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 같은 남의 집 이야기
스물 여섯 번 째
✨이번 호 소설은 이근하 님의 이름을 빌려 창작되었습니다.✨
주인공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기의 집  
반강제로 집에서 나와 산 지 한 달이 지났다. 이 정도면 월세줘야 하는 것 아니야? 집주인이 하도 괜찮다며 거절해서 입 밖으로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다. 그저 이제 슬슬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솔직히 한 달이나 있었는데, 가도 되겠지.

고개를 돌려 옆으로 돌아누운 동거인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색색거리는 소리는 그녀가 잠에 들었다는 사실을 고하고 있었다. 정적 속에서 들리는 숨소리는 건조한 여운을 남기며 사라졌다가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나는 조용히 벽으로 돌아누우며 뻑뻑한 눈을 감았다.
***
드라마처럼 갑작스레 집이 없어져서 동거를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동거인이 전화를 걸어온 것은 지금으로부터 한 달 전, 어느 쾌청한 가을날이었다. 그러니까 현 동거인이자 십년지기 친구인 근하는 최근 연락으로부터 다섯 달 만에 문자를 보내왔다. 그녀는 늘 연락이 드문하다가 갑작스럽게 문자를 보내곤 했다. 뭐해? 라는 두 글자는 생존 신고였다. 나는 잘 살아있다는 암묵적인 단어이자 이제 볼 때가 됐지? 하는 약속이 담긴 문장.

다섯 달은 조금 심했지라는 감상이 들어 실없게 웃고는 보고 싶다는 답장을 써내려갔다. 그러자 근하는 기다렸다는 듯 조금의 공백도 없이 내일 시간 돼? 라고 말했다.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오후에는 시간이 된다는 긍정적 의사를 내비치자 그럼 7시에 항상 만나던 카페에서 보자는 접선 요청을 받았다. 나는 알겠다고 답했다.

카페에 도착한 것은 7시 10분경이었다. 10분정도 늦을 것 같다고 보낸 문자에는 읽었다는 표시가 없었다. 같이 늦나보다 하고 들어간 카페에서 근하를 본 것은 메뉴를 주문한 이후였다. 구석진 자리에 앉아 있는 근하는 항상 마시는 자바칩 프라푸치노를 앞에 두고 멍하니 바닥을 응시하고 있었다. 핸드폰도 안 보고 뭘 하나 싶어서 말도 안 걸고 그녀를 응시하던 나는 결국 음료가 나오고서야 자리로 향했다. 책상에 컵을 올려놓고 맞은 편에 앉자 근하는 그제서야 고개를 들었다. 다섯 달 전과 비교했을 때보다 수척해지고 다크써클이 짙어져 있었다.

“늦어서 미안.”
“아니야.”

정적이 둘 사이를 감쌌다. 나는 따뜻한 머그잔에 손을 올려놓고 어색한 분위기에 잔을 만지작 거리다가 목을 조금 축였다.

“무슨 일 있어?”

근하는 한참을 머뭇거렸다.

“······너는 집에 모기가 있으면 어떻게 해?”
“모기? 모기야 그냥 잡지. 아니면 에프킬라 뿌리거나.”

그렇구나. 근하는 한 입도 대지 않은 프라푸치노를 빨대로 휘적거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왜 모기가 뭘 어쨌는데.”
“모기 때문에 잠을 못 자겠어.”
“모기 때문에?”
“응. 분명 불을 끄면 귀에서 윙윙대는데 잡으려고 불을 켜면 안 보여. 에프킬라를 뿌려도 모기향을 피워도, 모기가 싫어하는 주파수를 틀고 잠에 들려고 해도 똑같아. 보이지는 않는데 자꾸 불만 끄면 그 소리가 들리니까 잠을 못 자겠어. 벌써 석 달 째야.”

근하와의 연락은 다섯 달 전. 그녀의 새로운 자취 집에 집들이를 갔을 때 이후로 끊겨있었다. 초보 자취생인 근하는 그동안 벌레와의 사투를 겪고 있었나 보다. 걱정과는 달리 가벼운 내용의 고민에 안도한 나는 대수롭지 않게 조언을 건넸다.

“세스코 불러. 네가 못 잡겠으면 불러야지.”
“불렀어.”
“진짜?”
“근데 아무것도 없대. 깨끗하대.”
“그럼 된 거 아니야?”

어이가 없다는 뉘앙스를 진득하게 풍긴 나는 답답함에 아직 식지도 않은 음료를 벌컥 들이켰다. 슬슬 모기 이야기가 지겨워지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서 무슨 모기 이야기만 이렇게 진지하게 이야기해.

“모기 수명이 한 달에서 두 달이래.”
“그런데.”
“그런데 세 달째 모기 소리가 들린다고. 모기가 없는데.”
“모기 귀신인가 보지.”
“나 지금 진지해.”

