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으로 맺어진 인연, 연필(緣筆)입니다. 


연필 20호 [사회인 1호]

안녕하세요 필통이들! 
푸릇함과 더위가 넘실대는 4월부터는 

예고한 대로 사회인으로서 1인분을 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연필 친구들의 일상이 담깁니다.


근로자의 날부터 대체 휴무일이 가득 찬 5월을 떠올리니

벌써 두근거리는데요.

분명 저희처럼 온 마음으로 휴일을 기다리고 있는

필통이 있을 것이라고 감히 예상하며,

저희 글 읽고 많이 공감해 주시고

사회인으로서의 이야기를 나눠주시기를 바라요!

문.송. 하지 않기 위하여

 오늘도 정부 과제 발표심사장에서 나와 대표와 함께 근처 카페로 향했다.


 “이번 발표는 어땠던 것 같습니까?”


 밤새워서 준비했던 정부과제사업의 선정 소식이 나오고 있는데, 실무책임자로 이름을 올린 나는 총괄책임자인 대표를 따라 발표장에 같이 참석 중이다. 발표가 끝난 뒤, 대표가 나한테 질문을 던지는 그 순간! 요즘 가장 회피하고 싶은 시간이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내가 가진 능력을 더 끌어올리기 위한 ‘하나부터 열까지 다 날 위한 잔소리’이고, 부정적으로 본다면 ‘지금 하고 계신 업무가 잘 맞는 것 같나요? 회사를 이해하고 있는 게 맞나요?’ 같은 피드백을 듣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밥벌이 시작한 지 9년 차, 3번의 이직. 첫 회사는 박봉이었고 번듯한 회사 형태와 정반대였지만, 예술을 가까이서 즐길 수 있다는 복지가 있었다. 두 번째 회사는 그나마 회사의 기틀을 다진 곳이었으나 커리어 성장을 따진다면 비즈니스 모델은 오리무중이고 회사 존폐 여부와 함께 앞길이 막막했던 곳이었다. 그리고 지금 세 번째인 회사는 인생 처음으로 온통 이과생에 둘러싸여서 최신 기술 동향을 귀동냥하며 (어쩌면) 커리어 성장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수사학, 비언어 커뮤니케이션, 문화 커뮤니케이션.. 등 뒤로 굴러도 앞으로 굴러도 인문학을 공부한 나한테 이곳에서의 생활은 하루하루가 도전적인 날이자 자괴감에 빠지는 날의 연속이다.


 컴퓨터 공학, AI 융합, 데이터 분석 등을 공부한 동료들이 열심히 인공지능을 연구 개발하는 동안, 그를 제외한 대부분의 회사 업무는 유일한 문과생인 나의 몫이다. 연초에 쏟아져 나오는 정부 과제를 위해 미친 듯이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고 발표 자료를 만들어냈다. 연구개발 과제 신청 준비는 올해가 처음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대표한테 들은 ‘논리적인 컨셉 제시 능력 부족’ 피드백은 가장 뼈가 아팠다. 모르는 기술은 박사님이라고 불리는 동료에게 물어가며 나름대로 이해하여 풀어 썼고, 매주 에세이 과제를 해내던 세월을 원동력 삼아 회사 비즈니스 모델과 연결 지어 간결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이 방향이 아니라니! 인공지능 회사에서 ‘문송합니다’ 하고 머리를 조아리게 생겼다.

 어느 날 컴퓨터 공학 석사인 동료가 지금 마케팅 회사에 다니고 있는 ‘문과’ 친구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녀의 친구는 권고사직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실제로 월 3만 원이면 챗GPT나 다른 AI로 손쉽게 데이터 분석부터 콘텐츠 생성까지 가능한 현실에 굳이 2~300만 원을 주고 인력을 쓸 필요가 없다는 회사 경영진의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진짜료 이미 많은 동료가 회사에서 해고당했다고 한다)


