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노년 #페미니즘 #연구 #성
[vol.46] 2024-12-27

안녕하세요 님. 턱괴는여자들입니다.


지난 여의도 집회 현장에서, 수많은 인파들 속에서 문득 이런 생각을 했어요. 이곳에 참 다양한 포지션을 가진 이들이 이렇게 은하수를 이루는 형형색색의 별처럼 모여있지만, 이들도 결국엔 ‘노년’과 ‘예비 노년’이라는 단 두 그룹으로 명확하게 묶일 수 있다는 사실, 그런데 ‘그 생애주기’에 대해서는 다같이 참 무관심한 상태로 이 사회가 나이를 먹어왔다는 것을요.


한국이라는 사회는 군데군데 중요한 빈 공간을 남겨둔채로 부쩍 키와 덩치가 커버린 아이 같다고 종종 느껴요. 이제는 주요한 가치들을 새로운 우선순위로 정렬해야 하는 시기임이 분명하고요. 턱괴는여자들은 좀 더 확신을 가지고 새해에도 그 여정을 이어가보려고 합니다.


이번엔 지난 레터에 이어, 편향된 기록 역학의 맹점을 발견하는 데에서부터 시작할게요. 나아가 여성 노년이 언제나 욕망하고 변화하며 삶을 주체적으로 만들어가는 존재임을 되짚어봐요. 특히, 이러한 물음표를 앞서 던졌던선배 발견한 기쁨을 나눕니다! 님의 예순 이후를 상상하며 읽어봐주세요.


🔍 12월의 두번째 레터에서는 : 유머와 여유를 간직한 페미니스트 선배의 이야기

     예비 노년이 읽어야 할 낯선 통찰 🧐💭

  • 미술사 레퍼런스 속 '여성 노년'
    여성 노년의 기록, 과연 찾을 수 있을까?
  • (광고) 척박한 상상력의 땅에서, '페미니스트 언니'가 마이크를 잡았다!
    『흰머리 휘날리며, 예순 이후 페미니즘』
  • (이벤트) 함께 턱 괴기
    '우리'로 나이들기 위해, 함께 턱 괴어요! 
✳︎ 턱괴는레터 ✳︎
출판과 전시를 만드는 턱괴는여자들의 '연구 일지'
책 『외로움을 끊고 끼어들기』와 세계관을 공유하는 뉴스레터입니다
한 달에 두 번, 두번째 네번째 금요일에 발행됩니다
"인문학과 공감능력이 세상을 구할거야!"
I. 
턱괴녀는 보이지 않는 존재들을 가시화 시키는 여정을 오래도록 이어가고 있습니다. 딱 보이는 만큼 존재하게 되니까요. 지난 레터에 이어 '나이 듦'이 사회에서 어떻게 인식되고, 역사에 어떻게 기록되고, 또 예술로 어떻게 남겨졌는지 다뤄보겠습니다. 이번 레터를 다 읽고나면, 왜 우리가 나이 듦을 이토록 상상하기 어려운지 알 수 있을거예요! 
  • 당신은 얼마나 쓸모있는가?

지난 레터에서는 역사와 예술에서 어떻게 '노년'의 공백이 생겨났는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노년의 역사적∙사회적 인식에 숨겨진 오해를 얘기하면서, 역사 서술은 왕, 귀족, 정치적 사건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에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다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말했죠. 결과적으로 기록된 노년은 당대의 주요 권력자 남성이 대부분일 수밖에 없었다는 점도요.


또한, 역사적으로 (그리고 현재도) '누가 언제부터 노인인가'에 대한 질문의 답은 언제나 모호했다는 점을 이야기 했습니다. 나이가 들어 늙은 사람이라는 뜻의 '노인'은 실은 사회가 '지정'하는 개념이었죠. 

