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 씨는 서울에서 어떤 일을 했어요?
현정 저도 디자인을 전공해서 작은 스튜디오에 입사했어요. 특이한 게, 회사 대표님이 취미로 고급 자전거를 수입하셨는데 그걸 다시 비싸게 되팔기 위해 옷 입히고 매장 꾸리는 일을 맡았어요. 그런데 저는 자전거 탈 줄도 모르거든요. 에너제틱한 라이프 스타일을 즐기는 척 일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이후에 좀더 큰 교육 회사로 가서 수험생 대상 프로그램을 디자인할 때도 마찬가지였고요. 회사 크기의 문제일까 싶어서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대기업에 들어갔는데, 저와 맞지 않는 캐릭터 제작 업무를 맡게 된 거예요. 좋은 회사에 들어가면 끝날 줄 알았던 고민이 다시 시작된 거죠.
여러 시도를 했지만 잘 맞진 않았네요.
현정 대기업으로 옮기면서 결혼하고 신혼집도 꾸렸는데, 그때 계속 뭘 샀다고 했잖아요. 일과 삶이 일치되지 않으니까 거기서 큰 공허감을 느꼈나 봐요. 주변에서 일과 삶을 분리하라고 조언하길래 완전히 떼어놓았는데 일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면서 더 불행해졌죠.
사실 분리하는 게 쉽지 않잖아요. 하루 중 일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긴데요.
현정 그러니까요. 나와 맞지 않은 공간에서 보낸 시간을 보상받듯 무얼 사서 집에 가져다 두기는 하는데 만족이 안 되는 이유를 그때는 몰랐어요. 회사에서 야근하고 오느라 내가 고른 가구나 티팟은 볼 시간도 없었고요. 회사를 다니는 것에 대해, 우리의 삶이 어떤 노선을 타야 하느냐에 대해 남편과 함께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죠.
태웅 일과 삶은 다른 게 아니라 삶 안에 일이 있는 거잖아요. 그 사이의 이질감을 덜고, 둘을 함께 보기로 인정했어요. 저도 브랜드 디자이너로 오래 일하다 보니까, 이 일의 궁극적인 도달점은 어딜까 생각했을 때 회사는 아닌 것 같더라고요. 회사에서는 늘 새로운 걸 보여줘야 하고 변화를 만들어야 하는데, 저희는 언제나 그대로인 브랜드가 좋았거든요. 브랜드가 한 사람 같았으면 좋겠다는 게 저희의 새로운 지향점이었어요.
브랜드가 하나의 사람 같다는 건 어떤 의미예요?
태웅 저와 현정이 좋아하는 브랜드를 떠올려봤을 때, 그 안에 머무는 사람이 연상된다는 공통점이 있었어요. 망원동 ‘스몰커피’나 ‘훈고링고브레드’, 서촌 카페 ‘mk2’처럼 공간과 어긋나지 않은 사람이 일하고, 그들이 만들 것 같은 음료를 팔고, 또 그걸 좋아할 것 같은 손님들이 찾아오는 거요. 한 사람의 취향이 진득이 묻어 나오는 걸 좋아하다 보니 해외여행 가서도 으리으리한 호텔보다는 작은 에어비앤비에서 묵거든요. 현실적으로 서울에서는 우리 두 사람이 가게도 하고 고양이도 함께 살 공간을 찾는 게 불가능에 가까워서, ‘그렇다면 꼭 서울이 아니어도 되잖아?’ 싶었어요. 직장만 아니었다면 서울에 살지 않았을 테니까요. 거기서 하고 싶은 건 이미 충분히 경험했어요.
현정 그래서 그 주 주말부터 빠르게 전국을 돌아다니기 시작했죠. 좋은 땅을 찾아보자며(웃음).
그렇게나 빠르다니(웃음)! 그럼 왜 스테이를 만들고 싶었어요? 이유를 들으면 삶에서 무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전해질 것 같아요.
태웅 우리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일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가게는 정확한 시간에 열고 닫아야 하고 휴무일도 지켜야 하지만, 스테이는 손님을 응대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집에서 일상을 보낼 수 있잖아요.
현정 그리고 우리의 취향을 공유하고 싶었어요. 애정을 담은 소품들과 가구, 음악, 향기까지 차려두면 그걸 좋아하는 분들이 와서 향유해 주길 바랐어요. 사람들이 한 공간에 온전히 젖어들려면 하룻밤을 보내는 형태가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소수를 위한 초대의 개념이었죠.
공간이 머무는 사람에게 주는 힘을 이미 알고 있었나 봐요.
현정 신혼여행으로 떠났던 프랑스 남부 보르도 지방에서 마구간을 개조해서 만든 에어비앤비에 머문 적이 있어요. 가는 길도 불편하고 오래된 벽돌로 지어서 컴컴한데다가 안에는 말안장 같은 게 걸려 있는 독특한 곳이었죠. 옆에는 주인이 직접 운영하는 레스토랑과 수영장이 붙어 있었고요. 되게 이상한데, 모든 곳에서 주인이 느껴지는 거예요. 백 년 넘은 고택에서 주인이 열심히 쓸고 닦은 구석들이 보이고,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컵과 테이블이 있었어요. 음식도 별것 아닌데 맛있어서 그때의 기억이 참 좋게 남아 있죠.
태웅 아시 하우스의 슬로건으로 “우리의 아름다운 기억을 통해서”라는 말을 쓰는데요. 저희도 공간에 기억들을 꺼내두고 행복했던 마음을 녹이면, 그걸 알아봐 줄 사람들이 올 것 같았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