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박상현의 미디어인사이트

퀴비(Quibi): 카젠버그의 자신감

위험신호
신생 뉴미디어에 투자하는 일을 하다보면 많은 스타트업들을 만나게 되고, 많이 만나다 보면 아무리 눈치가 없던 사람도 좋은 사람과 조직을 알아보는 법을 어느 정도는 깨닫게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위험신호(red flag)를 알아보는 방법이다. 가령, 몇 번을 만나는데 매번 준비자료가 부실한 것을 사과하는 스타트업은 콘텐츠가 제 때 나오지 못할 수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아무리 대표가 발표한다고 해도 같이 온 팀원들에게 전혀 발언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거나, 팀원이 하는 말을 대표가 자주 끊으면 조직 구성원이 자주 바뀔 수 있음을 걱정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이런 위험신호가 반드시 현실화되는 것도 아니고, 나의 착각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젊고 똑똑한 대표라면 실수에서 배우고 성장하기 때문에 너무 과장해서 해석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모든 위험신호 중에서도 가장 요란한 신호는 대표와 구성원의 화려한 경력 자랑이다. “저는 삼성에서 몇 년 동안.. 저희 CTO는 네이버에서 몇 년 동안.. 을 했고, 저희의 경험과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자신있습니다” 식의 소개가 나오면 일단 긴장한다. 그런 경력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걸 표현하는 방식이 많은 것을 말해준다는 것이다. 특히 콘텐츠의 경우 유명한 신문사, 방송사에서 일했다는 것과 그 사람이 미디어 스타트업에 맞는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그런데 그런 경력이 스타트업의 성공을 보장해준다는 것 처럼 이야기하고 있으면 심각한 이해부족을 의미할 수 있다.

source by Richa Naik and Janelle Gonzalez, CNN Business
올해 CES에서 발표되어 콘텐츠 업계의 관심을 모았던 퀴비(Quibi)는 드림웍스의 제프리 카젠버그와 HP의 메그 휘트먼이 선보이는 모바일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이다. 4월 6일 서비스 개시를 앞두고 있는 이 서비스를 위해 카젠버그는 지난 몇 년을 준비해왔고, 이제 흥행성공을 위해 언론사를 만나며 PR 캠페인을 하는 중이다. 그런 그가 이런 말을 했다:

“미안하지만, 저는 이 일을 오래 해왔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어요. 저는 여기에 있는 여러분들이 X발 태어나기 전부터(before you all were fucking born) 이 일을 했어요.”

위험신호다.


완벽한 서비스 기획
제프리 카젠버그는 1984년 부터 10년 동안 월트 디즈니의 회장으로 있으면서 디즈니 만화의 중흥을 이끈 후 회사를 나와서 스티븐 스필버그 등과 함께 드림웍스를 만들어서 상당한 성공을 거둔 헐리우드 업계의 큰 손이다. 하지만 창의적인 기획자라기 보다는 대형 조직을 이끌고 업계의 재주꾼들을 잘 끌어와서 일을 만들어내는 네트워킹의 선수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런 카젠버그가 준비한 퀴비(Quibi=quick+bite)는 이름부터, 시장전략, 비즈니스 모델까지 완벽할 만큼 논리적이다. 이미 넷플릭스, 디즈니, 아마존, 애플, HBO 등이 싸우고 있어서 포화상태라는 말이 나오는 동영상 스트리밍 시장에 들어가지만, 카젠버그는 이 싸움의 핵심은 “스트리밍이 아니라 모바일” 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다른 스트리밍 서비스들과 달리 모바일에 최적화된 컨텐츠를 만들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케이블 TV였던 HBO가 “It’s not TV, it’s HBO”라는 모토를 내세웠던 것 처럼 '누구나 하는 모바일 동영상 스트리밍’이라는 인식에서 차별화를 하려고 한다.

우선 타겟이 되는 Z세대와 밀레니얼 세대의 모바일 이용습관에 따라 모든 에피소드를 10분 정도의 “quick bite” 사이즈로 만든다. 두 시간 짜리 영화를 단순히 10분 단위로 쪼개는 것이 아니라, 10분 단위로 진행되는 에피소드 12개가 하나의 미니 시리즈가 되는 것이다. 즉, 컨텐츠의 제작부터 10분 단위를 염두에 두어서 다른 스트리밍 서비스의 영화와 차별화를 한다. 

