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세 분모두 남원에 내려와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내려온 건 아니잖아요. 여기에서 살아야지 마음먹고 내려왔다기 보다, ‘잠깐 쉬었다가가야지.’ 했다가 머무르게 된 계기가 있을 것 같아요.
니은 I 너무나도 많은 돈이 들어가는 게 서울 사이였던 것 같아요. 너무 지쳐서 마음이 지친 것뿐만 아니라 몸도 이제 안 좋아지니까 부모님이 내려오라고 한 거죠. 이제 부모님이랑 같이 살고 싶지 않았거든요. 근데 어쩔 수 없이 잠깐만 쉬자 하고 내려왔는데...
사실 저는 계속 서울로 다시 돌아오고 싶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제가 좋아하는 것들은 다 서울에 있고 그게 이런 지방에는 너무 적다. 문화생활이나 이런 것들.
근데 어쩌다 보니, 사실 그때 제가 뭔가 세상과 교류하지 않으려고 자꾸 하니까 아빠가 안 되겠다 생각을 하셨나 봐요. 사실 제가 카페를 차리고 싶어 하기도 했는데, 제 스스로 하길 기다려 봤자 의미가 없다 생각하신 건지. 아빠가 먼저 저질러버리신 거예요.
그래서 그냥 시작을 해버리신 거죠. 질문이 뭐였죠?
I 이곳에 머물러야 되겠다고 생각 여기에 좀 뿌리를 좀 내려봐야 되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
니은 I 네, 맞아요. 그래서 카페 계약 끝나면 계속 여기 있을지는 물음표였는데, 지금은 최근에 어떤 분이 서울 가서 같이 일할래? 뭐 이런 얘기를 하셨는데 전 여기 있고 싶어요.라는 마음이 딱 들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그런 마음이 생기게 됐지라고 질문을 해주시니까 생각해봤는데, 조금 지방의 매력을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아요.
뭔가 서울은 너무 넓고 그러다 보니까 연결되려면 더 많은 힘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저한테는 목소리를 내도 그 목소리가 이렇게 누군가가 지금 말을 하고 있구나 이런 걸 누가 알아주기까지도 되게 시간이 많이 걸리고. 근데 지방에서는 이준수 대표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내가 열심히 뭔가를 지속하기만 해도 그게 빨리 눈에 확 띄는 거예요. 그런 매력도 있고. 또 제가 여기서 뿌려놓은 것들이 이제는 뭔가 두고 이렇게 떠날 수 없으니 더 소중해져 있었고 또 문화생활이나 그런 것들도 저는 서울보다 남원 생활하면서 더 많이 얻었던 것 같아요.
그 서울 살 때보다 남원 살 때 더 뭐라야 될까 아까 표현한 것처럼 되게 조용하지만 되게 비범한 사람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조용하지만 뭔가 되게 꿈틀 꿈틀 거리는 게 많은 분들. 그래서 그분들하고 할 수 있는 게 아직은 너무 많은 것 같고 그걸 할 수 있는 경험들을 좀 더 보고 싶고 그래서 굳이 도시로 가는 것보단 여기서 조금 더 다채롭게 살아가는 경험을 더 많이 해보고 싶다고 마음이 바뀐 것 같아요.
크롱 I 저는 뭔가 관계 맺기가 되게 재밌고 그게 되게 힘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저 아까 막 올해 연초에 지갑이 아니라, 전 재산이 진짜 8천 원밖에 안 남았는데 근데 별로 그렇게 생계가 걱정되지 않는 거예요. 어떻게 또 지나가겠지 약간 이런 생각이 들고. 그 배경에는 때 되면 뭐 저를 좀 긍휼히 생각해 주시는 어르신들이 농사짓는 어르신들이 쌀도 보내주시고 뭐 감자 철 되면은 좀 캐가라면서 감자도 나눠 주시고 약간 이런 식의 어떤 되게 그냥 나누고 같이 밥해 먹고 어떤 관계 맺으면서 그 속에서 어떤 호혜적인 어떤 뭔가가 생기는 것들이 되게 저한테는 이 공간이 처음 경험해 주고 경험했던 곳인데 이제 그런 것들을 그냥 지역에 계속 살게 만드는 것 같아요.
