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모두를 위한'이라는 말을 많이 붙인다. 디자인에도 마찬가지다.
  

모두를 위한 디자인이란?

모두를 위한 디자인. 요즘 ‘모두를 위한'이라는 말을 많이 붙인다.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마케팅이나 비즈니스를 실제 해본 분들이라면 이 ‘모두를 위한'이라는 말에는 상당한 역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어떤 책이든 제품과 서비스의 타깃을 뾰족하게 하여 작게 시작하라고 하지, 처음부터 폭넓게 시작하라고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모두를 위한 디자인은 실제 어떤 의미인가? 여기에는 경험 또는 사용성이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다. 다시 말해 모두의 경험을 위한 디자인, 또는 모두의 사용을 위한 디자인이다. 특정 사용자의 취향을 고려한 조형, 색감, 언어는 차별화되어야 하겠지만 제품과 서비스를 통한 경험과 사용에 있어서는 누구도 배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경험이라는 것은 상당히 함축적인 단어다. 제품과 서비스의 경험은 시작과 중간 끝 그리고 이후까지로 매우 세부적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이런 각 단계에서 사람이 느끼게 되는 감정은 각각 다를 수 있겠지만, 사용 가능한 범위와 수준은 공평해야 한다. 

제품을 사용 가능한 범위와 수준은 상당한 차이가 발생한다. ©Eril Mclean

가령 우리가 피자 앱으로 음식을 주문하는데 시각장애인은 불고기 피자와, 포테이토 피자만 주문 가능하고, 비장애인은 모든 피자를 편리하게 주문한다고 생각해보자. 이것은 2016년 미국에서 있었던 실제 소송 사건이고, 소송을 진행한 시각장애인 기예르모 로블스는 최종 승소했다. 또는 여러분의 집에 에어컨이 있는데 전원을 키고 냉방 온도 조절하는 것만 가능하고, 그 외 리모컨의 다른 기능은 전혀 사용할 수 없다면 어떨까? 동일한 비용을 지불했는데, 위와 같은 대우를 받는다면 매우 불공평한 일이다. "에어컨의 1/5 기능만 사용하실 수 있으니 에어컨 가격의 1/5만 받겠습니다."라고 제조사는 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모두를 위한 디자인을 지향한다면 장애인, 고령 사용자, 혹은 피부색이 다른 사람 누구나 차별이 없이 경험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한다. 지금부터 모두를 위한 디자인을 만들기 위한 세 가지 실천 방법을 알아보자. 

* 이 글은 행복나눔재단에서 사회혁신 사례와 모델을 소개하는 Table Talk-Pick에 2024.3.28일 연재한 글을 일부 재구성했습니다.

첫 번째, 기획의 시작을 제약을 경험하는 사용자와 함께 진행한다.

프로젝트를 이제 막 시작하는 실무자라면, 반드시 제품과 서비스 사용에 제약이 있는 사용자와 함께 기획하기를 권장한다. 첫 시작을 함께하지 않으면 향후에 방향을 되돌리는데 많은 시간과 비용을 소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의 사용성을 만족시키는 것을 부가적인 것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지금까지 만나본 디자인 관계자 중 몇몇은 모두를 위한 디자인을 ‘비용이 더 추가되는 것', ‘단계가 더 늘어나는 것' 등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것은 큰 오해다. 더 간결하고 직관적인 설계는 비용을 절감시킬뿐더러, 더 많은 사용자에게 혜택을 줄 수 있다.

‘그 많은 놀이터에서 왜 장애인 아이들을 한 명도 볼 수 없었을까?’ 모두를 위한 놀이(Play for All) 프로젝트는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장애 아동과 비장애 아동이 함께 어우러져 놀 수 있는 체험형 놀이공간을 전시했다. 이를 위해 아동들의 모습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다큐멘터리와 책자로 만들고 실제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지적 장애를 가지고 있는 청년 재현씨의 손글씨가 로고가 됐다 ©미션잇   

프로젝트의 첫 번째 단계는 발달 장애인 아이들이 어떤 놀이 방식을 가졌는지 관찰하고, 조사하며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다. 사실 가지고 있던 가설은 뭔가 ‘특별하거나, 다르다’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어린이들은 누구나 같은 마음과 행동을 가지고 있었다. 놀이 공간은 특별하지 않아도 충분했다. 숨고, 뛰어가고, 올라가고, 좁은 곳을 비집고 들어가는 행동은 발달장애 아동이나 비장애 아동이나 마찬가지였다.

