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新) 반간첩법(방첩법)은 2014년 시행 이후 9년 만에 처음으로 대폭 개정된 것인데 종래 5장 40개 조항에서 6장 71개 조항*으로 늘었다.
*제1장 총칙, 제2장 안전 대비, 제3장 조사 및 처분, 제4장 보장 및 감독, 제5장 법적 책임, 제6장 부칙.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간첩 행위의 정의다. 종전 방첩법은 간첩 행위를 ‘국가 기밀’ 제공 행위에 국한했으나, 개정 법안에서는 ‘중국의 안전과 이익에 관한 문서, 데이터, 자료, 물품 제공, 매수’ 등으로 적용 범위를 확대했다. 또 중국 국가 안전에 위해가 된다고 판단되는 자국민과 외국인에 대해 출입국을 허용하지 않으며, 신문사·TV 등 매체는 방첩법의 선전교육을 의무화하도록 규정했다.
▶개정 배경과 의도
중국이 방첩법을 개정한 것은 시진핑 국가주석의 '국가 안전' 우선 정책과 관련이 있다. 중국이 볼 때 ‘국가 안전’은 외교, 국방 분야의 안전보장뿐 아니라 경제나 사회, 문화 등의 영역에서도 ‘정권에 위협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현재 중국은 국내외적으로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에 부닥쳐 있다. 지난해 11월 제로 코로나 정책을 완화하여 리오프닝(경제 재개) 정책을 취하고 있지만 기대와는 달리 경제가 회복되기는커녕 오히려 둔화 조짐이다. 2018년 시작된 미-중 간 통상갈등도 좀처럼 봉합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국내외 난관을 극복하지 못하고 국가 안전이 위협받으면 그 책임은 결국 당과 정부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국내 안정을 위해 강화된 방첩법이 시행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특히 지난 5월 개최된 중국 국가안전위원회* 회의가 주목된다. 이 회의에서 시 주석은 “현재 공산당 체제가 위기에 처해 있다”라며 “미중 갈등이 격화되면서 국제 상황이 복잡해지고 힘들어져 국가 안전에 엄중한 영향을 끼칠 수 있어 대비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2012년 시진핑 정권 출범 이후 국가 안전 확보를 위해 설립(위원장 : 시진핑 주석)
이에 앞서 시진핑 3기 정부의 출범을 앞둔 지난해 가을에 열린 중국 제20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 대회) 연설에서도 시 주석은 ‘국가 안전’을 강조했다. 그는 “국가 안전보장은 민족 부흥의 기초”라고 규정하고, “효율적이고 권위 있는 국가 안전 지도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결국, 이번에 개정된 방첩법은 시진핑 정부가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국가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차원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국가 안전 시스템 구축은 공산당 체제를 공고히 하는 기초가 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한 소식통은 국가 안전 관련 조직과 법이 정비된 것은 외국 세력이 중국 내 소수민족이나 반체제 세력과 연계해 국가 안전을 위협하지 않을까 하는 중국의 우려도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조심스레 추측했다.
▶파급효과와 해외의 반응
개정된 방첩법의 시행으로 외국인뿐 아니라, 외국기업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사실 중국은 그동안 외국인 투자를 확대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2017년에 처음으로 '외국인 투자 네거티브 리스트' 제도를 도입했고 해마다 중국 내 외국인 투자 금지 업종의 수를 축소하면서 외국기업에 대한 중국 진출의 문턱을 낮추어 왔다.
하지만 이번 방첩법은 앞으로 외국기업의 중국 진출을 머뭇거리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이미 미국, 일본, 대만 등 해외에서는 파장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중국에서의 사업에 대해 우려하는 분위기다.
<미국>
미국의 국가정보국(DNI) 산하 국가방첩안보센터(NCSC, National Counterintelligence and Security Center)는 지난달 23일 공지에서 “중국 방첩법의 행위 구성 요건이 애매모호해서 중국에서 활동하는 미국과 기타 외국기업들의 통상적인 비즈니스 활동이 중국 당국에 의해 간첩 의심 행위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NCSC 관계자는 “외국기업이 현지에 고용한 중국인 직원에게 중국 내 시장 정보 수집 업무를 하도록 하는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게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라고 전했다.
실제로 방첩법이 시행되기 이전인 지난 3월 중국 당국은 미국계 기업 조사업체인 민츠그룹의 베이징 사무소를 압수 수색하고 현지 직원을 구속했다. 4월에는 미국 컨설팅 업체인 베인 앤 컴퍼니의 상하이 사무실에서 직원들을 심문하고 컴퓨터와 휴대전화를 압수하는 등 방첩법에 근거한 단속을 벌여왔다. 한 미국계 컨설팅 회사는 “중국은 정치적으로 적대적인 국가의 기업이나 국민에게 방첩법을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라면서 “중국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점점 커지고 있다”라고 경고했다.
미 국무부는 6월 5일 중국 여행에 대한 권고 사항을 업데이트하며 '불법 구금 위험'을 경고하고 중국 여행을 자제할 것을 촉구했다.
<일본>
일본 지지통신에 따르면 반간첩법이 제정된 2014년 이후 일본인 구속 사례가 잇따라 현재까지 적어도 17명의 일본인이 중국 당국에 의해 구금돼 있다.
