜 마음만 가지고 살아가면은 밑도 끝도 없을 것 같다.

 


I 이런 생각이 드네요. 니은님은 남원이라는 곳에서 본인의 취향과 맞는 무언가들을 만나면서 나를 조금 더 완성시키고 단단하게 만들 수 있게 된 것 같고, 두 분은 관계에 대해서 다시 정리하고 정의하는 시간을 보내신 것 같아요.


이거 진짜 중요한 질문인데요, 내려올 때 대략 어느 정도의 자산을 가지고 내려오신 거예요?

 

크롱 I 저, 한 20만 원.



I 근데 크롱님은 이미 지역에 가족 기반이 있었잖아요.


크롱 I 네 맞아요. 저는 이제 가족이 여기 있어서 내려오긴 했는데요. 가족들이 제가 내려오고 2년 뒤에 떠났어요. 그래가지고 저는 약간 돈 대신 다른 걸로 살아남는 생존의 방법들을 계속 찾았던 것 같아요.


니은 I 저는 어디까지 솔직하게 말해야 하는지..



I 그냥 대충~?


크롱 I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를 해야..


진수 I 원단위까지


니은 I 저희 집은 부모님이 시골 목회를 하고 계셔 가지고 부모님이 저희한테 뭘 해 주실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그냥 고등학생 때부터 계속 돈이 생기면 무조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모았던 것 같아요. 그렇게 스물 후반까지 모았던 돈이 천만 원 정도였고, 그 천만 원 갖고 일단 내려와서 카페를 차리고 제 통장에 나온 돈은 한 200만 원? 그 200도 이제 나그네를 통해서 일단 벌리는 게 없으니까 계속 계속 금방 사라졌죠. 뭔가 제 정말 긴 시간의 돈이 그렇게 한순간에 빠르게 사라지니까 이게 진짜 정신 붙들고 있기가 쉽지가 않더라고요.


그래서 크롱님처럼 이런 좋은 경험을 했다면 저도 또 어땠을지 모르겠는데, 산내랑 또 남원 시내 권은 또 다른 것 같아요. 내 인생 내가 알아서 잘 살아야 했고 근데 잘 살 수 있을까 약간 그런 초조함과 이런 거를 한 1년 동안 알았던 것 같아.

그래도 지역에서는 돈 쓸 데가 많이 없으니까 돈이 없는 게 막 그렇게 또 막 도시만큼 초라하지는 않더라고요.


다만 미래를 생각했을 때, ‘아, 망했다. 지구 종말 해라.’ 막 이런 식이었어요.



I 준수 대표님은요? 매장 권리금 받은 거 다 들고 오셨어요?


진수 I 네, 일단은 대출 끼고 공장을 하게 된 거죠. 근데 이게 도시도 그렇고 뭐 시골이라고 해서 저는 살짝 생각이 다른 게 경제 활동은 필수 불가결이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사람이 살아가려고 하면은 돈이 있음으로 해서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생각하고 하고자 하는 그러니까 구현해 보고 싶은 내 삶을 조금 더 폭넓게는 가지고 갈 수 있는 장치가 경제력이라고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일단 뭐 삶에 있어서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있으면 어쨌든 내가 구상하고자 하는 내 삶의 그런 방향의 가짓수나 질이나 그런 거를 조금 더 명확하게 끌고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내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는데 그런 원동력이 되는 요소임에는 틀림없다고 생각을 하고요. 일단 경제 활동을 하면서 생기는 그런 분명한 그 시야 범위가 좀 넓어질 거라고는 생각을 해요.



I 우리 친구들 중에서 뭐 궁금한 거 없어요?


청년1 I 도시보다는 청년 인구가 확실히 적잖아요. 그러면은 뭔가 참여를 하거나 활동을 하더라도 본 사람을 또 보고 또 보고 계속 만날 것 같아요. 그러면 다른 걸 참여해도 똑같은 사람들만 만나게 될 수도 있으니까 만나는 범위를 조금 넓히고 싶은데 그 방안은 아직 생각이 잘 안 나요.


진수 I 개인적으로는 그런 방안을 굳이 생각하면서 인적 교류를 하려고 하면은 기존에 있던 분들 또는 내가 속해 있는 그런 그런 공동체 모임 그룹조차도 놓칠 경우가 생기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러니까 근데 그거는 인적 교류는 막 내가 고군분투해 가지고 한다기보다는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가다 보면은 고군분투하다 보면은 진짜 그런 거 있잖아요.


좋은 게 좋은 것만 들어와야 되는데 안 좋은 것까지 섞여 들어오다 보니까 나중에는 이게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구분도 하기 어렵고 내가 좋은 그룹에 속해 있는 사람인지 아니면 나쁜 그룹에 속해 있는 사람인지도 구별이 안 되는 그런 모호한 상황이 생길 것 같다는 생각 그러니까 어쨌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까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대로 만나다 보면은 나랑 결이 맞는 사람과 어울리게 되고 또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사람도 만나게 되고 그중에 이제 또 만나게 돼 보다 보면 이제 나쁜 그러니까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조금 자연스럽게 이렇게 배제할 수 있는 그런 능력도 길러지게 되고 그럼 그거는 이제 굳이 어떻게 보면 방안을 모색한다는 거는 인간관계를 방안을 모색한다는 거는 내 스스로가 약간 좀 인위적인 관계를 형성하려는 약간 그런 경향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가듯이 하면 좋을 것 같긴 해요.


크롱 I 왜 근데 그런 게 고민이에요?


청년1 I 걱정인 것 같아요. 만났을 때 관계가 틀어지면 또 보기 힘드니까요.