다만 발달 장애 아이 중에 기다리는 것을 어려워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기존의 미끄럼틀, 시소, 그네 등 놀이기구는 아이들이 규칙을 지키면서 기다려야 한다. 물론 놀이터라는 공간은 규칙을 지킴으로써 사회 구성원으로 습득해야 할 규범을 학습하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때로는 정해진 규칙과 틀이 없이 자유분방함을 즐길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따라서 우리는 기존의 정형적인 방식과 달리 아이들에게 놀이의 주도권과 자유로움을 제공하고자 했다. 그래서 첫 번째 컨셉을 규칙으로부터 자유로운 공간으로 잡았다.

좁은 통에 몸을 넣고 나오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아이들 ©미션잇

또한 놀이터에서 놀고 싶어 하는 발달장애 아동 중에는 중학생 이상 나이의 체격이 큰 아동도 있었다. 보통 놀이터는 초등학생 이하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므로 10대 중후반의 발달장애 청소년들이 편안하게 즐기기에는 놀이 기구의 크기가 작다. 따라서 신체적 차이를 고려한 공간을 만들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가장 고려한 것은 시선으로부터의 자유다. 자체적으로 진행한 150명의 장애아동 부모 설문조사에서 67.8%의 부모님들이 아동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과 아이들 간의 마찰에 대한 염려(65.1%) 때문에 함께 외출하는 것이 꺼려진다고 했다. 놀이공간의 개선보다도 시선에 대한 고민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장애 아동과 비장애 아동이 함께 놀이하는 과정에서 특별한 시선이 쏠리지 않도록 디자인을 고안했다. 기획의 시작점에서 발달장애 아동을 고려한 것은 결과적으로 더 많은 아이가 즐겁게 놀 수 있는 계기로 작용했다.

사진 속 아이들 절반 이상은 발달장애 아동으로, 놀이 방법에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다.장애 아동과 비장애 아동이 구분되지 않고 함께 어우러졌다. ©미션잇

두 번째, 배제된 사용자가 없는지 돌아본다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후에는 혹시라도 우리가 특정 사람들을 배제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제품의 패키지 디자인 시안을 만들고 있다면, 이 제품이 시각장애인이나 양 손 사용에 제약이 있는 장애인에게도 괜찮은 사용성을 지녔는지 평가해 보는 것이다. 

지금까지 제품을 개발할 때 사용자를 간과했던 역사는 그동안 포용성이 얼마나 부족했는지를 깨닫게 한다. 여성, 흑인, 노인, 장애인이 대표적이다. 과거 에어백 테스트에 쓰이는 인체 모형을 평균적인 남성 사이즈로만 만들어 충돌 사고 시 여성 운전자들의 사망률이 더 높았던 적이 있다.


또한 구글에서도 카메라 앱을 개발할 때 흑인이나 아시아계 사용자의 피부색을 반영하지 못한 적도 있었다. 기획 단계에서 충분히 여러 사용자의 특성을 고려하지 못한 게 문제였다. 물론 디자이너나 개발자 집단의 인력 구성이 다양하지 못했던 것도 한몫한다. 에어백 사례에서 당시 개발자들이 대부분 30, 40대 남성이었고 구글에서 카메라 앱을 개발할 때도 개발자들이 백인들이었기 때문이다. 연령과 관련해서는 어떤가? MIT 에이지랩의 창설자인 조지프 F 코글린은 현업에서 일하는 기업 실무자들의 나이가 보통 49세를 넘지 않기 때문에 49세라는 나이는 시장 조사 담당자가 결코 넘어서려고 하지 않는 사실상 마지노선이 되어버렸다고 말한다.

자동차 에어백 테스트가 성인 남성 위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제품 개발단계에서 우리가 얼마나 좁은 시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Rahul Pugazhendi

세 번째, 지속적인 피드백을 통해 개선한다 

정기적인 피드백을 통해 제품과 서비스를 지속해서 개선해야 한다. 아래 우리가 인터뷰했던 뮤지엄의 사례를 살펴보자.