게다가 영화 콘텐츠 만이 아니라 TMZ, The Verge와 같은 뉴스 매체와의 계약을 통해 큐레이션된 뉴스도 매일 소개한다. 이렇게 뉴스부터 영화까지 매일 선보이는 컨텐츠/에피소드는 약 3시간 분량. 사용자들이 그 중에서 몇 개 씩 꾸준히 골라본다고 했을 때 충분히 승산이 있어 보인다. 

퀴비는 유료 서비스다. 4월 런칭과 함께 무료 체험기간이 포함되겠지만, 그 이후로는 유료. 광고를 포함한 경우 한 달에 4.99달러, 광고가 없으면 7.99달러라는 두 개의 가격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카젠버그는 한 인터뷰에서 퀴비를 통신사의 번들 상품으로 판매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테크놀로지
하지만 퀴비가 인기를 끌 경우 한 해에 콘텐츠에만 150억 달러를 쏟아붓는 넷플릭스가 10분 단위로 진행되는 컨텐츠를 만들지 말라는 법은 없다. 넷플릭스는 이미 뉴스 성격이 강한 짧은 다큐멘터리, 설명 동영상도 만들고 있다. 따라서 아무리 업계의 큰 손 카젠버그라고 해도 이렇게 붐비는 시장에 들어가면서 독자기술이 없이 콘텐츠 만으로 투자를 받을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 거다.

source by kelsey sutton / ADWEEK
그래서 카젠버그가 준비한 기술이 턴스타일(Turnstyle)이다. 쉽게 말하면 가로 영상과 세로 영상, 두 개가 동시에 스트리밍이 되어서 사용자가 폰을 어떻게 들고 봐도 완벽한 풀스크린 영상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기술이다. 물론 이렇게 하려면 데이터 전송량이 두 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퀴비는 이를 기술적으로 해결해서 현재 보지 않는 (가령 세로) 영상의 데이터를 압축해서 보는 영상의 30% 정도 수준으로 전송될 수 있게 했다고 주장한다. (한 번에 다운로드를 받으면 그 보다는 양이 훨씬 많아지지만 그래도 두 배가 되지는 않는다고). 

그리고 이 기술을 개발(한다기 보다는 투자자들에게 설득)하기 위해서 HP의 CEO를 지낸 거물 메그 휘트먼을 영입했다. 카젠버그는 컨텐츠를 가장 잘 알고, 자신은 기술을 가장 잘 안다는 것이 CES 키노트에서 휘트먼이 한 말이다.

하지만 퀴비의 발표가 나온 지 며칠 만에 어도비가 크리에이티브 클라우드에서 '센세이 AI 엔진’을 사용해 가로 영상에서 적절한 세로 영상을 잘라내서 보여주는 기능을 선보이는 바람에 빛이 좀 바랬다. 물론 퀴비의 기술은 모바일로의 압축전송, 재생기술에 가깝겠지만 턴스타일이 인기를 끌 경우 다른 플레이어들이 비슷한 기능을 쉽게 내놓을 수 있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


타겟 오디언스
넷플릭스의 성공의 절반은 테크놀로지의 덕이라는 말이 있다. 전세계에 그렇게 많은 가입자들에게 그렇게 방대한 데이터를 멈춤없이 깔끔하게 전달하는 기술, 시청자들이 원하는 콘텐츠를 알고리듬으로 찾아서 추천하는 기술이 없었으면 아무리 콘텐츠 라인업이 환상적이라도 지금과 같은 성공은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넷플릭스의 기술은 보이지 않는 기술이다. 아무리 좋은 콘텐츠배급망(CDN)을 갖추고 있고, 최고의 분류법과 추천알고리듬을 갖고 있다고 해도 시청자의 눈에는 드러나지 않는다. 시청자는 그저 자기가 좋아하는 영상이 좋은 화질로 잘 나오기만 하면 만족한다. 훌루(Hulu) 초기에는 화면이 자주 멈췄고, 영상과 음향 사이에 지체(lag)가 생기는 등 기술적인 문제가 오래 지속되었지만, 넷플릭스 사용자들은 그런 문제를 느끼지 못했다. 넷플릭스의 기술은 무대 뒤에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반면 퀴비의 기술은 투자자에게 설명하기에 좋은 기술에 가깝다. 당장 보는 사람들이 신기해 할 기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바일로 영상을 보는 사람들이 정말 폰을 가로 세로로 돌려가면서 다양하고 역동적으로 영상을 즐길까? 퀴비가 사용자 조사를 얼마나 했는지는 모르지만, 모바일로 영상을 즐기는 사람들은 손을 움직이 싫어하는 사람들이고, 많은 경우 그냥 테이블 위에 폰을 놓고 본다. 처음에는 신기해서 돌려보겠지만, 곧 최적의 자세를 찾은 후 움직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퀴비가 소개한 기술에서 관심을 끄는 것은 기술력이 아니라, 이들이 타겟 오디언스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느냐이다. 카젠버그는 퀴비의 사용자는 18-44세까지이지만, 사실은 핵심 사용자는 25-35세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카젠버그(69세) 보다 34년, 휘트먼(63세) 보다 28년 어린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서비스를 설계한 것이다. (참고로 넷플릭스를 설립했을 당시 리드 헤이스팅스의 나이는 37세였다). 

