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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NT BAKERY l NEWS LETTER 2022. FEB. WINTER 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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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월 Kim Sawol
포크듀오 김사월X김해원으로 데뷔했다. 메모 같으면서도 시적인 노랫말을 쓰는 싱어송라이터. 수잔 (2015), 로맨스 (2018), 헤븐 (2020) 세 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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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만으로 그림을 훔칠 수 있다면
17년도의 여름, 어디든 꿈꿀 수 있던 그 시절, 저는 스페인에 머물렀습니다. 마드리드에 일정이 하루 있었고 얼마나 머물다 돌아갈지는 계획하기 나름이었지요. 저는 일을 마치고 일주일 정도의 자유시간이 있도록 정했고, 되돌아보니 이 여행은 저의 생에 아주 이상적인 출장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 살다 보면 차마 상상하지 못했던 곳으로 제 음악이 보내어지는 경험을 종종 하곤 합니다. 제가 노래를 부르며 이곳저곳으로 신호를 보내면 그 호출을 읽은 이들이 저를 초대하는 것이지요. 생각지도 못한 곳에 닿은 그 응답은 언제나 반갑고 설렙니다. 지금까지 예상하지 못했던 세상으로 저는 기꺼이 향합니다.
여름의 마드리드라니요. 지금 생각해도 사기에 가까운 여행지였습니다. 제가 묵었던 오래되고 예쁜 숙소 아래에 있는 카페는 오전 여섯 시부터 영업을 하더라고요. (저는 이른 오전에 여는 여행지의 카페를 좋아합니다.) 창문 밖에 올라온 스페인의 맑은 아침 햇빛이 그보다 더 쨍한 세룰리안 블루가 칠해진 실내장식 타일을 비추면 이 주변에서 살거나 일하는 것으로 추측되는 손님들은 테이블이나 바에 하나둘 모여들어 아침 식사를 합니다. 작은 에스프레소 잔을 들고 츄러스를 먹는 사람들 사이로, 알아들을 수 없는 진지하고 일상적인 언어들의 뉴스가 통통한 티브이에서 배경 음악처럼 잔잔히 흐르고 있었습니다. 저도 커피와 츄러스, 오렌지 주스 (커피와 주스를 함께 마심으로써 완성되는 조식의 낭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를 주문해놓고 마치 이곳에 유학 온 학생인 체했습니다. 제가 그런 척하는지는 아무도 몰랐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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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엔 서늘한 바람이 불고 햇빛 아래는 건조하게 뜨거워지는 마드리드의 거리를 저는 탱크톱 차림으로 걸어 다녔습니다. 더위 때문에 입고 있던 얇은 후드를 벗고 싶었고 마침 속옷은 안 입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음을 알았기에 저는 마치 독립을 쟁취한 사람처럼 벅찬 마음으로 가볍게 거리를 걸었어요. 아주 간단한 단어와 생활 문장만 외어갔지만, 괜히 읽을 수 있었던 몇 개의 음료수 이름과 가게 간판조차 저를 환영하는 것 같았고요. 뜨거운 날씨와 차가운 바람에 어울리는 매력적인 사람들이 가득한 마드리드 거리. 그곳을 떠나가기 아쉬웠던 태양도 저녁 아홉 시까지 도시를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어요. 이 단순하고 아름다운 여행을 즐기던 젊은 날의 나는 계속 웃고 싶고 집에 가기 싫어서 손가락으로 눈물을 몰래 찍어댔습니다.
프라도 미술관은 세계 3대 미술관이라 불리는, 그렇게 생각하니 대단하고 좀 피곤할 것도 같은 규모와 역사의 작품들을 가진 곳이었는데요. 유명한 장소이니 여행 중 한 번 들리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하고 갔다가 완전히 매료되어버린 저는 그날 관람 시간이 끝날 때까지 거기에 있었어요. 미쳐 보지 못한 작품들을 마저 관람하기 위해 다음날도 미술관이 닫을 때까지 있었네요. 당시 제가 느끼기에도 벅찬 이 감흥을 지금이라고 감히 풀어낼 수 있을까요?
광활한 공간 속 무게감 있지만 산뜻한 색상의 전시벽 위에 역사적인 그림들이 위엄 있는 액자를 반지처럼 끼고 반짝반짝 숨을 쉬고 있었습니다. 저는 압도되었고 정신이 혼미해지며 동시에 또렷해졌습니다. 아주 오래된 터치를 느끼며 그때의 작가가 고심했을, 혹은 무심했을 호흡을 생각했습니다. 작가와 제목, 지명과 시대를 읽어도 어디인지 언제였을지 상상하기 어려울 까마득한 그 시절에도 작가들은 그리고 표현하며 삶을 이어나갔을 테지요. 오래된 작가의 눈과 손으로 기록된 유럽의 하늘은 푸르렀습니다. 그 순간 감정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습니다. ‘나도 이곳의 마법 같은 날씨와 풍경을 매일 볼 수 있었더라면!’ 바보 같은 부러움과 어리석은 질투를 느끼며 발걸음을 옮기면 다시 저의 탐욕스러운 마음을 넘치게 적셔줄 작품들이 끝없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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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ego Velazquez, 시녀들(Las Meninas, The Maids of Honour) ⓒ김사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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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녀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한 올 한 올 정성껏 그려 올린 은색 머리카락과 옅은 상아색의 이마, 가늘고 부드러운 눈썹, 그 아래 지금도 마르지 않았을 촉촉한 눈망울이, 나를, 아니 화가를 보고 있었습니다. 화가는 누구보다 아름답게 그 눈을 기록하고 표현하기 위해 오랫동안 관찰하며 그녀의 눈망울을 창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저는 그녀와 눈이 마주쳤는걸요. 그녀는 낯선 세상을 보는 것이 두렵고도 흥미롭지만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할 익숙한 권태감에 젖어 있는 듯합니다. 화가의 터치로 지나고 있는 그녀의 이 순간은 아름다워 보입니다만 그녀가 진정으로 삶에서 무엇을 원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지요. 이 공간을 나서도 그녀를 찾아볼 수는 있겠지만, 지금처럼 우리가 마주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걸 알면서도 저는 아쉬운 발걸음으로 미술관을 계속 걸어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프라도 미술관이라는 광활한 바다에 던져진 저는 이곳을 떠나기 전까지 모든 것을 필사적으로 느껴야 했습니다.