지난 3월에는 베이징 아스테라스 제약의 일본인 간부가 구체적인 협의 사실도 밝혀지지 않은 채 구속됐다. 베이징 주재 일본계 기업의 한 간부는 "일본의 민간인 구속은 쇼크다"라며 당혹감을 보이고 “직원의 안전 확보가 기업의 최우선 과제가 됐다”라고 말했다.
한 대기업(전기)은 지난 5월 전체 직원에게 중국 체류 중 주의사항에 관한 공지를 보내 “반간첩법은 운영상 불명확한 부분이 많다”라며 중국 시내에서의 사진 촬영도 자제하라고 요청했다.
중국의 고위 당국자*들은 중국이 고도의 대외개방 정책과 외국기업의 대 중국 투자 확대를 장려하고 있지만, 실제로 일본 기업의 중국 시장에 대한 관심도는 이전보다 많이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무역진흥기구(JETRO)의 조사에 따르면, 중국 내 사업 확대에 의사를 밝힌 일본 기업의 비율은 2022년 33.4%에 그쳤다. 관련 통계가 집계된 2007년도 이후 최저치이다.
*리창(李强)총리는 지난 3월 11일 전국인민대표대회의 내외신 기자간담회에서 중국은 고도의 대외 개방을 지속할 것으로 발표
*워싱턴 중국대사관의 류펑위(刘鹏宇)대변인은 “중국 정부에는 국내법을 통해 국가안전보장을 지킬 권리가 있다”라고 말하면서도“중국은 계속해서 고도의 개방을 추진하고, 미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의 기업에 대해 보다 좋은 비즈니스 환경을 제공할 것이라 덧붙임(로이터 7.1)
방첩법은 일본 기업의 중국 진출을 위축시킬 뿐 아니라 연구기관의 학술 교류와 민간교류에도 파장이 클 것으로 보인다. 산케이 신문은 2019년에 중국의 싱크 탱크인 사회과학원의 초청으로 중국을 방문한 한 일본인 교수가 간첩 혐의 명목으로 구속된 이후, 방중을 주저하는 연구자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일본인 교수는 “중국 대학 전문가들과의 교류가 거의 끊겼다”라고 말했다
중국에 진출한 일본 기업들로 구성된 중국일본상회의 혼마 테츠로(本間哲朗) 회장은 “개정된 방첩법이 사업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시하고 있다”라며 “우리는 중국 시장의 예측 가능성, 공정성, 투명성이 잘 유지되는지가 중요한 관심 사항”이라고 말했다.
<대만>
대만 국가안전국은 중국의 방첩법으로 인해 대만의 일반인, 기업인, 언론인 등 모두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며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국가안전국은 중국 세관을 출입할 때 당국이 휴대전화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으며, 사진과 댓글도 빌미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만 행정원은 안전을 보장할 수 있을 경우에만 중국을 여행할 것을 권유했다.
학계 및 관련 협회에서도 우려 섞인 목소리가 잇달아 나왔다. 자오원즈(趙文志) 대만 국립 중정대(中正大) 전략국제문제연구소 교수는 방첩법 시행을 하루 앞둔 지난 6월 30일 대만 라디오(台湾广播电台, RTI)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방첩법은 "똑똑하지 않고, 중국의 대외 개방 정책에 불리한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그는 방첩법은 경제무역, 관광, 문화, 학술 등의 교류에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샘프 대만홍콩협회 이사장은 “중국 보안 당국은 국가 안보와 관련된 자료와 파일을 입수하면 간첩으로 간주하기 십상”이라며 “중국 정부가 처음에는 대만 기업인과 미국 기업인을 압박하겠지만, 점차 언론 기자로 확대될 수 있다"라며 우려를 보였다.
▶기업 차원에서 유의할 사항
중국에 사업장을 둔 기업은 방첩법의 규정을 고려해 아래와 같은 대응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모건루이스 자료를 재구성)
회사 내부 정책 점검 및 업데이트. 회사 내부의 경영 관련 정책과 절차를 전반적으로 자체 점검할 필요가 있다. 민감성이 있는 정보에 대해서는 명시적으로 설명을 할 수 있는 자료를 사전에 준비해둔다.
직원 채용 및 교육 프로그램 정비. 직원 채용 시 해당 직원이 종전 근무처에서 중국의 국가 안전과 관련된 사항에 연계되어 있었는지를 꼼꼼하게 확인하고, 직원의 서면 확인서를 받아둔다. 직원교육 프로그램을 업데이트하여 방첩법의 관련 내용이 포함되도록 관리한다.
정기적인 규정 준수 감사 실시. 직원과 조직의 규정 준수 여부를 정기적으로 점검해 중요한 정보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는 데이터 관리 절차를 구현하고, 데이터별로 처리, 저장 또는 폐기하는 분류 지침을 명확히 마련해둔다.
위기관리 계획 수립. 방첩법 관련 사건이 발생할 경우, 사전 전후에 단계별로 취해야 할 조치 계획표를 작성한다. 여기에는 통신 프로토콜, 법률 지원, 지방 당국과의 협력 등이 포함되어야 한다. 동시에 중국 정보 당국의 예고 없는 기습 사찰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세부 계획을 수립한다. 해외 주재원이 비상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비상 연락망을 유지 관리한다.
모기업 직원의 중국 출장 시 위험 요인 관리. 국내 근무 직원의 중국 출장 시에는 전반적인 행동 요령에 관한 교육 시행과 함께 중요한 문서, 데이터 또는 전자 장치 등은 되도록 휴대하지 않도록 권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