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참 다릅니다. 누군가는 많이 향유하고, 누군가는 직접 손으로 만들어보고, 또 누군가는 그 대상을 다른 사람에게 널리 알리고 싶어하죠. 그리고 어떤 사람은, 좋아하는 만큼 더 알고 싶어져서 공부를 합니다. 오늘은 좋아하는 마음이 곧 탐구로 이어지는 사람, 여정님을 모셨습니다. 여정님의 탐구 대상은 식물입니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식물의 이름들을 알아가고, 식물에 대해 탐구하다 보니 어느 새 사람들 사이에서 '식박사'가 되어버린 여정님의 이야기, 한 번 들어볼까요? 

• '식박사'가 식물을 탐구하는 방식
• 좋아하면 공부하게 된다 vs 공부할 게 많아서 좋아진다
• 자연을 이해하려는 욕구가 자연스러운 이유

• 가장 흔하지만 정작 이름을 모르는 것들, 잡초

• 잡초의 쓸모를 찾아서

• 식덕후의 끝은, 나만의 비밀정원 만들기

🦥 저희가 14호에서 식물을 주제로 유광님을 인터뷰한 적이 있어요. 내용이 조금 겹칠 수도 있지만, 여정님은 다른 방식으로 식물을 사랑하시는 것 같아서 모시게 됐거든요. 유광님은 식물을 가지고 예술 활동을 하는 쪽에 가까웠다면, 여정님은 공부를 하는 스타일이라고 들었어요. '식박사'라고 불리신다고요. 우선 어쩌다가 식물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어요? 

계기가 된 일이 하나 있어요. 제가 예전에 사회복무요원으로 서빙고 주민센터에서 근무했어요. 거기 바로 앞에 한강이 있거든요. 점심시간마다 한강으로 산책을 갔는데, 강가에 처음 보는 꽃들이 잔뜩 피어 있는 거예요. 그때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오늘 이 꽃의 이름을 꼭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네이버에 있는 렌즈 기능으로 꽃 사진을 찍어봤어요. 그랬더니 이름이 나오더라고요. 그 꽃이 ‘개망초’였어요. 지금은 전국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꽃인데, 그땐 그게 너무 신기했어요. 그때부터 한강에 있는 식물들을 하나씩 찍기 시작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식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 요즘도 네이버 렌즈 기능으로 식물 이름을 찾아보곤 하세요?

네, 기본적으로 그 기능을 많이 써요. 요즘은 GPT 같은 인공지능도 많이 발전해서 거기에도 자주 물어보고요. 그런데 네이버 렌즈도 그렇고 GPT도 그렇고 식물이 워낙 비슷비슷한 게 많다 보니까 오답도 종종 있어서, 백과사전이나 도감도 같이 참고하면서 보고 있어요.

🦥 백과사전까지 찾아보시는군요. 근데 AI가 헷갈려 할 정도면, 사실 저희 같은 일반인 입장에서는 더더욱 구분이 어려울 것 같거든요. 여정님은 원래 관찰력이 좋은 편이세요?

한눈에 보고 미세한 차이를 바로 알아채는 정도의 관찰력은 아닌 것 같아요. 다만 식물을 구분할 때 꽃이 피는 시기나, 꽃 구조 같은 데서 오는 차이들을 중심으로 구별해요. 그래도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은 역시 개화 시기, 그러니까 꽃이 피는 계절을 기준으로 구분하는 편이에요.

🦥 식물에 대한 정보를 딱 알아냈을 때, 어떤 기분이 들어요? 성취감? 아니면 지적 유희? 

모두 포함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단 이름을 알게 됐다는 것, 궁금증이 해결됐다는 것도 있고, 몰랐던 걸 알아간다는 포인트도 있고요. 그리고 우리가 주변에서 흔하게 지나칠 수 있는 것들인데, 이름을 알게 되면 ‘얘가 존재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거잖아요. 그게 참 뜻깊게 다가와요.