그래서 성공하기 힘들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철저한 조사와 조심스런 접근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60대의 설립자들이 “내가 당신들 태어나기 전부터 이 일을 해와서 아는데…”라는 말을 쉽게 하고 다니는 건 좀 불안해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콘텐츠
“결국 중요한 건 콘텐츠”라는 말을 제일 싫어하는 사람들은 아마 콘텐츠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일 거다. 콘텐츠 외에 얼마나 많고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는 건데 그것도 모르면서 사람들이 “재미있으면 팔리는 거지 뭐”라고 말하는 걸 들으면 설명을 포기하고 그냥 입을 다물고 말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퀴비의 경우는 결국 중요한 건 콘텐츠일지 모른다. 왜냐하면 사업모델은 완벽해보이고, (다소 컨설팅 업체의 비싼 보고서 느낌은 나지만) 시장분석과 접근법도 완벽하고, 무엇보다 설립자의 이름값으로 자금도 넉넉하게 끌어오는 등, 콘텐츠 이외의 문제는 거의 해결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처음부터 기획한 카젠버그가 실력을 발휘할, 아니 하지 않으면 안되는 부분이 콘텐츠다. (각주1) 드림웍스부터 같이 해온 스티븐 스필버그가 참여하기로 했고, 헐리우드의 수많은 스타들이 참여를 선언했다. (한 감독은 카젠버그는 업계의 대부라서 그가 말하면 합류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공포영화 시리즈를 만들면서 "해가 진 후에만 볼 수 있게 하겠다” 고 했을 때는 고개가 갸우뚱거리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again, do they know their audience?) 발표된 콘텐츠 라인업을 보면 헐리우드에서 카젠버그가 어떤 존재인지 느낌이 온다. 가장 많은 것은 리얼리티 장르이고, 그 다음은 코미디 드라마, 그리고 공포물 약간과 뉴스와 스포츠 소식등이 등장하는 데일리 에센셜이다. 

장르별로 20, 30개나 되는 쇼가 가득하고, 각 쇼는 헐리우드의 빅 네임들로 채워져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중에서 킬러 콘텐츠, 친구들 사이에 바이럴이 나서 모두 폰에 시선을 고정하게 만드는 콘텐츠가 몇 개나 터지느냐일 것이다. 카젠버그는 퀴비의 콘텐츠를 TV는 커녕, 컴퓨터 모니터로도 스트리밍하지 않겠다고 밝혔을 만큼 모바일에서 승부를 보려고 한다. 그것이 포화된 스트리밍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진짜 문제는 어쩌면 퀴비가 정말로 성공을 했을 때 생길 수 있다. 유튜브, 넷플릭스, 애플 같은 플랫폼이 퀴비의 성공방식을 도입하는 것은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넷플릭스가 스트리밍을 시작하고 나서 디즈니 같은 진정한 적수를 만날 때까지 12년의 시간이 있었다면 퀴비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와는 비교가 안되게 짧은 시간일 거다.

성공한다고 가정했을 때 말이다.



주1. 휘트먼은 콘텐츠의 기획이나 선별 등은 카젠버그에게 맡기고 자신은 서비스 개시 다음날 부터 데이터에 의존해 결정하겠다고 한다. 이렇게 콘텐츠 생산을 책임진 사람과 데이터를 들여다 보는 사람이 분리되어 있는 조직에서는 충돌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이렇게 양쪽 모두 자신만만한 사람들일 경우 결과가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을 경우 내분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물론 지켜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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