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짜이는 세계, 그리고 AI라는 새 선수
최종현학술원은 지난 4월 24일부터 26일까지 중국 푸단대학교와 함께 제20차 상하이포럼을 공동 개최했습니다. 올해 주제는 “The Age of Reconfiguration: Innovation and Global Governance”. 우리말로 풀면 “다시 짜이는 세계, 혁신과 글로벌 거버넌스”쯤 되겠습니다. 제목은 살짝 국제회의장스럽지만, 포럼장에서 오간 질문은 꽤 현실적이었습니다. AI는 노동시장을 어떻게 바꿀까. 기후위기에 어떤 새 도구가 필요할까. 기술 혁신의 속도를 사회와 국제질서는 따라잡을 수 있을까. 말하자면 “AI가 똑똑해졌다더라”를 넘어, “그럼 이 똑똑한 녀석을 우리는 어떻게 다뤄야 할까”를 묻는 자리였습니다.
🧠 논문 검색 말고, 연구 작전 회의
이번 일정에서 과학팀이 특히 관심을 갖고 찾은 곳은 SAIS, 즉 Shanghai Academy of AI for Science였습니다. 이름 그대로 ‘과학을 위한 AI’를 연구하는 기관입니다. 하지만 이곳이 보여주는 그림은 단순히 “논문 검색을 조금 편하게 해주는 AI”가 아니었습니다. 최근 공개한 Dasheng AI 에이전트는 연구 프로젝트를 잘게 나누고, 자연어 지시에 따라 작업을 수행하며, 여러 과학 도구를 조합해 복잡한 과정을 병렬로 처리합니다. 여기에 NovaInspire 플랫폼은 수백 개의 과학 모델과 방대한 논문·특허 데이터를 연결합니다. 요컨대 “자료 좀 찾아줘”가 아니라, “이 연구, 어디서부터 어떻게 밀어붙일까?”를 함께 짜는 시스템에 가깝습니다.
🤯 논문을 뚝딱 쓰는 AI 연구원
AI for Science는 이제 멋진 구호가 아니라 실제 연구 현장의 풍경이 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 스타트업 Sakana AI가 공개한 The AI Scientist입니다. 이름부터 야심 찹니다. 이 시스템은 연구 아이디어를 내고, 코드를 짜고, 실험을 돌리고, 결과를 정리하고, 논문까지 씁니다. 더 놀라운 건 AI가 만든 논문 중 하나가 머신러닝 분야 주요 학회인 ICLR 워크숍 심사에서 채택될 만한 수준에 도달했다는 점입니다. 완벽한 과학자는 아니지만, “논문 초안을 뚝딱 써오는 AI 연구원” 정도는 이미 실험실 문 앞에 와 있는 셈입니다.
수학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왔습니다. 베이징대 연구팀은 고급 수학 문제를 풀고, 그 증명까지 형식적으로 검증하는 이중 에이전트 AI 시스템을 개발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시스템은 2014년에 제기된 가환대수 난제를 약 80시간 만에 해결했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단순 계산량이 아닙니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가환대수 안의 추측을 그래프 이론의 언어와 구조로 다시 바라보는 연결이 필요했습니다. 사람에게는 “이 분야와 저 분야가 연결될 수 있다”는 감각 자체가 큰 장벽인데, AI는 멀리 떨어진 수학의 방들을 빠르게 오가며 연결고리를 찾아낸 셈입니다. 아직 검증의 절차는 남아 있지만, 변화는 분명합니다. AI가 계산기를 넘어, 증명의 경로를 찾는 과정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 미국도, 중국도, 한국도 뛰는 이유
그래서 각국도 빠르게 움직입니다. 미국은 에너지부와 17개 국립연구소, 민간 기업, 대학을 묶어 Genesis Mission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AI로 과학 연구 생산성을 높이고, 에너지·바이오·소재 같은 전략 분야의 발견 속도를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입니다. 중국은 ‘AI 플러스’ 정책에서 과학을 AI의 핵심 응용 영역으로 보고 있습니다. 과학에서의 돌파가 곧 산업, 국방, 안보로 이어진다는 인식이 강합니다. 한국도 K-문샷 프로젝트를 통해 2030년까지 연구 생산성을 두 배로 높이고, 2035년까지 첨단바이오, 미래에너지, 피지컬 AI 등 8대 분야 12개 국가 미션을 해결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최근에는 Google DeepMind의 방한도 이 큰 흐름 위에 있습니다. Google DeepMind는 AlphaGo와 AlphaFold를 만든, 말하자면 “AI가 세상을 한 번씩 놀라게 할 때마다 자주 등장하는 그 이름”입니다. AlphaGo야 한국 사람들에게는 두 말 할 필요 없을 것이고, AlphaFold는 수십 년 동안 과학자들이 씨름해온 단백질 구조 예측 문제를 놀라운 정확도로 풀어내며 AI for Science의 가능성을 전 세계에 각인시켰습니다.
데미스 하사비스 Google DeepMind CEO는 4월 27일 서울에서 이재명 대통령을 만났고, 이 자리에는 하정우 수석도 AI미래기획수석으로서의 마지막 공식 일정으로 참석했습니다. 정부와 Google DeepMind는 서울 AI Campus를 세우고, 한국의 연구기관·스타트업·과학자들과 협력하는 기반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협력 분야에는 AlphaFold, AlphaGenome, AI co-scientist, WeatherNext 등이 포함됩니다. 한마디로 “좋은 AI 모델이 있으니 써보세요”가 아니라, 한국의 과학 연구 현장 안으로 들어와 함께 실험하겠다는 선언에 가깝습니다.
⚠️ 속도에는 브레이크도 필요하다
물론 속도가 빠르다고 모든 문제가 풀리는 것은 아닙니다. Nature는 AI Scientist 같은 시스템이 자동으로 논문을 만들고 제출하기 시작하면, 학술 출판과 동료심사 시스템에 큰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연구자가 논문을 쓰는 속도보다 AI가 논문을 찍어내는 속도가 훨씬 빨라지면, 과학계는 “아이디어 부족”이 아니라 “검증 과잉 업무”에 시달릴 수 있습니다. 과학의 생산라인이 빨라지는 만큼, 품질관리 라인도 같이 빨라져야 합니다.
🛰️ 맞히는 것과 아는 것은 다르다
더 근본적인 질문도 있습니다. AI는 예측을 잘하지만, 그것이 곧 이해를 뜻하지는 않습니다. 최근 한 연구에서는 AI가 뉴턴 법칙으로 만든 행성 궤도 데이터를 학습해 미래 위치를 꽤 잘 예측했지만, 정작 그 밑에 깔린 중력 법칙을 찾아내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천문표는 만들 수 있지만, 달까지 가는 로켓의 원리는 얻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이것이 AI for Science의 멋짐과 긴장이 동시에 있는 지점입니다. AI는 과학의 속도를 바꿀 것입니다. 연구실의 리듬도, 논문의 양도, 신약과 신소재를 찾는 방식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학은 빠른 답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좋은 과학은 답을 내는 데서 끝나지 않고, 그 답이 왜 맞는지 설명하고, 다른 문제로 건너가고, 다음 질문을 만들어냅니다. 앞으로 AI가 더 많은 답을 가져올수록, 과학은 더 자주 이 질문 앞에 서게 될지 모릅니다.
우리는 지금 결과를 얻은 것인가, 아니면 세계를 조금 더 이해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