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과 에디터는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가장 오랫동안 가까이 붙어서 작업하는 사이입니다. 그러다보니 마음이 서로 맞으면 계속 여러 작품을 함께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마틴 스콜세지, 드니 블뇌브 등 우리가 잘아는 여러 유명 감독들이 그렇습니다. <일렉션Election>, <어바웃 슈미트About Schmidt>, <사이드웨이Sideways>, <디센던트The Descendants>, <다운사이징Downsizing> 등의 멋진 작품들로 우리에게 알려진 알렉산더 페인Alexander Payne 감독 역시 한 명의 에디터와 오랜 시간을 동행하고 있습니다(그리고 지금 이순간에도 그들은 함께 새 영화를 만드는 중입니다). 그 에디터가 바로 이번 호의 주인공인 케빈 텐트Kevin Tent입니다.


케빈이 집에서 멀지 않은 공원의 카페에서 그와 제가 한 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인터뷰라기 보다는 수다를 떨었던 기록을 이번 호와 다음 호, 두 번에 걸쳐 전합니다. 어디서도 보실 수 없는 [에디터스]에서만 읽으실 수 있는 일종의 [에디터스; 오리지널]입니다. 😉

어렸을 때부터 영화 편집에 관심이 있었나요?

 

어렸을 땐 영화 편집에 관심이 없었어요. 아니, 관심이 없었다기보다는 존재 자체를 몰랐죠. L.A. 에 와서 에디터가 될 때까진 편집이란 게 있는지도 몰랐어요. 편집은 몰랐지만 어쨌든 영화에 관련한 뭔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그전부터 늘 하고 있었어요. 중학교 때 친구들과 슈퍼 8 카메라를 들고 작은 영화를 만들곤 했어요. 정말 재미있었죠. 그때 생각했어요. ‘야, 이거 참 재미있구나. 이런 일을 계속하고 싶다'라고.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 전공을 했는데, 이 프로그램은 뉴스나 방송에 집중한 프로그램이었죠. 2년 간 공부하면서 이건 내가 원하던 게 아니란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짐을 싸들고 캘리포니아로 왔죠. 그때가 내가 스무 살 때에요. 이곳에 와서 L.A City College에서 영화를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아주 작은 프로그램이었지만 나에겐 참 좋은 프로그램이었죠. 나가서 그냥 찍고, 찍은 걸 돌아와서 보여주고…

 

실기 중심의 프로그램이었군요.

 

맞아요. 그리고 그게 나에겐 무척 도움이 되었죠. 난 뭘 배울 때 그렇게 직접 해보는 게 가장 좋거든요. 게다가 그 당시 몇몇 멘토들이 날 많이 도와주기도 했어요. 그 시절에 단편을 몇 개 만들었는데 운 좋게도 HBO에 두 편이 팔리기도 했어요. 그땐 큰 작품들의 사이사이 빈 공간을 메우기 위해서 HBO가 그런 작은 단편들도 사던 시절이었죠.

 

졸업 후 2년 정도 교육 영상 편집을 했어요. 학교에서 틀어주는 그런 교육용 영화들 말이에요. 그러면서 동시에 친구들 단편도 편집하면서 지냈죠. 그러다 로저 코먼Roger Corman 프로덕션에서 <엠마뉴엘 5 Emmanuelle 5> 재편집을 하는 기회를 얻었어요. 그게 내가 일한 첫 번째 장편 영화예요. 1988년인가 87년인가. 그쯤이었던 거 같아요.

 

로저 코먼은 자신의 프로덕션을 운영하면서 정말 많은 B급 영화를 쉼 없이 만들어냈죠. 마치 지금의 블럼하우스Blumhouse Productions처럼요.

 

맞아요. 블럼하우스. 확실히 예전의 로저 코먼의 방식을 따르고 있는 거 같아요.

처음엔 당연히 필름으로 편집하셨죠? 지금은 모두 디지털인데, 언제부터 디지털로 작업하셨나요?