숨이 턱 막히는 기분에 나는 할 말을 잃고 근하를 응시했다. 그깟 모기 하나로 이렇게 열을 내는 근하가 이해되지도 않고 답답했다.

“정 그렇게 불안하면 내가 모기 잡아줄게. 그깟 모기 잡아주면 되잖아.”
“정말? 그럼 모기 잡을 때까지 우리 집에 있어줄 수 있어?”

모기 하나를 잡아달라면서 선뜻 자신의 집을 내어주는 근하의 모습에 나는 묘한 이상을 감지했다. 어쩌면 근하가 내가 이 말을 할 때까지 기다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들었다.

“진심이야?”
“응. 우리 집에서 모기 잡아줘. 대신 잡을 때까지 나가면 안 돼. 부탁이야.”

그렇게 나는 근하와 동거를 시작했다. 하루치 짐을 싸들고 근하의 집에 가며 얼떨떨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진짜? 모기 잡을 때까지 집에 가지 말라고? 진심은 아니겠지?
***
근하의 집은 집들이 때부터 느꼈지만, 오늘의 집에서 나올 것만 같은 인테리어로 멋들어지게 꾸며놓은 모델하우스같은 집이었다. 그런데 예쁘기만 하고 실속은 없었다. 청소하기 힘들겠거니 생각한 집에 이렇게 살게 되니 낯설었지만 모기 때문에 석 달째 잠도 못 잔다는 십년지기 친구가 가엽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 하루 만에 잡아버리고 다시 집에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근하와 함께 영화를 보면서도 온 신경을 모기에 집중시켰다. 집에는 영화 소리만 가득 울리고 있었다. 영화가 끝날 때동안 모기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결국 근하의 요구를 들어주지 못한 나는 근하와 함께 침대에 누워 벽 쪽에 붙으며 모기 소리가 들리면 깨워달라고 당부했다. 그날 누가 업어가도 모를 만큼 곤히 잠을 잔 근하는 개운하게 일어나, 내가 있어서 집에 모기가 안 나오는 것 같다며 기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문제는 모기가 다음 날에도, 모래에도 글피에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근하는 언제 모기가 나타날지 모른다며 모기를 잡을 때까지 집에 머물러 달라고 애원했다. 나는 당초 예상보다 늘어나는 체류일에 집에서 짐을 싸서 근하의 집으로 오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모기는 코빼기도 안 보였고 동거 기간이 늘어나면서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에 밤에 연신 몸을 뒤척였다. 근하의 불면증이 옮은 건지 잠은 오지 않았고, 모기 소리는 여전히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을 채웠다. 이제 진짜 집에 가야겠다. 이 집에는 모기가 없다. 잠시 선잠에 들었는지 눈을 뜨니 아침이었다. 나갈 준비를 하는 근하를 보며 전부터 말해야겠다고 다짐한 것을 입밖으로 꺼냈다.

“나 이제 집에 가야할 것 같아.”

근하는 귀걸이를 바꿔 끼려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아직 모기 못 잡았잖아.”
“그야 이 집엔 모기가 없으니까.”
“······.”
“모기는 없어, 근하야.”

근하는 내 말을 못 들은 척하며 집 밖으로 나갔다. 나는 천천히 짐을 정리했다. 한 달을 살아서 그런지 이 집이 내 집 같고 내 집이 남의 집 같았다. 많아진 짐을 세 번에 걸쳐 옮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피곤해서 그런지 짐을 정리하자마자 나도 모르게 잠에 들었다. 간만에 푹 자고 일어났는데 부재중전화가 15통이나 찍혀있었다. 발신인은 근하였다.

“왜 전화했어?”
“···집에서 모기 소리가 들려.”

나는 소름이 돋아 전화를 끊었다. 한 달 동안 근하의 집에서 모기를 코빼기도 보지 못했는데 이제서야 모기가 나타났다니? 그녀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전화가 끊긴 적막 속에서 나는 중얼거렸다. 모기는 없어. 모기는 없다고.

저 멀리서 근하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정말? 모기가 없는게 확실해?

이명처럼 집에 모기가 있다는 근하의 말이 맴돌았다. 어쩌다 들어온 모기 한 마리가 귀에 맴도는 소리가 잔상을 남기듯, 근하의 말이 뇌리에서 재생된다. 정말? 모기가 없는 게 확실해?

모르겠어.

나는 결국 밤을 지새웠다. 이후 근하에게 연락은 없었다. 다음날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보니 근하의 집을 배경으로 찍은 셀카가 누군가와 함께 태그되어 있었다.

[내가 무섭다고 하니까 달려와 준 든든한 민지]

스토리를 보자마자 모기가 생각났다. 근하가 말한 모기의 정체는 이명이었다. 외로움이 만들어낸 이명. 모기는 근하였다.
🎶 님, 다음화 소설의 주인공이 되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소설 집은 님이 다음 호의 주인공이 되시길 기다리고 있을게요.
sti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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