서울에 가서 이거 할 수 있을까 생각했을 때 니은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서울은 일단 최저 생계비가 너무 높고 그걸 벌기 위해서 해야 되는 노동의 시간도 너무 길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사람들과 충분히 관계 맺지 못하고 그렇기 때문에 삶이 되게 충만해지지 못하고 그런 것들을 생각했을 때는 내가 돈을 못 벌더라도 내 삶이 이곳에서 이렇게 관계 맺고 사람들과 살아가는 게 너무나 충만하고 행복한 그게 저는 이곳에서 계속 살게 해주는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아요.
진수 I 남원이라는 도시 특히 여기 산내 쪽은 모든 게 막 평화롭고 여유롭고 깨끗하고 맑고 그렇게 보이잖아요. 근데 이게 멀리서 보면 그렇죠, 멀리서 보면. 시골이라고 해도 대도시권이랑 별반 다를 게 없는 이제 사람 살아가는 세상이다 보니까. 제 경험으로 비롯해서 다른 점이 있다면, 서울에도 있었고 대전도 있었고 김해, 부산에 있다 보니까 그곳에 있었던 저의 라이프 스타일과 여기 라이프 스타일의 제일 큰 차이점은 여기가 훨씬 더 그냥 저로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곳인 것 같긴 해요. 대도시권은 그 사회 속에 저를 약간 욱여넣는 그런 라이프 스타일이 주였던 것 같고, 여기는 훨씬 더 마음이 편하고 제가 해볼 수 있는 것들을 다채롭게 할 수 있는 기회가 좀 많은 도시인 것 같아요.
여기 내려온 첫날은 진짜 밤늦게 오기도 했는데, 여기서 뭘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어요. 들어가도 들어가도 약간 암흑 속으로 들어가는 그런 느낌이었는데, 딱 아침에 날 밟고 보니까 경치도 너무 좋고 조금만 나와도 계곡이 흐르고 있고 그리고 또 근처 큰 지역인 함양 남원이 여기서는 어디든 가까운 위치인 거예요. 지리적 위치가 그렇다 보니까 사실 뭐 문화적 교류라든지 의료적 혜택이라든지 조금 떨어지긴 해도 뭐 제가 뭐 마음만 먹고 시간만 내면은 뭐 그런 경험들은 다양하게 한두 시간 내외로 이렇게 해가지고 다 경험할 수 있는 지역들이 두루두루 이제 근처에 있고 무엇보다 이제 사람들도 좋으신 분들이 또 많아요.
제가 또 활동을 하다 보니까 그로 인해서 또 영향을 받아서 저도 조금 좋은 사람이 더 될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는 것 같고 그래서 좋은 도시가 이에는 좀 틀림없다.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어요.
크롱 I 저희가 너무 좋은 얘기만 했나요? 쓴맛과 짠맛 이런 것도 말해달라고 미쉘이 그러셨는데.
진수 I 쓴맛, 쓴맛을 좀 말씀을 드리자면은 어떻게 보면 이제 귀촌인들은 원주민들과의 그런 남원시에서 주는 혜택들이나 기회 제공적인 부분에 있어서 어떻게 보면 공생 관계일 수도 있지마는 어떻게 보면 또 나름 경쟁을 해야 돼요.
예를 들어서 저는 또 사업을 하고 있다 보니까 지자체에서 하거나 이제 도에서 하는 것 같은 경우는 일단 토착 기업과의 경쟁에서 또 살아남아서 선정이 되어 보려고 부단히 노력을 하는데 사실은 초창기에는 어떤 좀 불미스러운 경우가 있었어요. 그래서 약간 남원시에 대한 그런 이미지가 완전히 바닥이었어요. 저한테는 한 1년 동안에는 어떤 경우였냐면은 그런 거죠. 이제 지원 사업도 이제 토착 기업이고 이제 막 유지고 이런 분들은 관공서 약간 그런 인맥과 연을 통해서 되는 그런 사례들을 보다 보니까 이 남원시가 약간 그런 거 있잖아요.