 

흠, 그게 몇 년도 였을까요… 아마 1996년이었나? <위협 One Good Turn>이라는 영화였어요. 케이블에서 상영했던 작은 스릴러 작품이었죠. 그 작품을 하기로 정해지고 나서 프로듀서가 그러더군요. 아비드Avid 수업을 들어야 한다고요. 그래서, 아비드 수업을 하는 곳을 알아봤는데, 맙소사, 너무 비쌌어요. 나에게 그만한 돈은 없었어요. 소니 배스킨Sonny Baskin이라고 당시 같은 프로덕션 회사에서 다른 영화 편집 중이던 에디터가 있었는데, 참 좋은 사람이었죠. 그가 아비드 사용법을 간단히 보여줬어요. 필름으로 뭘 어떻게 한다면 아비드에서 똑같은 걸 어떻게 하는지 보여줬죠. 바로 이해가 되었어요. 돌이켜 생각하면, 이렇게 속성으로 배우고 제대로 차근차근 배우질 않았기 때문에 좋지 않은 습관들도 생겨버리긴 했지만요.

 

필름으로 일할 때와 아비드로 일할 때 다른 점이 있나요? 필름에서 디지털로 바뀐 환경이 일도 좀 다르게 하도록 만드나요? 

 

그럼요!

 

그렇군요. 장단점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시겠어요?

 

디지털로 일하는 게 좋아요. 필름으로 절대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디지털로 바뀌게 되면서 일의 양이 훨씬 많아 졌어요. 생각해봐요. 디지털로 편집을 하게 되면서 사운드 작업을 훨씬 많이 하게 되었어요. 음악도 넣어서 편집하고, 효과음 작업도 많이 하게 되고… 필름으로 편집할 때와 비교하면, 훨씬 최종 결과물에 가까운 모습으로 만들 수 있는 거죠. 하지만, 이건 당연히 훨씬 시간이 오래 걸리고, 결국 더 많이 일하게 되는 거죠. 개인적으로는 예전에 러프 컷을 상영하던 방식이 더 좋아요. 디졸브도 없고, VFX도 아직 없고. 그저 워크 프린트인 거죠. 필요한 경우엔 차이나 마커로 여기에 뭐가 들어갈 예정이라거나 무슨 대사가 들어갈 거라고 표시해 놓은. 

 

디지털로 편집하면서 실험도 훨씬 더 많이 할 수 있게 되었어요. 필름으로 하는 편집이 체스라면, 디지털로 하는 편집은 체커스예요Checkers. 어떤 신을 완전히 뒤집어야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필름이라면 시작하기 전에 정말 많이 생각해야 해요. 이걸 이렇게 하면 다음은 어떻게 될지, 또 그다음은 어떻게 될지, 마치 체스 플레이어들이 말을 움직이기 전 머릿속에서 수십 수백 수를 그려보듯이 그려봐야 하죠. 필름은 한 번 손대면 다시 고치기가 너무 힘드니까요. 하지만, 디지털은 달라요. 체커스를 생각해봐요. 빠르게 이렇게 해봐요. 안되네? 그럼 또 다른 걸 얼른 해보는 거죠.

 

감독들은 어떨까요? 디지털로 바뀌면서 감독도 일을 다르게 하게 되었다고 생각하세요?

 

그럴 거 같아요. 필름으로 찍을 땐 필름이 돌아가는 모든 순간이 돈이었죠. 지금은 카메라가 계속 돌아가게 그냥 두죠. 한 대도 아니고 두 세 대를 동시에 세워두고 계속 돌아가게 하는 거예요. 덕분에 푸티지footage가 예전과 비교할 수 없게 엄청나게 많아졌어요. 덕분에 에디터가 봐야 할 데일리스가 훨씬 많아진 건 말할 것도 없고, 편집팀 전체가 다뤄야 할 것들이 무척 많아진 거죠.

