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돈 주고 쇼핑하는데도 다른 사람 눈치볼 때 있어? 부모님과 같이 사는 사람들은 엄마 눈치를 보게 된다고 인터넷 세상에서 배웠어. 나는 성인이 되고부터 혼자 살았기 때문에 그런 적은 없는데 이상하게 내 친구들 눈치를 보게 돼. 서로 처음 보는 옷을 입고 사진을 찍으면 "너 못보던 거다?"에 이어 “아주 난리났다 난리났어!”부터 내뱉게 되는걸 보니 이건 정말 이상한 중독이야. 너무 예민해서 가끔 몇 년 된 아이템 보고 "너 이거..?"하면 관심 좀 가져달라고 역풍을 맞을 수 있어 조심해야 해. 여하튼 그래서 죄 지은 것도 아닌데 제일 가까운 친구들한테 쇼핑 리스트를 숨기게 돼. 그리고 마지못해 들키면 왠지 머쓱해져. 그런데 또 찰진 욕을 들은 다음 자랑을 하는게 루틴이라 뭐라 안하면 어색한 기분 공감할 지 모르겠네. 사실 오늘까지 29CM 이굿위크이거든. 난 각종 블랙프라이데이에 의외로(?) 흔들리는 스타일은 전혀 아닌데 이번엔 스트레스가 쌓여서인지(변명) 기분이 즉각적으로 좋아지고 싶어서(변명2) 이것 저것 샀고, 그 말을 직접 전하지 못해 뉴스레터를 통해 고백하려고 해. 친구들아 나 쇼핑 좀 했다. 예쁜 옷 입고 다음에 만나자😋
#뱀파이어에 관한 아주 특별한 다큐멘터리

한동안 뉴스레터에서 웃음기 없는 작품들만 추천하는 것 같아 아주 마음을 졸였어. 사실 내가 누구보다 웃긴 걸 보고 싶었거든. 여러 편의 시트콤을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게다가 긴 러닝타임에 지쳐가던 차에 디즈니플러스에서 [뱀파이어에 관한 아주 특별한 다큐멘터리]를 발견했어. 뉴욕 스태튼섬에 자리잡은 뱀파이어들을 어느 다큐멘터리 팀이 촬영하기 위해 따라다니는 컨셉의 모큐멘터리인데 가끔 스탭도 뱀파이어한테 잡아 먹혀버리는, 뱀파이어에 관한 모든 상식을 적재적소에 활용한 B급 코미디야. B급 장르를 표방한 대부분의 실패작들은 완벽하게 통제된 엉성함과 연출 자체의 엉성함을 구분하지 못해. 그래서 잘 만든 B급 장르는 정말 귀하지. 그리고 어느 소집단 내에서 펼쳐지는 캐릭터 드라마라는 점에선 미드 [오피스]의 뱀파이어 버전같기도 해. 유머코드만 맞는다면 아마 이렇게 기발한 코미디는 없다고 느낄걸? 게다가 한 편에 20분 내외이니 너무 훌륭하지!

#조금 모자라지만 웃긴 뱀파이어

이 드라마의 뱀파이어들은 일종의 대안가족이야. 가장 연장자인 난도르와 난도르의 인간집사 기예르모, 부부 나드자와 라즐로, 에너지 뱀파이어 콜린 이렇게 서로 다른 5명이 뉴욕 스탠튼섬에 함께 살고 있어. 우리가 생각하는 뱀파이어는 일단 오래 살며 부를 축적한 덕인지 으리으리한 성에 살잖아. 게다가 다들 멋진 차림에 빈틈없고 차가운 이미지의 창백한 백인이지. 조금 구질구질한 저택에 살고 있는 이 드라마 속 뱀파이어들은 인종도 다양하며 모두 강한 자기애에 비해 다소 허술하고 몇 백년의 세월동안 변한 현대사회에 전혀 적응하지 못하고 있어. 몇 세기 전 유행하던 망토 차림으로 길거리를 돌아 다니는 것이 대표적이야. 보통은 정체가 탄로날까봐 걱정이 되어야하는데 일반인들이 보기엔 이상한 고스족일 뿐이라서 그저 웃겨. 뱀파이어들이 믿는 스스로의 위엄과 현실에서의 초라한 위치의 대비가 유머 포인트거든. 한편으론 내가 사랑하는 애니메이션 [극주부도]도 떠올랐어. 전혀 현실에 녹아들지 못하는 주인공이 누구보다 열심히 사회의 일원으로서 살아가려 하는데 일반 사람들과 세계관이 충돌하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이 레퍼토리라는 점에서 그래. 같은 패턴의 유머가 나올 때마다 매번 저항없이 웃을 수밖에 없는 치트키 같은 거지.