조르주 드 라 투르, 식사중인 소작농 커플(Peasant couple eating), 1620년 경 제작, 캔버스 위 유채, 87*74cm, Gemäldegalerie, Berlin 

역사와 사회는 생산성과 경제력의 유무를 통해서 노인이냐 아니냐를 구분했습니다. 노동할 수 있는, 돈많은, 나이든 사람은 지금으로 치면 화이트칼라 전문직입니다. 이들은 힘든 육체 노동이 아닌 정치나 행정, 외교, 법, 종교 등의 분야에서 일하면서 계속해서 경제력을 확장해나갔습니다. 19세기 후반 근대적 은퇴 제도가 도입되기 전까지 이들은 연임에 연임을 거치며 80세가 넘어도 현역이었어요. 한 예로, 1789년, 영국의 종교 지도자 존 웨슬리는 86세가 된 자신이 마침내 늙었음을 느꼈다고 기록했습니다. 


"1. 내 시력이 쇠퇴했고 [...] 2. 내 기력이 쇠퇴했고 [...] 3. 사람이든 장소든 이름에 대한 내 기억을 생각해내기 위해 잠시 멈출 정도로 쇠퇴했다." 슐람미스 샤하르 외, 『노년의 역사 : 고정관념과 편견을 걷어낸 노년의 초상』, 안병직 옮긴, 글항아리, 2012, p.36


즉, 핵심은 나이가 몇이냐보다는, 얼마나 활동적인가 또는 얼마나 쓸모있는가에 달려있었다는 거죠.

한편, 가난하고 나이든 남성과 여성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죽을 때까지 일을 했습니다. 연금제도 역시 없었기 때문에 '생존'을 위한 노동이었지요. 노년의 보살핌을 보장하는 것은 본인 자신의 책임이라는 것이 역사적으로 서양사회에서 지배적인 태도였습니다. 법으로 제정되진 않았지만 자녀가 부모를 봉양하는 것이 최소한의 윤리적 방어선이었지요. 

장 프랑수와 밀레, 나무단을 지고가는 남자 혹은 나무꾼(Homme portant un énorme fagot, ou le vieux bûcheron), 1845-1847년 경 제작, 종이 위 크레용, 28.6*40cm, © RMN-Grand Palais (Musée d’Orsay)

'노인'은 나이가 들어 신체가 예전과 같은 생산성을 유지하지 못하는 나이든 사람, 돈을 많이 모아놓지 못한 나이든 사람에게만 지워지는 생애주기입니다. 유럽의 역사는 오랫동안 '노인'을 부정적인 존재로 평가해왔습니다. 젊은 시절에 게으르고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인이 된 것이므로, 젊은 세대에게 교훈을 전하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늙은 종복, 젊은 걸인'이라는 영국의 속담, '20대에 자질을 갖추지 못하고, 30대에 지식을 쌓지 못하고, 40대에 재산을 소유하지 못하면 결코 중요한 인물이 될 수 없고, 아는 것도, 소유하는 것도 결코 없을 것이다'라는 이탈리아의 속담이 이를 방증합니다. 노인에 관한 결정론적 인식은 실은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해왔어요.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적 목적으로 인생의 3단계-청년, 중년, 노년-을 묘사하며 노인을 아주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존재로 그려냈습니다.


"노인들은 과거를 생각하고 과거 속에 살며, 희망보다는 기억에 의존하는 존재다. 노인의 행동과 정서의 핵심에는 편협함이 자리잡고 있어서, 다른 사람에게 일어나는 불행은 어떤 것이나 자신에게도 쉽게 닥칠 수 있다고 상상하는 비관주의적인 존재다. 노인은 재치가 없고, 웃음이나 통상적인 농담을 좋아하지 않는다. 노년이 그런 모든 특성을 앗아간다." Parkin, Tim G., Old age in the Roman World: A cultural and social history, JHU Press, 2004, pp.247-256. 