 

또, 필름으로 편집할 땐 감독이 편집실에 오기 전에 훨씬 더 많은 생각을 미리 했을 것 같아요.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는 걸 아니까요. 에디터에게 이렇게 한 번 해보자 하고 말하고 나면 그 결과를 볼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지금보다 길었죠. 지금은 그냥 ‘아, 저기 저거…’

 

‘... 이렇게 저렇게 다시 해볼까요?’라고 쉽게 말할 수 있죠. 필름 시대와 크게 달라진 게 또 있어요. 필름으로 작업할 땐 모든 테이크를 프린트하지 않았어요. 감독이 오케이 한 테이크만 프린트해서 편집실에 주었죠. 테이크를 8개 찍었다면 그중 서너 개만 에디터에게 오는 거예요. 그런데, 종종 그 오지 않은 나머지 테이크에서 정확히 내가 필요한 걸 찾을 수 있는 경우가 있어요. 오케이 테이크가 아닌 다른 테이크에서 좋은 부분들을 찾을 수 있는 경우가 자주 있죠. 이제 디지털로 바뀌면서 모든 테이크를 바로 볼 수 있게 되어서 좋아요. 이런, 이 테이크는 빛이 너무 많이 들어와서 못쓰겠네. 어? 하지만, 저 캐릭터가 문으로 들어가는 부분만큼은 아주 좋아서 쓸 수 있겠는걸? 내가 필요하던 거잖아! 이런 식이죠.

<엠마뉴엘 5> 이야기를 좀 더 해주시겠어요?

 

로저 코먼 프로덕션이 내가 진짜 영화 일을 시작한 곳이라고 할 수 있어요. 거기가 내가 에디터가 된 곳이고, 편집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었어요. 아무튼, 그때 로저 코먼에겐 골칫거리인 영화가 하나 있었어요. 프랑스 배급사를 통해서 영화를 하나 샀죠. 그냥 미국에 개봉만 시킬 생각으로요. 그런데, 영화를 막상 보니 엉망이었던 거예요. 일종의 소프트 코어 영화였는데 영화가 너무 말이 안 되고 엉망이었던 거예요. 로저는 에디터를 고용해서 이 영화를 고칠 필요가 있겠단 생각을 했죠. 그 소식을 듣고 지원을 했고, 당시 난 경력이라곤 단편 몇 편이 전부였지만 로저는 날 고용했어요. 

 

<엠마뉴엘 5>를 재편집하러 간 첫날, 필름통 몇 개를 열어봤는데, 세상에, 아직까지 누구도 보지도 않았던 푸티지들은 물론 여러 씬들도 있는 거예요. 쭉 봤는데, 이 씬들이야 말로 영화가 말이 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씬들이었어요. 플롯이 말이 되게 해주는 것들이었죠. 뭐, 이 영화에 플롯이란 게 별로 없긴 했지만, 어쨌든요. (웃음) 그렇게 서너 개 정도의 신을 새로 넣었어요. 몇 개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네요. 아무튼, 그렇게 하니까 영화가 말이 되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러고 나선, 영화 전체를 다시 살피면서 필요 없는 부분들을 잘라내기 시작했죠. 어느 정도 끝나고 나서 로저가 보더니 영화가 보기 더 좋아졌다고 하더군요. 그러고선 나를 그곳에서 일하게 해 주었어요. 그렇게 내 커리어가 시작된 거죠. 결과적으로 <엠마뉴엘 5>를 끝내진 않았어요. <악령의 외계인 Not of This Earth>라는 영화 편집을 하게 되었고, 이게 내 공식적인 에디터로서 첫 장편 영화예요.

 

저도 얼마 전에 작은 장편을 재편집해야 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이미 편집해 놓은 영화에 손을 대야 하는 게 좀 부담스럽던데요. 다른 사람의 영화를 재편집하실 때 어떻게 접근하시나요? 처음부터 다시 하시나요? 아니면, 문제가 되는 부분에만 집중하시나요?

 

보통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요. 데일리스를 보는 것부터 시작하는 거죠.  재편집 일이 들어오는 경우를 보면 대체로 2주 정도의 시간이 있는데 가능하겠냐고 문의를 많이 해요.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으니 그 부분만 좀 손대고 이리저리 살짝씩만 만져주면 좋겠다고 하죠. 그럼 내 대답은 항상 같아요. 난 데일리스를 다 본다. 그러다 보면 대체로 지금 영화에 들어가 있는 것보다 더 좋은 연기를 보기도 한다. 그러면 그걸 넣고 신을 고치게 되고, 한 신을 고치면 거기에 맞게 다른 신을 고치게 되고… 그러니, 난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하다. 당신이 정말 2주밖에 줄 수 없다면 다른 사람을 찾길 바란다라고 해요. 난 좋은 연기의 힘을 믿어요. 그래서 데일리스를 반드시 모두 확인하죠.