 사업 계획서를 작성하거나 발표 자료를 만들 때 지금 대표도 챗 GPT 활용을 권고(?)한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을 명확하게 이해한 뒤 챗 GPT에 역할을 부여하고 질문을 던져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너는 지금 인공지능 솔루션을 판매해야 하는 영업 사원이야. 0000한 솔루션을 00 타겟에게 판매하기 위한 방안을 00 관점에서 5가지 정도로 제시해 줘”와 같은 질문으로 말이다. (잘 된 프롬프트 예시는 아니다) AI에 ‘어떤’ 질문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답변의 질은 천차만별이다. 올바른 프롬프트를 입력할 수 있는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직군이 혜성같이 등장한 이유도 이것일 텐데, 종합으로 사업 맥락을 이해하며 인공지능과 ‘잘’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은 코딩 능력과는 별개로 인문학적 사고방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인공지능이 모든 이의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문송'하지 않으려면 계속해서 배우고 다양한 방면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미래 대부분 산업 분야에서 인공지능은 물론 또 다른 최신 기술을 활용하게 될 것이다. 기술 지식도 겸비한 동시에 다양한 관점에서 문제를 해석하고 기술을 통해 어떻게 해결할지에 관하여 인간 중심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갖추고 싶다. 물론 그 길이 쉽지 않아 보인다. 오늘도 대표로부터 “아직 우리 회사 기술로 어떤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컨셉 잡는 것을 어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라는 말을 들었다. 정부 과제가 종료되는 연말에는 ‘문송하다’며 자조 섞인 얘기를 하지 않기를 기대한다. 지금보다 머리를 더 쥐어짜서 성장을 위한 껍질 하나를 벗겨 내고 싶다.


 보란듯이 '문.최' (문과라서 최고입니다)가 무엇인지 보여주고 싶다. 


By. 연필심

어느 청춘의 방황기

 희한하게도 엄마는 공부에 대한 강요는 없었지만 내가 예체능의 길을 걷길 바라셨는지 아주 어릴 적부터 재즈바에 데려가고 피아노와 그림을 배우게 했다. 피아노는 애초에 재능이 부족해서였는지 혼나면서 배웠던 기억에 전혀 흥미가 생기지 않았고, 당시 작게 미술학원을 운영했던 엄마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미술이라는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그저 해맑고 즐겁기만 했던 그림이었는데… 고등학교 입시에 들자, 누군가와 비교당하고 계속해서 줄 세워지는 상황이 되자 두려움이 들었다. 아무도 강요하진 않았지만, 상황 때문이었을까? 남들보다 일찍 시작했으니, 상위권을 유지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이 마음의 눈덩이는 해소되지 못하고 결국 세 번의 대학 자퇴라는 말도 안 되는 인생의 흔적을 남기고 갔다. 첫 번째는 국내에서 합격한 학교가 성에 차지 않아서, 두 번째는 기초 과정 없이 바로 입학할 수 있는 좋은 조건으로 런던 디자인 스쿨에 합격했지만, 더 완벽하게 갖추고 시작하고 싶은 마음에(내 인생 가장 후회하는 순간), 마지막은 이탈리아 패션스쿨에 다니긴 했지만, 또 조급한 마음이 들어서 그냥 어디서든 빨리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게 나한테 더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만두게 되었다.


 방황이 여기서 끝났으면 좋았을 텐데… 또 이상한 조급함이 생겨 엉뚱하게 기업 매장직 취직하기도 하고, 나름 전공에 살짝 걸쳐져 있다며 패션 광고대행사 기획팀으로 이직했다가, 마지막엔 정체를 알 수 없는 콘텐츠 회사에 디자이너로 취직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렇게 방황할수록 미술을 놓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시간 낭비를 너무 한 거 아닐까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했지만, 더 늦기 전에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왔고, 역시나 걱정이 무색하게 작가로써의 삶에 잘 적응하며 지내고 있다.


 엉뚱한 곳에 취직했던 경험도 생각보다 현재 직업에 쓰일 때가 있는데, 내 작품을 판매하기 위한 것엔 영업직 시절의 경험이, 브랜드 분위기를 기획하고 소비자들에게 어떻게 하면 설득력 있게 보여질 것인지에 대한 아이디어는 기획팀 때의 루틴이, 홍보물을 만들어야 할 땐 콘텐츠 회사에 다녔던 경험이 도움이 되었다. 개똥도 쓸 데가 있다더니…


 다양한 회사에 다녀본 결과, 어차피 세상은 생각보다 어설프게 돌아가고 완벽한 사람은 없었다. 자신의 부족함을 객관적으로 있고, 부족함을 들켜 수치를 느끼고 싶지 않아 하는 마음은 나를 너무 힘들게 했지만 결국 나를 성장시키기도 했다. 30대가 되어서야 마음을 견뎌야 한다는 알게 되었다. 여러분들은 그런 마음에 속아 엉뚱한 길에 빠지지 않길 바라며 나의 부끄러운 과거를 나열해 보았다. 