🦥 유명한 시가 있잖아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웃음) 그런 감정일 수도 있겠네요. 그럼 꽃을 미적 관점 외에도 좋아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꽃을 아름답다고 생각해서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단순히 예쁘기 때문에 식물을 좋아하게 된 건 아닌 것 같아요. 꽃도 형태가 정말 다양해요. 화려한 것도 있고, ‘이게 꽃이야?’ 싶을 정도로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꽃 이미지랑 전혀 다른 것도 있거든요. 그런데 그런 것들도 그 이유만으로 되게 흥미롭더라고요. 흔히 알고 있는 화려한 꽃들은 그 화려함 때문에 기억에 남지만, 제가 말한 그런 특이한 꽃들… 전혀 꽃처럼 안 생긴 꽃들 있잖아요. 그런 건 그냥 ‘이게 꽃이야?’라는 사실만으로도 흥미로워요.

🦥 우리가 알고 있는 범주 바깥에 있는 걸 발견했을 때 흥미를 느끼는 거군요.

기본적으로 그런 성향을 완전 타고났다고 생각해요.

🦥 저도 그런 편이거든요. 전 뭔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 대상을 이해하고 싶다는 욕구가 자연스럽게 따라오더라고요. 그래서 저한텐 '좋아한다는 것 = 공부하고 싶다'는 식으로 연결돼요. '내가 왜 이걸 좋아하지?'를 알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여정님은 그 공부하고 싶은 욕구가 어디서 오는 것 같나요?

저도 식물이 왜 좋을까 생각을 해본 적이 있어요. 이유가 여러 가지 있겠지만, 그중 가장 큰 건 식물을 '탐구의 대상'으로 보기 때문인 것 같아요. 식물은 주변에 정말 많이 널려 있잖아요. 그 말은 곧, 탐구할 대상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는 공부할 게 많아서 식물이 좋은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그게 가장 근본적인 이유인 것 같아요.

🦥 인과관계가 저랑 반대네요. 저는 좋아해서 공부하게 된다고 생각했는데, 여정님은 공부할 게 많아서 좋아진 거군요. 흥미로운 차이예요. 식물의 매력이 또 뭐가 있을까요?

아까 말한 것처럼, 몰랐던 식물을 알아간다는 게 매력이에요. 이름을 안다는 건 그 식물의 존재감을 인식하게 된다는 거고, 몰랐던 걸 알게 됐다는 데서 오는 지적 충만감도 있는 것 같아요.

또 이게 자연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자연이라고 하면 보통 사람들이 식물을 떠올리잖아요. 물론 식물 외에도 많은 게 자연이지만, 식물을 관찰하고 좋아하는 게 어떻게 보면 가장 쉽고 가볍게 자연에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저는 자연을 좋아한다는 큰 틀 안에서 식물을 좋아한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너무 근본적인 질문일 수 있지만, 자연을 이해하는 게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세요? 

사람도 자연에서 온 존재니까요. 우리가 흔히 '인위적이다'라는 말을 쓰잖아요. 어떻게 보면 '자연스럽다'의 반대말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결국 사람도 자연 속에서 왔기 때문에, 저는 인간이 자연에서 멀어진다는 건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우리도 사실은 자연의 일부니까요. 그래서 자연을 이해한다는 건 사실 너무 당연한 일이에요. 그게 결국 '자연스럽다'는 말이 '당연하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자연을 좋아하거나 이해하려는 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요. 

🦥 혹시 식물을 보다 보면, 이 식물 좀 사람 같다거나, 나 같다거나… 그런 생각 해본 적 있으세요?

거의 항상 하는 것 같아요. 얼마 전에도 그런 생각을 했어요. 제가 좀 답답하고 뭔가 잘 안 풀리는 상황일 때 어떤 식물을 봤는데, 얘는 유독 잘 안 자라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럴 때는 자연스럽게 이입하게 되더라고요. '얘도 나처럼 잘 자라지 못하는구나', 이런 식으로요.