 

데일리스는 어떤 식으로 확인하시나요??

 

보면서 내가 좋아하는 부분들은 모으는 것부터 시작해요. 이 대사 리딩은 여기가 좋네, 저 대사 리딩은 여기가 좋네. 이 부분 리딩은 별로지만 손 동작은 좋네. 그렇게 마음에 드는 것들을 타임라인에 모으는 거죠.

 

자기만의 셀렉션을 만드는 거군요.

 

그렇죠. 이런저런 갖가지 것들의 모음이에요. 별별 걸 다 모으죠. 새가 화면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와이드 샷일 수도 있고, 뭐든 상관없어요. 그렇게 마음에 드는 것들을 타임라인에 모으고 나면 이것들을 잘 조합하기 시작해요. 주로 여러 대사 리딩을 주욱 나열하고 이것들을 조합하는 일이 많죠. 같은 대사의 다른 다섯 개의 리딩을 모았다고 해요. 그럼 이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걸 골라요. 그렇게 하나씩 편집을 해요. 그런 후에 다시 보니 이게 저것과 어울리지 않다? 그러면 다시 돌아가서 조정을 하고… 그런 식이죠.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첫 질문으로 뭐가 좋을까? 인터뷰의 시작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라는 고민을 했어요. 편집도 마찬가지인 거 같아요. 처음 신을 편집하기 시작할 때 첫 샷을 어떻게 정하세요? 

 

어떤 샷으로 시작할지 바로 알진 못하죠. 알다시피, 편집은 계속 변해요. 변하고 발전하는 거예요. 마스터 샷으로 시작했더라도 편집을 하다가 ‘어? 마스터 샷이 필요가 없네? 대신 다른 타이밍에 써야겠는걸?’ 하고 발견하곤 하죠. 기본적으로는 일단 시나리오를 따라서 시작해요. 그리고, 촬영된 순서도 고려해요. 거의 대부분 마스터 샷이 처음이니까 일단 그걸 보죠. 하지만, 만일 마스터 샷이 너무 재미없다면 신을 좀 더 흥미롭게 시작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는지 살펴봐요.

 

그렇게 한 신을 마치고, 다른 신을 시작해요. 이 신을 끝낸 방식 때문에 다음 신을 특정한 방식으로 시작하게 되죠. 하지만 때론 그렇게 하면 별로 흥미롭지 않다는 걸 발견하기도 해요. 그럼 이것들을 다시 조정하는 거죠. 

 

하나의 씬이 그 주변의 신을 어떻게 편집해야 하는지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네요?

 

맞아요. 정확해요. 두 신을 편집했는데, 앞 신의 끝에서 초인종 소리가 5초 동안 먼저 들리게 해야 해요. 여기에 맞게 신을 재편집해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페이스가 항상 큰 문제가 되죠. 편집에서 가장 큰 부분이 어쩌면 페이스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아, 불쌍한 페이스(웃음). 지금 현대에 사는 우리는 참을성이 참 없어요. 

 

제가 일했던 작품의 프로듀서는 대사가 끝나자마자 바로 다음 샷으로 넘어가길 원해요. 말이 끝나고 바로 다음 프레임에서요. 가차 없이 말이에요. 리액션이 중요하기 때문에 지체하지 않고 리액션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믿는 거죠.

 

오, 그거 흥미로운 방식이군요. 독특한 스타일이에요. 아마도…

 

네, 아마도 TV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좀 특별한 방식이죠.

 

그렇군요. 난 말했다시피 연기의 힘을 믿는 사람이에요. 때로는 그 프로듀서와 같은 방식으로 편집하는 게 좋을 수도 있겠죠. 그런 방식만의 독특한 인상을 줄 수 있으니까요. 두 이미지가 강렬하게 충돌하는 그런 느낌요. 하지만, 때로는 샷을 끝내지 않고 좀 더 기다리면 테이크의 끝에서 배우들이 정말 멋진 순간을 보여주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 건 기다려줘야 해요

영화 <다운사이징 Downsizing>이 공개 되었을 무렵 케빈이 한 인터뷰 영상을 소개합니다.
즐겁게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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