춘향이의 도시로 안 보이고 변사또의 도시로 바뀌고 약간 너무 약간 그런 도시로 보이는 거예요.
I 변사또의 도시? 와하하하하
진수 I 근데 그런 이런 사회도 있구나라고 한 3년 차 때 현실을 깨닫게 되었고요. 그래 그러면은 이 사회에 맞춰서 나도 지역이랑 소통하러 나가보자고 생각해서 그때부터 좀 사람들도 만나고 활동하게 되고 그러면서 뭐 물론 불미스러운 사건이 있었던 그분과는 아예 그냥 저는 상종을 안 하지마는, 그런 분도 있는 반면에 너무 좋으신 분들 많은 거예요. 활동을 하면서 좋은 분들을 많이 보고, 좋은 것도 많이 보고 하면서 이 도시에 뭐 좋은 점이 뭐가 있을까라는 거를 조금 거기에 염두를 두고 이 삶을 살아가다 보면은 그게 더 훨씬 더 윤택한 삶을 살아가는 길이지 않을까 나쁜 마음만 가지고 살아가면은 밑도 끝도 없을 것 같다.
I 이런 생각이 드네요. 니은님은 남원이라는 곳에서 본인의 취향과 맞는 무언가들을 만나면서 나를 조금 더 완성시키고 단단하게 만들 수 있게 된 것 같고, 두 분은 관계에 대해서 다시 정리하고 정의하는 시간을 보내신 것 같아요.
이거 진짜 중요한 질문인데요, 내려올 때 대략 어느 정도의 자산을 가지고 내려오신 거예요?
크롱 I 저, 한 20만 원.
I 근데 크롱님은 이미 지역에 가족 기반이 있었잖아요.
크롱 I 네 맞아요. 저는 이제 가족이 여기 있어서 내려오긴 했는데요. 가족들이 제가 내려오고 2년 뒤에 떠났어요. 그래가지고 저는 약간 돈 대신 다른 걸로 살아남는 생존의 방법들을 계속 찾았던 것 같아요.
니은 I 저는 어디까지 솔직하게 말해야 하는지..
I 그냥 대충~?
크롱 I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를 해야..
진수 I 원단위까지
니은 I 저희 집은 부모님이 시골 목회를 하고 계셔 가지고 부모님이 저희한테 뭘 해 주실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그냥 고등학생 때부터 계속 돈이 생기면 무조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모았던 것 같아요. 그렇게 스물 후반까지 모았던 돈이 천만 원 정도였고, 그 천만 원 갖고 일단 내려와서 카페를 차리고 제 통장에 나온 돈은 한 200만 원? 그 200도 이제 나그네를 통해서 일단 벌리는 게 없으니까 계속 계속 금방 사라졌죠. 뭔가 제 정말 긴 시간의 돈이 그렇게 한순간에 빠르게 사라지니까 이게 진짜 정신 붙들고 있기가 쉽지가 않더라고요.
그래서 크롱님처럼 이런 좋은 경험을 했다면 저도 또 어땠을지 모르겠는데, 산내랑 또 남원 시내 권은 또 다른 것 같아요. 내 인생 내가 알아서 잘 살아야 했고 근데 잘 살 수 있을까 약간 그런 초조함과 이런 거를 한 1년 동안 알았던 것 같아.
그래도 지역에서는 돈 쓸 데가 많이 없으니까 돈이 없는 게 막 그렇게 또 막 도시만큼 초라하지는 않더라고요.
다만 미래를 생각했을 때, ‘아, 망했다. 지구 종말 해라.’ 막 이런 식이었어요.
I 준수 대표님은요? 매장 권리금 받은 거 다 들고 오셨어요?