집중력이 떨어졌을 무렵, 미술관의 카페로 향했습니다. 그곳에서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리워할 에스프레소의 첫 입을 마시게 됩니다. 사실 무얼 먹었어도 행복하지 않았을까 추측하시겠지만 카페 프라도는 미술관에 예의상 딸려있는 카페가 아닌, 아주 좋은 커피와 음식들을 즐길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가족이 이주해온 이민자 2세로, 미술관에서 버스 두 정거장 거리의 작은 아파트에서 살며 미술 공부를 하는 학생이라 사람이 덜 붐비는 평일 낮에 학생 할인으로 미술관에 들어와 산책하듯, 익숙하게 걷고 커피를 마시는 척했습니다. 대여섯 시간 집중해서 전시를 봤더니 후들거리며 어지러워져 다음날 전시의 남은 부분을 보러 다시 오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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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서 나오면 보이는 풍경들과 성당 ⓒ김사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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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공간에서 빛을 내던 탐스럽고 눈부신 예전의 과일들, 놀다가 누워있는 아이의 몸이 반사되는 그때의 젖은 해변 위 검고 단단한 모래들을 저에게도 담아봅니다. 머금지 못하고 계속 넘쳐흐르는 스스로 흡수력에 한숨지었지만, 이미 마음속 주머니와 가방, 작은 그릇들 하나하나 저의 용량 전부에 미술관에서의 감상이 가득 담겨 있었고 이내 그럴 수 있다는 것에 조금 미소 지었습니다.
미술관이 끝나는 시간이 되자 시선만으로 그림을 훔치는 도둑처럼 마지막 한 점도 놓칠 수 없이 빠른 걸음으로 걸어 다니며 작품들을 쏘아보았습니다. 해가 여전히 노랗게 걸려있는 오후 여덟시, 관객들은 같은 수업을 들은 학생들처럼 미술관을 느적느적 빠져나왔습니다. 미술관 밖 연한 잔디가 가늘게 피어있는 잔디밭에 아무렇게나 쉬고 있는 그곳의 사람들을 보며 또 화가 났습니다. 미술관 앞 성당을 서성이며 ‘내가 이곳에서 태어났더라면 매주 이곳에 올 테야! 종교를 가지고 그림을 그릴 거야!’라며 부러움과 질투로 씩씩댔습니다.
일상의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여행객의 하루하루는 이내 저물었고 다시 프라도 미술관에 가기를 소망하기에는 기약 없는 요즘을 살아가며 저는 미술관이 그립습니다. 지금의 삶에서도 산책하듯 미술관에 가서 제 마음의 운신을 넓힐 수 있겠지요. 한 달에 한 번 정도 미술관에 가서 마음을 축이고 예술가가 사랑한 풍경을 마음껏 흠모하는 그런 삶을 아직 가지지는 못했지만 언젠가 그렇게 되리라 꿈꿀 수 있도록 미술관은 존재합니다.
이번에는 서울에서 음악과 이것저것을 하며 살아가는 저라는 사람으로 미술관에 가고 싶습니다. 기분 내려고 입은 말쑥한 코트와 머플러, 튼튼한 구두 차림으로 종로구의 미술관을 거닐며 천천히 오래 머물고 기쁘게 질주하듯 걸으며 그림들을 감상하고 싶습니다. 그런 집중을 스스로 줄 수 있다는 것에 조금은 자아도취하고 조금은 겸허해지며, 지금 느끼고 흡수할 것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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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 your wonderful winter.
계절의 경계에서 당신께 편지를 띄웁니다. 겨울의 이름을 담은 편지는 미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 따스한 마음을 나누면 좋겠다는 소망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렇게 나눈 온기로 올 한 해를 안녕히 지내길 바라봅니다.
모든 예술은 사람이 만들고 사람이 봅니다. 그림을 통해 사람과 삶, 나를 만난 9인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2월부터 3월까지, 겨울과 봄 그 사이에, 매주 금요일마다 당신의 편지함으로 찾아갑니다. 답장을 써보내주셔도 좋아요. 우리 함께 예술의 찬란함을 느끼며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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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를 뛰어넘은 샬롯 페리앙처럼, 비주얼 디렉터 조미연의 미술 취향
가구를 미술관의 작품처럼 보이도록 연출한 에이치픽스, 한국적인 요소로 우리의 아름다움을 담아낸 로우클래식 쇼룸, 베를린까지 다녀오며 디자인을 고민했던 로스트 성수. 조미연은 단순히 아름답게만 한 것이 아닌, 공간의 목적과 효과를 고려한 디자인을 선보입니다. 누구보다 앞서 트렌드를 만들어가는 조미연은 과연 어떤 미술 취향을 가지고 있을까요?
01 칸딘스키, 말레비치 & 러시아 아방가르드: 혁명의 예술 02 앙리 마티스 라이프 앤 조이 03 로이 리히텐슈타인展 - 눈물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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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박세연 DESIGNER 제민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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