🦥 인간은 뭘 봐도 자꾸 자신을 대입해서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식물이 성장하지 않는 걸 보면 마음이 더 쓰이겠네요. 그러다가도 어느 날 확 자라 있기도 하죠? 약간 인간도 계단식 성장을 하는 것처럼. 

맞아요. 확 자라 있을 때도 있어요.

🦥 혹시 가장 좋아하는 식물이 있으세요?

네. 저는 라일락을 가장 좋아하는 것 같아요. 봄에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죠. 라일락을 왜 좋아하게 됐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는데, 일단 향이 굉장히 좋잖아요. 그리고 봄꽃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아주 짧은 기간만 피어 있거든요. 그 짧고 강렬한 느낌 때문에 라일락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나중에 제가 정원을 만들게 된다면 담벼락 주위에 라일락을 쭉 심을 거예요.

저는 꽃을 기다리게 되는 이유가 시기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1년 내내 피어 있다면 그 매력을 잃을 거라고 봐요. 벚꽃이 1년 내내 피어 있다고 하면, 누가 벚꽃 축제를 하겠어요? 

🦥 ‘잡스’라는 이름으로 잡초 스터디도 하셨었죠. 어떤 활동을 하신 건가요?

진짜 말 그대로 잡초에 대해 스터디하는 활동이에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책 한 권을 정해두고 그걸 토대로 잡초에 대해 생각해보는 스터디였어요. 저를 포함해서 총 3명이 함께했고요. 

🦥 근데 왜 하필 ‘잡초’였어요? 일단, 잡초의 정의가 뭔가요?

흔히 말하는 잡초는 산이나 들 같은 곳에서 사람 손이 닿지 않았는데 저절로 자라는 풀들을 의미하기도 하고요. 또 하나는 상대적인 개념이에요. 예를 들어 딸기밭에서 딸기가 자라고 있는데, 거기서 감자가 하나 튀어나왔다? 그럼 그 감자는 잡초가 되는 거예요. 사람이 의도하지 않았는데 자라는 식물들, 그런 걸 잡초라고 부를 수 있죠.

대부분 사람들이 나무는 몇 개쯤 구분할 수 있어도, 길가에 있는 풀이나 꽃은 거의 몰라요. 가장 흔하게 보는 식물이 잡초인데, 아무도 이름을 몰라요. 그래서 더 궁금해졌어요. 너무 많이 보이는데 아무도 모른다는 게 이상하잖아요.

🦥 진짜 그렇네요. 뭔가 갑자기 슬퍼지기도 하고요.

맞아요. 그리고 또 다른 이유가 있어요. 식재를 하려면 원하는 식물 외에 잡초를 솎아줘야 하잖아요. 그런 실질적인 필요 때문에 잡초를 공부하게 되는 경우도 있어요. 앞에 말한 이유는 감성적인 이유였다면, 이건 좀 더 실용적인 이유죠.

🦥 그렇군요. 솎아내기 위해서는 뭐가 솎아낼 대상인지를 알아야 하니까…

맞아요. 그리고 저는 잡초를 보면서 ‘얘를 어떻게 활용할 수 없을까?’ 싶었어요. 잡초를 자원화하거나 원예화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게 잡초를 공부해보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예요.

🦥 쓸모를 찾아주고 싶었던 거군요.

아깝다는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잡초는 결국 상대적인 개념이잖아요. 그 안에도 이미 쓸모 있는 애들이 많아요. 약효로 쓰인다든가, 식용이 가능하다든가. 근데 제가 봤을 때는, 그 꽃들 중에도 충분히 예쁜 꽃들이 정말 많거든요. 그래서 이걸 좀 원예적으로 쓸 수 없을까, 그런 생각도 많이 했어요.

🦥 그치만 그 쓸모의 기준은 결국 인간에게 유용하냐는 거잖아요.

