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이 사라져 버린 한여름의 빨간 풍경은 블록버스터 재난 영화 같은 느낌도 들었어요. 파랑을 지우고, 몰아내려고 해도 좀처럼 되지 않죠. 원하는 걸 지웠는데도 빨강은 괴롭기만 했어요.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처음에 빨강은 자기 자신이 질투한다는 걸 인정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질투에 사로잡혀 파랑의 인기를 없애려다가, 자신이 원하는 진정한 인기와 멀어지거든요. 먼저 우리 안에 있는 질투라는 감정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게 중요해요. 질투가 나서 남을 해코지한다는 게 나쁜 거지, 질투를 느끼는 건 자연스러운 거잖아요.
그런 후 질투 속에는 숨은 내 욕구를 발견해야 하는데요. 질투를 느끼는 대상이 내 안의 무언가를 자극했기 때문에 부러운 거예요. 질투심을 관찰하면 채워지지 않는 내 소망을 발견할 수 있어요.
지금은 질투하는 대상이 내 옆에 있다는 건 엄청난 축복이자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를 통해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사람을 보고 관찰하면 무언가를 배울 수 있고 저도 그것을 이뤄나갈 수 있잖아요.
배워도 할 수 없을 것 같을 때는 어떡하죠?
내 안에서 찾는 것이 중요해요. 어떤 사람을 보고 질투를 느꼈는데, 그 사람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걸 보고는 나는 못 할 것 같을 때가 있잖아요. 감추어져 있는 노력의 현장을 보면 질투의 마음이 사그라들어요. 그리고서 나의 무언가를 자극했는지 깊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어요. “나는 어디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까?” 질문하죠.
제 경우는 내향성이 있다 보니까 강의할 때 유창하고 유려하게 말하는 사람을 보면 너무 부러워요. 그 사람은 외향이다 보니까 타고난 것도 있지만 말하는 걸 좋아하니 수많은 연습을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했겠죠. 저는 저에게 질문했어요. "강의와 글쓰기 중 어느 쪽에 집중하는 게 필요할까?" 저는 학기 중에는 거의 저녁에 누워있거든요.
앗, 누워계신다고요? 매일 부지런히 글을 쓰시는 줄 알았어요.
학기 중에는 저의 생활이 이래요. 퇴근하고 급한 일을 처리한 다음에 밤에 책을 읽으면서 다음 원고를 막연히 머릿속으로 구상해요. 방학이 가까워질 무렵에 어느 정도 머릿속으로 명확한 형태가 잡히면 방학 동안에 원고를 집중적으로 쓰거든요. 제 에너지가 한정적이기에 집중해야 할 걸 정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강의와 글 중에 어떤 것을 나답게 잘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글이라고 답했지요. 그게 바로 그림책을 꾸준히 낼 수 있었던 이유라고 생각해요.
선생님 말씀에 <새빨간 질투>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라요. 빨강이 나무 그늘에 누워 '아 눈부신 파랑! 온몸으로 받아들여 더 빨갛게 익어 갈 테야.' 말하는 장면이요. 빨강이 자기 안을 차근히 들여다보고 '파랑처럼 눈부신 존재가 되고 싶다'는 걸 깨달았기에 가능한 일일 텐데요. 시온샘의 그림책을 읽으며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는지를 느껴요. <마음안경점>에서도 자기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앵거게임>에서도 화가 난 자신을 인정해주기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죠. 나 스스로 못나 보이고, 부족해 보일 때 무엇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요?
인간이기에 당연히 스스로 자주 못나 보이고 부족해 보여요.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인간은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길들어졌대요. 생존을 최우선으로 처리하는 뇌이기에 "집에 불났다."와 "너 예쁘다."는 말 중에 전자에 더 반응할 수밖에 없는데요. 그러다 보니 비난, 부정적인 평가에 취약할 수밖에 없어요.
그럴 때마다 저는 자극과 반응 사이에 여유로운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책을 읽어요. 책을 통해서 많은 위로를 받고, 심리학책들을 특히 좋아해요. 책은 제 마음의 현상을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게 해서 어두운 마음을 회복할 힘을 주거든요.
책을 읽다가 밑줄 그은 것이나 생생하게 깨달은 내용을 수첩에 수시로 적어둬요. 그리고 제 마음의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그 수첩을 꺼내 자주 읽어요. 책을 읽고 받은 위로가 많아서 그 빚을 갚기 위해서 책을 쓰고 있는지도 몰라요.
와, 엄청난 귀한 말들이 그득 들어있는 보물 창고겠어요. 기억나는 문장 있으세요?
빅터 프랭클이 한 말이에요. "자극과 반응 사이에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서의 선택이 삶의 질을 결정한다."
그림책을 쓰기 시작한 것도 자극과 반응 사이의 선택이겠어요. 시온 샘이 그림책을 읽는 특별한 방법이 있나요?
그림책 덕후 시기에는 닥치는 대로 그림책을 읽었는데요, 요새는 관심 있는 주제의 개론서와 줄글 책을 먼저 읽은 후 특정 내용과 관련된 그림책을 찾아 읽어요. 하나의 주제에 대해서 깊이 파고든 다음에 그림책을 읽는 거죠. 예를 들어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브루스 D. 페리,오프라 윈프리 지음)을 읽고 나서 그림책 <마음 정원>(김유강 지음)을 읽으니 트라우마라는 관점에서 그 그림책이 새롭게 읽혔어요.
좋그연 운영진 이소리 선생님이 질문을 전해주셨는데요. 요즘에는 어떤 감정에 집중하여 파고드시나요?
제가 늘 겪고 있는 문제이기도 한 두려움이에요. 두려움을 담은 그림책 1권이 내년에 나올 예정이고요, 곧 출간될 장편 동화에도 두려움이 담겨있어요.
좋그연 카페에서 '밑줄모아' 소모임도 운영하고 계시죠. 책을 읽으며 밑줄 그은 문장을 공유하는 모임이에요. 좋그연 레터 구독자분들께 공유하고 싶은 밑줄 하나를 소개해주세요.
"독서는 제게 여흥이고 휴식이고 위로고 내 작은 자살이에요. 세상이 못 견디겠으면 책을 들고 쪼그려 눕죠. 그건 내가 모든 걸 잊고 떠날 수 있게 해주는 작은 우주선이에요. "
-수전손택, 조너선 콧, <수전 손택의 말>
기쁨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은 바깥으로 표출하는 감정이기에 외부로 시선을 돌리게 해요. 부정적인 감정은 내 안을 들여다보게 하는 '신호'예요. 부정적인 감정이 들어도 나를 관찰할 수 있는 여유는 책을 읽으며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책에는 사려 깊은 말이 가득하잖아요. 책을 읽다 보면 제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게 되는 것 같아요. 일종의 '모드 전환'이죠.
저도 오늘 인터뷰를 하면서 질투에서 감탄으로 ‘모드 전환’을 할 수 있었어요. 좋그레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 전해주세요.
그림책은 시의 언어 같아서 목구멍까지 차올랐던 말들을 꿀꺽 삼키며 글을 썼다면요, 좋그레 지면에는 솔직하게 터놓을 수 있어 시원함을 느꼈습니다. 제 지인에게도 하지 못한 은밀한 이야기를, 그림책을 매개로 여기서 나누게 되니 좋그레 독자들과 훨씬 친해진 느낌이랍니다. 그림책에 대한 사랑과 애정을 늘 듬뿍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