By. 마카


 회사 생활 11년 차. 선배는 없어진 지 오래다. 물론 상사는 있다. 하지만 같은 직무를 하는 사람은 없다. 대체자가 없는 자리지만 늘 언제나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 있는 직무라고 생각해 대체자가 없어 보여야 하는 아이러니 속 아슬한 외줄타기를 한 지도 8년이 넘었다. 아주 작고 깜찍한 소규모 회사라 사람도 별로 없건만 왜들 그렇게 서로 질투하고 시기하고 없는 말을 지어내서 퍼트리는지. 나를 경쟁상대로 여기지 않아 사람 취급도 못 받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다가도 저런 어처구니없는 일로 에너지 소비 안 해도 된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애써 위로한 적도 있다.

친구들도 어느덧 굵직한 경력을 갖고 중간 관리자가 되어 여러 고충을 이야기한다. ‘까라면 까야지’ 하는 상사들과 혹시 자신이 지금 꼰대 짓을 하는 것은 아닐까? 후임들을 대할 때 끝없는 자기 검열을 하며 중간에서 이리저리 치이는 위치가 됐건만 우리에겐 여성 선배는 참 찾기 힘든 존재다. ‘여초직장’이라고 불리는 곳도 실무진에는 여자가 많을지라도 조직 관리자는 남성이 더 많다.

 힘들게 여성 임원을 찾더라도 우리가 찾던 결의 사람이 아닌 경우가 더 많다. 슬프게도 그 분이 그 자리까지 살아남기 위해 끝까지 가져야했던 태도였을 거라며 생각을 고쳐 먹는다. 여자 선배가 무조건 좋다거나 훌륭할거라 생각 하지 말아야한다. 사람이 모여있으면 분열은 꼭 따라오는 법이기에. 그래도 커리어에 미쳐 선후배고 뭐고 짓밟는 사람, 사람은 좋지만 무능력한 사람, 업무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존경하고 따르고 싶은 사람, 저렇게 하는데도 월급을 받아 가는구나 하는 많은 본보기가 여성이라면 우리는 조금 더 빠르게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어떤 선배의 모습을 하고 있을까? 더 오래 근무하고 진급을 한 뒤의 모습은 어떨까? 길을 잃으면 차라리 날아올라 지나가는 대로 길을 만들라는 가사처럼 깜깜한 직장생활의 길을 내디딘다.

 

By. 기차 연필깎이

함께라서 빛나는 길을 선택할래요
 

 어린이집에 교사로서 일을 하다보면 가정과 정말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된다. 어린이 중심으로 연결된 부모와 교사는 모두 어린이에게 너무 중요하고 필요한 존재이다. 나는 유아교육사상 중 *레지오에밀리아 교육법을 지향하고 있는데, 교육학자가 남긴 말은 아니지만 크게 동감하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

자녀를 위해 부모로서 해내야 할 역할이 있고, 교사는 교육을 할 만한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부모와 교사를 가졌다고 한들 과연 충분할까? 이는 어린이가 연약하고 부족한 존재라는 게 아니다. 오히려 잠재력의 정도를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하고 싶다.

어린이들과 매일 여러 해를 지내면서 어린이가 가진, 결국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지고 있는 색깔이 참 다양함을 알게 됐다. 태어난 지 갓 1년이 된 아가들도 자신의 성격과 능력의 빛을 보여준다. 그 빛들은 혼자일 때도 눈에 띄지만, 모이고 서로에게 영향을 줄 때 무척이나 아름다운 이런저런 폭발을 만들어 낸다. 어린이들은 서로에게 배우고, 서로를 통해 성장한다.


 바다와 수아는 성격이 다른 5살 여자친구이다. 좋아하는 놀이도 다른 편인데 둘 다 다른 이유에서 음악 놀이를 좋아한다. 바다는 피아노에서 음의 소리를 잘 기억하고 글자도 잘 써서 이를 자신의 방법으로 기록해낸다. 수아는 음악에서 느껴지는 자신의 감정을 말과 행동을 다 활용해 최대한 풀어내는 능력을 가졌다. 하루는 둘이 같이 놀이를 하게 되면서 곡을 만들겠다는 제안을 서로에게 했다.