진수 I 네, 일단은 대출 끼고 공장을 하게 된 거죠. 근데 이게 도시도 그렇고 뭐 시골이라고 해서 저는 살짝 생각이 다른 게 경제 활동은 필수 불가결이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사람이 살아가려고 하면은 돈이 있음으로 해서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생각하고 하고자 하는 그러니까 구현해 보고 싶은 내 삶을 조금 더 폭넓게는 가지고 갈 수 있는 장치가 경제력이라고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일단 뭐 삶에 있어서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있으면 어쨌든 내가 구상하고자 하는 내 삶의 그런 방향의 가짓수나 질이나 그런 거를 조금 더 명확하게 끌고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내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는데 그런 원동력이 되는 요소임에는 틀림없다고 생각을 하고요. 일단 경제 활동을 하면서 생기는 그런 분명한 그 시야 범위가 좀 넓어질 거라고는 생각을 해요.
I 우리 친구들 중에서 뭐 궁금한 거 없어요?
청년1 I 도시보다는 청년 인구가 확실히 적잖아요. 그러면은 뭔가 참여를 하거나 활동을 하더라도 본 사람을 또 보고 또 보고 계속 만날 것 같아요. 그러면 다른 걸 참여해도 똑같은 사람들만 만나게 될 수도 있으니까 만나는 범위를 조금 넓히고 싶은데 그 방안은 아직 생각이 잘 안 나요.
진수 I 개인적으로는 그런 방안을 굳이 생각하면서 인적 교류를 하려고 하면은 기존에 있던 분들 또는 내가 속해 있는 그런 그런 공동체 모임 그룹조차도 놓칠 경우가 생기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러니까 근데 그거는 인적 교류는 막 내가 고군분투해 가지고 한다기보다는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가다 보면은 고군분투하다 보면은 진짜 그런 거 있잖아요.
좋은 게 좋은 것만 들어와야 되는데 안 좋은 것까지 섞여 들어오다 보니까 나중에는 이게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구분도 하기 어렵고 내가 좋은 그룹에 속해 있는 사람인지 아니면 나쁜 그룹에 속해 있는 사람인지도 구별이 안 되는 그런 모호한 상황이 생길 것 같다는 생각 그러니까 어쨌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까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대로 만나다 보면은 나랑 결이 맞는 사람과 어울리게 되고 또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사람도 만나게 되고 그중에 이제 또 만나게 돼 보다 보면 이제 나쁜 그러니까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조금 자연스럽게 이렇게 배제할 수 있는 그런 능력도 길러지게 되고 그럼 그거는 이제 굳이 어떻게 보면 방안을 모색한다는 거는 인간관계를 방안을 모색한다는 거는 내 스스로가 약간 좀 인위적인 관계를 형성하려는 약간 그런 경향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가듯이 하면 좋을 것 같긴 해요.
크롱 I 왜 근데 그런 게 고민이에요?
청년1 I 걱정인 것 같아요. 만났을 때 관계가 틀어지면 또 보기 힘드니까요.
크롱 I 음 지역은 그런 일이 되게 많습니다. 저는 근데 아까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되게 좁은 커뮤니티고 거기서 관계가 틀어지는 경우도 되게 많고, 얼굴 못 보는 경우도 되게 많은데 저도 되게 막 그런 호혜적인 관계랑 처음에 맺고 살다가 이제 마을에서 다시는 얼굴을 볼 수 없는 사람이 생긴 적이 있었어요.
제가 잘못한 일들이 있어서 그랬던 건데 그 얘기를 했을 때 저를 도와주셨던 선생님이 이제 드디어 마을 사람이 된 걸 축하한다는 얘기를 하셨거든요. 원래 그렇게 살아야 되는 거라고 그게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거라고 저는 좀 많이 그때 제가 생각했던 것들이 많이 좀 깨지고 허물어졌던 것 같아요.