쓸모와 경제력에 기반하여 형성된 노년에 관한 납작하고 오래된 결정론적인 인식. 이는 현재까지도 살아남아 도처에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예술 작품이나 미디어에서 다양한 노년을 '본 적'이 없었던 것이죠. 문제는 본 적이 없는 대상은 자연스럽게 미지의 세계로 인식되고, 본 적이 없는 대상을 향한 혐오로 쉽게 이어진다는 점입니다. "일본에서 국가의 짐(고령화 문제)을 덜기 위해 노인 세대들은 집단 할복해야 한다"는 나리타 유스케(예일대 경제학과 조교수)의 발언이 고작 3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턱괴는레터의 구독자인 님은 알고 있으시겠죠? 과거의 원인이 미래의 결과가 된다는 이런 결정론은 시각을 좁게 만들어 버린다는 점을요.

  • (언제나 그렇듯이) 노년 여성에게는 사회적 재갈이 하나 더 있(었)다. feat. 그놈의 피가 뭐라고

나이든 여성의 재현에 대해 서술하기 앞서, 역사는 엘리트 남성 집단에 의해 쓰여져 왔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들에 의해 작동된 역사와 사회가 부유한 노년 남성과 가난한 노년 남성을 얼마나 다르게 묘사해왔는지 살펴봤는데요. 그들이 묘사한 나이든 여성 이미지는 조금 더 잔혹합니다. 


고대 그리스로마신화는 인간의 마음에 공포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특정한 인물에게 '여성'이라는 성별과 '늙고 야윈' 모습을 부여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나이든 미혼 여성'으로 묘사되는 '그라이아이'가 있습니다. 늙은 여자들, 노파들로 해석할 수 있는 그라이아이는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눈 하나와 젊어지는 이빨 하나를 돌아가며 함께 사용하는 괴물 세 자매입니다. 이들은 태어날때부터 머리가 백발의 노파의 모습이었으며, 데이노, 에뉘오, 펨프레도로 명명된 각각의 이름은 '무서운', '전쟁을 좋아하는', 그리고 '깜짝 놀라게하는'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페르세우스 신화에 등장하는 그라이아이의 모습. 헬렌 스트래턴의 일러스트레이션은 고대그리스로마신화가 나이들고 외소한 여성의 이미지를 어떻게 사용했는지 잘 묘사하고 있어요. 
Source : A book of myths (1915) New York : G. P. Putnam's sons; London, T. C. & E. C. Jack. Copy at New York Public Library

그라이아이와 같이 서구권 역사에 등장하는 나이든 여성의 스테레오타입은 악의적이고 외설적인 묘사가 빈번했습니다. 섹스중독 마녀이거나 알코올 중독자 혹은 괴물의 딸. 그 이유는 위에서도 언급한 아리스토텔레스 시절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노년의 몰이해(나이든 이는 성격이 부정적으로 발달하고, 육체적-정신적 능력이 쇠퇴한다고 믿음)에 더해 여성과 여성 신체에 대한 몰이해가 더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17세기 유럽에서는 생리혈이 매우 위험하고 손에 닿으면 치명적인 것으로 인식하여, 생리 중인 여성이 농사를 망친다는 인식이 자리잡았습니다. 그토록 위험한 생리혈이 몸안에서 빠져나오지 않는 폐경(*) 이후의 여성은 몸이 독소로 가득차 점점 더 사악해지고 위험해지는 존재였습니다. 이러한 인식은 정상성에서 벗어난 여성(아이를 낳지 않거나 가부장제에 속하지 않는 미혼 젊은 여성) 혹은 나이든 여성을 마녀-마녀사냥과 결부시키는 광기의 시대를 거쳐 만들어지게 됐어요. 