 <바다&수아 작사>


역할을 나누어 수아가 즉흥적으로 노래를 하고, 바다가 바로 악보에 글자로 적어 나갔다. 적어가는 과정에 바다가 바꾸고 싶은 부분에서는 “해해 앞이랑 뒤에 하도 적어보자”라며 아이디어를 내서 절충하기도 했다. 이렇게 둘이 같이 처음 만든 곡의 제목은 [수아와 바다]. 서로를 생각나게 하는 제목이었다. 그 후에 연이어 [나랑 같이 가자]라는 곡도 이어 만들며 자신감을 보였다. 가사에서 어린이들에게 ‘같이’의 의미가 얼마나 중요한지 느껴졌다.

둘은 그 후로도 한동안 편지처럼 노랫말만 있는 곡을 만들었다가, 음의 높낮이를 담고 싶다고 하며 피아노 건반에 색깔 스티커를 붙이기 시작한다. 건반을 하나씩 눌러보며 소리를 느끼고 어울리는 색의 스티커를 붙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자주 치는 건반에 스티커를 붙이고 나서 흐르듯 건반을 자유롭게 치던 바다가 소리의 순서대로 악보에 스티커를 붙였다. 이를 듣던 수아가 “부드러운 느낌이야.”라고 하자 바다는 “자장가라고 지어주면 어떨까? 우리가 마음이 편안해지고 싶을 때 악보를 보고 또 치자!”하며 제안하였고 [아기가 꿈을 꾸는 자장가]라는 제목으로 확정하였다. 교사가 “오늘은 노랫말이 없네? 자장가라서 그런가?”라고 의문을 표하자 “이건 음만 있는 거에요”라며 웃는다. 

그리곤 바다가 “나 다른 느낌을 연주해볼게. 악보에 기록해줘!”하며 5번의 두드림을 끝나는 짧은 곡을 만들었다. “시원하지! 이건 워터파크에서 듣는 노래라고 짓고 싶어”

<바다&수아 작곡> : 계이름은 추후에 아이들이 궁금해하여 교사가 적어주었다.

두 어린이는 만약 혼자였으면 수아는 넘치는 발화적 의미들을 글자로 기록하지 못했을 테고, 바다는 효과음이 가득한 듯한 취향이 다른 음악을 만드는 경험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를 그대로 보여주며 타인과 나누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어린이들은 스스로 매 순간 느끼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를 넘나들며 세상을 넓히고 알아가고 있다.


 어린이들의 일상에서 타인의 존재는 이렇게 빛이 난다. 그러한 존재는 매일 만나는 친구, 부모님, 선생님 뿐 아니라 그보다 적게 보는 옆 집 사람일 수 있고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 나랑 관계가 없게 여겨지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구든 나와 이어질 수 있고 그 연결의 성격은 나와 함께 만들어 가는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앞서 언급한 아프리카 속담에서 한 아이의 성장에 필요한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걸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했다.

이 말이 의미 있는 또 한가지 이유는, 어린이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어른들에게도 여전히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마을에는 무엇이 있을지 마을을 걷고 둘러봐야 무언가를 발견하고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혼자로서 빛나는 나와 우리 안에서 빛을 가지는 나 모두 나이고, 이들이 합쳐질 때 온전한 나의 빛을 이룬다고 믿기에 둘 다 놓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일에서도, 개인적인 나에 대해서도 내 선택은 사람들과 함께하며 빛나기이다. 여기에 나로 인해, 내가 있는 마을의 사람들이 더 마음에 드는 빛을 이루어갔으면 하는 작은 소망도 마음에 넣었다. 생각을 돌고돌아보니 다시 내 위치는 어린이집 교사. 나의 마을에는 어린이가 넘친다. 교사도 어린이를 통해 성장하고 새로운 세상을 알아간다는 걸 다들 알까? 그게 너무 좋아서, 이 일을 놓지 못하나보다. 

  

*레지오에밀리아 교육법: 이탈리아 교육학자 로리스 말라구치(Loris Malaguzzi)에 의해 시작된 장·단기간의 프로젝트에 기반한 발현적 교육법, 상징적 표상에 의한 창의성 증진, 아동의 자율성, 부모와 교사, 아동, 지역 공동체의 유기적 관계를 강조한다.


By. 동글연필

퇴사하는 법 알려주세요.

 

‘크레파스씨 그거 들었어? 박대리 퇴사한대. 다음 주까지만 나온다네. 암튼 알아둬.’