크롱 I 음 지역은 그런 일이 되게 많습니다. 저는 근데 아까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되게 좁은 커뮤니티고 거기서 관계가 틀어지는 경우도 되게 많고, 얼굴 못 보는 경우도 되게 많은데 저도 되게 막 그런 호혜적인 관계랑 처음에 맺고 살다가 이제 마을에서 다시는 얼굴을 볼 수 없는 사람이 생긴 적이 있었어요.


제가 잘못한 일들이 있어서 그랬던 건데 그 얘기를 했을 때 저를 도와주셨던 선생님이 이제 드디어 마을 사람이 된 걸 축하한다는 얘기를 하셨거든요. 원래 그렇게 살아야 되는 거라고 그게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거라고 저는 좀 많이 그때 제가 생각했던 것들이 많이 좀 깨지고 허물어졌던 것 같아요.

 


I 또 우리 친구들 궁금한 건, 끝나고 따로 물어보도록 합시다! 사실 저희가 어제 모여서 마피아 게임도 열심히 했지만, 더 중하게 나눴던 이야기가 스스로 생각하는 자립이란 무엇인가, 그 의미를 정의해 보자. 이런 이야기를 나눴어요.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상태, 아니면 뭐 안전한 관계가 형성되는 것, 그런 것들이 이제 자립이라고 생각한다고 청년들이 말했는데, 세 분께도 물어보고 싶어요. 각자 생각하는 자립은 무엇인가. 그냥 일부러 안 만들어내셔도 되거든요. 그럼 평소에 생각해 보지 않은 질문이기 때문에 그냥 떠오르는 걸 해 주셔도 되고 일부러 막 이렇게 안 만들으셔도 됩니다. 생각을 안 해봤다 그러면 그것도 괜찮고 누가 그런 단어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살겠어요? 저 같이 생각 많은 사람이나 생각하고 사는거고.


진수 I 제가 생각하는 자립. 최대한 기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마음가짐이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뭔가 최대한은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는 최대한은 계속 노력을 해야 된다. 그게 자립의 출발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니은 I 맞는 말이에요. 저도 동의하는데요. 근데 또 자립은 혼자 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이제 지역 책방 마고를 통해서 새롭게 관계를 배웠던 게 서로서로 의지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근데 서로에게 어깨는 또 내어줘요. 근데 또 그 어깨에 기대지 않을 뿐인 거죠. 저마다 이제 나한테 어깨를 내어주는 사람이 있구나 이 사실로 힘을 내서 이렇게 살아가시더라고요. 저도 뭔가 내가 스스로 살아내야 하지만 또 뭔가 혼자가 아니야라는 거 이렇게 해서 생각할 수 있도록 서로서로 이렇게 도와줘야 되고 근데 또 어려운 것 같아 의지해서도 안 되지만 또 의지할 수 있도록 뭔가 마음으로는 계속 연결을 신경 써야 하고.


그래서 저는 자립은 혼자 해야 되는 거지만, 또 좀 어렵지만 혼자 가능한 것도 마음이 자꾸 연결될 수 있는 거를 내 삶에 자꾸 만들어 두시는 게 안전한 것 같아요.


크롱 I 저도 농사지으면서 배운 건데요. 저는 그렇게 혼자 사는 건 아무것도 없구나 생각해요. 마을에서도 그렇고 농사지으면서도 그렇고 사람들 친구들이랑도 많이 그런 얘기를 했던 것 같아요. 오히려 좀 기꺼이 자기 취약함을 좀 드러낼 수 있는 곁을 많이 만드는 게 자립인 것 같아요. 그래야 잘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자기 색깔별로. 왜냐하면은 그래야 충분히 무너질 수도 있고 다시 설 수도 있는 것 같거든요. 이렇게 뭔가 옆에 누군가 내가 기댈 수 있는 어깨가 되어줄 수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들 만들고, 누군가에게 충분히 내가 또 그런 어깨가 되어 주는 그게 자립 아닐까. 그래야 우리가 좀 덜 뭔가 갇혀서 좀 살지 않을까 약간 이런 생각들을 좀 했던 것 같아요.

혼자 하려고 하면 저는 좀 힘들더라고요.



I 감사합니다. 오늘 긴 시간 함께해 주신 세 분께 박수를 보내며 끝을 맺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니은 I 자, 잠깐 할 말이.... 저는 일단 계속 자립을 굉장히 동경하고 있고요. 사실 서울을 떠나면서 282북스를 응원하는 것도 멀어지는 게, 남원에서는 아무래도 서울에서만큼은 안 될 테니까 그것도 저한테 되게 크게 아쉬움이었어요. 그런 아쉬움으로 남원에 왔는데, 갑자기 더 가까이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것도 너무 반갑고. 현실적으로 말을 너무 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또 안 된 것 같아서 민망하기도 하고요. 네 아무튼 제가 드릴 수 있는 도움은 만약에 남원에서 공간 활용 이런 게 필요하시면, 너무 작은 공간이긴 하지만 뭐 이렇게 필요하실 때 도와드릴 수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I 감사합니다! 물빛 고래야, 저기 연락처 넘겨드려. 어서.

탈가정 청년들의 크고 작은 삶의 고민을 나누는 공간
탈가정 청년들이 삶을 살아가며 하게 되는 크고 작은 고민들을 좋은 어른들과 나누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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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도이탈]은 표준적 삶의 궤도를 벗어나 자신만의 궤도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주식회사 282북스의 사회적 프로젝트입니다.
그 첫 번째 삶의 궤도로 ‘탈 가정 청년’의 이야기를 전하는
[궤도이탈; 청년 독립 선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본 프로젝트는 서울사회복지 공동모금회 아너소사이어티 [청청모 지원사업]으로 운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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