(*) 월경이 끝나는 현상을 지칭하는 폐경과 완경. '닫을 폐(閉)'를 사용하는 폐경은 초점이 출산에 맞춰져 있는 표현입니다. 반면, '완전할 완(完)'을 사용하는 완경이란 표현은 재생산의 과정을 지나 삶의 자기완성 단계에 이르렀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후자가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더 넓게 확장하는 표현이지만, 본 레터에서는 당대 사회가 여성에게 가했던 몰이해와 혐오를 가시화히기 위해 '폐경'이라는 단어를 선택해 사용합니다. 

14-15세기에 나이든 가난한 여성은 마녀로 등장했습니다. 
알브레히트 뒤러, 마녀(The Witch), 1500년 경 제작, 판화, 7.2*11.7cm, ⓒMET

윌리엄 호가스, 맹신, 미신 그리고 광신(Credulity, Superstition, and Fanaticism), 1762년 제작, 에칭 기법, 33*43.8cm, ⓒMET

그런데, 18세기에도 마녀로 등장합니다. 당대 사회를 반영한 남성 역사가와 예술가의 기록과 작품을 통해서 여성은 이토록 오랬동안 몰이해 위에서 편협하게 묘사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재판장의 두 손을 주목해볼까요? 한 손엔 악마를, 한 손엔 노파로 묘사되는 마녀가. 미신과 관련된 사회적 편견을 풍자한 호가스의 작품에는 노년 여성이 주술적 존재로 간주되는 당시의 인식을 드러냅니다. 

가난한 노년 남성이 신체의 쇠퇴가 시작되는 50-60대를 기점으로 노인으로 구분된 것처럼, 가난한 노년 여성은 40대 혹은 50대부터 노인으로 구분되었습니다. 폐경이 시작되는 시기와 맞물리지요. 자녀를 생산할 수 없는 여성에게 사회는 폭력적인 이미지를 덧씌우기 시작했어요. 출산 활동을 할 수 없는 여성은 '기능을 상실한 사회 구성원'으로 평가하며 주변화해버린 셈인거죠. 


폐경기가 지나도 잘 먹고 건강함을 유지한 부유한 노년 여성에게는 '마녀'와 같은 이미지가 덧씌워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머니-할머니로서 가족을 돌보는 역할이 부여됐어요. 여성이라는 결점을 보완하는 극소수의 속성은 힘이나 지식 혹은 지혜가 아니라 '인내'와 '가족에 대한 헌신'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이든 남성이 탐하는 부와 권력 그리고 젊은 여성과는 달리 나이든 여성의 꿈이나 소망은 훨신 소박하게 묘사됐습니다. 

얀 스테인, 행복한 가족(The Merry Family), 1668년 제작, Rijksmuseum, Amsterdam, Netherlands
정리하자면 역사에서 재현된 여성의 노년에는 출산이라는기능, 즉 재생산보다 중요한 건 없었습니다. 폐경을 기준으로 나이든 여성의 이미지가 묘사되는 것이었죠. 이번 레터를 위해 리서치하는 기간 내내, '그놈의 피가 뭐라고.' 이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어요. 