피가 모자란 뱀파이어처럼 아침 수혈로 커피를 때려 박을 때였다. 결국 이럴 줄 알았다는 듯 쿨한 척 말하지만 한숨을 푹푹 쉬며 최팀장이 박대리의 퇴사 소식을 전했다. 아, 진짜요? 아쉬운 척 대답하지만 내 속은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으며 마구 요동치고 있었다.

 

아씨

내가 먼저 퇴사하려고 했는데

 

일등으로 달리고 있었는데 간발의 차이로 일등을 놓친 마라톤 선수처럼 나는 망연자실한 마음이었다. 사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 퇴사의 꿈을 갖고 있는 게 직장인이라지만 말로만 떠드는 ‘가짜 퇴사’ 말고 ‘진짜 퇴사’는 풍기는 분위기와 마음 가짐이 완전히 다르다. 또 입만 열면 ‘이 놈의 회사 퇴사해야지’ 혹은 ‘짜증 나서 그만둘 거예요’ 같은 발언과는 다르게 진짜 퇴사를 꿈꾸는 자는 일상이 말없이 묵묵하다. 행여나 퇴사 후 이어질 계획이 흐트러질까, 혹은 이 퇴사의 꿈이 경영진에게 새어나가 붙잡힐까 싶어 늘 입조심, 행동조심을 기본으로 전제한다. 이런 국정원 같은 묵묵한 마음으로 퇴사 각을 재던 나였는데.. 아뿔싸! 박대리도 같은 국정원이었다니!

 

지난달 난데없이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이직해 버린 나는 기업의 격차를 절실히 느끼며 네덜란드 댐 막는 소년을 매일매일 체감하는 중이다. 때문에 경력직만이 알 수 있다는 ‘튀어야 할 회사’ 임을 직감하고 퇴사 타이밍을 노리는 차였다. 신문과 뉴스에서 요즘 사회는 ‘대퇴사시대’라며 너도 나도 퇴사하고, 이직하며 혹은 조용한 퇴사니 뭐니가 난리라는데, 왜 나는 퇴사 한번 하기가 이리도 힘들고 무서운지 모르겠다. 아니다 싶으면 아닌 건데 ‘그만두겠습니다’라는 말은 ‘우리 헤어지자’만큼 어렵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박대리의 퇴사 이슈로 메신저가 하루 종일 소란했다. 작은 회사에서 퇴사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기에 박대리가 속한 영업 1팀은 초상집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게다가 박대리는 타 팀이지만 묵묵히 맡은 바를 해내며 성실하고 일도 잘해 그야말로 오합지졸 속 군계일학 같은 존재였다. 그러니 박대리의 퇴사가 그 팀에 아니 이 회사에 얼마나 큰 허무함을 남기겠는가. 그러던 중 인사팀인 나는 박대리의 퇴사 서류를 꾸리다 박대리가 그간 두 번이나 퇴사 의사를 밝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동시에 ‘으악! 박대리!! 두 번이나 붙잡혔구나!!’ 싶어 깜짝 놀랐다. 동시에 ‘혹시 나도 잡히면 어떡하지’, ‘나는 안 잡히면 어떡하지’ 오묘한 생각도 함께 들었다.

 

박대리의 퇴사 날, 깔끔히 짐을 정리한 그가 나에게 마지막까지 챙겨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다. 나는 답변으로 그가 이직하는 회사에서 좋은 일만 가득하길 바란다며 응원을 보냈다. 그러자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이직을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직한다고 안 하면 퇴사를 안 시켜줘서요.

 

이렇게까지 거짓말 치며 퇴사를 해야 하는 건가 싶어 마음이 착잡해졌다. 퇴사.. 쉽게 했는데 쉬운 게 아니었구나.. 안전이별처럼 안전퇴사는 대퇴사시대 매뉴얼에 있긴 한 걸까?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By. 크레파스

연필로 쓰는 우리를 소개합니다 👭

기차 연필깎이🚂   
정갈하고 뾰족하게 고장 없이 연필을 깎아주던 기차 연필깎이처럼 오래 쓸래요.
동글연필💫 아이들 사이를 동그르~ 굴러다니며, 함께하는 일상을 끼적여요.
마카🗒   슥슥- 연필의 유일한 그림쟁이입니다. 작은 네모칸에 제 생각을 담아 보여드릴게요.
연필심✏   단단함과 무름을 모두 가진 연필심처럼 유연하게 보고 듣고 생각하고,그렇게 살고 싶어요.
크레파스🖍   세상을 크레파스로 다채롭게 그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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