그렇죠. 사실 식물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좀 불편한 말일 수도 있지만, 사람한테 쓸모가 있어야 해요. 그래야 잘 살아남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정말 많고 많은 식물들을 그냥 가만히 놓아두기보단, 뭔가 활용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어요. 조금 감성적으로 말하자면, 저는 자연이 준 선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자라는 식물은 없다고 생각해요. ‘쓴다’고 하면 이용하고 버리는 느낌이 강할 수도 있지만, 저는 자연 안에서 뭔가를 활용하는 것도 하나의 생태계 균형이라고 생각해요.

🦥 그래서 스터디 하시면서 단서를 좀 찾으셨나요? 

단서를 못 찾았어요. 사실 식물의 세계는 생각보다 엄청 넓어요. 내가 모르는 게 정말 많고, 연구되거나 알려지지 않은 사실도 너무 많아요. 그냥 이름만 알아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그래서 이 생태계는 진짜 일종의 꿈동산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알아야 할 게 정말 많고, 하나를 알게 되면 그만큼 내가 앞으로 알아가야 할 게 많다는 걸 알게 되는 것 같아요.

🦥 원래 많이 공부하면 할수록 내가 모르는 게 더 많아 보인다고 하잖아요.

맞아요. 정말 그런 것 같아요.

🦥 앞으로 식물 관련해서 해보고 싶은 일이 있으세요?

일단 제 최종 꿈이라고 한다면, 저만의 정원을 만드는 거예요.

🦥 다들 좋아하는 걸 결국 집으로 들여오고 싶어 하더라고요.

저는 집 안에 들이는 개념보다는, 오히려 집 밖에 만들고 싶어요. 정원이라는 게 애초에 사람 손길이 닿는 공간이긴 하지만, 저는 좀 ‘사람 손길이 닿지 않은 티’가 나는 정원을 만들고 싶어요. 비밀 정원 같은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집 안에는 식물을 들이지 않고, 집 밖에만 식물을 두려고 해요. 어떻게든 사람 손길이 닿지 않은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고 싶어요. 

🦥 그럼 정원에 사람 초대도 안 하실 건가요? (웃음) 

그건 너무 고립된 느낌이라 그 정도는 아니지만, 모두에게 개방하진 않을 것 같아요. 몇몇 사람에게만 열어두는, 그런 공간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 재밌네요. 또 다른 목표도 있으세요?

네, 올해 들어서 느낀 건데요, 주변에 식물을 공부하거나 그걸 직업으로 삼는 친구들이 있다 보니까 저도 진짜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까지도 나름 알아보긴 했지만, 그게 ‘공부’라고까지 생각하진 않았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진지하게 각 잡고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번에 방송통신대학교 농학과에 원서를 넣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식물을 공부하고 싶은데 왜 농학과냐고 하실 수도 있는데요, 사실 많은 식물 연구가 농학이라는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원예도 농학에서 파생된 분야예요. 우리가 먹는 쌀, 곡류, 과일, 채소 다 식물이잖아요. 연결되는 지점이 굉장히 많아요.

🦥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하시기 전에 '취미' 단계에서 모실 수 있어서 다행이네요. (웃음) 마지막으로 더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저는 사람들이 식물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어요. 이름까지 다 알면 물론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도 지금 계절에 어떤 꽃이 피는지 정도는 알아보고, 직접 보러 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그런 식으로 식물의 존재감을 알게 되거든요. 실질적으로도 누군가가 식물을 찾아줘야 계속 심어지고 관리될 수 있어요.

그리고 한 가지 꼭 전하고 싶은 건, 예쁘다고 함부로 꺾지 말아주세요. 정말 중요해요. 

🦥 이거 어렸을 때 많이 들었던 잔소리인데. (웃음) 

맞아요. 그리고 화단에 들어가지 말라고 하면 들어가지 말고요. 그런 기본적인 것들은 좀 지켜주셨으면 좋겠어요.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요. 어쨌든 제일 바라는 건, 내 주변에 있는 초록색 식물들에 대한 관심을 조금 더 가져주는 거예요. 그게 가장 큰 바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