'다름'을 절대적인 간극으로 인식하게 된다면 결론은 뻔해집니다. 절대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 중세와 르네상스, 근대를 지나오며 주류 역사를 기록할 수 있었던 남성 역사가와 표현할 수 있었던 남성 예술가가 자신은 절대 경험할 수 없을 '월경'을 위험하고 무서운 것으로 여겼던 것처럼요. 그 인식은 위의 서술처럼 '마녀'와 '마녀사냥'까지 이어지고, 또 죽지도 않고 오늘날까지도 살아있어 사회와 문화 그리고 과학에까지 촘촘히 스며들었습니다. 완경에 대한 이야기를 쉬쉬하는 사회, 다양한 완경의 증상을 단편적으로 바라보는 의료계, '완경'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게임을 보이콧하는 2024년 11월의 한국 남성 커뮤니티(link)가 그렇게 형성되고 있습니다. 
  • 이젠 다름과 경계, 관성을 넘는 상상력이 필요해 (도구 : 이미지와 이야기) 
생산성과 경제력 그리고 젠더의 관점에서 나이 듦의 이미지가 어떤 양상으로 형성되어 왔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조금은 이해가 되는거 같습니다. 왜 TV에 나오는 어른들은 다 하나같이 비슷한 역할에 비슷한 모습이었는지, 왜 우리에게 노년이라는 생애주기는 미지의 세계 같은지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쓸모'란 생산과 인구 재생산만을 의미하지는 않잖아요. 우선 '쓸모'를 다시 정의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호탕한 말괄량이 가모장 할머니가, 타인과 흔쾌히 교류하는 할아버지가 세상에 제 모습을 드러내면 좋겠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이어져온 오랜 관습과 관성을 끊어내기 위해서는 더 많은 당사자의 이야기와 그들을 드러내는 이미지가 필요합니다. 나의 75세를 생각하기, 겪지 못한 타인의 상황을 상상하기, 시선을 살짝 비틀어 공고한 사회적 인식에 의문을 품기. 이런 공감에 기반한 자세는 다름을 간극이 아닌, 무한한 가능성의 원료로 생각할 때 형성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 우리는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 대신 미시적인 이미지와 이야기라는 도구로 타인을 상상할 수 있는 필요한 때입니다. 그래서! 턱괴는여자들은 2025년, 나이 듦에 관한 새로운 면면을 발굴하기 위한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 ✨👀
II. (광고)
<내 얼굴에 주름을 지우지 마시오!> 국가인권위원회 강연 중인 김영옥 연구자 [링크]
(출처 : 국가인권위원회 2024.03.12)
턱괴녀가 사회 구조적 외로움으로서 '노년'을 다룬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지워진 이미지들을 추적하고 그 너머를 짚어보면서, 도대체 '왜' 이런 터부가 발생되는지 심리적 기원이 늘 궁금했는데요. 올해 3월에 있었던 한 강연에서 무릎을 탁 치게되는 해설을 만났어요. "노년기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유머나 여유가 부족하다(!!)"
 
강연자는 여성학자이자,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의 공동대표인 김영옥 연구자였어요. 두 개의 정체성 수식어가 명확하게 보여주듯이, 여성학적 시선을 놓치지 않고 성실하게 나이든 선배의 통찰력은 날카로웠습니다. 

그는 강연에서 "모든 인간을 연결하는 근본적 보편성은 바로 '몸의 취약성'에 있다"고 꼬집으며, "이 사실을 잊어버리게 되면 경제적/사회적으로 취약한 상황에 내몰리는 처지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게 된다"고 이야기해요. 이렇게 취약함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가 매우 주도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다방면에서(신체적, 정신적, 환경적) 중첩된 약자성을 '부여받는' 노년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가 되어버리죠. 미디어 콘텐츠에서 주름이 지워져온 논리가 한층 더 명료해지는 듯 합니다. 

20여 분의 강의에 압축되어 담긴 그의 성찰을 보고, 다른 활동들도 추적해야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만나게 된 이 책, '노년'을 직면할 예정이거나 '여성'이라면 꼭 읽어야할 문제작입니다(네. 모두가 읽어야 한다는 이야기죠?). 도대체 이런 글이 어디에 숨어있었던거죠! 
『흰머리 휘날리며, 예순 이후 페미니즘』
2021.06 교양인

지은이. 김영옥 (여성학자,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공동대표)

"그의 사유는 두루뭉술한 노년 여성의 상에 압정을 꽂아 우리가 살펴야 할 곳을 직시하도록 한다. 날 선 시선과 지적인 문장들은 아직 해석되지 못한 경험들의 가능성을 들여다본다. 앞으로 더 넓혀갈 노년 여성의 삶에 대한 이해, 그 서두에 이 책이 서있다.
(알라딘 사회과학 MD 김경영) 
나이듦에 대한 새로운 관점으로 앞서 살아간 인생 선배를 만나고 싶다면, 이 책을 주목하세요. 책을 여는 서문 중 두 개의 발췌문 소개로 시작할게요. 각각 완전히 새로운 '노년의 가능성'과 '사회적 공감능력'에 대한 그의 일침을 담고 있는데요. 약 300여 쪽에 걸쳐 펼쳐질 이야기들을 더듬어볼 수 있는 문장들입니다.