I 또 우리 친구들 궁금한 건, 끝나고 따로 물어보도록 합시다! 사실 저희가 어제 모여서 마피아 게임도 열심히 했지만, 더 중하게 나눴던 이야기가 스스로 생각하는 자립이란 무엇인가, 그 의미를 정의해 보자. 이런 이야기를 나눴어요.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상태, 아니면 뭐 안전한 관계가 형성되는 것, 그런 것들이 이제 자립이라고 생각한다고 청년들이 말했는데, 세 분께도 물어보고 싶어요. 각자 생각하는 자립은 무엇인가. 그냥 일부러 안 만들어내셔도 되거든요. 그럼 평소에 생각해 보지 않은 질문이기 때문에 그냥 떠오르는 걸 해 주셔도 되고 일부러 막 이렇게 안 만들으셔도 됩니다. 생각을 안 해봤다 그러면 그것도 괜찮고 누가 그런 단어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살겠어요? 저 같이 생각 많은 사람이나 생각하고 사는거고.
진수 I 제가 생각하는 자립. 최대한 기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마음가짐이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뭔가 최대한은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는 최대한은 계속 노력을 해야 된다. 그게 자립의 출발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니은 I 맞는 말이에요. 저도 동의하는데요. 근데 또 자립은 혼자 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이제 지역 책방 마고를 통해서 새롭게 관계를 배웠던 게 서로서로 의지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근데 서로에게 어깨는 또 내어줘요. 근데 또 그 어깨에 기대지 않을 뿐인 거죠. 저마다 이제 나한테 어깨를 내어주는 사람이 있구나 이 사실로 힘을 내서 이렇게 살아가시더라고요. 저도 뭔가 내가 스스로 살아내야 하지만 또 뭔가 혼자가 아니야라는 거 이렇게 해서 생각할 수 있도록 서로서로 이렇게 도와줘야 되고 근데 또 어려운 것 같아 의지해서도 안 되지만 또 의지할 수 있도록 뭔가 마음으로는 계속 연결을 신경 써야 하고.
그래서 저는 자립은 혼자 해야 되는 거지만, 또 좀 어렵지만 혼자 가능한 것도 마음이 자꾸 연결될 수 있는 거를 내 삶에 자꾸 만들어 두시는 게 안전한 것 같아요.
크롱 I 저도 농사지으면서 배운 건데요. 저는 그렇게 혼자 사는 건 아무것도 없구나 생각해요. 마을에서도 그렇고 농사지으면서도 그렇고 사람들 친구들이랑도 많이 그런 얘기를 했던 것 같아요. 오히려 좀 기꺼이 자기 취약함을 좀 드러낼 수 있는 곁을 많이 만드는 게 자립인 것 같아요. 그래야 잘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자기 색깔별로. 왜냐하면은 그래야 충분히 무너질 수도 있고 다시 설 수도 있는 것 같거든요. 이렇게 뭔가 옆에 누군가 내가 기댈 수 있는 어깨가 되어줄 수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들 만들고, 누군가에게 충분히 내가 또 그런 어깨가 되어 주는 그게 자립 아닐까. 그래야 우리가 좀 덜 뭔가 갇혀서 좀 살지 않을까 약간 이런 생각들을 좀 했던 것 같아요.
혼자 하려고 하면 저는 좀 힘들더라고요.
I 감사합니다. 오늘 긴 시간 함께해 주신 세 분께 박수를 보내며 끝을 맺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니은 I 자, 잠깐 할 말이.... 저는 일단 계속 자립을 굉장히 동경하고 있고요. 사실 서울을 떠나면서 282북스를 응원하는 것도 멀어지는 게, 남원에서는 아무래도 서울에서만큼은 안 될 테니까 그것도 저한테 되게 크게 아쉬움이었어요. 그런 아쉬움으로 남원에 왔는데, 갑자기 더 가까이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것도 너무 반갑고. 현실적으로 말을 너무 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또 안 된 것 같아서 민망하기도 하고요. 네 아무튼 제가 드릴 수 있는 도움은 만약에 남원에서 공간 활용 이런 게 필요하시면, 너무 작은 공간이긴 하지만 뭐 이렇게 필요하실 때 도와드릴 수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I 감사합니다! 물빛 고래야, 저기 연락처 넘겨드려. 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