런던 남동쪽 포레스트 힐(Forest Hill)에 위치한 호니먼 뮤지엄(Horniman Museum)은 1901년에 설립된 유서 깊은 박물관으로 2019년 기준으로 연간 약 95만 명이 방문했다. 다만 런던 중심부와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관광객들보다 지역 주민들이 가족 단위로 자주 방문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지역 방문자 수가 줄었다. 포레스트 힐 지역에서 고연령층 인구와 다양한 인종이 점점 증가하고 있는 데 반해, 호니먼 뮤지엄은 이런 지역 인구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내부적인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오랜 기간의 내부 토의 끝에 ‘박물관이 지역 주민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시설’ 이었음을 인식했다. 장애인 등 교통약자의 접근성도 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콘텐츠 또한 지역 주민들의 관심사를 반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모집하게 된 접근성 자문단은 정기적으로 모여 뮤지엄의 물리적 접근성과 콘텐츠 접근성을 최대한 높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보통 접근성이라 하면 시설적인 측면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호니먼 뮤지엄 접근성 자문단은 콘텐츠 접근성까지 고려하여 지역 주민이 어떻게 박물관의 전시에 흥미를 느끼고 참여할 수 있는지 커뮤니티 팀과 협업을 진행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자문단 모집 시에는 장애가 있는 지역 주민들을 모집하였고, 다양한 장애 유형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하여 의견을 균형 있게 조율할 수 있었다. 한번은 농인 자문단원이 수어가 담긴 비디오를 갤러리 전체에 설치할 것을 건의하였다. 그러나 자폐성 장애 아동의 부모는 "아이들에게 시각적인 자극이 많이 갈 것 같다"라며 우려를 표현했다. 결국 설치하지 않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렸다.

2018년부터 지금까지 접근성 자문단 활동을 지속하는 사람들. 다양한 장애를 가진 12명이 모였다. ©Horniman Musuem and Gardens
마치며 : 모두를 위한 디자인은 곧 선택의 자유  

위 세 가지 원칙의 공통점은 바로 ‘참여'에 있다. 물론 참여의 단계나 방식은 조금씩 달랐다. 처음부터 관찰 조사를 통해 프로젝트에 인사이트를 얻는 단계부터 시작하기도 하고, 이미 프로젝트를 진행한 뒤에 되돌아 본 경우도 있다. 아예 콘텐츠 제작까지 전 과정에서 함께하기도 한다.


많은 디자이너나 기획자가 실제 사용자들을 고려하지 않고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개발을 진행한다. 그러나 사용자를 만나보지 않고서는 디자인의 가장 중요한 원칙인 ‘사용자 중심 디자인'을 만들 수 없다. 무엇보다도 모두를 위한 디자인을 지향한다면 말이다.


좋은 디자인은 곧 좋은 디자인 과정을 만드는 것이다. 과거 "Good design is simple" 과 같은 결과물 중심이 좋은 디자인을 지칭하는 대명사 였다면, 모두를 위한 디자인의 시대에서는 과정이 좋은 디자인을 만든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이 모두를 위한 디자인이자 우리가 지향해야 할 디자인의 현재이며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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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수 미션잇 대표 
변화를 만드는 디자이너이자 콘텐츠 크리에이터. 디자인의 가치는 심미적인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사고의 툴이라고 믿는다. 2021년부터 장애인 관찰 조사와 전문가 인터뷰에 기반한 MSV 소셜임팩트 시리즈를 발간하고 있다. 장애인 이동, 발달장애 아동의 놀이, 개발도상국 안전, 시니어의 디지털 접근성 등과 같은 현대 사회 이슈를 디자인 관점에서 조망한다. 삼성전자에서 디자이너로 일했으며, 런던에서 사회적기업가정신Social Entrepreneurship을 공부했다. 
주식회사 미션잇은 장애인, 고연령층 등 지금까지 주목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사용자 경험을 연구하는 디자인·콘텐츠 기업으로, 포용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위한 깊이 있는 전략을 만듭니다. MSV는 Meet Social Value의 약자로 콘텐츠의 선한 영향력을 지향하는 미션잇의 브랜드입니다. MSV 뉴스레터는 포용적 사회를 지향하는 2,000명이 넘는 독자분들이 구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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