"노년기는 고착된 젠더와 계급, 문명사회 규범의 틀을 거슬러
통 크게 ‘반항’할 수 있는 인생의 시점이다.
또한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아 보이던 그룹이나 진영간에
연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는 시기다. (p.39)"

"타자에 대한 연민이나 공감, 질문을 경유하지 않는 자기 이해란
얼마나 허술한 기만이며 공허한 껍데기인가. (p.51)"

  • '예순 이후' 페미니즘

『흰머리 휘날리며, 예순 이후 페미니즘』은 “여성 노년”이라는 주제를 깊이 탐구하며, 이 시기를 단순한 쇠퇴나 생의 마무리 단계가 아니라 새로운 정체성과 가능성의 영역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특히 노년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보이지 않는 존재로 간주되거나 경제적·정신적으로 의존적인 이미지로 고정되는 상황에 적극적으로 질문을 던져요.


이 책은 노년의 몸과 감정, 삶의 궤적을 통해 여성들이 경험하는 변화를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는데요. 갱년기, 치매, 신체의 변화와 같은 주제는 개인적인 고통으로 치부되기 쉬운 문제들이지만, 이를 문화적·사회적 맥락에서 이해하고 재구성하면서 공감과 위로를 건냅니다. 저자는 노년기를 여성의 삶에서 또 다른 성숙의 단계로 제시하고, 이를 주체적으로 수용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죠.


특히 노년이 단순히 과거를 회고하는 시기가 아니라 여전히 욕망하고 창조하며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시기임을 강조해요. 예술, 글쓰기, 사진, 퍼포먼스를 활용한 노년 여성들의 삶의 기록은 이들을 단순히 생물학적 연령으로 한정짓는 시선을 거부하고, 그들의 삶이 여전히 변화와 성찰의 과정을 포함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페미니스트, 갱년기와 '더불어' 살다
뮤지컬 '메노포즈'의 포스터와 공연 장면
책 중간중간 인용되는 콘텐츠 레퍼런스들과 그 매운맛 해석들도 책의 재미를 더해주는데요. 책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메노포즈(menopause)>라는 뮤지컬이 있다." 이는 갱년기를 겪는 여성들의 신체적, 감정적 변화를 융쾌하게 그려내면서, 줄곧 터부시되었던 '완경'이라는 주제를 수면위도 아닌 무려 무대위로 올린 작품이에요. 이를 소개하면서 책의 포문을 여는 김영옥 연구자는, '완경'이 신체적/생리적 상태를 넘어서서 사회문화적으로 이해되어야 하는 인류 절반이 공통적으로 겪는 현상이라고 이야기해요. 
  • 예순 이후 '페미니즘'

이 책의 또 한 가지 특징! 노년 여성의 삶을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탐구하며, 기존의 여성주의 담론에서 상대적으로 간과되어 온 “노년기”를 중요한 분석 대상으로 끌어온다는건데요. 책은 노년 여성의 욕망, 성, 사회적 역할 등을 조명하며 여성주의 담론의 범위를 확장합니다.


저자는 '여성 노년'을 생물학적 제한이나 사회적 통념에 갇히지 않은 주체로서 탐구해요. 특히 노년기의 성(性)을 논의하는 대목은 나이 듦에 대한 기존의 금기와 사회적 침묵을 깨고, 이를 긍정적으로 재해석하는 데 기여합니다. 또한 여성 노년의 이야기를 다양한 문화적 텍스트와 결합하여, 노년기를 단순한 사회적 의무의 연장이나 생의 종착점이 아닌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새로운 가능성과 창조의 시간으로 보게끔 이끌고요.