#성당에 간 뱀파이어

음식 대신 피를 마시고, 햇빛, 말뚝, 마늘, 십자가, 종교 등이 뱀파이어를 위협한다는 사실은 모두 알거야. 구체적으로 이 규칙을 유머 레퍼토리에 적극 차용하는데, 이제 막 시즌2를 시작한 시점 기준 보면서 제일 껄껄 웃었던 장면은 바로 뱀파이어들이 인간 집사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성당에서 진행되는 장례식에 참석해서 피를 줄줄 흘리며 버티는 장면이야. 난도르가 미국 시민권을 얻기 위한 면접 중 충성 선서의 ‘god’이라는 단어를 읽을 수 없어 결국 떨어지는 에피소드도 있어. 그런데 가벼운 유머에 비해 또 CG는 예상외로 흠잡을 데 없어. 그래도 명색이 뱀파이어니까 박쥐로 변신하기도, 날아다니기도 해. 이외에도 나름의 초능력을 사용하는데 인간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이면서도(인간을 죽이고 피를 마시니까) 무서워보이기는 커녕 그저 귀엽고 하찮아 보이도록 캐릭터를 구성한 대본이 정말 영리하다고 생각해. 인간의 윤리와 도덕을 기준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점도 재미있어. 같이 살면 서로에게 애틋할 것 같지만 그런 마음은 뱀파이어들에게 존재하지 않거든. 그래서 한 집에 살면서도 그다지 서로 애정을 갖지는 않지만 무슨 사건이 일어나든 언제나 함께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관계성이 매력있어. 조금 모자라지만 밉지 않은 내 친구들이랄까, 욕해도 내가 욕해 느낌의 안친한 가족이랄까.

#드와이트 러버 찾아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는 바로 뱀파이어 난도르의 집사 기예르모와 에너지 뱀파이어 콜린이야. 주인이 잠에 드는 낮에도, 그들이 깨어있는 밤에도 여전히 깨어있는(도대체 언제 자는거지?) 집사 기예르모는 사실 뱀파이어가 되고 싶어서 10년 째 주인을 섬기는 중이야. 뱀파이어에 대한 끈질긴 외사랑과 다소 부족한 눈치 덕에 뱀파이어들의 구박 속에서도 열정페이로 자부심을 갖고 일하고 있어. 정규직을 꿈꾸는 만년 계약직 같아 애잔하면서도 시즌1 마지막에서 밝혀지는 기예르모의 반전 정체 덕에 웃을 일은 더 많아졌어! 그리고 낮에도 일반인들처럼 회사에 다니는 에너지 뱀파이어 콜린은 피 대신 아주 지루한 이야기를 늘어놓음으로써 사람들의 에너지를 빨아먹는 뱀파이어야. 인간 뿐 아니라 뱀파이어의 에너지도 빨아먹기 때문에 난도르, 나드자, 라즐로는 매번 콜린을 빼고 모이려고 노력하는데 그 때마다 콜린이 어딘가에서 나타나서 조용히 바라보고 있어. 인간이든, 뱀파이어든 콜린과 대화한 모두가 정신을 잃는 모습이 내 웃음버튼이야. 콜린을 보면서 [오피스]의 드와이트가 떠오른건 나 뿐이야? 사실 글로 읽어선 재미가 전달되지 않을 것 같아. 각 회차도 짧으니 한번 보고 결정해보면 어떨까? 아무리 좋은 작품도 뇌나 감정에 과부하가 걸리면 소화하기 어려운 시기가 있지 않아? 그 때 어떠한 에너지 소모도 없이 실없이 웃으며 기분전환할 수 있는 20분 내외의 가벼운 시트콤이야. 얼마 전 우울한 일이 있었는데 이 시트콤 1화를 보고 기분이 좋아졌어. 누군가에게도 그런 구원이 되었으면 좋겠다!

#관람포인트01

2014년에 제작된 동명영화가 원작이야.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상영하고 2020년에 뒤늦게 개봉한 모양인데 이미 본 사람들 사이에선 입소문이 자자했던 작품이었던 듯 해. 드라마 역시 원작 감독이었던 저메인 클레멘트와 타이카 와이티티 두사람이 모두 각본, 연출에 참여해 원작의 완성도를 그대로 끌고 가고 있다는 호평을 받고 있어.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은 국내에서 <토르: 라그나로크><조조래빗>으로 유명해. 안타깝게도 영화는 현재 볼 수 있는 플랫폼이 없어. 오래 전 극장에서 일할 때 장르영화 기획전 후보작을 찾을 때 발견했던 작품이라 개인적으로 굉장히 궁금해했었는데 왜 극장 개봉을 몰랐지? 했더니 당시 티빙 독점 공개였어.

#관람포인트02

화려한 카메오도 즐거운 재미야. 원작 영화 주인공인 조너선 브루를 비롯해 데이브 바티스타, 틸다 스윈튼, 베네딕트 웡, 마크 해밀, 닉 크롤, 짐 자무쉬, 심지어 저메인 클레멘트,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까지 틈틈이 낯익은 얼굴들이 등장해.

레이지 카우 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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