페미니즘의 핵심 가치인 포용성과 연대는 이 책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있어요. 노년 여성의 경험을 중심으로 한 이 담론은 다양한 세대와 교차점을 형성하며, 젊은 여성들에게도 나이 듦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제공하거든요. 이는 단순히 노년 여성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여성 생애 전반을 다시 사유하도록 촉진합니다. 이로써 페미니즘이 나이, 세대, 신체적 조건을 넘어서는 더욱 폭넓은 담론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하죠!

모두에게 쾌락을 허하라! 노년의 성과 사랑
데이드레 피쉘 감독의 다큐멘터리 <여전히 사랑하고 있습니다(2004)>
나이든 여성들의 '성적 욕망' 또한, 이 책에서 본격적으로 발견하는 생경한 통찰입니다. 2004년 상영된 다큐멘터리 <여전히 사랑하고 있습니다>는 65세 이상의 여성들의 성생활을 유쾌하게 인터뷰하고 그려내요. 영어 원제 'Still Doing It (여전히 '하고 있습니다')'을 굳이 '사랑'하고 있습니다로 번역한 한국어 제목에서부터, 국내 사회에서 얼마나 노년 세대의 성생활이 터부시되는지 상징적으로 알려주죠. 책의 '모두에게 쾌락을 허하라' 챕터를 통해, 김영옥 연구자는 이 다큐로부터 어떤 논의를 어디까지 확장할까요? 
"우리들에게는 멋진 언니들이 있잖아요.
앞서 늙어간 여자들이 있다, 나 혼자 늙어가는 게 아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도 말고 우물쭈물하지도 말고 성큼성큼 늙어가자!"
김영옥 연구자 (사진 출처 : 인권교육센터 '들' 인터뷰, 인터뷰 전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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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이벤트)
🤓📚 함께 턱 괴기 이벤트!
턱괴녀의 연말에 틈틈이 영감을 불어넣어준 책 『흰머리 휘날리며, 예순 이후 페미니즘』 ! 노년, 특히 여성 노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내어왔지만, 구체적인 레퍼런스가 없는 상태에서 그런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어요.
특히 국내에서 그런 롤모델을 찾기 힘들다는 사실은 씁쓸한 감상을 주기도 했어요. 지금껏 에이지즘으로는 미국의 '애플 화이트', 여성학과 돌봄 사회학으로는 일본의 '우에노 지즈코'의 목소리를 전달해왔는데요. 한국에도 이렇게 멋진 연구자가 있었다니, 기쁨과 동시에 턱님들과도 꼭 이 발견을 나누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출판사 '교양인'과 함께, 『흰머리 휘날리며, 예순 이후 페미니즘』 책 증정 이벤트를 진행합니다. 선배님의 책, 함께 읽어요.

👑 어떻게 참여하나요? 
1. 아래의 버튼을 눌러 인스타그램으로 이동하기
2. Q. "나의 인생에 기준점이 될 롤모델은 누구?"  세대 불문! 
3. 개인적인 답을 댓글로 남기기 (ex. : 어머니, 김연옥 연구자, 김연아 선수 등등...)

👑 이벤트 기간 : 2024/12/28(토) ~ 2025/01/03(금) 자정
👑 당첨자 발표 : 댓글창에 1차 공지 후 → 개인 DM으로 연락드립니다. 

✳︎ 다섯분을 추첨해, 책 『흰머리 휘날리며, 예순 이후 페미니즘』을 보내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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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턱괴는여자들 ✳︎
구조주의자, 경험주의자, 무엇보다 휴머니스트를 지향하는 리서처 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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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및 전시기획사 '또 웍스(toh works)'를 운영합니다
"인문학과 공감능력이 세상을 구한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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